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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111화 (1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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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큰일이다.’

그제야 차은석은 자신이 많이, 순진했음을 깨달았다.

정재욱은 당시 차은석이 자퇴를 해버리면서, 이미지에 꽤나 큰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다.

성희롱으로 여학생 하나를 자퇴시킨 것으로 모자라서, 잘 다니고 있던 여학생을 한 명 더 그만두게 만들었으니, 당시 경찰대 내 여론이 말이 아니었을 테지.

아마도 정재욱에게 있어 그 일이, 그의 경찰 인생에 있어 최대 오점이 되었을 공산이 컸다. 근데 그 원인 제공자가, 녀석의 똘마니 앞에 떡하니 나타났으니, 그 똘마니 입장에서야 어떡하든 차은석을 붙잡아두고, 정재욱에게 갖다 바쳐서 칭찬을 받고 싶지 않겠나?

정재욱 그 새끼라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차은석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놈이었다.

그걸 알기에 차은석은 지금 많이 곤란했다.

‘내가 미쳤지. 그냥 아까 대표님 나갈 때, 따라 움직였어야 했는데....’

오재수가 아는 척을 해도, 그냥 가볍게 인사정도만 하고 경찰서를 나갔어야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한 20분 정도?

아마 백준열 대표는 지금쯤 JYB엔터로 가고 있을 것이다.

물론 몇 시간 뒤, 자신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걸 알게 되면, 백 대표가 그녀를 찾을 테지만 그 사이, 오재수는 정재욱에게 연락을 하고 그가 시키는 대로, 그녀가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 속에, 그녀를 던져 놓을 것이다.

‘대표님께 또 민폐를 끼치겠구나.’

잘릴 뻔한 그녀를 기껏 구해줬는데, 이런 식으로 예전의 악연에 연루되어, 자칫 인생을 망칠 지경에 처해 버린 차은석.

그녀가 절망하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뭐해요? 빨리 회사 들어가지 않고.”

“대, 대표님!”

백준열 대표가 거짓말처럼,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때 오재수가 나섰다.

“여기 있는 차은석씨는, 조사가 더 필요하니 그냥 두고 그쪽이나 가시죠?”

“넌 뭐야?”

“뭐, 뭐요? 너, 너라니?”

“여기 서장 데려와.”

백준열 대표는 오재수와 더 말 섞기도 싫다는 듯, 옆에 경호팀장에게 말했고 경호팀장이 즉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막 경찰서에 출근했던, 강남경찰서장이 부랴부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아이고. 백 대표님!”

강남경찰서장과 백준열 대표는 구면인 모양이었다.

“서장님. 요새 경찰들 왜 이럽니까?”

“네?”

“좀 전에 서면으로 조사하면 된다고 풀어줘 놓고, 왜 갑자기 조사를 한다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겁니까?”

내 말에 강남경찰서장 옆에, 무궁화 3개 견장을 어깨에 단 경정이, 서장 귀에 대고 뭐라고 속닥거렸다.

그러자 강남경찰서장이 대노해서 오재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쳤다.

“야! 형사 3팀에서 내린 조치를, 니가 뭔데 끼어들어 조사 운운하는 거야?”

“서, 서장님. 하지만 이 여자는 저한테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반드시 조사를 해야....”

하지만 오재수의 말을 강남경찰서장은 더 들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백준열 대표가 차은석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걸 본 거다.

그게 뭔 소리겠나? 저 여자는 백준열 대표의 여자다.

그걸로 오재수의 말은 더 들을 것도 없이, 얘기는 끝났다고 보면 됐다.

“시끄러워! 너 가!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강남경찰서장이 진짜 화가 난 듯 안 가면 오재수를 어쩔 기세였다.

그러니 오재수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치다, 결국 자신의 부서인 형사 2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백 대표님.”

“아닙니다. 보아하니 젊고 혈기 넘치는 경찰 분 같으신데, 그럴 수 있죠. 뭐 큰 실수만 안한다면야....”

그러니까 큰 실수하기 전에, 어디로 치워 버리라는 소리였다.

그걸 못 알아먹을 정도로, 강남경찰서장은 우둔해 보이지는 않았다.

* * *

차은석은 지금 두 번 놀랐다.

처음은 백준열 대표가 그녀 앞에 이렇게 나타난 준 것이고, 그 다음은 그가 갑자기 그녀 어깨에 팔을 둘렀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이유는 차은석도 바로 눈치 챘다.

그걸 보고 강남경찰서장이 보인 반응 때문에 말이다.

‘내가 백 대표님 여자인 줄 알았구나.’

그녀가 그냥 백준열 대표의 직원인 것과, 그의 여자인 것은 천지차별이었다.

직원이라면 강남경찰서장도, 자신의 체면은 어느 정도 차리려 했을 거다.

어째든 이곳의 최고 우두머리는 자신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여자라면 강남경찰서장이 백 대표의 체면을 살려줘야 했다.

그래서 오재수에게 그렇게 버럭 화를 낸 것이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도 되는 거죠?”

백준열 대표가 여전히 차은석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강남경찰서장에게 물었다.

“그럼요. 어서 가십시오. 서면 조사도 가급적이면, 다음 주에 할 수 있게 조치해 놓겠습니다.”

“신세를 졌네요. 다음 주말에 서울경찰청장님과 골프 회동이 있는 데 그때 보시죠?”

“정, 정말이요?”

백 대표의 말에 강남경찰서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긴 경찰 서열 2위인 서울경찰청장과 같이 골프를 칠 수 있다는 건, 그의 앞길에 출세가도가 보장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자아. 다음 주, 주말에 서울CC에서 봅시다.”

“아이고. 네. 감사합니다.”

강남경찰서장이 오늘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백준열이 내민 손을 두 손으로 잡았으며 허리까지 굽혔다.

그렇게 백준열 대표는 다정하게, 차은석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경찰서 건물을 나섰다.

“이, 이제 푸셔도 되지 않나요?”

그때 차은석이 어색해 하며, 백준열 대표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백 대표가 슬쩍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차에 탈 때까지 이렇게 갑시다. 여기저기 보는 눈이 제법 많아서 그래요.”

백 대표의 말에 차은석이 곁눈질로 주위를 쳐다보니, 그의 말처럼 경찰서 건물이며 바깥 주차장 주위에서도, 백 대표와 자신을 쳐다보는 눈들이 많았다.

“타요.”

백 대표가 자신이 탈 차에 차문을 직접 열어주자, 그걸 보고서 그제야 그와 차은석을 유심히 쳐다보던 눈길이 사라졌다.

백 대표가 자신의 차에 태울 정도면, 차은석이 그의 여자임이 확실하다고 본 것이다.

차은석과 같이 자신의 차에 탑승한 백준열 대표가,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일단 여기부터 나가자고.”

“네.”

그렇게 백준열 대표와 차은석을 태운 차가, 강남경찰서를 빠져 나가자 그제야 백준열이 차은석에게 물었다.

“집이 어디에요?”

“네?”

“집에 가서 씻고 옷도 좀 갈아입어야 할 거 같은데?”

“아아. 광진구청 근처에요.”

“그나마 가까워서 다행이네요.”

거기서부터 딱 차로 10여분 뒤, 차은석의 집 앞에 도착했다.

“오후에 봅시다.”

“네. 태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백준열 대표의 차는 차은석을 내려주고, 곧장 왔던 길을 돌아서 갔다.

아마도 JYB엔터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 차를 차은석은 한 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현 듯 자기 어깨와 목, 그리고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다가, 움찔 놀라며 말했다.

“미, 미쳤어!”

갑자기 얼굴이 시뻘게진 차은석은, 부랴부랴 자기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30대 초반의 여자로 이미 무르익을 때로 익은 차은석.

그녀는 아까 백 대표가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둘렀을 때부터, 차를 타고 집에 오기까지 계속 가슴이 설렜다.

그게 뭘 의미하는 지, 모를 그녀가 아니었지만 그녀는 애써 그걸 부정하려 했다.

자기마저 김 비서처럼, 그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 몸은 정직했고, 그를 더 느껴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일까?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손이 그걸 표출했고, 그걸 깨달은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집에 들어가서 일부러 찬물에 샤워를 했지만, 그녀 몸의 열기는 쉬이 식지 않았다.

* * *

오재수는 자신이 성급하게, 정재욱에게 차은석을 찾았다고, 먼저 알리지 않을 걸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정재욱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자신이 차은석을 놓쳤다면, 아마 정재욱이 그에게 크게 실망을 했을 테니 말이다.

“서장새끼. 감히 나한테 소리를 쳐?”

정재욱이 뒷배인 오재수는, 사실 강남경찰서장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강남경찰서 안에서 최고 상급자는 서장이었고, 그는 서장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만약 불복해서 시말서라도 쓰게 된다면, 인사 불이익을 받을 건 자명한 일.

그것까지 정재욱이 자신을 챙겨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으면 그걸 핑계로, 언제든 자신을 쳐 낼 인간이 정재욱이었다.

때문에 오재수는 정재욱의 떨거지 노릇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커리어 관리도 같이 신경을 써야했다.

“뭐 일단 차은석이 어디에서, 뭘 하고 살고 있는지는 알아냈으니....”

간략한 참고인 조사서에는, 차은석에 대한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걸 정재욱에게 넘기는 것만으로도, 오재수는 분명 정재욱에게 칭찬을 거하게 받을 거였다.

이때 오재수는 JYB엔터의 백준열 대표가, 차은석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걸 보지 못했다.

서슬 퍼런 서장 눈치를 보느라, 또 서장이 윽박지르는 통에 겁을 집어먹고, 자기부서로 내빼기 바빴기 때문에 말이다.

“자아. 이제 정 과장님한테 칭찬 좀 받아 볼까나?”

오재수는 지금쯤이면 서울경찰청에 오전 간부 회의가 끝났을 시간이라 보고, 정재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자신의 예상대로 정재욱은 재깍, 오재수의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찾았습니다.”

=찾다니 뭘?

“왜 그 년 있잖습니까? 저번에 일식집에서 선배님이 말한, 그 되바라진 년 말입니다. 우리 대학 때요.”

=대학 때 되바라진 년이라면....설마? 차은석?

“네. 그 차은석이 글쎄 오늘 저희 서에 왔었지 뭡니까.”

=그래서? 잡아 뒀어?

“아뇨. 제가 출근했을 때는, 이미 참고인 조사 받고 집으로 돌아 간 뒤였어요.”

오재수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잘도 했다.

=그런....

딱 봐도 아쉬워하는 티를 팍팍 내는 정재욱. 그런 그에게 오재수가 말했다.

“그년 사는 데와, 어디서 일하는지 알아냈는데 어떻게 할까요?”

=그래? 하하하. 그렇다면 급할 거 없지. 일단 그년 신상정보 내 메일에 넣어 줘.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넣을게요.”

=그래. 수고 했다. 그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너도 알지? 내가 그년 때문에 경찰대에서 제대로 얼굴도 못 들고 다닌 거?

“당연히 잘 알죠. 저도 마찬가지였잖아요.”

=아아. 맞다. 너도 욕 좀 먹었지.

“네. 뭐....”

욕 좀 먹은 정도가 아니었다.

정재욱이야, 그 다음 해에 졸업해 버렸으니, 그런 꼴을 더 안당해도 됐었지만, 오재수는 거기서 1년을 더 다녀야 했다.

그때 동기뿐 아니라 후배들, 특히 여자 동기와 후배들에게 받아야 했던, 그 모멸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년 뭐 하고 산다니?

오재수가 보낼 인적사항을 메일로 받아보면 알게 될 일이지만, 정재욱은 당장 경찰대를 때려치우고 차은석이 얼마나 잘 됐는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JYB엔터라고 아시죠?”

=알지. 요즘 가장 HOT한 연예 기획사잖아?

“거기서 일하고 있답니다.”

=뭐? 푸하하하. 고작 딴따라들 뒤치다꺼리나 하고 산다고?

정재욱의 그 말에 오재수도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소릴 하니 꼰대에 고인물 소리를 듣는 거다.

이제는 판, 검사보다 그 딴따라가 되는 게 꿈인, 어린 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다.

아마 정재욱의 아들도 그 딴따라가 되고 싶어, 그 엄마, 즉 정재욱의 와이프가 그 아들을 데리고, 여러 연예기획사를 기웃거리고 있다는 얘기를, 익히 들은 오재수로서는 정재욱의 연예인 비하 발언이, 더 같잖을 수밖에 없었다.

=씨발년. 난 또 그렇게 나가기에, 뭐라도 대단한 인물이라도 될 줄 알았지. 사는 데는 어딘데?

“광진구요. 구청 근처더군요.”

=쩝. 거긴 좀 머네. 너희 쪽하고는 가깝고.

“네. 여기서 차로 15분 거리니까요.”

=일단 좀 두고 보자. 내가 요즘 좀 바빠서. 너 혼자 그년 잡기는 좀 무리 같으니까....

“아닙니다.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니가?

“네. 함정 수사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년 인생 조져 놓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오오. 오재수. 제법인데? 으음. 그래도 생각 좀 하자. 그년 인적 사항 좀 내가 보고, 내일 쯤 연락 줄게.

“네. 그럼 내일 꼭 연락 주십시오.”

통화를 끝내자, 오재수는 바로 정재욱의 메일로, 차은석의 인적사항이 들어 있는 파일을 보냈다.

* * *

어젯밤 배창석과 그 똘마니 녀석들에게, 김 비서 납치를 맡기고 대치동에, 자기 소유로 되어 있는 폐건물로 갔던 황치국.

“룰루루....랄라라....”

이제 한두 시간 뒤에, 그토록 바라던 바를 이룰 수 있게 된 황치국은, 한껏 들떠 있었다.

“저번에 지하실 전등 다 갈아 놓으라고 했는데....”

다행히 지하실 입구에 스위치를 켜자, 그 안이 환하게 밝혀졌다.

“좋았어.”

이제 남은 건 폐건물 지하실 안을 대충 치우고, 그녀와 둘만이 빠구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

황치국은 지하실 안에 창고를 뒤져,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 들었다.

지하실 제일 안쪽에 보면 격벽이 있는데 거기를 치우고,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다가 장판을 펼치면, 적어도 바닥의 냉기는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지하실 구석 쪽에 어떤 공간을 만들지 생각을 하며, 걸어 들어가던 황치국.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배창석이다.

“뭐지?”

황치국은 혹시 몰라서 그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배창석이 이상한 소릴 했다. 죽이는 년이 가라오케 안에 둘이 있다나?

‘그럴 리가?’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연예인을 뺨쳐 버리는 김 비서다.

그런 그녀와 비교 될 만한 미인이, 뭐 하러 그딴 가라오케에 가 있겠나?

근처 클럽에 가면 남자들이 여왕으로 모실 텐데.

어째든 김 비서의 인상착의를 불러주자, 알았다며 바로 전화를 끊는 배창석.

근데 그 전화를 받고 나서, 갑자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에이 씨!”

그래서 들고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창고 벽에 냅다 집어 던져 버린 황치국.

그가 초조한 듯 자신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이내 다시 배창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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