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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런 양태석을 보고 정준호가 장난 끼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지금 우시는 거 아니죠?”
그러자 양태석이 안 그래도 굵은 그의 목소리가 울먹해서 대답했다.
“울긴 누가 울어?”
그러면서 고개를 드는 데, 슬쩍 팔로 눈을 가리며 마치 눈물을 닦는 거처럼 행동했다.
“진, 진짜로 울었습니까?”
그걸 보고 놀란 정준호가 다시 묻자, 그제야 히죽 웃으며 양태석도 장난 섞인 얼굴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준호 놀리려고 양태석이 우는 척 연기를 한 거다.
“에이 씨. 난 또....”
정준호는 자신의 속았단 사실에 화 난 척 했지만,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런 정준호에게 양태석이 이번에는 진짜로 웃음을 싹 지우고, 진지한 톤으로 말했다.
“준호야. 너 말고 나와 함께 할 만 한 녀석들 좀 챙겨야겠다.”
“완전 독립하실 생각이십니까?”
“하고 싶어 하는 독립이 아니잖아? 그리고 돈도 없이 무슨 독립.”
“그러면 자금줄은 어떻게....혹시 마약 쪽에 손을 대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래도 조폭 조직이 제대로 운영 되려면 목돈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조폭 조직들이 마약의 유통망을 장악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것이다.
또한 그 때문에 피터지게 싸우기도 하고.
“아니. 나한테는 든든한 물주가 있잖아?”
“아아. 그 개새....아니죠. 이제부터 저희 조직의 위대한 물주시니, 진짜로 백준열 대표라고 불러야겠네요.”
“그래. 이제 너도 말조심해. 내가 사장이면, 그 분은 회장님이 되실 분이니까.”
“네. 조심하겠습니다.”
“그래서 너는 누구누구를, 우리 조직으로 데려 오고 싶은데?”
“일단 손대명이는 데려 와야 합니다.”
손대명은 태천파의 기동타격대 격인, 사신대의 실질적인 보스였다.
손대명과 그 밑에 애들만 데려와도, 그 어떤 조직과 싸움에서 밀리는 일은 없었다.
그 정도로 무력적으로 손대명과, 그 밑에 사신대 만한 애들이 없었다.
“알았어. 그럼 대명이는....”
“지금 바로 부르시죠? 제가 봤을 때 시간 없습니다. 말이 며칠이지 그게 내일이 될지 모를 일 아닙니까?”
정준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자. 내가 대명이한테 전화하마.”
양태석은 정준호에게 말했듯이 바로 손대명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손대명은 바쁜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명이 말고는?”
양태석은 가급적 많은 조폭들을 자신이 데리고 있으려 했다.
그걸 눈치 차린 정준호가 자기가 겪어 본 조폭 중간 보스 급에서, 그나마 쓸 만한 자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충식이도 괜찮고 용건이도 쓸 만 합니다.”
“대호는?”
“대호는 문식이 형님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최문식 말이냐?”
“네.”
“그 형님 요새도 필리핀 쪽 마약 조직과 가깝게 지내니?”
“그렇죠. 뭐. 총기도 꽤 모으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총기?”
아무래도 이번 검경의 태천파 조지기에, 아무래도 최문식이 큰 몫을 한 거 같았다. 불법 무기를 자꾸 사재기하고 있으니 검경에서도 위기감을 느낄 밖에. 거기다가 마약은 덤이고 말이다.
“보스가 여전한가 보구나?”
“뭐 보스라고 별 수 있나요? 문식이 형님에다가, 동규, 만복이 형님도 일본과 대만 쪽에서 마약 계속 들여오고 있잖습니까? 사실 마약 빼면 우리 조직 재정은 금방 파탄 날 테니....”
“그러게 조직 덩치는 왜 자꾸 부풀려서는....”
양태석은 수차례 자기 친형이자, 태천파 보스인 양태천에게 말했다.
지금 세를 불려 봐야 감당키 어렵다고 말이다.
하지만 양태천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아니면 언제 태천파를, 전국구 조폭조직으로 키우겠느냔 거다.
결국 양태석은 형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양태천은 재벌들과 권력자들의 똥구멍이나 닦아 주면서, 그들에게 받은 돈과 권력으로 조직의 규모를 빠르게 키워 나가, 결국 서울에서 가장 큰 조폭 조직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상누각일 뿐....’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은 어차피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 오래 견디지 못한다.
특히 조폭들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 재벌들과 권력자들이 태천파를 배신하면서, 태천파는 몰락의 특급 열차를 타기 일보 직전에 와 있었다.
* * *
평창동에 위치한 서재국 전 대통령의 저택.
“허허허허. 자자. 먹자. 우리 지연이 많이 먹어. 너 좋아하는 보리굴비 구워 놨다.”
“네. 할아버지. 잘 먹을 게요.”
백지연은 자기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을 끔찍이 아끼는 외할아버지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사실 퇴근하기 전까지 그녀는 오늘 내내 짜증이 나 있었다.
무능하기 이를 때 없는 두 오빠와, 제 형수나 건드리는 색마 동생보다야, 자신이 후계자로 능력에서나 도덕적으로도 후계자에 가까운데, 아버지는 자신이 딸이라는 이유로 배척을 하고 있었다.
‘요새 누가 아들딸 차별 한다고....’
오히려 남녀가 역전 되어, 부모도 딸을 더 챙겨 주는 분위기라는데, 자기 집안은 어떻게 된 게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당최 이해가 안 되는 백지연이었다.
근데 외갓집에 오니 대접이 달랐다.
특히 외할아버지는 오늘도 그녀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두셨다.
바로 그녀가 평소 갖고 싶었던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를 직수입해서 선물해 주신 것.
꼭 장난감 차 같이 생긴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는 백지연이 꼭 가지고 싶었던 인생 차였다.
물론 국내 도로에서 최고 시속 325Km/h로 달릴 수는 없겠지만, 그녀가 잘 아는 레이싱 장에서라면 얘기가 또 다르다.
그녀는 주말에 레이싱 장에서, 외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를 탈 생각에 벌써 흥분이 됐다.
외할아버지가 식탁에서 말한 대로 백지연은 오랜만에 배부르게 밥을 먹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보리굴비 맛이 너무 좋아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더니 배가 볼록 나왔다.
맛있게 식사 후 후식을 먹으며, 외할아버지와 외갓집 식구들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까지 분위기가 좋았다.
“아버지. 저랑 얘기 좀 해요.”
근데 엄마가 외할아버지와 따로 할 말이 있다며 외할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간 뒤, 점차 그 자리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연이 너 이번에도 백 회장님한데 지분 하나도 못 받았다면서?”
“진짜? 고모부는 왜 그러신데? 너 혹시 주워 온 거 아냐?”
외할아버지와 엄마가 없다 외갓집 사촌들이 자신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하긴 외할아버지가 친손자손녀들보다, 외손녀인 그녀를 더 아끼니 질투하고 질시할 만했다.
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해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고.
한데 외사촌 중 하나가, 그녀가 참기 도저히 힘든 소릴 내뱉었다.
“지연아. 넌 나이가 들수록 어째 더 하 부장을 빼닮아가는 거 같다?”
“그러고 보니 정말이네. 하 부장이랑 판박이다 야.”
그 말에 즉시 다른 외사촌도 동조하고 나섰고.
자신은 하씨가 아니라 백씨였다.
안 그래도 외할아버지가 청와대에 계실 때부터, 퇴임 후 외갓집에 오셨을 때까지, 자신과 닮은 사람이 외할아버지 곁에 있어서 기분이 나빴었다.
후에 그 사람이 하동훈 부장이라고, 외할아버지를 따라 청와대에서 나와 지금껏 성심껏 모시고 있는 충신이란 얘기를 들었다.
뭐 외할아버지를 위해 헌신 하는 사람이라니 좋게 봤다.
하지만 사촌들이 그 때문에 이런 식의 말장난을 계속해서 친다면, 그녀도 외할아버지께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동훈 부장을 외갓집에서 내 보내라고 말이다.
“나 화장실 좀....”
백지연은 엄마가 외할아버지와 얘기가 끝나면, 그 다음 자신이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가서, 하동훈 부장에 대해 얘기를 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 전에 꼴 보기 싫은 사촌들을 피할 겸,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혹시 몰라 화장실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려던 백지연.
그런 그녀가 화장실에 제법 있었다.
대충 손만 씻고 나오려는데,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 온 것.
확인하니 삼명그룹 본사에 심어 둔 그녀 쪽 사람이었다.
그게 누군지는 절대 비밀이라, 백지연도 사실 그가 누군지 몰랐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100% 신뢰하는 삼명그룹 본사의 고위 임원이라고 했다.
“네. 사장님.”
백지연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녀가 부르고 싶어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모친인 서지현이 그렇게 부르라고 시켰다.
그걸로 미뤄 백지연은 본사에 서지현이 심어 둔 고위 임원이, 아마도 삼명그룹 계열사 대표 중 한 명이 아닐까 생각 중이었다.
=아가씨. 좀 전 회장님께서 막내 도련님께 삼명전자 지분을 10.5% 넘기셨습니다.
“네? 7%가 아니라요?”
=네. 10.5%입니다.
“이런 미친....”
이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아무리 그 주식이 아버지 꺼 라지만, 그래도 자식들 앞에서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 막내에게 지주사 지분을 상속 안 하는 대신, 삼명전자 지분 7%를 넘기겠다고 말이다.
안 그래도 그 일로 오늘 아침 얼굴까지 붉혔는데 7%가 아니라 10.5%라니?
그러고 보니 오늘 밤에 백준열이 아버지 보러 집에 들를 거라는 얘기를, 최 집사에게 들은 거 같았다.
“이 새끼가 무슨 수작을 부렸구나.”
아버지와 만난 자리에서, 녀석이 아버지와 무슨 딜을 한 게 틀림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백지연은 백준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백준열은 그녀가 건, 전화를 바로 받았고 그녀는 그 분노를 폭발 시켰다.
그랬더니 백준열이 그녀에게 하는 말이 기가 막혔다.
“이 새끼 미쳤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누나인 자신을 지연씨라 부르지 않나, 그래도 꼬박꼬박 사모님이라 부르던 자신이 엄마를 당신 엄마라고 칭했다.
“뻐꾸기? 둥지를 떠날 때가 된 거 같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백준열이 엄마에게 전하라는 말의 의미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백지연.
마침 화장실 밖이 소란스러워서 나가 보니, 엄마와 외할아버지가 이미 서재에서 나와 있었다.
“지연아. 우리 그만 가자.”
“네. 엄마.”
엄마는 외할아버지와 얘기가 잘 되지 않은 듯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건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서둘러 엄마와 같이 외갓집을 나선 백지연.
그녀는 엄마와 같이 탄 차에서 슬쩍 서지현에게 물었다.
“엄마. 준열이가 엄마에게 뻐꾸기가 둥지를 떠날 때가 된 거 같다던데. 이게 무슨 소리야?”
“뭐, 뭐라고!”
백지연의 말에 기겁하는 서지현. 백지연은 도대체 엄마가 자신의 말에 왜 이렇게 놀라는 지 이해가 안 됐다.
“그, 그 새끼가 감히 그런 소릴 했단 말이지?”
서지현은 완전 이성을 잃고는, 백준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백준열은 서지현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으아아아!”
그로인해 더 광분한 서지현! 그녀는 차창 밖으로 자신의 핸드폰을 집어 던져 버리고는 격분해서 외쳤다.
“김 기사! 빨리 집으로!”
그녀도 오늘 백준열이 본가를 찾아오기로 한 걸,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삼명가 본가 저택으로 향했는데, 그녀들이 본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백준열은 자기 볼 일을 다 보고 떠난 뒤였다.
“이이....”
서지현은 백준열 때문에 당장이라도, 백승렬 회장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걸 보고 백지연은 직감했다. 백준열과 자신의 엄마 사이에 모종의 비밀이 있다는 걸 말이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백지연은, 이 집안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최 집사의 방으로 향했다.
* * *
백지연과의 통화가 끝나자, 내 옆에 타고 있던 문대식이 바로 물어왔다.
“한남동으로 가면 됩니까?”
오늘 나의 보금자리는 박지수의 집, 즉 한남동의 타운하우스다.
내가 박지수에게 간다고 했으니 가야지. 가서 그 여자에게 해 줄 것도 있고 말이다.
“어어. 거기로 가. 아아. 중간에 개 호텔 좀 들르자.”
“거긴 왜요?”
“아무래도 엘베를 거기 두는 건, 좀 위험한 거 같아서.”
“하긴. 엘베 나이도 있는데....호텔에 두는 건 좀 그렇긴 하군요.”
90살 먹은 노인네는 밤새 안녕 할 수 있었다.
엘베가 개 나이로 그 정도니, 자칫 호텔에 뒀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내가 엘베를 사람보다 더 중히 여긴다는 걸아는 문대식이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말 할 수 있는 거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문대식이 알아서 운전석에 얘기를 했고, 잠시 뒤 좌회전한 차는 엘베가 묵고 있는 개 호텔로 먼저 움직였다.
개 호텔까지는 10여분 쯤 걸렸다.
개 주인이 아니면 입실한 개를 내어 줄 수 없다는, 개 호텔의 방침에 따라서 내가 직접 개 호텔에 들어가서 엘베를 넘겨 받아와야했다.
“또 오세요!”
“푸우! 캑! 왈왈왈왈(카악! 퉤! 다시 여기 오나 봐라.)”
엘베는 진짜 침을 뱉었다.
근데 그 침 중 반은 녀석을 안고 있는, 내 옷에 다 묻었다.
개 호텔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엘베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주위 사람들이, 다 나를 이상하게 볼 테니 그럴 수는 없겠고.
답답한 마음에 엘베보고 속삭이듯 말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하나만 말해 봐.”
그러자 엘베가 바로 대답했다.
“월월~ 왈왈왈~ 멍멍멍~(수캐들이 내가 대줘도 안 박잖아?)
나는 엘베의 그 말을 듣고는, 녀석에게 사용하고 있던 「말하는 개」스킬을 중단시켜 버렸다.
누가 백준열의 개가 아니랄까 봐.
엘베도 참 꼴 때리는 개(犬)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온전히 백준열의 편인 존재는, 내가 봐서 엘베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엘베가 내 주위 어떤 사람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엘베는 내가 자기 말을 알아듣는 줄 알고, 제법 짖어댔다.
하지만 내가 계속 못 알아들은 척 하자, 알아서 시무룩하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얌전히 문대식의 품안에 안겨 있었다.
원래는 내가 엘베를 안고 차에 탔는데, 그냥 문대식에게 넘겨버렸다.
평소에도 백준열은 엘베를 그리 오래 품에 안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문대식에게 녀석을 넘긴 걸 두고, 녀석도 서운해 하지 않았고, 문대식도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드렸다.
이제 진짜 쉬러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 뭐 내 명의의 집은 아니지만 내 여자에게 내가 사 준 집이니까 내 집도 되는 거지.
‘박지수라....’
이전 생의 나도 익히 아는 여배우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제일 애증하는 여자이기도 했고.
그의 첫 사랑이지만 지금은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