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93화 (93/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전경일은 옆에 있는 여당 공천심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자신에 대해 점차 호의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피부로도 느껴지자,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호주머니 속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급한 일이 아니고선 울릴 일이 없는 핸드폰이었다.

“부위원님. 화장실 좀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다금바리 맛에 푹 빠진 여당 공천심사위원회 부위원장.

그는 전경일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러라고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전경일은 단골 일식집을 나와서, 누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지부터 확인 했다.

“동일이 임마가 왜?”

김동일은 전경일의 고교 동창으로, 지금 대검중수부에 있었다.

전경일이 각별히 신경 쓰는 친군데, 무슨 일로 그에게 전화를 건 건지 궁금했다.

“술 한 잔 하자고 전화 한 건가?”

전경일은 곧장 김동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발신 연결 음이 두 번도 채 울리기 전에, 김동일이 그의 전화를 받았다.

“동일아. 미안. 접대 자리라....”

전화 바로 못 받은 걸 사과하고, 통화를 이어나갈 생각이었던 전경일.

하지만 그는 그 말을 다 이어나가지도 못했다.

김동일이 중간에 그의 말을 끊어 버려서.

=야! 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왜?”

전경일이 아는 김동일은 성격이 느긋한 편이었다.

그래서 말하는 것도 늘 차분하고 느렸다. 톤이 매우 낮았고.

그런데 지금 김동일은 폭 급해 보였고, 말도 빨랐으며 목소리 톤도 높았다.

이렇듯 김동일은 전경일이 전화 받자마자 발끈하니, 그가 왜 이러는지 전경일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김동일의 말에, 전경일의 얼굴이 이내 사색이 됐다.

=중앙지검 반부패부에서 왜 널 캐냐고!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반부패부에서 날 왜 캐?”

=너 최근 누구 높으신 분 심기 건드린 적 있어? 바로 반부패부에서 시작하는 거 보면, 누가 그쪽에 청탁을 한 건데.

“그, 그럴 리가. 내가 왜 높으신 분....잠, 잠깐....”

높으신 분 하니까, 오늘 갑자기 JYB엔터에서 사라진 신구미파 조직원 세 명이 생각났다.

더불어 그들을 조져 놓은 게 태천파 2인자 양태석이고, 양태석의 배후에 삼명家 막내인 백준열이 있었고 말이다.

그 사달의 원흉인 자기 아들 전두철은, 지금 자신의 보좌관이 픽업해서 집에 데려가는 중이라는, 문자가 좀 전에 그의 핸드폰에 들어왔었다.

=뭔데? 왜 그래?

“아, 아니야. 동일아. 내가 좀 알아보고 다시 전화해도 될까?”

=그래. 그런데 이런 일은 빨리 조치를 취하는 게 나아. 만약 이일이 내일로 넘어가면, 반부패부장이 알게 될 거고, 또 중앙지검장이 알게 되겠지. 그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져. 무슨 말인지 알지?

한마디로 좆 된다는 소리다.

“그, 그래. 알아. 나 지금 어디에 좀 빨리 전화를 해 봐야 할 거 같다. 끊는다.”

전경일은 먼저 통화를 끝내 버리고, 바로 신구미파 보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까 통화할 때, 둘 사이 연을 완전히 끊을 거처럼 하더니, 실제로도 신구미파 보스는 끝끝내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젠장....”

전경일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다.

하지만 재벌 3세, 그것도 삼명그룹을 상대로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JYB엔터 대표를 찾아가서, 그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해결만 된다면 그렇게 못할 것도 없었다.

“으음. 일단 JYB엔터 대표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자. 그 다음 전화를 해서....”

김동일이 말한 대로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했다.

전화 걸어 죽는 시늉 좀 하면 혹시 아는가?

JYB엔터 대표가 봐 줄지 말이다. 안 봐줘도 일단 시간은 끌고 봐야했다.

“전 의원님. 부위원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때였다. 부위원장 일행 중 그 수행비서인가 뭔가 하는 자가, 일식집 밖까지 나와서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전경일은 부위원장이고 뭐고 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공천이 무슨 소용이겠나?

“됐다고, 알아서 대충 쳐 먹고 가라고 해.”

“네?”

부위원장의 수행비서는 잠시 기가 차 하다가, 이내 분노한 얼굴로 다시 일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수행비서에게 무슨 소릴 들었는지, 얼굴이 시뻘게진 부위원장과 그 일행들이 우르르 일식집 밖으로 나와서는, 전경일을 곧 죽일 듯 쏘아보며 욕설을 지껄여대다, 이내 그 자리에서 휑하니 떠나버렸다.

하지만 전경일은 그들이 그런 줄도 몰랐다.

JYB엔터 대표, 백준열의 핸드폰 번호 알아내기 급급해서 말이다.

“어어. 그래. JYB엔터 대표. 알아? 하아. 다행이다. 그 번호 빨리 불러 봐.”

가까스로 백준열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 전경일.

그가 목청을 가다듬은 뒤,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두 개진상 국개의원들과, 백준열이 떠나고 난 화유각.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화유각 안은 맛있는 냄새와 손님들의 웃음소리로, 평소처럼 흥청거렸다.

화유각의 내부에서도 심처에 위치한 사장실.

그 사장실 안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화유각의 사장인 안세영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녀의 시동생이자, 태천파 2인자인 양태천이었다.

두 사람은 같이 막 우린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안세영이 먼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찻물이 좀 덜 우려졌네요.”

그 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한 번 더 자기 입으로 가져 간 양태석.

그가 한 모금 찻물을 맛본 뒤, 굵직한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괜찮은데요.”

“뭐 도련님이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그때 양태석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형수인 안세영에게 물었다.

“이제 저를 부르신 용건을 말씀해 주시죠.”

“눈치 채셨군요?”

“준호도 그렇고. 형수님께서도 제게 할 말이 있으신 거 같은데. 혹시 그게 조직에 관한 일입니까?”

“네. 맞아요. 태천파에 관한 일이에요.”

“으음....”

양태석이 알기로 안세영은 태천파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걸 양태석의 형이자, 태천파 보스인 양태천도 좋게 받아드렸고.

한데 그런 형수가 갑자기 조직 일에 이렇게 관심을 보인다?

“뭔지 들어 보겠습니다.”

“사흘 전이었어요. 대검 차장과 서울경찰청장이 여기서 회동을 가졌어요. 그 자리에 법무차관과 행자부차관도 참석했고요. 또 전경련 측에서 사무국장이 동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태천파 얘기가 나왔어요.”

지금 안세영의 말대로라면, 검경의 2인자들과 법무부, 행자부 2인자들이 한데 모였다는 거다. 거기다 그 술값을 계산하러, 경제 단체들의 대표 모임에서 국장급 인사를 내보냈고.

그런 자리에서 태천파 얘기가 나왔다?

이건 결단코 쉽게 여길 문제가 아니었다.

“그, 그래서요?”

안세영의 말에 벌써 긴장한 빛이 역력한 양태석의 얼굴.

그런 그의 얼굴을 안세영이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 그 얘기를 꺼낸 건 대검 차장이었고, 서울경찰청장이 언제든 결론이 나면, 빠르게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행정부차관이 때가 된 거 같다고 했고, 법무차관은 이번 주 중으로 윗선의 허락이 떨어질 거라고 하자, 전경련의 사무국장이....이의가 없다고 말했어요.”

“그, 그러니까 지금 검경이 태천파를 치기로 작정했고, 재벌들이 이를 방치하기로 했단 겁니까?”

“아무래도 제가 듣기로는 그렇게 들었어요.”

“이, 이 얘기를 형님께도 하셨습니까?”

양태석의 물음에 안세영이 힘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왜, 왜요?”

“이야기 한들 뭐가 달라져요?”

“네?”

“검경에 재벌들이 허락한 일인데. 이 말을 한들 그이가 뭘 어쩌겠어요?”

“그, 그건....”

그때였다. 양태석의 머릿속에 저번 주말에 백준열과 한 약속이 떠올랐다.

설혹 양태천이 불러도 1년 안에는 절대 태천파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 약속 말이다.

박칠석을 살리기 위해 1년 더 백준열 밑에 있기로 한 건데, 그게 지금 보니 백준열이 이 일을 예측하고, 그가 태천파에 휩쓸려 가는 걸, 막기 위해 취한 조치 같았다.

“아아....”

양태석이 한 손으로 자기 이마를 잡으며 괴로워하자, 그걸 보고 안세영이 말했다.

“왜요? 어디 아파요?”

“아픈 게 아니라 실은....”

양태석은 주말에 백준열과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부 안세영에게 털어놨다.

그러자 안세영이 흐뭇하게 웃는 얼굴로, 양태석을 바라보며 작게 읊조렸다.

“태석씨에게는 이미 좋은 분이 계시네요.”

“네?”

“그 분 뜻대로 하세요. 태천파는 침몰하는 배에요. 그리고 태석씨는 그 배의 선장도 아니죠.”

“형수님!”

“모든 책임은 그 배의 선장이 지면 돼요. 도련님까지 나설 필요 없어요.”

“하지만....”

“제가 형님께는 잘 말할게요.”

그 말을 하며 안세영이 씁쓸하니 웃었고, 그런 그녀를 보고 양태석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질끈 눈을 감았다.

* * *

화유각을 나선 나는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구기동 본가로 가줘.”

그 말에 내 옆에 앉아 있던 문대식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곤, 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거길 또 가신다고요?”

하긴 내가 여태 문대식과 같이 다니면서, 삼명家 본가 저택에 하루 2번을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문대식도 본가로 또 가자는, 내 지시가 다분히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랑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아네.”

그 말이 문대식에게는 백승렬 회장이 또, 나를 불러서 내가 본가로 가는 걸로 받아드려진 거 같았다.

뭐가 됐던 내가 지금 본가로 가는 건 맞으니, 그에 대해 가타부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 견신 시스템의 과금 정보 오류 때문에 생긴, 물질 아이템을 내 돈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여전히 흥분 감을 감출 수 없었다.

당장 내가 사고 싶은 물질 아이템은, 당연히 아공간 주머니다.

그것만 있으면 내게 진짜 중요한 것들이, 없어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여기서 본가까지 가는 데 40-50분 쯤 걸리니까 시간을 충분했다.

‘자아. 이제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걸 사 볼까나?’

그렇게 내가 막 견신 시스템에 내가 원하는 바를, 생각으로 전하려 할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

받을까 말까 잠깐 고민이 됐지만 그냥 받기로 했다.

=JYB엔터 백준열 대표님 되시죠?

“그런데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경일이라고, 개포 1구에 적을 두고 있는 서울시의원입니다.

‘어라? 진짜 전화 왔네.’

전경일 같은 놈이라면, 나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 올 거라는 내 예상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요?”

=먼저 대표님 심기를 어지럽혀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대표님 밑에 양태석이라고....

“저는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는 모르쇠로 계속 일관했다.

그러자 전경일이 더욱 초조해 하며,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넙죽 엎드렸다.

=대표님. 살려주십시오. 시키시는 건 뭐든 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반부패부에 조사만이라도 멈춰 주시면....

“내가 왜 그래야 하죠?”

=네?

“당신이 똑바로 사셨으면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뭐 막 사셨으면 좆 되는 거고. 아아. 그리고 강간마 새끼한테는 크게 미련 두지 마세요.”

=그, 그게 무슨....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치러야죠. 그런데 법이란 게 있는 놈에게는 영 맥을 못 쓰더라고. 그래서 내가 하늘을 대신해서 천벌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안 돼. 니, 니가 뭔데 천버을 내려? 너 이 새끼 내 아들 건드리면....

전경일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곧 아들도 잃고 그가 가진 모든 걸 잃을 거다.

그 다음 그는 스스로 선택하게 될 거다.

장밋빛 미래가 사라진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더 발버둥치고 살지, 아니면 죽어 아들 곁에 갈지를 말이다.

* * *

전경일은 백준열과 통화를 하다 꼭지가 돌았다.

그랬더니 백준열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야! 야! 이 C발새끼가....”

전경일은 백준열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백준열이 그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번 더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던 전경일. 그는 그 과정에서 점차 정신을 차렸다.

“두철이. 내 아들 두철이.”

그제야 아들 생각이 난 전경일.

그가 허겁지겁 아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의 아들도 백준열처럼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아. 사람 미치겠네.”

그때 전경일의 머릿속에 오늘 자신의 보좌관으로 하여금, 신구미파 조폭 놈들이 경호를 포기하고, 길거리에 버려두고 간, 자기 아들을 픽업해서 집에 데려주라고 한 게 생각났다.

실제 그 보좌관으로부터, 아들놈을 집에 잘 데려다 줬다는 문자도 받았기도 했고 말이다.

“휴우....”

일단 아들 녀석이 안전한 집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부터 내 쉰 전경일.

그는 그래도 혹시 몰라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아내는 어디 갔는지 일하는 아줌마가 집 전화를 받았다.

“두철이 집에 있죠?”

당연히 있을 거란 대답을 기대한 전경일. 하지만 아니었다.

=아뇨. 좀 전에 친구 전화 받고 나갔는데요.

“으아아! 이 개새끼가....이 밤에 어딜 기어 나가!”

전경일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태 사고 친 거 내가 수습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그래. 다 죽자. 이렇게 살아 뭐해? 집에 불 확 싸지르고....싹 다 죽는 거야.”

다시 이성을 잃은 전경일이 온갖 험악한 소릴 다 늘어놓았는데, 그때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그 소리에 전경일은 아직 자신이 핸드폰을 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흑흑흑흑....의원님 살려주세요. 저는 사모님께서 시키신 대로 했을 뿐이에요.

핸드폰에서 갑자기 그의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의 고해성사가 들려왔다.

“그, 그러니까 지금 와이프가 호스트바의 남자접대부랑, 그 짓거리 하러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다는 거네요?”

이제 보니 자식뿐만 아니라 마누라한테도 문제가 있었다.

자식과 달리 그년은 자기 본색을 잘도 숨겨 왔기에 여태 들키지 않았을 뿐.

“하하하하....”

너무 기가 막히면 웃음밖에 안 나온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어쩌랴? 강간마이지만 내 새끼고, 딴 남자에 미쳐 집에 들어 올 생각이 없는 마누라지만, 그래도 전경일에게는 가족인 것을.

전경일은 아들 전두철을 불러냈다는, 그 친구가 누군 지부터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