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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86화 (8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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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내 말에 가장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건, 역시 당사자인 차은석 팀장이었다.

그녀는 당연히 내가 자신을 자른 줄로 알고 있었다.

한데 정작 내가 아니라고 하니 얼떨떨할 밖에.

“차 팀장. 마침 잘 왔어요. 여기 박혜지양 말인데, 계약부터 시작해서 매니지먼트와 홍보, 섭외까지 차 팀장이 맡아줬으면 하는데? 괜찮죠?”

“네? 하지만 저는 경영기획지원팀에....”

“오늘부터 보직 변경 될 겁니다. 특수 제 1부문장으로 승진 발령 날거고, 거기에서 할 일은 제가 지정해 주는 연기자들과, 아이돌들의 모든 업무를 독자적으로 맡아 처리하게 될 겁니다. 부문장인 만큼 직급은 상무고, 내 결재만 받으면 어떤 프로젝트도 실행 가능합니다.”

“아아....”

사실상 연예인 매니지먼트 전권을 주겠다는 말과 같았기에, 차은석 팀장은 내 말에 한 동안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보는 JYB엔터테인먼트 주요 관계자들이 눈빛에는, 시기와 질투의 빛이 강하게 나고 있었다.

하지만 차은석 팀장, 아니 이제는 부문장이 된 그녀는, 확실히 강단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특수 부문장으로,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오늘 계약부터 시작해서, 박혜지양을 키우는 건 전적으로 차 부문장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시원하게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을, 차은석 부문장에게 떠넘겨 버렸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나를 위해서 이 JYB엔터를 맡아 이끌어 나가 주어야 할 존재.

바로 경영 천재, 박인호!

그는 오늘 하루 부모님들과 지금 묵고 있는 호텔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내일 나를 만남과 동시에 JYB엔터에서 바로 일하기로, 문대식 경호팀장의 주도하에 얘기가 모두 끝나 있었다.

그를 설득하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그가 진짜 원하는 것을 내가 들어 주기로 하자, 그는 감격해서 울기까지 하며, 내게 충성을 맹세했으니까.

‘이런 게 격세지감인 건가?’

다른 시대를 사는 듯 크게 변화를 느끼는 감정을 격세지감이라고 하는 데, 원래는 삼명가의 장남인 백준경을 모셨던 박인호가, 이제는 나의 사람이 됐다는 것이, 마치 너무 크게 변해서 긴 세월이 흐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달 까?

아무튼 내가 상념에 잠깐 빠져 있을 때, 내 지시를 받은 차은석과 박혜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보고 나도 따라 일어나며, 주위 JYB엔터테인먼트 주요 관계자들에게 말했다.

“다들 그만 일들 보러 가세요.”

내 그 말이 떨어지자 JYB엔터테인먼트 주요 관계자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대표실을 빠져 나갔다.

다들 말은 안하지만 불만이 가득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JYB엔터테인먼트 주요 관계자들의 몸에서, 대부분 지린내가 풀풀 풍겼는데, 견신 시스템의 정보에 따르면, 그게 불만이 많을 때 나는 냄새라고 했거든.

“어휴! 벌써 시간이....”

퇴근 시간이 5시를 훌쩍 넘겨 5시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대표인 내 기준의 퇴근 시간을 말함이다.

정시 퇴근은 어렵겠다 싶었지만, 막상 그 시간을 넘기자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하지만 왜 그런가 생각해 보고는, 정작 기분이 씁쓸해졌다.

이전 생에서 하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퇴근 시간을 넘긴 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 거다.

“그 참....”

하지만 지금 나는 백준열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닌가?

새삼 오늘 바빴던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하아....”

하지만 생각해 보니 지금 이렇게 바빠진 것도 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뒤처리하다 보니, 생겨난 부수적인 결과물들이었다.

개새끼 백준열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 자체를 만들지 않았겠지.

그러니 어쩌겠나? 당분간 바쁘더라도 내가 싼 똥은, 이렇게 내가 직접 치울 수밖에.

* * *

박인호는 백준열 측에서 일부러 방을 두 개 잡아줬지만, 부모님이 걱정 돼서 부모님 방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백준열의 경호원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사람들이 그와 부모님을 철통 같이 지키는 가운데, 호텔식 아침 식사를 한 박인호.

그에게 백준열의 경호팀장인 문대식이란 사람이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자신과 부모님의 안전을 위해서, 가급적 오늘 하루도 호텔에서 지내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하룬데 그 정도야 뭐가 문제겠는가? 하물며 보고 싶었던 부모님과 같이 지내는데.

한데 이날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뭐라고요?”

“저희 호텔 측 입장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경호원들이 황당해 할 일이 벌어졌는데, 글쎄 여기 호텔 부지배인이 자신과 부모님을 강제 퇴실 시키려 한다는 거다.

순간 박인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바로 이병훈 대표였다.

삼명그룹 계열사 사장의 영향력이라면, 여기 호텔 측에 충분히 외압을 넣을 수도 있었다.

“이 개새끼가....”

박인호는 바드득 이를 갈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병훈 대표는 전생에 나와 분명 원수 사이였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까지 해?....도대체 이해가 안가. 그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더 이상은....’

드디어 박인호도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선배고 직장상사고 나발이고, 이제부터 이병훈 대표는 박인호의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죠?”

박인호는 좀 전 불쑥 경호원이 와서 한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좀 전에 여기 호텔 부지배인이 잘렸다고요. 저희 대표님이 손을 쓰신 거죠.”

“아아....”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이 잡은 줄이 얼마나 대단한 줄인지 말이다.

호텔 부지배인을 이렇게 단칼에 날려버릴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이병훈 대표라도 불가능한 일.

하지만 그런 일을 간단히 해 치울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갖고 있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박인호도 자신의 편에게는 관대한 편이지만, 적에게는 냉혹하기 이를 때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쓸데없는 자비가, 나중에 치명적인 후환을 가져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이병훈 대표는 자기에게 원수, 즉 적이었다.

그렇다면 그 적은 단호히 처단하는 게 맞았다.

“백준열 대표님과 통화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박인호가 먼저 제안을 했고, 경호팀원은 그 말을 팀장인 문대식에게 전했다.

문대식은 그 전화를 받고, 즉시 백준열에게 보고를 올렸다.

백준열은 문대식의 보고를 받고, 바로 박인호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백준열입니다.

“네. 대표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먼저 저와 부모님을 챙겨 주셔서 감사하단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뭘요. 내 사람 챙기는 건데.

박인호는 백준열의 그 ‘내 사람’이란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물에 빠진 놈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고 한다고, 염치없지만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하십시오. 내가 들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다 들어 주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진짜 원하는 건....이병훈 대표의 파멸입니다.”

=그렇군요. 박인호씨는 지금, 그와의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고 싶은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이병훈 대표가 저한테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있는 한 저는 아마 제 몫의 일을 다 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그건 곤란하지요. 박인호씨가 자기 할 일을 다 못한데서야. 알겠습니다. 이병훈 대표를 박인호씨 앞에서 완전히 치워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짜....흑흑흑흑.....이 은혜는 분골쇄신, 대표님을 보필하며 평생을 갚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박인호씨, 아니 박인호 부대표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나날이 더욱 새로워 짐)하는 리더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인호는 백준열의 대답하나하나가, 어쩜 이리도 다 마음에 드는지 몰랐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심으로 모실 주인을, 이제야 만났구나 싶었다.

* * *

문대식을 통해 박인호와 통화 후 나는, 양태석에게 이병훈 대표를 가급적 오늘 중에 빨리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뒤 그 일에 관한 일처리는 전적으로 양태석 마음이었는데, 그가 처리자 에이전시 김훈 대표와 통화하는 걸, 언뜻 엿들으니, 진짜로 오늘 중 이병훈 대표를 정리할 모양이었다.

내 입장에서야 이병훈 대표의 처리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그 만큼 박인호의 마음도, 내 쪽으로 더 굳건해 질 테고 말이다.

그 뒤로 나는 하루 일과를 계속 이어나갔고, 박혜지와 차은석, 이 두 사람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 지은 후에는, 기분 좋게 퇴근을 준비했다.

물론 내가 저질러 놓은 일들 때문에, 정상적인 퇴근은 불가능 했다.

더불어 오늘 화요일에 내가 가야 할 집에도, 미리 늦을 거란 연락을 취해 놓았다.

그 집 주인은 바로 저번 주말에 교통사고를 일으켜서, 물의를 빚은 과거의 멜로 퀸 박지수.

그녀는 내가 늦는다는 김 비서의 연락을 받고, 기뻐하는 티를 여실히 드러냈다.

당연히 김 비서가 그런 거 까지 내게 일일이 보고 할 리는 없다.

다 내 귀가 밝다보니, 김 비서와 통화 중인 박지수의 목소리를 듣고, 그렇다는 걸 간파 한 거지.

‘오늘 밤에 단단히 혼쭐을 내 놔야겠어.’

박지수는 아직 내 말자지 맛을 보지 못한 상태.

아마 오늘 밤, 그녀 침실에 곡소리 꽤나 시끄럽게 나게 될 거 같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박지수는, 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좋지 않았다.

뭐 따지고 보면 다 백준열이 자초한 것 때문이지만, 그래도 내 덕에 먹고 살면서 경멸까지는 좀 심하지 않나?

해서 나는 오늘 박지수에게, 남자가 뭔지 확실히 알려 줄 생각이었다.

백준열의 기억을 더듬어 본 결과, 박지수는 이혼 한 남편은 물론, 그 이전의 남자부터 지금의 백준열에 이르기까지, 쭈욱 제대로 된 남자의 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내가 그 맛을 알게 해 준다면, 박지수도 더는 나를 경멸하지 못할 거다.

아니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몰랐다.

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반대로 몸이 가까워지면, 마음도 덩달아 더 가까워지는 법이니까.

“오늘도 수고 많았어. 빨리 퇴근해.”

“네. 대표님.”

“아아. 그리고 황치국이 말이야.”

“대표님 수행비서요?”

“어어. 그 놈. 혹시 껄떡거리면....”

“그 정도는 제 선에서 커버 되니까 걱정 마세요.”

단호하게 말하는 김 비서.

그래서 딱히 더 황치국을 조심하란 말을 더 하지 못했다.

어째든 나는 내가 퇴근하기 전에, 무조건 김 비서부터 먼저 퇴근 시켰다.

김 비서도 내 퇴근 지시에 더는 의심이나, 의문 같은 건 재기하지 않고 바로 퇴근을 했다.

그렇게 김 비서를 보낸 뒤, 나도 막 내 방을 나서려는 데 한성대학병원 부원장으로부터, 직접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대, 대표님. 찾았습니다.

“네?”

=하종미 배우 말입니다. 복부 초음파 재검사 때, 췌장에서 암세포로 이루어진 종괴를 발견 했습니다. 일단 선암으로 보고 있는데, 조직 검사를 해 봐야 악성 종양인지 판별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니까 하종미 배우의 암이 췌장암이었구나.’

“잘 됐군요. 그럼 조직 검사를 하고, 그 찾아 낸 종괴도 곧바로 치료에 들어가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악성 종양일 경우, 외분비 종양인 췌관 선암종일 공산이 큰데, 일찍 발견 한 만큼, 빠른 암 치료에 들어간다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할 거 같습니다.

“부원장님을 믿습니다. 저희 하종미 배우 꼭 완치 시켜주십시오.”

=맡겨만 주십시오. 하하하하. 그리고 아까 제 무례도,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앞으로 원장도 되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 그렇죠. 하하하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말해 놓으면, 부원장은 원장이 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하종미 배우 치료에 열을 올릴 거다.

부원장이 다 알아서 잘 챙겨 줄 테니, 이로써 나도 더 이상 하종미 배우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홀가분해졌다.

마치 가슴에 올려 두고 있던, 무거운 돌 하나를 치워 낸 듯 말이다.

* * *

양태석은 박혜지 일이 잘 해결 되자, 조용히 대표실을 나왔다.

사실 그 전에 백준열 대표가, 혹여 박혜지를 버리고 전경일을 선택하는 게 아닌지 조마조마 했었다.

백준열 대표가 달리 개새끼로 불리고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말이다.

다행히 요즘 변한 듯 보이는 그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주었다.

양태석은 차가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내려가려다, 담배 한 대가 간절해서 그냥 1층에서 내렸다.

그리곤 이 건물의 유일한 흡연실로 향했다.

“후우우!”

길게 내뿜는 담배 연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이내 사라지는 저 연기처럼 양태석은, 자신의 근심 역시도 따라서 사라지는 거 같았다.

그래서 더 담배를 못 끊는 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 폐부 깊숙이 연기를 흡입 했다, 내 뱉었다.

그때 처리자 에이전시 김훈 대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

양태석은 전화를 받으면서, 동시에 다시 담배를 빨았다.

=좀 전에 거제도에서 연락 왔는데 깔끔하게 처리 됐단다.

“음. 수고 했다.”

=나는 지금 약속 장소로 가는 데, 너희 대표는 뭐하냐?

“원래 바쁘신 분이다. 그래도 약속 시간은 칼 같이 잘 지키니까 늦을 염려는 마라.”

=혹시 생각났어?

“뭐가?”

=너희 대표 좋아하는 거?

“끊는다.”

=잠깐만! 하아. 그놈에 성질머리하고는. 그 약속 장소에 한 사람 더 데리고 가도 될까?

“누굴?”

=민지.

“....”

김훈 대표의 말에 양태석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눈매를 좁혔다.

=너희 대표 미인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며? 그 자리에 민지가 끼면, 분위기는 확실히 화기애애해 지겠지? 안 그래?

“처리자 에이전시의 대표는 너니까. 니가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다.”

양태석은 원론적인 답변만 내 놨다.

하지만 여전히 좁힌 눈매를 그대로 유지 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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