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85화 (8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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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준열 대표의 여성편력이야, JYB엔터 직원치고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지만 그가 특정 여성에 대한 집착이 가히 병적이란 걸,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차은석은 바로 그 변태 성향의 백준열을 파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특히 백준열이 신인 연기자 남소라를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를 일부러 망하게 만든 건 정말 소름끼치는, 알고도 도무지 믿기 어려운 미친 짓거리였다.

만약 박혜지를 보고, 백준열 대표가 남소라처럼 그녀에게 꽂히기라도 한다면....

‘한 연기자, 아니 한 여자의 인생이 또 망가지는 거야.’

그건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차은석.

그녀가 질끈 입술을 깨물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표실이 있는 8층 버튼을 꾸욱 눌렀다.

“후우! 후우!”

차은석은 숨을 고르며 밀려오는 긴장감을, 최대한 해소 시켜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무정한 엘리베이터는, 오늘 따라 빨리도 8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립니다.

‘그래. 열려라. 제길....’

촤르르!

눈앞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정면에 대표실이 떡하니 보였다.

이대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쭉 20여 미터만 걸어가면, 대표실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대표 비서실 입구에 도착했다.

김 비서와는 꽤 안면이 있는 차은석이다.

백준열 대표의 노예나 마찬가지인, 김 비서가 불쌍해서 먼저 접근한 차은석.

하지만 김 비서는 그녀가 자기 때문에 위험해 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다가오는 차은석을 받아주지 않고, 매번 거리를 두었다.

그래도 가끔 마주치면, 안부인사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로 지내왔는데, 오늘 그녀와도 영영 작별을 고해야 할지 몰랐다.

“파이팅! 차은석! 넌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며, 대표 비서실에 노크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차은석.

“아아아....”

그런 그녀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왜냐? 그녀가 막 대표 비서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김 비서가 또 막 대표실 안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때 이미 대표실 안에 박혜지의 모습이 그녀 눈에 띠었던 것.

‘한걸음 늦었구나.’

하지만 아직 박혜지가 JYB엔터와 계약 전일 테니, 완전 늦은 건 아니었다.

박혜지가 백준열이라는 마수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서둘러 그녀를 구해내야 했다.

“차 팀장님?”

그때 그녀 앞에 어느 새 다가 온 김 비서.

“아아. 네?”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그, 그게....김 비서님. 비서님도 여자죠?”

“네?”

그럼 김 비서가 남잔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차은석을 그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 볼 때, 차은석이 외치며 동시에 여리여리해 보이는 김 비서를 옆으로 밀쳤다.

“미안해요.”

“아앗!”

비명과 함께 김 비서가 비틀거리며 옆으로 물러설 때, 차은석은 대표실로 돌진해 들어갔다.

덜컥!

대표실 문을 단숨에 연 차은석. 그녀가 대표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크게 소리쳤다.

“혜지씨! 계약하지 마세요!”

“....”

그러자 대표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차은석을 쳐다봤고....

일순 적막과 함께 그녀 눈앞에 새 몇 마리가 날아다녔다. 무슨 만화의 한 장면처럼.

그만큼 지금 상황이 멋쩍다 못해, 대표실 안의 일부 사람들은 그녀를 외면하기까지 했다.

* * *

내가 살피고 있는 오늘 마지막 처리 할 서류에는, 경영기획지원팀장 차은석의 사직서 제출과 그 수리에 대한 건도, 슬쩍 끼어 있었다.

왜 큰 사건에 들러리처럼 끼어서 대충 같이 처리해 버리는, 별거 아닌 게 아닌 진짜 중요한 일을 말이다.

이런 식으로 끼어 처리하는 결재 방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디 기안자가....”

최초 기안은 경영기획지원팀 조하나 대리가 했고, 배운철 상무를 거쳐 바로 대표인 내가 최종 결정권자였다.

즉 내가 사인을 하면 차은석 팀장은, 이 자리에서 즉시 사직 처리가 되는 거다.

“으음....”

나는 그 서류에 사인하지 않고, 보류 칸에 그 서류를 던져뒀다.

그걸 보고 김 비서가 물었다.

“뭐가 잘못 됐나요?”

“어! 차은석 팀장 말인데. 사직서 반려 시켜.”

생각해 보니 저번 주 수요일인가?

백준열이 차은석 팀장이 못 마땅해 하며, 잘라버리겠다고 한 말이 불현 듯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백준열이 잘라버리겠다고 공언한 인간이 어디 하나 둘인가?

물론 그렇게 얘기 한 직원들 중, 아직 그 밑에 일하는 직원은 몇 명 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가 자르겠다고 해서, 무조건 다 자른 건 아니다.

“알겠습니다.”

김 비서가 내가 반려 한 결재서류를 챙겨 내 방을 나가고 잠시 뒤, 한성대학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김 비서가 거기 부병원장이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했고, 나는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성대학병원의 부병원장 강성태라고 합니다.

“네. 부병원장님. 저와 통화하기를 원하셨다고요?”

=네. 대표님. 오늘 종합검진 받은 배우들 검사 잘 받았고, 그 결과도 보니 아주 좋습니다. 굳이 재검사를 하지 않아도....

“우리 부병원장님. 아직 젊으신가 보네요.”

나는 시답잖은 소릴 늘어놓는, 그 부병원장의 말을 끊었다.

‘좋기는 개뿔!’

어느 조직이든 꼭 이런 공명심에 사로잡혀, 자기 주제를 모르는 사람이 꼭 한 두 명은 있다.

물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뜻한 휴먼드라마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 같은 놈을 만나면, 최악의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개 막장 드라마처럼.

=네? 그게 무슨....

“한성대학병원의 분원 중에서, 제일 먼 곳이 경주 분원인가요? 아니면 울릉도 분원인가요?”

=저, 저....대, 대표님....

그래도 눈치는 빨라 다행이다. 이런 놈들이 꼭 제 불행에는 유별스럽게 또 민감하다니까.

“부병원장님. 제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렇게 막 떼쓰는 사람 아닙니다. 말씀 드린 하종미 배우. 복부초음파검사, 정밀하게 한번으로 안 나오면,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하세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건 뭐 없는 병을 찾아내라는 소리 같지만, 어째든 내년에 하종미 배우가 암 진단을 받는 다는 건 팩트였다.

그러니 내 예상대로라면 복부초음파 검사에서, 어느 장기 중 한 곳에 분명 암 덩어리가 발견되긴 될 거다.

=알,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먼저 전화를 끊어 버렸다.

바빠 죽겠는데 별게 귀찮게 말이야.

한성대학병원 부원장이란 작자와 통화를 끝내고 나니, 바로 김 비서가 인터폰을 울려왔다.

삐이이이이!

“왜?”

=양 기사님이 그 여자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들여보내요.”

일단 만나보기로 한 그 여자가, 양태석과 같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양태석도 키가 큰데, 그 여자도 일단 작은 키는 아니었다.

170센티 언저리까지는 되어 보이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 그리고 딱 봐도 얼굴이 예쁘다.

무엇보다 저 여자의 장점이라면, 순수 미인에다가 웃을 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게, 정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양태석과 같이 내가 앉아 있는, 응접 소파의 상석으로 다가 온 그 여자가, 내게 먼저 넙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박혜지라고 해요.”

“....혜지?”

‘지저스! CF퀸 혜지가 왜 여기에....’

내년에 드라마로 데뷔, J소주 광고로 포텐이 만개, 주점 앞에 광고를 위해 세워둔 등신대 입간판이 사라지는 등의, 해프닝이 처음으로 TV에 보도되게 만든 여배우.

늘씬한 몸매로 유명세를 탔으며, 특히 골반과 힙라인, 뒤태가 주목받았는데, 이전 생의 내가 죽기 전에도 날씬한 몸매로 주목받으며 하객 패션, 각종 행사의 패셔니스타로 이름이 높았던, 그러니까 그때까지 스캔들 하나 없이, 깨끗한 탑급 여배우 되시겠다.

‘혜지는 무조건 영입해야 돼.’

순간 내 판단의 저울이 확실하게 기울었다.

서울시의원 전경일에서 박혜지로 말이다.

박혜지가 오늘 우리 JYB엔터와 계약하고 내 사람이 되는 순간, 강간마 전두철이하고 그 아비 전경일은, 이제 파멸의 구렁텅이 속으로, 시원하게 다이빙으로 뛰어드는 일만 남게 됐다.

* * *

대표실에서 백준열을 만난 뒤, 곧장 직원 휴게실로 향한 양태석.

“가자. 대표님께서 널 보시겠다고 하신다.”

“여기 대표가요?”

“그래.”

“하지만 제가 왜 여기 대표를 만나요?”

“왜냐하면 그분이 아니면, 넌 살기 어려울 테니까.”

“네?”

양태석의 말에 안 그래도 큰 박혜지의 두 눈이 동그라니 더 커졌다.

그런 그녀에게 양태석은, 더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사실 그대로, 그녀가 지금 직면한 현실을 얘기 해줬다.

“아까 내가 싸운 놈들, 신구미파라고 악랄한 조폭조직이다. 그런 조직을 움직이려면 돈과 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널 노리는 그 강간마의 아비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뭐 좀 물어보자. 너희 집 서울에 빌딩 몇 채 가지고 있니? 아니면 아버지가 국회의원이거나 장관, 아니면 검찰 고위직에 계시던지?”

“....”

양태석의 물음에 박혜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대답하고 자실 게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게 아니면 네가 살 길은 하나뿐이다. 우리 대표님께 무조건 잘 보여서, 여기와 오늘 무조건 계약 해. 아니면....넌 죽거나 살아도 산목숨이 아닐 수 있다.”

양태석의 아주 대 놓고 위협적이면서 살벌한 말에, 그제야 그 심각성을 인식한 박혜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런 그녀에게 양태석이 재촉했다.

“빨리 가자. 대표님이 널 기다리고 계신다.”

그렇게 양태석은 박혜지를 데리고 8층 대표실로 올라갔고, 김 비서가 열어주는 대표실 문을 통과해서, 곧장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박혜지가 영악하게 백준열 대표에게 먼저 인사를 하면서, 그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심어 준 듯 보였다.

왜냐하면 박혜지를 본 순간, 백준열 얼굴이 활짝 피는 걸, 양태석이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됐다.’

양태석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고, 백준열은 시종일관 박혜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김 비서에게 인터폰으로, 배우 매니지먼트 실장과 CF컨텍 담당자, 계약 실무 담당자 등 탑급 배우와 계약 할 때나 부르는, 엔터테인먼트 주요 관계자들을 죄다 대표실로 소환시켰다.

백준열 대표의 긴급 호출에 열일 제쳐 두고, 대표실로 달려 온 JYB엔터의 주요 관계자들.

백준열 대표는 그들에게 박혜지를 직접 소개 시켜 주며, 앞으로 10년은 JYB엔터를 먹여 살려 줄 여배우가 될 거라며, 그녀를 거듭 극찬하며 띄워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가 노크도 없이 대표실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는, 다 성사 된 거나 마찬가지인 계약에 초 치는 뻘소릴 내뱉었다.

그와 함께 싸해지는 대표실 안의 분위기.

그때 그 자리에 있던 JYB엔터테인먼트 주요 관계자들 중 한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 누구, 그러니까 허락도 없이 대표실로 난입해 들어 온, 그 불청객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차 팀장. 아니지. 오늘 관뒀으니 차은석씨 로군. 당신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썩 나가. 경비들 불러서 회사 밖으로 내쳐 버리기 전에.”

“워워. 배 상무님. 진정하세요.”

“아닙니다. 대표님. 제 밑에 직원이 이런 염치없는 짓을 저지르다니. 다 제 불찰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아뇨. 배 상무님은 나서지 마세요.”

“네?”

“차 팀장. 이리 오세요.”

갑자기 백준열 대표가 은근한 목소리로 차은석 팀장을 자기 쪽으로 불렀다.

“대, 대표님. 차은석씨는 이미 저희 회사를 관둔 사람으로....”

배 상무가 곤란한 얼굴로 백준열 대표에게 말했다.

그러자 백준열 대표가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관두긴 누가 관둬요. 대표인 내가 사직 시킨 적이 없는데.”

“네?”

백준열 대표의 그 말에, JYB엔터테인먼트 주요 관계자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그럴 게 저번 주 주중에, 오늘처럼 주요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백준열 대표가 어린 게 뭘 믿고 건방진지 모르겠다며, 그 자리에서 차은석 팀장을 자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던가?

사실 따지고 보면 차은석 팀장보다, 백준열 대표가 세 살이나 더 어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같잖은 소릴 내 뱉어 놓고, 오늘 불쑥 차은석 팀장을 자르지 않겠다고, 자기 한 말을 무슨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있는 백준열 대표.

하지만 그런 변덕쟁이 백준열을 향해, 감히 뭐라 말하는 사람은, 여기 모인 JYB엔터테인먼트 주요 관계자들 중에서는 한 명도 없었다.

* * *

차 팀장의 직속 상사라 할 수 있는 배운철 상무.

그는 JYB엔터의 경영지원부문의 수장, 즉 경영지원부문장이었다.

경영지원부문 안에, 경영기획지원팀도 들어 가 있었고.

근데 그가 과연 유능한 인물인가?

그런 내 의문에 대해, 그 똑똑한 백준열의 머릿속에서, 별 뾰족한 대답을 내 놓지 못하고 있었다.

백준열이 기억하는 한 배운철 상무는....

‘이 인간 뭐지?’

대체 백준열이 왜 이런 인간을, JYB엔터의 경영부문 수장으로 삼았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배운철 상무를 쳐다보자, 그가 움찔하며 슬그머니 몸을 사렸다. 이건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다. 그걸 보고 나는 직감했다.

‘아아....’

왜 보면 조용히 조직 속에 녹아들어서, 맛있는 과실만 쏘옥 따 먹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또 쏘옥 빠지는 얄미운 인간들이 있다.

바로 보신주의에 빠진 인간들이다.

어떤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만족하면서 살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 보신주의에 급급한 일부 기득권 세력 때문에, 공직에서든, 회사에서든 발전이 없는 거다.

‘놀랍군.’

자기 머리 좋다고 자랑하던 백준열. 하지만 그도 알고 보니 순 헛똑똑이다.

이게 다 자기만 잘나면 다 해결할 수 있다는, 그의 오만함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지 않나 싶었다.

도끼날만 바짝 세웠는데, 정작 자루가 썩어가고 있는 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칼춤 한 번 춰야 할지도 모르겠군.’

원래 구조조정의 첫 걸음은 회사 내에 쓸데가 없는, 무능한 자들을 자르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조만간 JYB엔터에도, 매서운 구조조정의 한파가 곧 몰아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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