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78화 (7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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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문대식은 즉시 뒤따라오던 경호 차량에, 놈들을 쫓으라고 무전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내가 그걸 막았다.

“놔 둬.”

“네?”

“경호 차량도 하나뿐인데, 그 차도 보내면 정작 내 경호는 누가 하나?”

원래 두 대인 경호 차량 중 한 대는, 아직 박인호와 그 부모님들을 지키고 있었다.

한데 여기서 남은 경호 차량까지 빠지면, 내 경호 상태가 너무 취약해진다.

만약 그걸 누가 노리고 있는 거라면....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좀 짧았습니다.”

“됐어. 쫓아 올 놈이면, 또 쫓아오겠지.”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얘기 했지만, 실제로는 누가 내 뒤를 밟고 있다는 거, 그 자체가 상당히 신경 거슬렸다.

문대식은 그래도 유능한 자답게, 양태석이 불러 준 차종과 번호판 번호로 차량 조회를 했다. 아는 경찰을 잘 활용해서. 그 결과....

“대포차라는 군요.”

악명이 자자한 백준열이다.

그런 그의 뒤를 캐는 자들이, 흔적 같은 걸 남길 리 있겠나?

나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실망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 일로 은밀하게 나를 노리는 자들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혹시 견신 시스템의 아이템이나 스킬 중, 그런 걸 알아낼 만 한 게 없으려나....’

나는 견신 시스템의 상태창을 내 눈앞에 띄우게 한 뒤 그것들을 자세히 살폈다.

[이름: 백준열(Lv4)]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1Up), 「개좆」(Up)], 「개목걸이」(Up), 「개코」(Up)

[보유 스킬: 「말하는 개」(일,Up), 「충견」(일,Up), 「개 끗발」(역,Up), 「개호구」(역,Up)

[특성: 개(2차UP완료)]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개지수: 70]

하지만 나쁜 의도를 지니고 내 주위를 탐색 하거나, 접근 해 오는 자들에 대해 경고해 주는 능력이나 스킬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내 근처에 왔을 때 「개코」아이템을 사용, 냄새를 맡아서 내게 적의를 가진 자를 가려 낼 수는 있었다.

또 「개눈깔」아이템의 경우 2UP을 할 경우, 개안을 해서 ‘색을 통해 능력을 감별’ 해 내는 능력을 추가 할 수 있게 되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면 쉽게 내 주변 사람 중 추적이나 감시 같은 걸, 잘 하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찾아 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려면 개지수를 쌓아, 빨리 견신 시스템의 레벨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아까 좀 무리를 해서라도, 안은지와 빠구리 두 번 쯤 더 할 걸 그랬나?’

마침 개지수를 보니 70포인트였다.

+30포인트만 더 쌓으면 레벨4에서 레벨5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개눈깔」아이템의 2Up도 덩달아 진행 될 것이다.

‘빨리 포인트를 쌓아야겠네. 이럴 때 우리 견신님께서 돌발 미션 같은 거 안 내 주시나?’

내가 은근 기대감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디링! 오늘 만날 예정인 처리자 에이전시 대표 김훈은 투견이라며, 견신이 잘 길들여 당신의 일족으로 거둬들일 것을 견신이 강추 합니다. 김훈이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견신이 개지수 30포인트를 지급할 의향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돌발 미션을 받아드리겠습니까? [Y/N]

역시 언제나 내편인 견신이시다. 이런 식으로 또 퍼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견신님. 사랑해요~ 왈왈왈왈~’

-디링! 견신이 ‘ME TOO’ 라고 합니다.

처리자 에이전시 김훈 대표는, 어차피 만나기로 오늘 한 사람이다.

내가 그를 만나려는 이유는, 그의 처리자 에이전시를 우리 JYB엔터에서 흡수하기 위함이고.

좀, 아니 아주 많이 위험한 자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내 사람들이 된다면 그보다 든든할 수 없을 것.

그러니 가능한, 좀 무리를 해서라도 나는 오늘, 처리자 에이전시를 가질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김훈 대표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러니까 오늘 원래 내가 하려던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견신의 돌발 미션도 완수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일단 그 일은 저녁이니까....’

당장 내가 할 일은 KVS 사장과 점심 약속 자리에 나가는 일이었다.

사장은 국장과 그 급이 다르다.

가급적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게 좋았는데, 만날 장소가 일단 KVS 방송국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다 왔습니다.”

KVS 방송국 근처 유명한 일식집. 그곳에 미리 자리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 가게 입구에서 문대식과 내가 먼저 내려, 일식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약속 시간 정각이었다.

일단 늦지는 않았다.

“예약 하셨나요?”

“네. JYB엔터로 12시 예약되어 있을 겁니다.”

나대신 문대식이 일식집 직원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아아. VIP실 말씀이시군요. 이쪽으로....”

안내를 받아 VIP실에 들어가자, 다행히 KVS사장은 아직 와 있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상석을 비우고, 그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10분쯤 기다렸을까? KVS사장 정봉구가 나타났다.

* * *

“아이고. 백 사장. 일찍 왔네?”

늦어놓고 능구렁이 담 넘듯이 어물쩍 넘어가며, 당연하다는 듯 상석에 앉는 KVS사장 정봉구.

한데 처, 말까지 놓고 있다.

정봉구 사장은 아마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 생각 중일 거다.

“아닙니다. 저도 지금 막 왔습니다.”

하지만 아니다. 어디서 월급쟁이 사장 따위가 감히.

사장도 다 같은 사장인 줄 아나?

“정 사장님. 일찍 좀 다닙시다. 점심시간이라야 한 시간도 안 되는데 10분이나 늦으면, 이거 제대로 식사나 하겠습니까?”

“뭐, 뭐....하아....”

전혀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황당함을 넘어 기가 차하는 정봉구 사장.

그가 방송계에서는 최고 갑의 위치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도, 위로 임면권자가 있다.

원래 방송법에 따르면 KBS 사장은, KBS 이사회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KBS 이사는 방통위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즉 방송법에서 '제청'과 '추천'을 분명이 구분하고 있고, 임명'제청'권자여야 임면 건의도 가능하나, 방통위는 KBS 이사 임면제청권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 방통위는 버젓이 KBS 사장을 자를 수 있었다.

바로 공영방송 KBS를 장악하기 위하여, 법에 근거도 없는 해임건의권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

“최명기 위원과 곽도식 위원이, 언제 같이 라운딩 가자던데 시간 되십니까?”

내가 방통위 실세 두 명의 위원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 하자, 정봉구 사장의 얼굴빛이 싹 변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앉아 있는 상석이 갑자기 가시방석처럼 느껴지는지, 좌불안석하다 이내 슬쩍 몸을 일으켜서, 내 마주보는 자리로 내려왔다.

“하하하하. 그 두 분이 라운딩 가자시는데, 당연히 없는 시간이라도 내야죠.”

괜히 능구렁이가 아니었다. 정봉구 사장은 좀 전 나와 있었던 일은 머릿속에서 싹 지웠는지, 자리만 바뀐 게 아니라, 사람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하긴 방통위 두 실세인 그 두 위원이 나서면, KBS 사장 해임건의를 의결해 버리는 건, 일도 아니니 말이다.

“백 사장님. 한 잔 받으시죠?”

존대에다 이제 술까지 먼저 치려는 정봉구 사장.

확실히 내게 납작 엎드린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KBS 사장에게 더 나가는 건, 한 번 붙어 보자는 거니까 나도 이쯤에서 물러나야 했다.

“네. 가득 채워 주십시오. 술은 뭐니 뭐니 해도 낮술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하하하하. 역시 백 사장님이십니다. 화통하시고 화끈하신 게 말입니다.”

낮술은 아무래도 빨리 취하는 거 같다.

하지만 이게 또 어려운 자리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나는 정봉구 사장이 가득 채운 술잔을 바로 비웠다.

“카아. 좋네요. 정 사장님도 한 잔 받으십시오.”

“좋지요.”

그렇게 점심 식사 전에 우리는 술 항아리 하나를 비웠다.

그 결과 둘 다 얼굴에 불콰하게 주기가 올라 있었다.

여기서 누가 말실수 하나 잘못하면, 오늘의 주도권이 그쪽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해서 두 사람 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시작 된 눈치 싸움이 장난 아니었다.

* * *

말실수라는 게, 결국 말이 많을수록 실수할 확률도 높아지는 법.

해서 나는 정봉구 사장이 가급적 말을 많이 하게끔, 질문을 계속 퍼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봉구 사장은 요리조리, 내 질문을 회피할 건 하고 대답할 건 하면서, 유연하게 시간을 끌었다.

앞서 내가 말 한대로 점심시간이란 게 정해져 있었으니, 정봉구 사장 입장에서야 30-40분만 어떻게 버티면, 이 불편한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은 조심해야 하고, 비난과 칭찬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말을 삼가지 않으면 재앙을 부르게 되니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도, 반드시 앞을 생각하고 뒤를 살펴보며, 아무리 등 뒤에서 할 말이라고 해도, 또한 얼굴을 마주 보고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정봉구 사장은 그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다보니 그러신 모양이신데, 불법 투자 의혹은 몰라도 논문표절 한 것을 사실 일겁니다.”

“뭐라고요? 지금 방통위 위원장님이 논문표절을 했다고 하신 겁니까?”

“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결국 말실수를 먼저 하고 만 정봉구 사장.

“하아....”

긴 한숨과 함께 자기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 킨 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병은 입으로 들어오고, 재앙은 입에서 나간다고 하더니....”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내 잔을 들어, 그 잔을 비운 뒤 말했다.

“다음 분기에 KVS1에서 주말 사극으로, 총 100화가 넘는 대하드라마를 편성하기로 결정이 났다고 들었습니다.”

“그 얘기가 벌써 백 사장님 귀에 들어간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충장(忠莊) 권율을 주인공으로 하는, 가상역사물을 KVS 1TV에서 제작할 예정에 있기는 합니다만.”

정봉구 사장이 순순히 자백을 했다. 하지만 그도 만만찮았다.

“원작자부터 시작해서 연출, 극본 모두 정해졌고, 주연 섭외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어서, 저희가 딱히 JYB엔터에 도움을 받을 일은 없을 거 같습니다.”

먼저 선수를 쳐서 방벽을 세우는 정봉구 사장. 하지만 그 방벽이 너무 허술하다.

튼튼한 방벽을 세우려면 시멘트가 필요한데, 질흙만으로 세우려 드니 쉬이 부셔지고 무너질 밖에.

여기서 시멘트는 곧 돈이다.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와 유능한 연출자가 있어도, 제작비가 부족하면 허접한 드라마가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런 드라마는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없고, 결국 처참한 시청률과 함께 추락은 불 보듯 자명했다.

내 기억에 따르면 ‘충장 권율’은 총 제작비만 400억 가까이 들었다.

이 정도의 제작비라면 중반 이후, 시청률 30%는 꾸준히 유지해야 제작비를 만회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데, 몇몇 전투나 마지막 회를 제외하곤, 결국 30%를 넘기지 못한 걸로 안다.

따라서 제작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KVS측에서는 이런 부담을 훨씬 들 수 있었다.

“저희 JYB엔터에서는 제작비 100억 원을 투자할 의향이 있습니다.”

“네?”

내 제안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 정봉구 사장.

머리 굴리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다 들려온다.

정봉구 사장은 무조건 이 제안을 받아드릴 것이다. 그가 KVS의 사장이라면 말이다.

* * *

100억! 크다면 큰돈이다.

하지만 내 배우들을 키우기 위해서, 회사 차원에서 이 정도 투자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원래 권율 역은 최만수, 송민국, 정재호 등이 물망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당시 무명 배우였던, 김명석이 권율 역으로 낙점되었고, 이 선택이 김명석이라는 노력파, 연기파 배우를 음지에서 끌어올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으로 김명석이 올해 연기 대상을 받고 빠르게 뜨기 시작했으며 ‘하얀거물’과 ‘모자르트 바이러스’ 등으로, 연기 본좌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는 거다.

나는 원래 김명석의 배역을 지켜 주면서, 다른 인기 조연 배역을 우리 JYB엔터에서 독점하므로 해서, 그들을 내세워 CF쪽을 섭렵할 계획이다.

그럼 투자한 100억은 금방 회수하고 남았다.

거기다 여기서 일정부분 해외 판권을 요구한다면, KVS측에서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충장 권율은 베트남에서 대박이 나지.’

아마 내년에 베트남에서 벌어드리게 될 판권만으로도, 족히 100억은 되지 싶었다.

“대신 해외 판권 50%를 저희 쪽으로 주십시오.”

“50%나요? 40%로 하시죠.”

“45% 콜?”

“콜!”

“그럼 남주는 저희 쪽에서 갖도록 하겠습니다.”

“크음. 좋소.”

그 뒤 본격적인 배역 딜이 시작 됐다.

내가 KVS 사장에게 요구한 건, 남자 주인공 자리와 조연 20명이다.

내가 주연 자리를 딱 한 명만 요구하자, 정봉구 사장도 의외라는 듯 날 쳐다봤다.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간파하려는 거 같은 데, 그렇게 본다고 알 거 같으면 KVS 사장 할게 아니라, 길바닥에 자리를 깔았어야지.

어차피 사극에서 역할이 중요한데, 나는 ‘충장 권율’을 1편부터 107편까지 다 본 사람으로서, 주연 같은 조연 역이 누군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괜한 주연자리 몇 개 때문에 KVS측, 특히 PD와 작가에게 더 책잡히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투자해 줘서 고맙소.”

그렇게 점심 식사 자리에서, JYB엔터가 새로 제작 될 KVS1TV의 대하드라마에 100억 투자가 결정 되었고, 그 대가로 JYB엔터에서는 원하던 배역을, 전부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장유유서라고 정봉구 사장이 먼저 나가고, 그 뒤 일식집을 나서는 나는 괜히 입맛을 다셨다.

“쩝쩝....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지. 반도 못 먹었네. 쳇!”

근데 내 수행원들은 어째 다들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다.

특히 내 수행비서 황치국 저 새끼는, 대체 뭘 얼마나 쳐드셨기에 허리띠까지 풀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도 그걸 전혀 수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무튼 눈치라고는 제 눈곱만큼도 없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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