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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승렬의 부인인 서지현은 서재국 전 대통령 막내딸이었다.
백승렬과는 선 한 번 보고 결혼을 했는데, 아들은 못 낳고 딸만 내리 둘을 낳았다.
뭐 그때 백승렬에게는 이미 아들이 둘이나 있어서, 그 점 때문에 그가 서지현을 타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는데, 둘째 딸이 4살 때였던가?
뜬금없이 서지현이 임신을 했다는 거다.
그 해 자기와 손도 잡은 적도 없는 서지현이 말이다.
그날 바로 서재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다.
자기 딸이 임신한 아이가 백승렬의 아이라고 말이다.
당시 대한민국의 왕이나 마찬가지인 대통령의 일방적 통보였고, 이를 거부하기에 백승렬은 가진 게 너무도 많았다.
그렇게 해서 백승렬은 자기 씨도 아닌 뻐꾸기 새끼를, 자기 둥지에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유독 서재국 전 대통령과 서지현은, 막내딸인 백지연을 끼고 돌았다.
하지만 삼명그룹의 회장은 백승렬이었다.
임기 5년짜리 선출직 대통령과 그 주위 찌그레기들이,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걸 백승렬은 증명해 보였다.
현재 권력을 이용해서, 과거 권력 수사에 착수하게 만든 것.
그 결과 서재국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권력형 비리로 잡혀 들어가고, 서재국 대통령까지 그 여파가 미치려는 딱 그 타이밍에서, 서재국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위. 한번 만 살려 주시게.
그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자가, 자기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이때 백승렬은 비로서 깨달았다. 정치인이란 게 어떤 작자들인지 말이다.
이놈들은 후안무치의 극치가 뭔지 통달한 놈들이었다. 상식선에서 이해해선 절대 안 되는.
그 일 이후 처가 쪽에서는, 그의 눈치를 보기 급급했다.
하지만 요 몇 년 풀어 줬더니, 그 새 자기들 주제도 모르고 설치고 있었다.
보아하니 백지연이 일 좀 잘하니까, 그년을 자기 후계자로 만들어 볼까 하는 허황된 야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림도 없지. 내가 병신도 아니고, 내 핏줄도 아닌 년에게 그룹을 넘겨? 허어!”
기가차고 코 막힐 노릇이지만, 백지연은 자기 호적에 올라 있는 법적 자식 중 하나였다.
서재국 대통령이 살아 있는 이상, 호적에서 파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재국 대통령이 비록 힘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작정하고 물귀신처럼 잡고 늘어지면, 삼명그룹도 충분이 가라앉을 수 있었다.
“늙은이, 대체 뭘 처먹기에 죽지도 않아?”
내일 모레가 90살인데 여전히 정정한 서재국 전 대통령.
요즘 자신의 후계자로 자신의 큰 사위인 노재명 전 국회의장을 밀고 있는데, 그런 구태의연한 정치색을 띤 인물을 누가 좋아할 거라고.
아마 이번 총선에서 서재국파 보수당의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해 봐야 정신들 차릴, 아니지 그래도 정신 못 차릴 작자들이지 참.
얘기가 어쩌다 정치 쪽으로 빠졌는지 모르겠다.
“아아. 준열이.”
그 막내 녀석이 요 며칠 사이 변했다.
마크의 일처리 때부터 백승렬 회장의 마음에 들기 시작하더니 월요일, 바로 어제는 자기 앞에서 당당하게 녀석이 원하는 걸 밝혔다. 특히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라는 자신의 말에 ‘사람’을 언급했다.
그게 무슨 뜻이겠는가? 본격적으로 그룹 내에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얘기 아니겠나?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놈의 확신에 찬, 자신감 넘치는 눈을 보고 백승렬 회장은 직감했다.
백준열이 뭣 때문인지 모르지만, 확실히 변한 것을 말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가족끼리의 식사 자리에서 녀석은 본심을 드러냈다.
‘다른 주식은 다 필요 없으니, 삼명 전자 주식만 내 놔라고?’
역시 백준열은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향후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건 아마 반도체가 될 것이다.
그걸 알고 과감히 계열사를 분리를 통해서, 삼명그룹에서 삼명 전자만 쏘옥 챙겨 나가겠다는 게 아니겠는가?
삼명 전자가 빠진 삼명그룹?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삼명 전자를 쥐고 있는 백준열에게로, 다른 삼명그룹 계열사들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녀석. 큰 그림을 그렸구나.’
감동한 백승렬 회장.
하지만 그걸 식사 자리에서 티내지 않았다.
대신 대견한 녀석에게 바로 힘을 실어 주었다.
바로 자신이 가진 삼명 전자 주식의 절반을 뚝 떼서 증여해 주기로 한 것.
백승렬 회장은 비록 이렇게 주식을 뺏기지만, 자신에게 주식을 뺏어가는 막내아들이 하나도 싫지가 않았다.
선친께서 늘 자신과 싸우면서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신 이유를, 백승렬 회장도 이제야 알 거 같았다.
이건 내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 아버지 심정과 똑 같았다.
* * *
이제 백승렬 회장이 백준열에게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그의 난잡한 여자 문제였다.
특히 형수와 그 짓거리를 했다니....명백한 도덕적 흠이었다.
그게 못내 안타까웠다.
삼명 그룹 회장은 아무래도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있는 자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리더십에 타격을 입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백승렬 회장은 자신이 백준열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 줬을 때, 향후 그런 불미스런 일이 백준열의 발목을 잡는 게 우려스러웠다.
근데 그 문제를 기특하게도 백준열 스스로가 해결 해 버렸다.
삼명 전자 주식을 백준열에게 넘기겠다고 하자 발끈한 백지연이, 백준열과 큰 며느리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걸 터트려 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삼명 전자 주식만큼은, 절대 아들들에게 넘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정말 사갈 같은 년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얘기를 아침 식사 자리에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백준열이 반격에 나섰고, 백지연에게 보기 좋게 엿을 날렸다.
백준열은 백승렬 회장 앞에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고, 백지연은 그러지 못했다.
‘이걸로 끝났다.’
백승렬 회장은 이제 더 이상 흠결 하나 없는 백준열을, 사실상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지었다.
앞으로 차근차근 자신의 지분을 백준열에게 넘겨주면서, 녀석의 경영권 장악에 거추장스런 것들은 다 쳐내 주는 게, 그가 주력해야 할 일이 될 것이었다.
그 처음으로 백승렬 회장은, 백지연부터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녀는 섣부르게 발톱과 이를 드러냈다.
“감히....누구 씨인지도 모를 년이, 감히 내 아들과 며느리를 능멸해?”
백승렬 회장은 일단 백지연의 발톱과 이빨부터 전부 뽑아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삼명그룹 본사에 출근하자마자, 비서실장인 오규동을 불러서 은밀하게 지시를 내렸다.
“삼명호텔에 내부 감사 들어가.”
“네?”
백승렬 회장의 의중을 전혀 간파 할 수 없었던 오규동. 그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그런 그에게 백승렬 회장의 지시가 이어졌다.
“호텔 쪽 자금 흐름도 잘 살피고. 아마 정치인 쪽으로 돈이 꽤 흘러 들어갔을 거야. 그 증거 나오는 즉시 대검에 넘겨.”
“네에?”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 백승렬 회장의 말은, 삼명호텔 대표를 횡령으로 감옥에 쳐 넣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 삼명호텔 대표가 자신의 딸인 백지연인데 말이다.
“회, 회장님. 뭔가 착오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삼명호텔은 백지연 대표님이....”
“맞아. 지연이. 아무래도 그년, 이제 그만 내 호적에서 파내야겠어.”
“....”
오규동은 백승렬 회장의 눈에서 진심을 읽었다.
그 말은 이 일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백 회장의 뜻대로 결론이 나야 한다는 얘기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오규동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회장실을 나서며 오규동은, 간만에 백준경이 만족할 만한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 전에 백 회장이 지시한 것부터 먼저 해치워야 하겠지만.
뭐 이런 쪽의 일이라면 이미 이골이 난 오규동이 아니던가?
“어어. 나야. 내부 감사 준비 해. 어디냐고? 삼명호텔.”
삼명그룹 내부에 원래는 ‘찻잔 속 태풍’으로 그쳐야 할 일이, ‘쓰나미 전조’ 현상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 * *
“룰루루루....”
삼명생명의 부대표 백준호.
그는 오늘 출근길에 너무 즐겁다.
아침에 집을 나올 때만 해도, 백준호의 기분은 이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마다, 본가에서 아침을 먹어야 하는 게 너무 짜증나고 귀찮아 화가 나 있었다.
한데 식사 자리에서 막내 녀석을 시작으로, 재미있는 일들이 연이어 터졌다.
가장 절정은 형수의 외도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사실 이때 백준호도 뜨끔했다.
왜냐하면 걸레 형수는, 시동생인 그에게도 다리를 벌렸으니까.
만약 그때 형수랑 떡치는 장면이, 막내가 트는 동영상에 나오는 거 아닌지 얼마나 쫄았는지 모른다.
하여튼 거기에 등장한 녀석은 자신이 아니었고, 막내와 쏘옥 빼닮은 녀석이었다.
그로써 막내의 억울함은 풀렸다.
하지만 형수가 그렇고 그런 년이란 사실은 달라진 게 없었고, 형인 백준경은 꽤나 큰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며 본가를 나섰다.
“하하하하하. 맨날 잘난 척만 하더니 꼴좋다.”
그때 축 쳐져서 힘없이 본가를 나서는 초라한 백준경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라서 계속 웃게 되는 백준호였다.
삼명생명이 있는 본사 건물에 도착한 백준호는, 곧장 자신의 방인 부대표실로 들어갔다.
“뭔 일 없지?”
“네. 부대표님.”
“정철이 좀 불러.”
“네.”
비서가 나가고 잠시 뒤, 백준호의 수행비서인 우정철이 부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그에게 백준호가 바로 물었다.
“막내 쪽 감시는 잘 붙였지?”
“네. 지시하신대로 지금부터 24시간 백준열 대표 감시에 들어갔습니다.”
“그래. 백준열. 그 새끼 그거. 진짜 양파 같은 놈이야. 까도 까도 뭐가 계속 나올 거 같단 말이지.”
물론 아까운 삼명전자 주식 7%가 막내 수중으로 넘어가고, 또 향후 삼명그룹 본사 신사옥이 들어 설 서초동, 그 아까운 땅이 그 놈 소유가 된다는 건, 충분히 엿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백준호에게 그것들은 어차피 남의 떡이었다.
아무래도 차남이고 지연이처럼 든든한 외가가 있는 것도 아닌 자신에게, 과연 백승렬 회장이 삼명전자 주식과 서초동 땅을 넘겼을까?
절레절레!
백준호는 자기가 주제를 너무나 잘 알았다. 그렇지만 그는 삼명 그룹 회장 자리를 꿈꿨다.
“준열이의 지주사 지분이 도로 아버지한테 넘어간 건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챙길 지주사 지분이 더 늘어난 것도 사실이잖아.”
아버지는 분명 장남인 형에게 실망 했을 거다.
그렇다면 올해 부친이 넘길 예정인 지주사 지분의 비율은, 자신이 형보다 높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거기다 백준열이 지주사 지분을 포기 했으니, 녀석 지분까지 더해질 것까지 염두에 둔다면....
물론 그 지분을 아버지가 기습적으로 백지연에게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아 선호사상이 누구보다 확고한 아버지가, 그런 짓까지는 하지 않을 거란 게 백준호의 생각이었다.
“으음....”
백준호는 만약을 위해서 삼명 생명 주식을 더 사 모으면서, 한동안 삼명그룹의 주식 동향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삼명家 본가 지하실로 들어가는 입구.
딱!
따로 랜턴이나 후레쉬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들어가는 입구 앞에 스위치를 누르니, 지하실 안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널찍한 지하실 공간 안에 적재 되어 있는 물건들이, 너무도 깨끗하게 보관 되어 있었다.
지하실 안에 환기 장치와 가습, 건조기가 너무도 잘 갖춰져 있었던 것.
거미줄과 흰색, 회색 먼지로 뒤덮인 음산한 분위기의 지하실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살짝 김이 샜다.
“여기 어디에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건지....”
엘베의 말에 따르면 이곳 지하실에 격벽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격벽이란 방과 방 사이의 칸막이벽을 말한다.
그 말은 지하실 내부가 구획이 되어 나누어져 있다는 얘기다.
“어디 보자.”
나는 지하실의 기둥들을 살폈고, 그 기둥들 사이에서 격벽의 흔적을 발견했다.
“여기겠군.”
엘베가 말한 비밀금고가 있는 바닥의 위치를 대충 유추 해 낸 뒤, 나는 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다이아몬드는 냄새가 없지. 하지만 그 다이아몬드를 담고 있는 주머니라면 얘기가 좀 다르지.”
그게 가죽으로 되었으면 더 좋고, 천이라도 10년 넘게 지하에 묻혀 있었다면,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 냄새가 비록 인간의 코로는 맡을 수 없는 수준이라도 나는 예외다.
“킁킁킁킁....”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은 이미 2차 업그레이드까지 끝난 상태다.
그런 개 특성 중 *냄새를 잘 맡습니다.*를 쓴다면, 바닥에 2미터 이상 깊게 묻지 않고서는 내 후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치매 할머니가 무슨 수로 땅을 2미터나 파겠나?
“찾았다.”
역시 내 생각대로 내가 찍은 곳에 뭔가 묻혀 있었고 냄새가 났다. ,단지 지하실 바닥에 타일이 붙어 있는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제기랄....아침부터 노가다 하게 생겼네.”
뭐 지하실에 곡괭이와 햄머드릴까지 있으니, 바닥 좀 깨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 일을 하려면, 내가 땀을 좀 빼야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한 10분 노가다하고, 270억을 챙기는 일인데 뭐.”
백준열은 몰라도 대학 다닐 때, 노가다 좀 해 본 나는 햄머드릴을 쓸 줄 알았다.
두두두두두!
햄머드릴에 타일이 떨어져 나가고, 뒤이어 그 밑에 시멘트 바닥도 깨지면 흙이 보였다.
그 흙을 조금 걷어내니, 그 밑에서 인조 밍크 주머니 하나가 나왔다.
“와아....”
그 안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가득했다. 근데....
“이거 엘베가 말한 거 보다 더 많은 거 같은데?”
큰 알, 그러니까 10캐럿 이상으로 보이는 녀석이 20개는 됨 직했고, 자잘한 2캐럿짜리들은 족히 400-500개는 되어 보였다.
이 정도면 내가 예상했던 것 보다 2배, 잘하면 3배까지 현금을 챙길 수 있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