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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준열. 너 무슨 미친 소릴 늘어놓는 거야? 네가 큰 올케랑 붙어먹은 거,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야이. C발 새끼야!”
백지연이 표독스럽게 소리치고, 그 얘기를 들은 백준경은 백승렬 회장 대신 폭발해서, 당장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둘은 생 까고 백승렬 회장에 집중하며 말했다.
“아버지. 전화 한통 써도 되겠습니까?”“전화?”
“네. 제 결백을 입증할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
“네. 대신 저와 큰 형수가 그렇고 그런 관계란 증거를 제시해 달라고, 제 대신 누님께 말 해주십시오.”
나는 백지연과는 더는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걸, 백승렬 회장에게 돌려 까서 말했다.
“야! 백준열!”
당연히 그 말을 들은 백지연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너 일루 와!”
발끈해서 이번에는 그녀가 내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하지만 나는 이번 역시 그녀는 무시하고, 핸드폰을 꺼내서 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저번 본가에서 찍은 동영상 있지?”
=대표님과 닮은 그 남자 동영상 말입니까?
역시 김 비서. 척하면 척이다.
“어어. 그 동영상. 지금 바로 내 메일로 보내.”
=알겠습니다.
김 비서가 내 메일로 동영상 보내는 데 걸릴 시간이야, 10분 넘게 걸리지는 않을 것이니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일어들 나라.”
백승렬 회장이 먼저 식탁에서 일어나며 말했고, 그런 그를 따라 남매들이 일어나고, 맨 마지막으로 내가 일어나서 다들 가족 식당을 나섰다.
백승렬 회장은 자식들을 이끌고 자기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 도착하자 백승렬 회장이 날보고, 자기 책상에 놓여 있는 노트북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메일로 들어 온 그 증거 동영상을 저 노트북으로 틀어 보란 거다.
나는 백 회장의 책상에 가서 앉은 다음 노트북을 켜고, 내 메일 주소로 들어갔다.
그 사이 김 비서가 보낸 그 동영상 파일이, 내 메일에 들어와 있었다.
“바로 재생할까요?”
내가 백 회장을 보고 묻자, 그가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그걸 보고 바로 동영상을 재생시킨 다음, 노트북 화면을 백 회장과 남매들이 볼 수 있게 그쪽으로 돌려주었다.
그리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 쪽으로 걸어가며, 고개를 돌려 재생되기 시작한 노트북 화면을 쳐다봤다.
그러자 눈에 익은 장소에서, 큰 형수가 웬 젊은 남자와 떡치는 장면이 바로 나왔다.
“저, 저 C발년이....”
큰 형이 당장이라도 노트북 화면의 젊은 놈을 때려죽일 기세로 달려들려 했는데, 작은 형이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놔. 이거 놓으라고.”
발작 직전인 큰 형.
저 형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지, 솔직히 나는 이해가 안 간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큰 형과 큰 형수는 사랑해서 결혼 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결혼 후, 둘의 금술이 좋아진 것도 아니고, 되레 서로 남남처럼 살았다.
그랬기에 백준열도 큰 형수가 덤벼 들 때, 모른 척 당해 준 거고.
‘미친 새끼....’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는 백준열과는 다르다.
근친도 그렇고 미성년자를 손대는 파렴치한 짓도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자아. 이쯤에서 내가 나설 때군.’
나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노트북으로 다가가서, 잠깐 화면을 정지 시켰다.
그 다음 백승렬 회장을 보고 말했다.
“보시다시피 여기 나오는 형수의 남자는, 저와 많이 닮았습니다.”
내 그 말에 백지연이 벌레라도 씹은 얼굴로 변했다.
그러니까 백지연이 말한 나와 형수가 서로 놀아나는 걸 본, 증인들은 다들 내가 아닌 이놈을 봤단 거다.
내가 이런 식으로 몰아갈 줄 몰랐던지, 백지연은 어떻게든 반박을 해 보려고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런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있었다면 벌써 얘기를 했겠지.
“지연아. 준열이가 말한 증거 있느냐?”
백승렬 회장이 결정타를 대신 날려 주었다.
“네? 그, 그건....하지만 아빠. 모든 정황이 준열이가 올케랑....”
백지연은 어떡하든 백승렬 회장을 말로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걸 그냥 둘 내가 아니지.
“그러니까 정황뿐이란 얘기네?”
“너 이 새끼....”
백지연이 여태 백준열에게는 보여 준 적이 없는, 험악하게 인상 쓴 얼굴로 나를 쏘아봤다.
하지만 진짜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나는 그녀는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 개 무시해 버리고 백승렬 회장을 보며 말했다.
“형수와 그렇고 그런 관계의 남자는 윤호의 과외 선생으로 그 둘은....”
“그만!”
내가 형수의 내연남이 누군지 밝히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불륜을 저질러 왔는지 밝히려 하자, 백승렬 회장이 바로 저지했다.
“더 말 할 거 없다. 이 일은 여기서 덮어라.”
“아버지!”
“아빠!”
“그리고 더 이상 준열이를 모함하면, 너희들에게 갈 지주사 지분 뿐 아니라, 계열사 지분도 전부 준열이에게 넘겨 버릴 수도 있다.”
“....”
백승렬 회장의 그 말에 남매는 꾹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백승렬 회장이 하면 하는 인간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만약 좀 전 한 말 대로 백승렬 회장이 해 버리면, 그들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될지 몰랐다.
“준열아. 오해해서 미안하다.”
그때 백 회장이 돌연 내게 사과를 해 왔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백준열의 기억에 백 회장이, 이렇게 먼저 사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건 다른 남매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다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와 백 회장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사과의 의미로 서초동에 있는 땅을 너에게 양도토록 하마.”
“이씨....”
“하아....”
“아아....”
백승렬 회장의 그 말과 동시에, 남매들 각자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백승렬 회장의 말에, 토를 달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바로 미운 털 박히고, 그들이 백 회장에게 받게 될 지분도, 대폭 줄어들어 버릴 테니까.
대신 그들의 살기가 온통 내게 집중 되었다.
진짜 눈빛으로 살인나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셋 다 냉기 서린 분위기 속 섬뜩한 눈빛을, 살기충천하게 번뜩이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좆 됐다.’
백승렬 회장이 말한 그 서초동 필지는, 장차 삼명그룹 본사 건물이 들어 설 땅이었다.
그 땅의 주인이 내가 됐다는 게 무슨 의미이겠나?
‘아놔! 삼명그룹 가지기 싫다는 데.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백준열이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할 때는, 삼명그룹 근처에도 못 오게 하던 양반이, 이제 싫다고 삼명家를 아예 떠나겠다니까, 삼명그룹을 나한테 못 줘서 안달이었다.
* * *
탁!
백승렬 회장이 일어나 책상 쪽으로 가서, 열려 있는 노트북을 닫아버렸다.
더 볼 거 없다는 얘기다. 그리곤 나를 포함한 네 남매들에게 말했다.
“그만들 출근해라.”
“아빠!”
셋 중 가장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백지연이, 아무래도 백승렬 회장에게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백승렬 회장은 백지연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은 듯 손을 내밀어, 그녀가 더 말하려는 것을 제지했다.
그리곤 아예 뒷짐을 지고 돌아서며 말했다.
“금요일에 또 보자.”
명백한 축객 령임과 동시에, 금요일까지는 자기 앞에 나타나 자기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란 소리였다.
“이이....”
뭐가 그리 분한지 두 주먹을 꽉 쥐고, 파르르 몸까지 떨던 백지연.
그녀가 홱 나를 한 번 쏘아보다, 이내 몸을 틀어 가장 먼저 서재를 나갔다.
그러자 둘째 형인 백준호가 힐끗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이크. 늦었다.’고 말하고는 후다닥 서재를 나섰다.
장남인 백준경은 아침부터 받은 충격이 큰 지, 길게 한 숨을 내 쉰 후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홱 몸을 틀어서 사라졌다.
“아버지.”
나는 끝까지 남아서 부친인 백 회장에게, 좀 전 그의 결정의 재고해 줄 수 없는지 물어 보려 했지만....
뒷짐을 진 체 꿈쩍도 않는 백 회장을 보고, 결국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아. 진짜 이게 아닌데....”
서재 밖에 나오자 별로 반갑지 않은, 최 집사가 날 보고 웃으며 서 있었다.
아마 오늘 서재에서 있었던 일을, 저 인간이 금도그룹에 고스란히 알려 주겠지?
그 생각을 하니 최 집사가 더 꼴 보기 싫어졌다.
“....”
“회장님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모양이시군요?”
내가 말이 없자 최 집사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런 그를 힐끗 쳐다보고선, 가시 돋친 말을 내 뱉었다.
“최 집사가 그걸 알아서 뭐하게?”
“네? 그, 그거야 모시는 분의 기분을 파악해서....”
“아 됐고. 여기 지하실에 잠깐 들어갈 수 있지?”
“지하실은 왜?”
하긴 막내 도련님이 아침 댓바람부터, 지하실에 들어가겠다니 의아해 할 수밖에.
“유학가기 전에 잘 챙겨 놓은, 플레이보이 잡지들이 지하실 창고에 있는 거 같아서 말이야.”
내 그 말에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최 집사가 말했다.
“지하실로 들어가는 입구는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들어가셔서 찾으십시오.”
“알았어.”
나는 털레털레 널따란 거실을 가로 질러서 본가 저택 밖으로 일단 나갔다.
“어디 보자.”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8시 30분이 넘었다.
저택 밖에 회장 비서진과 경호진이 분주한 것이, 곧 백승렬 회장도 출근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출근 시간 맞춰 출근할 필요가 없다.
월요일이야 회의 등, 주초로 종종 밀린 일이 있어 빨리 가지만,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탄력적으로 근무가 가능했다.
물론 내 결재를 기다리는 본격적인 일처리는, 어제처럼 매일 오후에 전부 몰아서 해 치운다.
때문에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오전은, 내게 상당히 프리한 시간이다.
물론 그 프리하다는 게, 일이 아예 없어서 한가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오늘만 해도 오전에 SVS와 KVS, 두 곳 지상파 방송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회사의 대표란 게, 사실은 얼굴 마담이다.
요즘은 대표실에 퍼질러 앉아서 꼰대 짓을 해도, 밑에 직원들이 다 알아서 일 처리를 하던 80, 90년대와는 다르다.
대표가 직접 뛰며 일을 따내고, 또 자금 경색을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표는 매일 얼굴을 팔고 다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요즘 같이 빠른 정보 사회에서 금방 도태 되고 만다.
백준열은 그런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읽었기에, 결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이런 백준열의 기억이 고스란히 나한테 넘어 왔는데, 한가하게 놀고먹기에는 너무 염치없는 짓이지.
‘뭐 오늘은 본가에서 그 일을 한다고 치자고.’
뒤에 해도 되지만 사실 너무 궁금했다.
백준열의 치매 할머니가 숨겨 놨다는, 그 다이아몬드가 말이다.
또 내가 알았을 때 미리미리 챙겨야지, 뒤로 미뤘다가 남 좋은 일만 시켰던, 예전의 그 뼈아픈 추억이 나를 등 떠밀었다.
어서 다이아몬드 챙기라고.
* * *
백승렬 회장은 사실상, 자신의 후계자로 막내아들 백준열을 낙점했다.
역시 요모조모 다 따져 봐도, 준열이 만 한 놈이 없었다.
처가 쪽이야 예전부터 딸이라도 후계자가 될 수 있다며, 은근슬쩍 지연이를 후계자로 삼으라고 자신을 압박했지만 어림없지.
어디서 자기 핏줄도 아닌 년을 후계자로 삼으란 말인가?
하여튼 그쪽 인간들은 염치란 게 없었다.
한데 며칠 전, 해괴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준열이가 첫째 며느리랑 붙어먹었다는 것이다.
즉시 알아보게 하니, 실망스럽게도 사실 같았다.
모든 정황이 말이다. 증인도 많았고.
“이런 파렴치한 색골 새끼 같으니라고....”
백승렬 회장은 분노했다.
안 그래도 자신이 백준열에게 불만인 게 두 가지가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여색을 너무 밝힌다는 점이었다.
한데 건드릴 여자가 없어서, 제 형수를 건드린단 말인가? 짐승 새끼도 아니고.
해서 심통 난 백승렬 회장은, 백준열이 꺼려 할 말한 일을 일부러 시켰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사실은 그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마크란 작자의 접대를 맡긴 것이다.
접대 자리란 게 원래 간 쓸개 다 빼 놓고, 알랑방귀 꽤나 끼어대야 겨우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더러운 자리다.
그런 짓을 녀석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녀석에게 하게 된다면, 얼마나 짜증나고 괴롭겠나?
해서 백승렬 회장은, 말이야 미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니, 네가 맡아서 반도체 기술 이전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지만, 실제는 백준열이 식겁하라고 다분히 질책성 성격을 띤 지시를 내렸다.
한데 백준열이 하루 만에 그 일을 떡하니 성사 시켰다.
더 놀라운 점은 녀석이 이번에는 제 실속을 챙겼단 점이다.
백승렬 회장이 백준열에게 제일 불만이었던 게 바로 그 점이었다.
아무리 아버지가 시킨 일이지만, 백준열은 너무 고분고분하게 일을 맡아 처리했다.
반면 백승렬 회장은 선친과 참으로 많이 싸웠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게 얼마나 많았던가?
백승렬 회장은 자기 자식들도 자신처럼, 아버지와 싸워서 전대(前代)의 것을 뺏어가는 걸 원했다.
하지만 백준열도 그렇고 다른 자식들도 자기 앞에서는 꼼짝도 못했다.
나름 사자 새끼로 키운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막내딸인 백지연이 그런 낌새가 좀 있었다.
하지만 자기 씨도 아닌 년이, 그래봤자 무슨 소용인가?
처가가 하도 지랄염병을 떨어서, 백화점 하나 맡겨 놨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서는.
해서 작년에 지주사 지분을 아들들에게 나눠 줄 때, 그년은 아예 쏙 빼버렸다.
그걸 두고 처가에서 또 지랄을 했지만, 그년이 ‘백’씨냐는 내 말 한마디에 주둥이를 꾹 다물더라.
진짜 C발 새끼들이다.
여하튼 ‘정치하는 것들 하고는 상종도 말아라’고 하셨던 선친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