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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화요일 아침은 본가에서 가서 먹어야 한다. 그놈에 가족 식사.
“으으으....”
때문에 오늘은 평소와 달리 내 기상 시간이 7시다.
여기서 구기동에 있는, 삼명家의 본가 저택으로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내가 세수를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가서, 오늘 입을 옷을 고르고 있을 때, 문대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
=밑에 대기 중입니다.
“바로 간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안방을 나서는 데, 그때까지도 남소라는 뻗어 꿈쩍도 않고, 쿨쿨 잘만 자고 있다.
오히려 그녀의 애완견이 일어나서, 밥 그릇 앞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처먹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냐?”
“왈왈~”
내가 뭐랬는데 뭐가 좋다고, 저리 꼬리를 흔드는 건지. 참.
밥 안 줬다가는 뭔 사달이 날 거 같아서, 녀석에게 개 사료를 주고 있을 때였다.
“월월월월월월!”
어제 잠들었던 소파 위에서는 보이지 않기에, 자기 집이 있는 방에 들어가서 자나 했더니, 엘베가 베란다 쪽에서 나와, 나를 보고 아침부터 제법 길게 짖었다.
그게 마친 내게 할 말이 있는 거처럼 느껴졌다.
해서 나는 「말하는 개」의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엘베의 목소리가, 사람 말로 바뀌어 내 귀에 들려왔다.
=지금 본가 갈 거지? 거기 가면 네 아버지 조심해라.
아버지를 왜 갑자기 조심하란 거지?
엘베의 말에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녀석이 계속 이어 말했다.
=며칠 전 여기 미친년하고 같이 백화점 갔다가, VIP전용 휴게실에서 지코를 만났지 뭐냐.
‘지코?’
엘베가 자연스럽게 거론한 걸로 미뤄, 그 지코는 개 일 것이다.
개 중에 지코란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니....바로 답이 나왔다. 역시 머리 하나는 좋은 백준열이다.
‘사모님의 애완견....’
백준열은 백승렬 회장의 부인인 서지현을, 사모님으로 꼬박꼬박 불렀다.
그건 그의 두 형들 역시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엘베가 며칠 전에, 서지현의 애견인 지코 녀석과 우연히 한 백화점에서 만난 거다.
“그래서?”
=그때 그녀석이 그러더라고 너와 첫째 암컷이 서로 붙어먹은 걸, 백 회장이 알게 됐다고 말이야.
“뭐?”
쳇! 여기서 들통이 나버렸다.
백준열이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한 비밀 중 하나가 말이다.
=너 형수는 왜 건드린 거야?
“내가 뭘 어떻게 한 게 아니라, 그쪽이 날 덮쳤다고 봐야겠지.”
=쯧쯧.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년 그거 시집 올 때부터, 눈 밑에 색끼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그나저나 큰일이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았다니 말이야.”
=조심 좀 하지 그랬냐?
“나야 조심했지.”
=그럼 그 여자 쪽에서 흘린 건가?
“형수가?”
=너 그 여자랑 박은 지 얼마나 됐어?
“그야....올해는 없고, 작년에 두 번?”
=연락은?
“자주 온 편이지. 내가 다 씹었지만.”
=쯧쯧. 그렇다면 그년이 흘린 거 백퍼 맞아.
엘베가 단정 짓듯 말하자,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바로 녀석에게 물었다. 그러자 녀석 왈曰.
=너하고 좋은 관계가 끝났으니, 적으로 돌변한 거다. 즉 자기 남편을 회장 자리에 앉히기 위해, 널 찍어내기로 결심 한 거지.
“그래서 자기와 놀아 난, 나를 아버지께 꼰질렀다고?”
=뭐 어때? 그런다고 백 회장이 큰 며느리 내칠 리 없을 테고. 어차피 너와의 관계가 들켜도, 네 큰 형수는 잃을 게 없어. 반면 너는 좆 되는 거고.
“젠장....”
=아마도 백 회장은 이 일을 덮으려 들 거다. 네 형수 입도 막고. 그 과정에서 네가 가지기로 되어 있던 게, 전부 너의 큰형에게로 넘어가겠지.
“그렇다면....”
=그때가 되면 네 큰형도 알게 되겠지. 그럼 넌 진짜 좆 된다 봐야겠지.
“이거였구나?”
=뭐?
왜 백승렬 회장이 백준열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도, 그에게 바로 지분을 넘기지 않고 왜 아까운 시간, 2년을 허비했는지 말이다.
하긴 백준열이 짐승 같은 짓을 저질렀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렀다고 보면 됐다.
하지만 그 2년 동안 장남인 백준경과 백준호의 그룹 내 입지가, 커져도 너무 커져 버렸다.
그리고 그 일을 알게 된 장남 백준경은, 그 분노의 화살을 부친과 동생, 즉 백준열에게로 돌렸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 거다.
“하아. 그렇게 된 일이었구나.”
형제의 난과, 부친에 이은 자신의 죽음과 관련한 그 흑막이 뭔지, 나는 드디어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사이도 안 좋은 데, 자기 마누라를 건드린 나를 큰 형이 살려 둘 리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 스스로 자폭을 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더불어 형수와 나 사이의 일 역시, 다시는 부각 되는 일이 없을 것이고.
큰 형의 형수는 그 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됐다.
왜냐하면 백준열이 그녀를 한 방에 보내 버릴 수 있는 빼박 증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증거를 잘만 이용하면, 백준열이 형수와 놀아났다는 것도 단숨에 뒤집어 버릴 수 있었다.
=잘 가라. 다음 주에 보자.
나는 엘베를 따로 챙기려 했는데, 녀석이 그걸 거부했다.
여기가 좋다나.
* * *
엘베를 설득하는 건 잠시 뒤로 미루고, 일단 시간 관계상 서둘러 빌라를 나섰다.
자칫 아침 식사 시간에 늦었다간, 아침부터 백 회장에게 한 소리 들어야 하는 데, 그의 헤어드라이기에 트리트먼트 당하는 건 딱 사절이다.
“빨리 가자.”
시간을 확인하고 차에 타면서 내가 말하자, 오늘은 내 옆이 아닌 운전석의 문대식이 바로 대답했다.
“30분 안에 끊겠습니다.”
내 운전기사인 양태석의 평일 출근 시간은 8시까지다.
때문에 아침에 한 시간 빨리 움직일 때면, 백준열은 자신의 경호책임자인 문대식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여기서 평창동까지는 차가 안 막히면 40분 쯤 걸린다.
그런데 문대식은 그것도 10분 단축하겠다며 냅다 밟았다.
부우우웅!
뭐 결과적으로 문대식은 자기가 뱉은 말을 지켰다.
“젠장....”
대신 내가 흔들리는 차 안에서 멀미를 좀 했다.
속이 좀 메스꺼웠지만, 그건 좀 움직이면 괜찮아 진다.
나는 차에서 내려서 직접 삼명가 본가 저택의 초인종을 눌렀다.
누군지 안에서 확인을 하자, 바로 육중한 철제문이 열렸다.
나는 그 열린 철제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막내 도련님.”
늘 그렇듯 최 집사가 현관 밖으로 나와서, 사람 좋은 얼굴로 나를 반긴다.
백준열의 기억에 최 집사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딱 중립적인 사람으로, 고용인으로서는 유능한 인물이란 게, 백준열의 개인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저 최 집사가 금도그룹에서 심은 첩자 일 줄이야.
아마 이 사실이 삼명家에 알려지면, 그 후폭풍은 정말 어마어마할 거다.
“다들 왔어?”
백준열은 본가 고용인들 그 누구에게도 반말을 썼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최 집사에게 말을 높이면 이상하게 여길 거니까, 내 자신에게는 좀 거북하지만 말을 놨다.
“첫째 도련님께서 아직 이십니다.”
그 말은 둘째 형님과 셋째 누님은 와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다행인 건 큰 형이 올 거란 거다.
만약 일이 있었다면 형 대신 벌써 형수가 왔을 테니까.
최 집사와 같이 본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맛있는 냄새가 골고루 많이 났다.
꼬르르르!
배가 고팠던지 내 배에서 밥 달라고 난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들은 최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허기가 지신 모양이시군요. 어서 들어가시죠.”
나는 곧바로 가족 식당으로 들어갔고, 먼저 와 있던 둘째 형 백준호와, 셋째 누나 백지연이 날보고 각각 아는 척을 했다.
“막내가 빠져 가지고는....”
“어서 와.”
나는 평소 백준열처럼 말없이 두 사람에게 고개만 살짝 숙여 보이고는, 내 지정 자리에 가서 앉았다.
“크음!”
그때 식당 밖에서 헛기침 소리와 함께, 편한 개량 한복 차림의 백승렬 회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보고 식당에 앉아 있던 남매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헉헉헉....좀 늦었습니다.”
그때 허겁지겁 식당으로 뛰어 들어 온 장남 백준경.
“앉아!”
말 그대로 좀 늦었기에 백승렬 회장이 봐 주는 모양새다.
삼명家 가족들이 다들 식탁에 앉자, 사용인들이 국과 밥, 그리고 찌개류를 내 왔다.
“먹자!”
그렇게 국과 밥이 각자 세팅 되자, 먼저 수저를 들며 백승렬 회장이 말했다.
* * *
고요한 침묵 속에서 삼명家 가족들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식사에만 집중했다.
평소 밥상머리에서 말이 오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백승렬 회장.
그래서 대화는 백승렬 회장이 들고 있던 수저를 놓고 나면 주로 시작 됐다.
탁!
“안성댁! 숭늉!”
드디어 백승렬 회장이 수저를 놓았다.
그는 아침으로 반 공기 정도 밥을 먹고 나면, 숭늉을 찾는데 이때 숭늉 본연의 맛을 즐기려 새로운 수저를 사용했다.
어째든 백승렬 회장이 수저를 놓았으니, 식탁에서 드디어 말은 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자폭하기 위해서 폭탄을 꺼냈다.
평소 이렇게 막내가 식탁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다른 가족들의 시선이 온통 내게 집중 됐다.
“뭐냐?”
거기에는 백승렬 회장도 포함 됐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지주사 지분을 모두 내 놓겠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받을 지주사 지분 역시 포기하고요.”
“뭐, 뭐라고?”
폭탄은 터졌다. 백승렬 회장은 곧 노발대발해서 나를 족보에서 빼버리겠다고 소리 칠 것이고 ,나머지 가족들은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입이 귀에 걸릴 거다. 한데....
“그 말 진심이냐?”
“네?”
아니 저 양반 오늘 왜 저래? 이게 아니잖아?
수저가 됐던 밥그릇이 됐던, 내게 집어 던지고 욕설이 난무하면서, 한바탕 난리가 나야 하는데, 왜 저리 차분하단 말인가?
“지금 그 말은 후계자 자릴 포기하겠다는 거 아니냐?”
“그, 그렇죠.”
“좋다. 네 지주사 지분은 내가 다 회수하도록 하마. 대신 삼명전자 주식 7%를 너에게 넘기도록 하겠다.”
“아버지!”
“아빠!”
두 형과 누나가 발끈해서, 식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C발. 이게 아닌데....’
후계자 자리를 포기함으로서 저들 관심에서 멀어지려 했건만, 셋 다 날 당장에라도 찜 쪄 먹을 기세로 날 쏘아보고 있었다.
“준열이 지주사 지분에다가 앞으로 내가 저 놈에게 넘길 지분을 고려하면, 금액 적으로 삼명 전자 주식 7%는 합당하다.”
백승렬 회장은 자신이 좀 전 뱉은 말에 대해, 다시 재고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야 금액 적으로 그런 거죠. 저희 삼명그룹에서 삼명전자 지분이, 지주사 지분보다 더 구하기 어렵다는 건, 주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요?”
삼명호텔 대표 백지연이, 그런 백승렬 회장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연이 말이 백번 옳습니다. 차라리 지주사 지분을 원래대로 준열이에게 주십시오. 전자는 안 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삼명전자 지분 7%라니. 그건 아버지 삼명전자 지분 절반을 뚝 떼어 주는 거잖습니까?”
두 형제도 즉각 좌우에서 백지연을 지원하며 같이 반발했다.
하지만 백승렬 회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준열이는 삼명 전자 주식만 갖는다. 그러니 그 정도 받을 만 해.”
“아버지!”
“아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정신이 없는 가운데, 나는 또 하나 폭탄을 던질 준비를 했다.
바로 경영권 포기를 선언하려는 것. 이것만 터트리면 두 형제와 누나도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한데....
“그리고 준열이 너 내일부터 삼명 전자로 출근해라.”
“네?”
“자리는 상무다. 그 동안 네가 이뤄낸 결과를 보고 그렇게 정했으니, 들어가서 열심히 일해 봐.”
아니. 나 지금 삼명그룹 경영권 포기 선언을 하려는 데, 백 회장 저 양반은 왜 아까부터 자꾸, 남의 다리를 긁어 대는 거냐고.
* * *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금부터라도 잘 얘기해서, 다시 내가 원하던 바를 다 관철 시킬 생각이었다.
사람이 왜 사람이겠나? 얘기가 되니까 사람이다.
백승렬 회장도 그렇고 백씨 남매들도, 내가 다 잘 얘기하면 내 진짜 의도를 파악하고, 나를 이 집에서 떠나게 해 줄 거다.
‘에라이....’
그렇게 생각한 내가 빙신이다. 이것들은 가족이 아니다. 아니. 사람이 아닌 것들인가?
먼저 시작은 백지연이 했다.
“아빠. 막내가 큰 오빠 언니와 붙어먹은 거 아시죠?”
“뭐, 뭐?”
그 말에 놀란 건 정작 백승렬 회장이 아니었다.
그 붙어먹은 언니의 남편, 장남 백준경이었다.
“너, 너....사실대로 말해. 정말이야? 아니야?”
그 폭탄을 던져 놓고, 백지연은 얄밉게도 팔짱을 낀 체 관객 모드로, 나와 백준경 사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저 C발년이....’
백준열의 기억에 그래도 자신을 사람대접 해 준 유일한 가족이 백지연이었다.
하지만 그 친절이, 모두 위선과 가식의 쇼였음이 지금 드러났다.
‘쯧쯧. 불쌍한 놈.’
그나마 믿었던 가족이건만, 그 가족이 이렇게 쉽게 그의 믿음을 배신 때리고 있었다.
이때 나는 백준경도 백지연도 아닌, 백승렬 회장의 반응을 집중해서 살폈다.
아까 엘베가 말한 대로 백승렬 회장은, 내가 큰 형수랑 붙어먹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렇게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게, 곧 폭발 할 거 같았다.
성정이 사납고 난폭하기까지 한 백승렬 회장.
그가 한 번 화가 나면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지금 내가 할 일은, 그가 폭발하는 걸 일단 막는 거였다.
‘백준열은 그리 허술한 놈이 아냐. 증거 같은 걸 남겼을 리 없어. 그렇다면....’
나와 큰 형수 사이의 관계는, 정확한 물증 없이 정황증거와 증인들만으로, 둘이 붙어먹었다고 백승렬 회장에게 보고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바로 그 점을 주목했다.
“아버지. 저 억울합니다.”
내 그 한마디에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다시 가운데로 돌아왔다.
“그게 무슨 소리냐?”
폭발 직전의 백승렬 회장이 내 말에 움찔하면서, 일단은 화를 누그러트리고는 날 쏘아보며 물었다.
“저는 형수님과 그런 사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대비도 해 놨습니다.”
“뭐? 대비?”
백승렬 회장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좀 전까지 어떤 확신이 있어, 날 경멸하던 그 눈빛에 의구심이 서린 것을 말이다.
그로인해 시뻘게져 가던 백 회장의 얼굴도, 빠르게 원상복귀 되었고.
반면 그런 의욕을 재기한, 백지연의 얼굴이 대신 빨갛게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