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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양태석은 자기보고 같이 따라 내리라는, 백준열의 말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한데 병실에서부터 백준열이 조폭, 조폭해서 심기가 영 불편했었는데, 진짜 조폭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가 너무나 잘 아는, 어쩌면 자기 밑에 조직원들이라고 해도 되는 녀석들이었다.
어째든 저 놈들도 태천파에 속한 조폭들이니까.
태천파 중간보스 강유석은, 양태석과 그리 친분이 깊지는 않았다.
양태석의 오른팔 격인 녀석이, 맡은 강남 삼성동 일대의 소두목들 중 하나로, 저번 백준열이 말한 완벽한 몸매의 룸살롱 아가씨를 찾을 때 갔었던 그 룸살롱도, 녀석이 관리하는 곳 중 하나였다.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따로 같이 작업을 했다거나, 술을 마신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 강유석은 양태석과 친분이 없다고 보면 됐다.
“형, 형님께서 여긴 어떻게....”
양태석의 등장에 우쭐하고 있던 강유석과, 그 밑에 조폭들이 일제히 깨갱거리며, 머리를 숙인 채 감히 들지 못했다.
그나마 그들 두목이랍시고 강유석은 고개를 쳐들고 있었는데, 그것도 허리가 절반은 접힌 상태였다.
“자세한 건 뒤에 듣고, 여기 정리 좀 하자.”
“정, 정리요?”
“네 친 동생이냐?”
양태석이 턱 짓으로 병상에 누운 강인석을 가리키며 강유석에게 물었다.
“네.”
즉답하는 강유석.
“병원비는 내가 내 주마. 치료 끝나면 미라쥬 호텔로 보내. 거기 일 자리는 꽤 있으니까.”
“고, 고맙습니다.”
동생의 치료비에다가, 일자리까지 알아봐 주는 태천파 2인자의 배려에, 강유석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 지금 바로 저 분이 원하시는 대로 합의 해 드려.”
양태석이 여기 병실 안에 유일한 여자인, 임수지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하자, 눈치 빠른 강유석이 바로 수긍하며 말했다.
“진즉에 말씀하시지 그렇습니까? 그럼 바로 합의해 드렸을 텐데. 반갑습니다. 형수님!”
“형수님!”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는 두목 밑에, 그 조폭들인들 무슨 눈치가 있겠나?
졸지에 조폭 두목의 여자가 되어 버린 임수지의 얼굴이 시뻘개졌고, 그걸 본 양태석이 그녀에게 미안해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합의하게 해 주신 게 어딘데요.”
비록 조폭 두목의 여자로 오해는 받았지만 아니면 그만 아닌가?
대신 동생이 합의와 함께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게 되었으면 그걸로 족한 임수지였다.
강유석의 강압에, 강인석은 경찰서에 연락해서 합의금 없이, 그냥 선의로 합의해 주겠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대표님.”
임수지는 경찰서에서 동생이 곧 석방 될 거란 연락을 받고, 거듭 백준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너무 고마워서 그런데, 혹시 시간 되시면 저녁 식사라도 같이....”
나름 용기를 낸 임수지가 백준열에게 작업을 걸었는데, 돌아 온 대답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죄송해요. 저 오늘 선약이 있어서....다음에 제가 살게요. 그때는 ‘막먹는 영자씨.’ 출연자들과 같이 만나기로 해요.”
임수지도 눈치는 있었다.
뒤에 백준열이 출연자들도 같이 만나자는 말 속에, 자신의 호감에 대한 정중한 거절이 포함 되어 있단 걸 말이다.
하긴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대단한 분이, 그다지 예쁘지도 않는 그녀를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랬다고, 임수지도 이내 백준열에 대한 마음을 접고는 웃으며 말했다.
“네. 우리 ‘막먹는 영자씨.’ 꼭 성공 시켜요. 파이팅!”
“파이팅!”
임수지의 어려움을 쉽사리 해결 해 준 백준열은, 기분 좋게 병원을 나와 이제는 보고 싶어진 엘베를 보러, 남영동 남소라의 집으로 향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서울 애완견 엘베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엘베와의 추억이 생생하게 생각났다.
“녀석. 남소라에게 맡겨 놓고 전혀 신경을 못 써 줬네.”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엘베를 보긴 했다.
하지만 그때 마다 녀석은 멀쩡해 보였고, 나는 그 모습에 잘 지내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한데 그게 녀석이, 바쁜 내가 자기 신경 안 쓰게 일부러 연기를 한 거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
무슨 개가 그런 연기까지 하냐고?
엘베면 가능했다.
녀석은 백준열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영리했고, 배려심도 깊었다.
그래서 백준열도 엘베, 즉 개보다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를 늘 달고 살았다.
근데 그 말이 진심이었을 줄이야.
‘엘베와 대화라....’
내게는 「말하는 개」라는 견신 시스템의 스킬이 있다.
그걸 사용하면 가평 별장의 세파트 비마처럼, 엘베와 대화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나는 백준열이 아니다.
하지만 백준열의 기억을, 특히 엘베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녀석과 대화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그래. 곧 떠날 엘베에게, 말동무라도 되어 주자.’
이전 삶에서 내 애완견 홍자는 그냥 떠나보냈지만, 엘베는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 * *
거제시에서 출발한 택시는 정확히 오후 5시에 서울 역 근처에 도착했다.
그 택시의 최종 목적지는, 원래 JYB엔터 본사 사옥이었다.
거기 도착해서 그곳 경비가 박인호를 인계 받고 나면, 그 자리에서 현금 100만원을 택시기사에게 지급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
그런데....
“기사 아저씨. 부탁입니다. 부모님 얼굴만 보고 갈게요.”
“아따. 그 양반. 말 더럽게 안 듣네. 그러니까 이대로 JYB엔터 본사에 갔다가, 거기서 집으로 가면 되잖아? 뭐 하러 중간에 들렀다가 가?”
답답하다는 듯 택시기사가 말했지만, 서울에 오고 보니 부모님이 너무도 보고 싶었던 박인호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결국 신호 때문에 택시가 멈추자, 차문을 열고 내리려는 박인호.
“여기서 부터는 지하철 타고 집에 갈게요.”
“잠, 잠깐. 알았어. 간다고. 가면 되잖아.”
결국 박인호의 고집에 지고 만, 거제도 개인택시 기사 K씨.
그는 박인호가 불러주는 주소지로, 내비게이션의 주소를 다시 찍고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20분쯤 뒤 박인호를 태운 택시가 후암동 자치센터 근처, 주택지가 밀집한 곳의 한 과일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아버지! 어머니!”
“인호야!”
택시에서 내린 박인호는, 햇수로 거의 3년도 넘게 뵙지 못한 부모님께 달려갔다.
“어제도 거제도에 있다면서? 서울은 어떻게 온 거야?”
“너 혹시 아주 온 거니?”
“네. 저 이제 서울에서 살아요.”
“잘 됐다. 저녁은?”
“아직 안 먹었어요.”
“그래? 그럼 식사를....”
“여어. 박인호씨!”
그때였다. 껄렁해 보이는 남자 네 명이 갑자기 나타나서 박인호를 에워쌌다.
“당, 당신들 뭐야?”
“뭐긴? 당신 잡아오라고 거제도에서 하도 난리라서....”
“뭐, 뭐?”
박인호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속고 당해 놓고, 또 이병훈 대표한테 당했다.
대학 선배인 이병훈 대표는 박인호의 부모님이 여기 산다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그의 지인이었다.
효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과 사이가 워낙 좋았던 박인호였다.
그걸 알기에 이병훈이 여기로 사람을 미리 보내 놓았는데, 멍청하게 여기로 오는 바람에 잡히게 생긴 거다.
‘내가 진짜 미쳤지.’
박인호는 택시기사가 그냥 가자는 대로 갔으면 됐을 텐데, 자신이 똥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모든 게 허사가 되어 버리자, 정말 딱 죽고 싶었다.
“당신들 뭐야?”
“우리 인호한테 손대지 마.”
그래도 자식이라고, 노부와 노모가 박인호를 감쌌다.
하지만 딱 봐도 저놈들은 나이 많다고, 사정 따윌 봐줄 놈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부모님 안 다치게, 그냥 그가 순순히 저들을 따라가는 게 맞았다.
‘JYB엔터 대표님이라고 하셨던가?’
자신이 우둔해서 그분이 힘겹게 거제에서 빼내 줬건만, 결국 도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박인호는 속으로 JYB엔터 대표 백준열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한 후,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껄렁해 보이는 자들에게 말했다.
“내 부모님한데 손대지 마라. 순순히 따라 갈 테니.”
그 말에 아까부터 혼자 박인호를 상대로 말을 하던 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거제도에서 너 가급적이면 곱게 모셔 오라더라.”
박인호는 이렇게 서울에 올라와서, 자기 두 눈으로 부모님을 뵙고, 또 이렇게 두 분을 안아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 했다.
하지만 이대로 또 잡혀가서, 이병훈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울컥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울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부모님이 그를 더 걱정하실 테니 말이다.
그래서 박인호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두 분께 별일 아니라고, 자신은 거제도에서 잘 살고 있으니 염려 말라는 말을 하려 했다.
그때 검은 정장 차림의 덩치 좋은, 딱 봐도 한 싸움 할 거 같은 남자 셋이 나타났다.
“너희들 뭐야?”
껄렁한 네 명이 그들의 등장에 긴장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자, 눈치 빠른 박인호는 부모님과 함께 슬그머니 과일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 *
서울 봉천동에 유명한 양아치 D씨.
그도 한 때 조폭세계에 몸담았지만, 사람 죽이라는 보스의 지시를 어기고 조직을 이탈 했다.
당연히 보복이 뒤따를 줄 알았는데, 천운인지 그가 도망 나온 조직이 다른 조직에 습격을 당해, 해체 되어 버렸다.
듣기로 보스와 그 밑에 두 중간 보스들은 당시 습격 때 죽었다나?
그 뒤 D씨는 조폭 하면 학을 떼고 피했다.
하지만 양아치 습성이 어디 가겠나?
나이가 40살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제 밥벌이는 제대로 못하고 여전히 양아치로 살고 있는 D씨를 보고, 그 가족들만 복장이 뒤집어졌다.
오늘도 오전 11시쯤에 깨어서, 동네 당구장으로 향한 D씨.
그런 그에게 흥신소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왜요?”
=왜긴. 너 일하나 해라.
“무슨 일이요?”
=사람하나 잡아서, 거제도로 도로 데려 가면 된다.
“지금 나보고 포주 따가리나 하라는 거요?”
=누가 너보고 도망친 술집 작부 년 잡아오래? 남자야. 남자. 그것도 대기업 다니는.
“대기업?”
=그래. 뭔가 기밀을 들고 튄 모양인데, 고이 잡아서 거제도로 데려가면, 그 자리에서 천만 원 준단다.
“수수료는?”
=없어. 너 다 먹어라.
“C발. 미리 받았네.”
=새끼. 하여튼 눈치는 빨라요.
“천오백 달라고 해.”
=뭐?
“거제도 가려면 차량에, 기름 값에, 애들 둘 셋은 더 써야하는데, 천만 원으로는 어림없어. 요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그래. 알았다. 일단 거기서 천만 원 받고, 오면 내가 따로 오백 더 챙겨 줄게. 어때? 할거지?
“그래서 그 대기업 새끼 어디 있는데?”
=거제 쪽에서는 지금 서울 가고 있는 중이란다. 아마 그 새끼 부모 사는 곳에 들를 거라니, 거기 대기하고 있어.
“알았으니 그 주소나 불러 봐.”
=요즘 누가 주소 같은 거 부르냐? 문자로 보내 줄게.
그렇게 흥신소 선배와 통화를 끝낸 D씨.
그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이 시간에 당구치고 있는 양아치 셋을 보고 말했다.
“너희들 일당 백 만 원짜리 알바 하나 안 할래?”
백만 원이라는 D씨의 말에 당구 잘 치던 양아치 셋이 동시에, 들고 있던 큐대를 내려놨다.
D씨는 먼저 차부터 빌렸다.
당구장 주인의 각 그랜저를, 기름 만땅으로 채워 준다는 조건에 하루를 빌린 거다.
그 각 그랜저를 몰고, 흥신소 선배가 알려준 후암동 주택가에 위치한 과일가게 근처에 도착한 D씨와 양아치 셋.
그들은 과일가게가 보이는, 주택 벽에 차를 대 놓고 박인호라는 대기업 직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그들은 몰랐지만 그들의 오래 된 각 그랜저 말고, 최신형 그랜저를 끌고 나타난 검은 정장 남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백준열의 경호팀원들이었다.
백준열의 부탁을 받은 경호실장 문대식의 지시를 받고,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박인호가 혹시 여기 나타났을 때, 그를 잡으려는 자들이 나타나면 그들을 물리치고, 박인호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그들이 맡은 임무였다.
“저기 각 그랜저 안에 있는 놈들. 수상하지 않아?”
“그러게.”
각 그랜저 안에 타고 있는 네 남자들이, 너무 대 놓고 과일가게를 주시하고 있다 보니, 백준열의 경호팀원들은 그리 신경 써서 찾지 않아도, 저놈들이 박인호를 잡으러 온 놈들이란 걸 단박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근데 진짜 여기로 올까?”
“안 오면 그만이고.”
한데 박인호가 떡하니 과일 가게에 나타났다.
그러자 각 그랜저 안에 놈들 중 하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이내 차에서 내려서 박인호를 에워쌌다.
그걸 보고 최신 그랜저 안의 백준열의 경호팀원들 중 한 명도, 그들의 실장인 문대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장님. 대표님 말씀대로 박인호가 여기 나타났고, 그를 잡으러 네 놈이 왔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박인호부터 확실히 구한 연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백준열의 경호팀원들.
“가자.”
그들은 네 놈들이 박인호를 잡기 전에, 차에서 내려서 그들 쪽으로 걸어갔다.
이내 그들을 발견한 네 놈들.
“뭐야? 이 양아치들은?”
그들을 딱 상면하는 순간 백준열의 경호팀원들을 알 수 있었다.
“너, 너희들 뭐야?”
그 중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양아치가 나서긴 했지만, 경호팀원들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몸을 옆으로 돌렸다.
양아치들은 철저히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비굴하다. 또 쪽팔리는 걸 모른다.
해서 동료를 버리고 내 빼는 걸 당연시 여긴다. 바로 눈앞에 있는 네 놈들처럼 말이다.
“확!”
세 명의 경호팀원 중 제일 인상 더럽고, 덩치가 큰 요원이 당장 달려들어 양아치들을 때릴 거처럼 겁을 주자, 네 놈은 누가 먼저인지, 도저히 알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내뺐다.
“으아아아....”
그렇게 한 바탕 싸울 생각을 하고, 차에서 내린 백준열의 경호팀원 3명은, 황당한 눈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각자도생, 뿔뿔이 흩어져서 죽어라 달아나는 4명의 양아치들을 멍하니 쳐다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