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3화 (6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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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골프여신 민혜주 때와 마찬가지로 계약이 끝나자, 나는 3명의 배우들과 환담을 나눴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다음에 한 잔 하도록 해요. 제가 쏘겠습니다.”

저번에 밤에 모여 술 마시는 거 보니, 이들은 종종 술자리를 갖는 거 같았다.

나도 그 자리에 끼워 달라는 얘긴데, 그걸 바로 알아들은 하종미가 말했다.

“안 그래도 이번 주에 한 번 모이기로 했어요. 그때 부를 게요.”

하종미가 날 보는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건, 이미 피부로도 와 닿았다.

물론 그녀에게서 나는 살짝 떫었던 냄새도 지금은 많이 옅어졌고. 그리고 하종미를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아! 그리고 여러분께 드릴 게 있습니다. 김 비서. 내가 말해뒀던 그거 가져 와.”

“네.”

잠시 후 김 비서가 계약서 말고, 다른 서류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내가 고갯짓을 하자, 김 비서가 그 서류봉투를 3명의 배우들에게 각각 나눠주었다.

그게 뭔지 궁금했던지 3명의 배우들은, 그 안에 내용물을 바로 꺼내봤다.

“어어? 이건....”

“맞습니다. 종합검진. 운동선수들이 이적할 때 받는 메디컬테스트는 다들 아시죠? 가볍게 그런 의미라고 받아드리시면 되겠습니다.”

내 그 말에 최수현이 말했다.

“메디컬테스트는 계약 전에 받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가볍게 받으라는 거죠. 문제가 있으면 저희 회사에서 다 알아서 고쳐 쓰겠다 뭐 그런....”

그 말을 하면서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종미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무슨 암에 걸렸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지금부터 찾으면 분명 찾아낼 수 있을 거다.

그럼 그녀가 암으로 고생하기 전에, 먼저 치료를 시작해서 완치에 이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러려고 지금 JYB엔터에는 있지도 않는, 배우들 종합검진 얘기를 일부러 하고 있는 거고.

“알았어. 내일 받으면 돼?”

김명석의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네. 거기 설명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장내시경까지 해야 하니 가실 때 병원 들러서 담당의와 상담을 받고 가시면 되겠습니다.”

병원과 의사란 말에 3명의 배우 모두 표정이 어둡다.

하긴 그만큼 자신의 건강을 자신할 수 없다는 거겠지. 하지만 걱정들 마세요.

세 분 다 건강하게 오래 동안 연기할 수 있게 해 드릴 테니.

그래야 저도 여러분들에게 빨대 꽂기 수월할 테고 말입니다.

나는 셋 다 바로 병원부터 갈 거란 말에, 로드 매니저 한 명을 빼서 그들을 병원까지 실어다 주라고, 김 비서에게 지시했다.

그렇게 김 비서와 3명의 배우들이 대표실을 나가고 나서, 책상 위에 남은 서류를 검토, 결재하고 나자 퇴근시간이 다 됐다.

그 사이 3명의 배우들 문제를 다 처리하고 돌아 온 김 비서. 그녀에게 내가 먼저 말했다.

“수고했어. 그만 퇴근해.”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 비서에게 내가 다시 말했다.

“퇴근하라고. 왜? 더 일 시켜 줘? 함 할까?”

“아, 아뇨. 퇴근하겠습니다.”

내가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할까 싶어서일까?

뭐 생각해 보니 번복한 적이 좀 많기는 하네.

후다닥 대표실을 나간 그녀는, 대충 자신 책상 정리를 하고 냅다 내뺐다.

정작 대표실 문이 열려 있는 건 모르고 말이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입맛이 썼다.

저 나이에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완전 그녀 인생을 내게 저당 잡힌 게 아닌가?

물론 나는 성자가 아니다. 당장 그녀를 놔 줄 생각도 없고. 오히려 그녀를 더 붙잡고 싶은 나쁜 놈이다.

실제 백준열은 그녀를 더 붙잡기 위해서, 사전 작업까지 다 끝내 놓은 상태다.

“진짜 나쁜 놈이네. 적어도 김 비서한테는.”

전생에 원수 사이였을까?

‘백준열이....너는 왜 이렇게 김 비서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냐?’

내가 묻는다고 대답 해 줄 백준열은 여기 없지만.

그러니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지만 이렇게라도 꺼내야, 그녀만 보면 노예 취급하려는 내 습관도 차츰 고쳐지지 않을까 싶다.

* * *

김 비서와 함께 내 수행비서인 황치국도 같이 퇴근 시켰다.

그게 불만인지 입에 대빵 나온 황치국.

하지만 내 옆에 문대식이 있자, 항의의 말 한 마디 못한다.

결국 꾸물거리다가 퇴근해 버리는 황치국.

“문 실장. 부탁할게 하나 있는데....”

나는 오늘 내가 취한 조치 중 조금 꺼림칙한 게 있어서, 그것에 대한 확인 차원에서 경호팀원들을 그쪽에 보내 주길 원했다.

“네. 팀원들 세 명을 말씀하신 곳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문대식은 일절 내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단지 예전부터 늘 해 왔던 대로, 법에 저촉 되는 일이라 판단 될 시에는, 그 일에서 즉시 팀원들을 빼겠다는 원론적인 말은 덧붙였다.

당연히 그 일이 법을 어기는 건 아니다.

나는 곧장 퇴근길에 올랐고, JYB엔터 본사 입구에 대기 중인 대표 차에 탑승했다.

그 차의 운전석에는 양태석이 있었고, 경호 차량 두 대가 바로 따라 붙었다.

하지만 사거리에서 한 대가 이탈해서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나를 태운 차는, 남영동 남소라의 집을 최종 목적지로 잡고 움직였는데, 그 사이 성동 병원을 잠깐 들리기로 했다.

“하아....”

원래 사회생활이라는 게 총성 없는 전쟁터다.

하지만 알고 보니 매니저먼트와 연예기획사들이 난무하는, 이 바닥은 더 치열한 싸움터였다.

온갖 루머와 음모, 그리고 배신이 난무했다.

그걸 오늘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처리한 서류 한 장 한 장이, 다 숨겨진 내막과 사연, 의도가 있는 것들이었다.

‘개새끼 백준열이니까, 여태 견뎌 왔지. 예전의 나였으면....’

엔터테이먼트 대표란 자리는 고작 샐러리맨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약자라고 해서 봐주고, 그런 건 애초에 없었다.

당장 내가 잡아먹지 않으면, 못 살아 남는 게 이 바닥이니 말이다.

나는 힐끗 옆을 쳐다봤다. 좀 전 내가 길게 내 쉰 한숨을 들었을 텐데도, 문대식은 아무 말도 없다.

대개는 궁금해서라도 물어 봤을 거다.

‘대표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를 챙기는 척 하는 자보다, 이렇게 무겁게 침묵하고 있는 문대식이 나는 더 좋았다.

그건 이 몸의 원 주인인 백준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 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창 밖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성동병원에 다 와 갑니다.”

운전석의 양태석의 묵직한 소리가 내 귀에 울려왔다.

양태석이 목적지에 다 와 간다는 것을 내게 말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혹시 그에게 따로 시킬 일이 있는지 묻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킬 일이란 건 당연히 불법적인 일인 거고.

“일단 같이 동행은 해요.”

“네.”

혹시 모르니 양태석도 나와 같이 병원으로 들어가잔 얘기다.

그 말을 들은 문대식이 뒤를 따라 오고 있는 경호차량에 무전을 보냈다.

그리고 차가 성동병원 건물 입구에 도착했을 때, 운전석의 양태석도 나와 같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뒤에 서 있던 경호차량에서 경호팀원이 한 명 내려서, 양태석의 운전석에 대신 들어갔다.

그렇게 문대식, 양태석과 경호차량에서 내린 경호원 2명이 나를 에워싼 체, 우리는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은 당연히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나 빼고 내 주위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좀 어색하네.’

하지만 이 몸의 주인은 그게 익숙한지,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익숙하게 경호를 받아 움직였다.

* * *

일종의 나일론 환자인 김인석. 그는 지금 자신의 재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었다.

“C발 좆도. 하필이면 그런 거지새끼가 걸려서....”

자신이 부잣집 아들이라 여겨 가해자로 지목한, 그 이름이 임희철인가 뭔가 하는 새끼는, 알고 보니 홀어머니 밑에서 커 온, 서울에 집 따가리 하나 없는 순 알거지였다.

그 누나가 방송 작가를 한다는 데, 그 여자 역시 알아보니 별 볼일 없었다.

그러니까 어디를 봐도 돈 나올 데가 없는 새끼였다.

형의 조직과 잘 아는 흥신소를 통해 알아보니, 그 새끼 그날 입고 있었던 명품 옷과 신발도 다 세탁소에서 빌린 거란다.

요즘 클럽에서 여자를 꼬시려면 그 정도는 입어 줘야 한다나?

기가 찬다. 이러면 합의금은 고사하고, 당장 여기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김인석.

“어쩌지? 어쩐다?”

그가 손가락을 물어뜯으며 대책이라도 세워보려, 병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보통 간호사들은 그냥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의 형과 그 밑에 조폭새끼들도 마찬가지고.

이렇게 노크를 하고 기다린다는 건 진짜 손님이 왔다는 것.

강인석은 후다닥 병실 침대에 누웠다.

“들어와요.”

그리곤 병실 밖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병실의 미닫이문이 열리고, 딱 봐도 싸움 좀 할 거 같은 덩치들이 들어왔다.

그 뒤에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과, 아까 봤던 가해자의 누나란 여자가 같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걸 보고 강인석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꺼내서, 자기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형인 강유석이 바로 그의 전화를 받았다.

=어. 왜?

“형. 지금 애들 데리고 여기로 와줘.”

=뭐?

“가해자 측에서 웬 놈들을 데리고 나타났어.”

조폭 소두목답게 그게 무슨 소린지 바로 알아들은 강유석이 말했다.

=근처다. 좀만 기다려.

그렇게 통화를 끝냈는데, 그 동안 강인석에게는 그리 환영 받지 못하고 있는, 병문안 온 손님들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이 나서며 강인석에게 말했다.

“너 조폭 새끼니?”

“뭐, 뭐라고?”

그 말을 듣고 발끈하는 강인석.

자기보다 한창 어려 보이는 녀석이, 반말 지껄이는 것도 화날 일인데, 자기 보고 조폭이라니. 대체 자신의 뭘 보고....

조폭은 네놈 옆에 있는 것들이 조폭이지.

강인석은 그 말을 당장이라도 내 뱉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무서우니까.

괜히 그 말 했다가, 저들에게 두들겨 맞으면 그 만 손해다.

그러니 그의 형이 밑에 조폭들을 이끌고 나타나기 전까지, 그는 저들에게 무조건 말조심해야 했다.

* * *

“대표님!”

나는 병동의 휴게실에서 임수지 작가를 만났다. 그런데 나를 너무 반겨주신다. 우리 작가님이.

‘어라? 그러고 보니 좀 변했는데?’

임수지 작가는 아까 카페에서 만났을 때와는 완전 달라져 있었다. 화장부터 옷까지.

한데 옷의 태그가 아직 붙어 있었다.

아마 백화점에서 급하게 사 입고 태그 떼는 걸 깜박한 모양이었다.

‘뭐야? 지금 나에게 잘 보이려고....’

임수지 작가가 하는 짓이 귀여워서 자칫 웃을 뻔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온 건 그녀가 처한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함이니, 그녀 앞에서 웃는 건 어째든 결례다.

“크음. 가시죠.”

임수지 작가 말에 따르면, 자기 동생이 다치게 만들었다는 사람이 조폭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간단히 해결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바로 내 옆에 태천파 2인자가 있으니 말이다.

임수지 작가는 그 피해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하면서, 자기 동생이 그 사람을 때렸을 리 없다며 음모론을 재기했다.

물론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세상은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울 때가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

임수지 작가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거 보다, 여기서 그 일을 덮어 버리는 게 시간적으로나 재정적, 혹은 정신적으로 피해를 가장 최소화 하는 일이다.

이런 걸 두고 합리적인 해결이라고 한다.

나는 그 합리적 해결을 위해 이 자리에 왔고, 누구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그걸 해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재잘재잘 임수지 작가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걷다보니, 어느 새 그 조폭새끼가 누워 있다는 병실에 다다랐다.

“여기에요.”

노크 후 잠깐 기다리자 안에서 들어오라고 했다.

그래서 들어갔더니 우릴 보고 놀란 조폭새끼가, 어딘가로 헐레벌떡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걸 제지 시키지 않고 그냥 내버려뒀다.

나로서는 주위에 조폭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야 그놈들 중에 한 놈이라도 더, 태천파 넘버 2인 양태석을 알아보지 않겠나?

근데 새끼가 조폭이냐고 물으니 정색을 했다.

딱 봐도 조폭같이 생겼는데 말이다.

녀석이 우릴 보고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계속 눈치나 보는 게 이 자리에서 당장 해결 될 문제는 아닌 거 같았다.

일단 녀석은 양태석을 몰라보고 있으니까.

양태석 역시 녀석을 모른다고 하고.

결국 녀석이 부른 놈들이 와야 해결 될 거 같은데....

“시간 없는데 전화해서 빨리 좀 오라고 해.”

“네?”

“니가 좀 전에 전화한, 그 형인가 뭔가 하는 조폭새끼한테.”

내 말에 환자인지 조폭인지, 하여튼 녀석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날 쳐다봤다.

하긴 조폭을 무슨 동네 개 이름 부르듯 하니, 거기다가 보통 사람들이 극도로 꺼리는, 조폭들 빨리 오라고 재촉까지 하고 있으니 기가 찰 밖에.

시간 참 지루하게 흘렀다. 좀 전까지 분 단위로 바빴던 내가 여기서 그 아까운 시간을 따 까먹고 있었다.

그렇게 한 20분 쯤 지났을까?

“어떤 새끼들이야!”

버럭 고함을 치며 진짜 조폭 같이 생긴 놈이, 병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꼴에 수하도 대 여섯 데리고서.

“인석아! 걱정마라. 이 형이 왔다.”

아주 연기자 나셨네. 나셨어.

“니들 뭐야? 어디 파야?”

대뜸 우리보고 조폭이라니,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살벌하게 변했다.

그때 이 모든 소란을 종식 시킬 묵직한 한마디가 병실 안에 울렸다.

“유석아!”

그 말 후 ‘짜잔’하고 등장하는 양태석.

그런 그를 보고 병실 안에 들어 온 조폭들이 다들 화들짝 놀랐다.

보아하니 여기 온 조폭들 다 양태석을 아는 얼굴이다.

‘끝났군.’

나는 상황이 이대로 종료되었음을 직감했다.

곧 합리적으로다가 해결을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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