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1화 (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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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자신이 속해 있었던 거지같은 외주제작사를 화끈하게 때려치우고 나오며, 임수지는 막힌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았다.

“이런 걸 두고 십년 묵은 체증이 내린다는 건가?”

임수지는 다음으로 자신의 동생이 잡혀 있다는 경찰서로 향했다.

이번 역시 콜택시를 이용했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합의하러 왔다고 하자, 담당 형사도 기뻐했다.

빨리 합의 하는 게 서로 좋은 거라며 말이다.

하지만 피해자와 통화를 하고 난 뒤, 담당 형사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임수지에게 하는 말이....

“저쪽에서 합의를 못해 주겠다는데요.”

“뭐라고요?”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2천만 원에 합의해주겠다던 피해자가 아니던가?

왜 갑자기 돌변해서 합의를 못해주겠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임수지였다.

“설마 거기서 더 올려 달라는 건가요?”

임수지는 작가답게, 이게 피해자가 합의금을 더 받아내려고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야 저도 잘 모르죠. 어떻게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보시겠습니까?”

형사는 어쨌든 자기 일 좀 줄여 보려, 임수지에게 합의를 떠넘기려 했다.

임수지는 생각 같아선 법대로 처리하게 내 버려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기 동생이 전과자가 될지 몰랐다.

그건 막아야 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형사에게 피해자가 지금 입원해 있는 병원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 들고 경찰서를 나섰다.

“성동병원 511호실이라....”

그냥 맨손으로 가긴 그래서 과일 바구니 하나를 챙겨 든 임수지가, 피해자의 입원실을 찾았을 때였다.

“고고고! 넌 피박이고 너는 광박....다 죽었어.”

병실 안에서 환자복장의 네 남자들이 고스톱 판이 벌이고 있었는데, 그녀가 병실에 들어왔는데도 그들은 그쪽은 신경도 쓰지 않고, 치던 고스톱에 열중이었다.

“저어....여기 강인석씨가 누구....”

“강인석? 야! 그거 너잖아?”

네 명의 환자들 중 광 팔던 환자가 쓰리고에 이어 포 고를 외치며 희희낙락거리고 있는, 30대 중후반의 남자를 보고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빤히 임수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강인석인데 누구요?”

“아네. 저는 임희철의 누나 되는....”

“에이 씨....”

임수지가 임희철이란 이름을 들먹이자, 강인석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리곤 기분 잡쳤다는 듯 고스톱 판을 엎어버리고는, 몸을 일으켜 자기 자리로 돌아가 눕더니 버럭 소리쳤다.

“합의는 없어. 그런 줄 알고 가보쇼.”

“아니. 제 말을 좀....”

그때 우락부락하게 생긴 자들이 병실에 들어왔다.

그런 그들을 보고 누워 있던 강인석이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인석이 너 내가 시킨 대로 합의 안한다고 했지?”

그리고 그들 중에서, 유독 혼자 목에 굵은 금목걸이에 팔찌를 차고 있는, 40대 초중반의 남자가 병실 안에서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어. 형이 시킨 대로 했어.”

그러면서 슬쩍 눈짓을 줬는데 그걸 못 본 건지, 봐도 별 신경 안 쓴다는 건지, 그 피해자의 형님이란 자가 계속 큰소리로 말했다.

“백수 새끼한테 이건 절호의 기회야. 최대한 많이 뜯어내야 돼. 한 1억 불러 봐. 주면 고맙고 아니면 조금 더 깎아 주면서, 그쪽이 얼마까지 줄 수 있겠는지 간을 보란 말이야.”

길어지는 형님이란 작자의 말에, 피해자도 점점 입장이 난처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형님이란 자가 하는 말을 중간에 끊지 못했다.

* * *

강인석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1년 놀다가 군대에 갔다.

공부하고는 오래전에 담을 쌓았고, 그렇다고 형처럼 조폭이 되기는 싫었다.

부모님은 너 뭐해먹고 살 건지 압박해 오고.

그래서 국가에서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군에 자원입대를 해 버린 것.

한데 제대하고 나니 더 문제였다.

이젠 부모님도 그에게 일절 신경을 꺼버렸다.

군대까지 갔다 온 놈한테 더는 무슨 잔소리냐며.

제 살 길, 제가 알아서 잘 하겠지 라면서.

하지만 강인석은 잘하는 게 딱히 없었다. 있다면 그냥 놀고먹는 거?

그때부터 강인석의 백수 인생이 시작 됐고, 부모님은 그가 집에 오면 슬그머니 집을 나가버리셨다.

형도 제대한 날에 술 한 잔 사줬지, 그 뒤에 나타나면 모른 척 자기 밑에 조폭 시켜서 그를 내쫓았다.

그러다 사흘 전인가? 호프집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싸우다 보니, 이거 잘하면 몇 달 치 용돈은 벌겠다 싶었다.

그가 아는 동생 중에 술집에서 싸움이 났는데, 그때 몇 대 얻어맞은 놈이 때린 놈한테 합의금으로 500만원이나 받아냈다는 거다.

실은 그 싸움도 원인은 강인석이 제공했다.

또한 주먹질도 그가 먼저 했고. 하지만 호프집에는 CCTV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단 얻어맞으면, 강인석이 무조건 피해자가 되는 거다.

그 다음, 가해자야 싸움한 놈들 중에 제일 있어 보이는 놈으로 고르면 그만이고.

어째든 그 놈도 싸움에 끼어들긴 했으니 발뺌하긴 힘들었다.

또 진짜 강인석을 때린 놈도, 자기가 그랬다고 자수할 리 없었고.

‘친구간의 우정? 개좆같은 소리지.’

따지고 보면 합의금 보다 못한 우정이라면, 지금 깨버리는 게 나았다.

해서 강인석은 자신을 때렸다고 지목한 임희철이란 녀석에게, 합의금만큼의 인생 교훈을 선물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경찰이 뜨고 얻어맞은 강인석은 병원에 입원을 했고, 경찰에 당연히 합의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한 2천만 원 부르자. 부자 같던데.”

그래 놓고 가해자가 합의 해 올 것을 기다렸는데, 뜬금없이 그의 형인 강유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부모님 결혼기념일이 다음 주니, 네가 잘 챙기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의 계좌에 꼴랑 20만원 넣었다는 형의 말에, 강인석은 하지 말아야 될 소릴 하고 말았다.

“이번 결혼기념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형은 신경 꺼.”

=뭐? 니가 무슨 돈이 있어서?

“내가 왜 돈이 없어? 합의금 곧 받을 건데.”

=합의금?

“허억!”

결국 자신이 지금 입원해 있으며, 합의금으로 2천만 원이나 요구했다는 걸 밝혔다.

그랬더니 강유석이 그랬다.

“야! 요즘 부자들 한데는 2천만 원은 돈도 아냐. 그놈이 부자라며? 그럼 그 돈에 절대 합의하지마. 어디 병원 입원해 있다고?”

“그건 왜?”

“내가 그래도 형인데, 동생이 입원한 곳에 한 번은 가 봐야지.”

그때 강인석은 직감했다.

이 형이 자기 합의금에 관여하려 한다는 걸 말이다.

어릴 때도 이랬다.

강인석의 형인 강유석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 돈 되는 일이 있으면, 꼭 끼어들어서 뭐라도 챙겼다.

그 때문일까? 지금은 어엿한 태천파 중간 보스가 됐건만, 아직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밑에 조폭들에게 그다지 큰 인망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윗사람들에게 아부를 워낙 잘했기에, 태천파에서도 노른자위라는 강남 삼성동 일대에서, 소두목 노릇은 하고 있었다.

어차피 말 하지 않아도 기어코 알아 낼 형인지라, 결국 강인석은 자신이 지금 어디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얘기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다음 날 오후에 형이 찾아왔고, 그때 하필 가해자인 임희철의 누나란 여자가 찾아와 있었다.

그 임희철의 누나는 강인석의 형인 강유석이 떠들어 대는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얘져서 병실을 나가버렸다.

그러고 나서 강유석은 병실에 있던 여자가 가해자의 누나란 말에, 동생인 강인석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보다,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야! 저 그 가해자 녀석 부잣집 아들 맞아?”

“맞다니까. 그때 술집에서 그녀석이 위아래로 알마니 옷을 입고, 신발은 루부땅을 신고 있었다고.”

“가짜 아냐?”

“뭐?”

“야! 좀 전에 그 여자 못 봤어. 순 거지야. 거지.”

“아아!”

가해자가 부잣집 아들이 맞다면, 그 누나 역시 명품으로 도배를 하고 다녀야 정상인데, 형의 말처럼 그 여자는 명품은커녕, 중저가 브랜드 옷이나 액세서리도 찾아 볼 수 없었다.

* * *

임수지는 병실에서 피해자의 형이란 작자가 하는 말을 듣고, 정신적으로 멘붕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병실을 뛰쳐나왔고 병원 건물 아래 작은 공원에서, 겨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미쳤어. 1억이라니....그러고 보니 순 조폭 같았는데....”

임수지는 그래도 사회생활을 했다고, 조폭들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만약 피해자가 조폭들까지 동원한다면, 동생 뿐 아니라 그녀와 그녀 가족들도 위험했다.

“어, 어쩌지?”

임수지가 앞으로 뭘 어째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발을 동동 그릴 때였다.

그때 그녀 가방에서 삐죽 삐져나온 서류봉투.

그 안에는 계약서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바로 JYB엔터의 백준열 대표와 그녀가....

“잠깐....백준열 대표님!”

아까 계약 할 때 백준열 대표가, 그녀에게 그러지 않았던가?

무슨 문제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을 찾으라고 말이다.

“그래. 백준열 대표님이라면 이런 문제는 간단히 해결 해 주실 거야.”

연예계에서 그 악명이 자자한 백준열 대표였다.

하지만 백준열 대표를 대표로 두고 있는, JYB엔터의 연예인들과 직원들에게 그보다 더 든든한 백그라운드도 없다고 했던가?

그녀는 서둘러 자기 지갑 속에 아까 백준열 대표에게서 직접 받은 명함을 꺼냈다.

그리곤 거기 적혀 있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런데 백준열 대표가 아닌 웬 여자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

임수지는 자신의 혹여 전화번호를 잘못 눌렀는지 확인하려 했는데, 그때 그 여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백준열 대표님께서는 지금 중요한 미팅 중이십니다. 저는 그 분 비서고요. 혹시 남기실 말씀 있으시면 저에게 얘기하시면 됩니다.

“아아. 비서셨구나. 저 임수지라고 하는데요.”

=임수지 작가님?

“저 아세요?”

=대표님께서 오늘 전속 계약하신 작가님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요?

“아네. 저....대표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미팅 끝나시는 대로, 저에게 연락 좀 주십사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미팅은 정확히 15분 뒤에 끝나니까, 그때쯤 대표님께서 전화 가능하실 겁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임수지를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럴 게 비서가 미팅 시간까지, 그것도 분 단위로 체크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백준열 대표가 바쁘단 소리였다.

“와아. 대표.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자기 같으면 하루를 분 단위로 나누는 '워커홀릭' CEO의 빽빽한 일정은, 절대 소화해 내지 못했을 거다.

“하아....속 타네.”

임수지는 백준열 대표에게서 전화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병원 건너편에 즐비한 약국들 사이에 유일하게 보이는 커피 전문점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테이크아웃한 임수지는 다시 병원으로 가서 입구 주위 벤치에 막 앉았는데, 그때 백준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표님!”

임수지는 그 전화를 무슨 며칠 연락 끊겼다가 걸려온 애인 전화마냥, 한껏 텐션을 올린 체 받았다.

=네. 임 작가님. 전화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백준열은 차분하게 전화를 받으면서, 그 텐션 업 된 임수지를 진정 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

“대표님. 아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셨잖아요?”

=네.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네. 정말 꼭 필요해요. 실은....

임수지는 작가답게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잘 간추려서 백준열에게 설명했다.

그녀의 얘기를 다 듣고 난 백준열이 말했다.

=지금 제가 그리로 갔으면 좋겠지만,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제 업무가 5시에 끝나니 5시30분까지 그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아니. 그 보다 좀 늦으셔도 돼요.”

=네. 그럼 5시 40분까지 가도록 하죠.

임수지는 백준열이 이렇게 직접 자신의 일에 나서 줄줄 몰랐던 지라, 좀 어리바리하게 굴었다.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그럼 그때 뵐게요.”

그렇게 백준열과 통화를 끝내고 나서, 임수지는 자기가 지금 뭔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아아....”

하지만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간을 확인한 임수지는 백준열이 이 병원에 오려면 아직 한 시간 가까이 남았다는 사실에, 어디서 기다리나 주위를 살폈다. 그때 그녀 눈에 백화점이 보였다.

거기까지 걸어갔다 오기는 좀 멀었고, 또 시간 관계상 빨리 갔다 와야 했기에, 병원 앞에 늘어서 있는 택시 중 하나를 잡아 탄 그녀는, 그길로 백화점 쇼핑에 나섰다.

그녀가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조금이라도 백준열 대표에게 잘 보이기, 아니 예뻐 보이기 위해서였다.

* * *

골프 여신 민혜주.

그녀에게 저번 주말은 악몽과도 같았지만, 또 한 편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은 의미 있는 주말이기도 했다.

악몽은 그녀와 결혼까지 약속한, 그녀의 약혼남이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는 것.

그로인해 그녀의 결혼은 파토가 났고, 더불어 몰아닥칠 후폭풍마저 전적으로 그녀 혼자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기꾼을 알아보고, 또 처리까지 해 준 JYB엔터 백준열 대표와 그녀가 좋은 인연을 맺게 됐다.

연예계 쪽으로 하도 평판이 좋지 않아, 처음에는 그와의 만난 자체도 꺼려졌었다.

하지만 약혼남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그를 만났는데....

소문과 달리 그는 스마트하고, 또 위트 넘치며 무엇보다 잘 생겼다.

거기다가 남자의 상징과도 같은 자지가, 대물을 넘어선 말자지였다.

그런 그에게 완전히 반해 버린 민혜주는, 기꺼이 그의 여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고, 오늘 그의 회사인 JYB엔터의 스포츠 에이전트에 계약을 맺기로 했다.

원래 그는 3시에서 4시 사이 아무 때나 오면 된다고 했는데, 그의 비서가 따로 연락을 취해 와서는 3시 30분까지 와 달라고 했다.

해서 그녀는 그 10분 전인 3시 20분에, 정확히 JYB엔터 사옥의 대표실 옆 접객실에 도착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리고 나서, 그녀에게 전화 했던 그의 비서가 접객실에 있던 그녀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민 프로님. 저희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

그런데 어째 민혜주의 대답이 떨떠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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