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0화 (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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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눈물, 콧물 범벅인 박인호가 주위 시선에 부담스러워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푸아!”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한 번 본 뒤, 그는 그제야 히죽 웃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웃는지 모르겠다.

일 중독자 마냔 매일 일만 했다.

숙소에 가면 술 마시고 잤고. 그게 그의 일상이었다.

거제 시내에 뭐 좀 사러 나가도, 이병훈 대표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감시의 눈은 직장에서도, 그가 뭘 사러 가도 꼭 따라 붙었다.

빠득!

절로 이가 갈렸다.

“이병훈. 이 개새끼!”

아주 대 놓고 욕도 한다. 왜냐하면 그 놈은 진짜 개새끼였으니까.

선배? 후배를 착취해서 자기만 인정받고, 행복하게 사는 놈이 무슨 선배. 딱 개새끼지.

지이이잉!

그때 박인호의 호주머니 속에 핸드폰이 징 하게 울린다.

혹시나 하고 누구 전화인지 확인한 박인호는 모르는 번호라 안 받으려다가, 지역번호가 02인 점을 고려해서 조심스럽게 그 전화를 받았다.

애초 이병훈 새끼가 건, 전화 같았으면 받지도 않았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JYB엔터 백준열 대푭니다.

“네?”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다면 이렇게 말하면 바로 아시겠군요. 당신을 거기서 빼내 준 사람입니다.

“....”

=놀라셨겠지만 똑똑한 분이시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저와 통화가 끝나는 대로 그냥 맨몸으로 거길 나오십시오. 거기 조선소 입구에 가면 택시가 대기 중일 겁니다. 그 택시 타시고, 바로 서울로 상경하시면 됩니다.

박인호는 당최 상대가 무슨 소리 하는 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JYB엔터 백준열 대표란 자의 말에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이병훈 대표. 그리 허술한 사람 아닙니다. 잘 생각하십시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띠띠띠띠띠....

상대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고, 잠시 이어지는 통화 끊김 음을 멍하니 듣고 있던 박인호.

순간 그가 눈을 번뜩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맞아. 이병훈. 그 개새끼가 이걸 알고 가만있을 리 없어.”

박인호는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사무실이 아닌 조선소 바깥 출입문 쪽으로 내달렸다.

이때 대표실에서 개지랄을 떨던 이병훈 대표도, 진정을 하고는 서둘러 경영전략본부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 이병훈 대표가 박인호를 감시하려 심어 놓은 직원에게 다이렉트로.

=네. 대표님.

“거기 박인호 있지?”

=네.

“내가 갈 때까지 박인호 붙잡고 있어.”

=네?

“그 새끼 어디 못 가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있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이병훈 대표. 뭣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그런 그의 반응에 쫀 듯 그 직원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알, 알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이병훈 대표는 박인호를 뺏기지 않기 위해, 좀 전에 격려차 그가 들렀던 경영전략본부 사무실로 황급히 걸어갔다.

처음에는 박인호를 당장 잃는다는 사실에 분노해서 이성을 잃었다.

하지만 화가 가라앉으면서, 생각을 하게 된 이병훈 대표.

백승렬 회장이 직접 내린 인사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못 가겠다는 데 백 회장인들 어쩌겠는가?

끽해야 박인호를 자르겠지.

그럼 자신이 박인호를 계약직으로 고용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박인호는 여기서 반 강제적으로 묶여 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이제부터 완전 강제적으로 묶어 놓고 일 좀 시킨다고 해서 뭐 다를 게 있겠나?

이병훈 대표는 순전히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다. 박인호에 대해서는 1도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박인호를 붙잡는 게 최우선적으로 그가 해야 할 일이었고, 그걸 하기 위해 경영전략본부 사무실로 지금 가고 있는 것이다.

“하아....”

이병훈 대표가 나가고 나자, 쑥대밭이 된 대표실을 보고 여비서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거 다 치우려면 한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 * *

경영전략본부 사무실의 박명수 주임.

그는 지잡대 출신이지만 대기업에 떡하니 취직을 했다.

뭐 남들은 지역인재우선채용 제도 때문에 운 좋게 들어갔다고, 뒷말을 해도 박명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대기업 다닌다는 게 중요한 거지.”

하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처우가 달랐다.

서울에서 내려 온, 소위 말해 성골 직원들과, 지방에서 채용한 직원들 간에는 엄연한 격차가 존재했던 것이다.

2년 쯤 다니니 주임으로 진급은 했지만, 그 이상 올라가려면 서울에서 대학 나온 성골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

당연히 빽도 없는 그가 그들 성골들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표님이 그에게 부탁을 해 온 것이다.

경영전략본부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 자신에게 보고 해 달라고 말이다.

박명수로서는 그 줄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그러겠다고 하자, 삼명조선해양에서 브레인 역할을 맡은 핵심부서 경영전략본부로, 그 다음날 바로 그의 자리가 옮겨졌다.

그 뒤 박명수는 정말 열심히 자신의 상사인 경영전략본부장을 감시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내려진 이병훈 대표의 지시.

“무턱대고 본부장님을 붙잡고 있으라고?”

무슨 소린지 이해는 안 갔지만, 대표가 그러라니 그러려고 본부장을 찾을 때였다.

“화장실 가셨는데.”

“나도 봤어. 화장실 들어가시는 거.”

아무래도 이상해서 박명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화장실 안에 본부장은 없었다.

불길한 느낌에 박명수는 바로 이병훈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야? 지금 거기 가고 있는 데?

“본부장님이 안보입니다.”

=뭐?

“분명 화장실 간다고 가셨는데....”

=야이. 개자식아. 당장 찾아. 박인호 못 찾으면 너도 끝이야.

아무래도 하늘에서 내려 온 동아줄이 끊긴 모양이었다.

그걸 타고 한창 올라가던 중이던 박명수.

그게 끊기면....그는 까마득히 아래도 떨어질 생각에 벌써 눈앞에 깜깜해졌다.

“아, 아냐. 찾으면 돼. 찾자. 찾아.”

그래. 아직 안 끝났다. 두 눈이 시뻘게 진 박명수는, 어딘가에 있을 박인호 본부장을 찾아 이 잡듯이 사무실 안을 뒤졌다.

그때 박인호는 삼명조선해양 출입구 앞에 다다르고 있었다.

“헉헉헉....”

심장이 터질 거 같았지만 그는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뒤로 이병훈 대표가 쫓아온다고 생각하니, 쉴 틈 같은 건 없었다.

그렇게 출입구 앞에 다다랐을 때, JYB엔터 백준열 대표란 자가 말 한 대로, 빈 택시 한 대가 정차 중에 있었다.

“잠깐만....”

박인호는 조선소 입구 경비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

경비원은 박인호를 잘 알았다.

“본부장님이 왜 저러지?”

거기다 아무래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보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더 소홀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경비사무실로 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박인호 본부장이 밖으로 못 나가게 막으라고요?”

대표의 지시에 경비사무실의 경비원이 허겁지겁 출입구로 뛰어갔을 때, 이미 박인호는 대기 중인 택시에 올라타고 있었다.

“헉헉....잡아!....잡으라고!”

그 경비원의 외침에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듯, 박인호를 놓아 준거나 마찬가지인 입구 경비원이 택시 쪽으로 뛰었다.

부우우웅!

하지만 정차 중이었던 택시는 박인호를 태우자마자 냅다 내달렸고, 이내 경비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삐뽀! 삐뽀!

그때 경비 차량과 함께 이병훈 대표를 실은 차가, 한꺼번에 조선소 출입문에 나타났다.

“박인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박인호부터 찾는 이병훈 대표.

이에 먼저 도착해 사태 파악을 한 조선소 경호실장이 대답했다.

“택시 타고 튀었답니다.”

“뭐, 뭐? 으으윽!”

박인호가 튀었다는 경호실장의 대답에, 이병훈 대표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잠시 뒤 119구급차가 오고 이병훈 대표는, 그 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 * *

박인호와 통화를 하고 나서, 다시 시작 된 나의 업무.

연예계 쪽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자잘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 자잘한 일들을 우습게 여겼다가는, 제대로 엿 된다는 거다.

해서 대표는 그런 자잘한 일들까지 이렇게 직접 살펴야 했다.

“그러니까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더 필요하단 거로군?”

“네. 팀 별로 한 명 씩이니까, 총 12명의 보충을 원하고 있습니다.”

“보충 해줘.”

“네. 그럼 촬영부에서 들어 온 카메라 교체 건에 대해....”

“가만 촬영부? 김 비서. 어제 내가 말한 NY프러덕션과, 우리 회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라고 한 거 어떻게 됐어?”

“NY프러덕션의 정영석 촬영감독 일 말이시군요?”

아마 맞을 거다. 하종미가 자기 남편의 이름을 영석이라고 말 한 걸,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어. 맞아.”

“그 일은 서로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요. 저희 쪽 촬영부 부장님께서 그 내막을 전부 파악하시고, 그 담당 직원으로 하여금 정영석 감독과 당장 오해를 풀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오늘 오전에 저 한데 연락 해 주셨어요.”

“그래? 그럼 잘 해결 된 거네?”

“그런 셈이죠. 그래서 카메라 교체 건은 어떡하실 건가요?”

“카메라 한 대 얼마나 한다고 했지?”

“대중적인 건 2천만 원이고, 촬영부에서는 적어도 3천만 원은 돼야 쓸 만하다고 하네요.”

“그럼 3천만 원으로 7대 구입해 줘.”

“하지만 촬영부가 요구한 카메라는 10대인데....”

“양보다 질로 승부하라고 해.”

무슨 조삼모사 같지만, 2천만 원짜리 카메라 10대를 사 주는 대신, 3천만 원짜리 카메라 7대를 사게 했다.

그게 더 시청자들에게 질 좋은 화면을 제공할 테니까.

그리고 카메라가 10대가 있나, 7대가 있나 쓰기 나름이다.

오히려 더 비싸고 좋은 카메라를 현장에 보급하면, 기술자들이 대부분인 촬영부에서도 환영할 거다.

나로서는 천만 원 더 쓰고,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니 가장 현명한 결정이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잘한 일처리들을 김 비서와 같이 빠르게 처리해 나갈 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전번을 확인한 내가 김 비서에게 말했다.

“잠깐. 1분만 통화할게.”

그렇게 나는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아아. 잘하셨습니다. 말 한대로 서울에 도착하시면 100만원 더 드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지금 태우고 있는 그 손님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전화를 바꿔주는 동안, 나는 김 비서에게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였다.

1분만 더 쓰겠단 얘기다.

김 비서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세요?

“축하드립니다. 박인호씨. 드디어 지옥에서 탈출 하셨군요?”

=....

“박인호씨? 괜찮으세요?”

=크흠. 네. 전 괜찮습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 마시고 푹 좀 쉬십시오. 자세한 건 서울 오시면 저와 얘기하며 풀어 가면 될 테니까요.”

=네.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김 비서에게 요구한 추가 1분이 시간이 넘어가지 않게 통화를 끝낸 나는, 마저 하던 일을 이어나갔다.

쌓였던 일들은 빠르게 줄어나갔고, 드디어 오후 3시 30분이 되었다.

* * *

거제시 고현면에 사는 K씨.

그는 거제에서 개인택시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소시민 중 한 명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택시도 찾아가는 서비스 시대라, K씨도 콜택시 등록을 했다.

그런데도 택시 수가 더 늘어선지, 오늘도 벌이가 영 시원찮은 K씨는,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심기일전해서 돈 벌러 차를 몰아 시청 방면으로 갈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울려서 받았더니 다행히 콜이었다.

“네?”

그런데 전화 한 손님이 황당한 소리를 했다.

“잠, 잠깐만요.”

K씨는 안전하게 차를 갓길에 대고, 그 전화를 본격적으로 받았다.

“그러니까 서울까지 손님 한 명을 실어 오란 거네요? 대절비는 100만원이고. 네? 그 손님 데려만 오면 따블....100만원을 더 주시겠다고요?”

하루에 200만원을 벌써 있는 기회다.

안 되겠으면 안 된다고 바로 말하란다.

다른 택시기사 찾아봐야 한다며. 당연히 이런 제안을 거절할 거제 택시 기사는 없을 거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덥석 하겠다고 하자, 그 손님이 K씨 은행 계좌를 불러 달라고 했다.

곧바로 불러 줬더니 단박에 100만원을 꽂아주었다.

돈을 받았으니 이제 그 일에서 발을 뺄 수도 없게 된 K씨.

“그러니까 지금 바로 삼명조선해양 출입구 쪽으로 가란 말씀이시군요? 네. 아아. 그러니까 거기 도착하면 안에서 손님이 나와서 차에 탈거다? 네. 저는 조선소에 도착해서도 차에 시동을 걸어두고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는 거네요. 네. 네. 알겠습니다.”

매일 아침 조선소에 출근하는 손님들 실어 나르는 K씨에게, 삼명조선해양 출입구로 가는 길은 눈감고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조선소 앞에 도착하고 나서, 곧 나올 거라는 손님을 기다리며 K씨는 아까 전화로 전해 들었던, 자신이 태우게 될 손님을 데려 가야 할 서울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저 사람인가?”

조선소 안에서 헐레벌떡 뛰어 나온 남자 한 명이 택시 쪽으로 뛰어왔다.

K씨는 그 손님이 타자 바로 차를 출발 시켰다. 그리고 거제시를 벗어나자, 근처 휴게소로 들어간 K씨는 약속 했던 대로, 그에게 100만원을 지급한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그 손님이 잘했다며, 서울로 지금 태운 손님을 잘 데려 오라고 했다.

그럼 서울에서 100만원을 더 주겠다고.

그 뒤 그분이 K씨 택시의 손님과 통화하길 원해서 전화를 바꿔 주었는데, 전화를 받고 난 조선소에서 나온 손님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잠이 들었고, K씨는 안전하게 그 손님을 태우고 서울로 향해 질주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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