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9화 (59/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국수 한 그릇에 무슨 5만원이나 하냐?

물론 재료들은 확실히 좋아 보였다. 면발도 직접 뽑은 거 같고. 양도 남자 손님임을 감안해서 꽤 많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한 끼 급하게 해결하긴 좋았다.

뭐 이러니 백준열도 여기 단골이 된 거겠지만.

하지만 나 빼고 수행비서 황치국와 운전기사 양태석은, 먹을 때는 잘 쳐드셔놓고 떨떠름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둘 다 나이와 덩치로 봐서, 국수 한 그릇으로는 배 채우는 건 어림도 없겠지.

내가 볼 때 둘 다 그들이 좀 전 먹은 국수를, 애피타이저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본 요리를 시켜 주겠지 하고 둘 다 날 쳐다본다. 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외면했다.

“잘 먹었다. 후식으로 메밀 차 한 잔 줘요.”

내가 후식을 시켜 버리자, 둘의 눈이 거의 동시에 번뜩거린다.

뭐 니들이 그런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 줄 알고?

똑! 똑! 똑!

그때 우리가 들어와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의 VIP실문을 누가 두드렸다.

직원이라면 이미 안에 들어와 있는데. 누구지?

내가 궁금해 할 때 VIP실 안으로 정장 차림에 잘 정돈 된 스마트한 머리, 탄탄한 몸매가 딱 봐도 운동 꽤나 한 티가 풀풀 나는, 각진 얼굴에 눈빛이 야성적인 터프가이 한명이 들어왔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그가 누군지 바로 기억났다.

‘백준열의 진짜 경호원. 문대식!’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문대식은, 백준열이 미국 유학 시절부터 그의 경호원으로 있었으며, 한국에 와서는 아예 삼명그룹 경호팀에서 나와서, 따로 경호팀을 만들어서 백준열을 전담 경호하고 있었다.

그런 그와 그의 경호팀이 요 며칠 보이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니라 문대식이 모친상을 당했기 때문에.

천하의 개새끼 백준열도 문대식의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는, 직접 조문가고 상을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넉넉히 열흘간 휴가를 주었다.

근데 그 휴가를 문대식은 물론 그 팀원들에게까지 다 줬다.

문대식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백준열이 한 고집하니, 어쩔 수 없이 경호팀이 전부 문대식의 장례를 돕는 데 힘을 보탰다.

‘어라? 백준열이 이런 면이....’

백준열이 문대식의 경호팀을 다 쉬게 한 것은 순전히 문대식 때문이었다.

문대식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친척이 한 명도 없었다.

때문에 그의 모친 장례가 초라할까봐, 일부러 장례식장과 운구, 매장 시 경호팀원들이 문대식의 친척 노릇을 대신하게 해준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대표님.”

문대식이 꾸벅 내게 인사를 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하러 벌써 와? 그냥 내일 출근하지.”

“오늘이 딱 열흘쨉니다. 지금부터 모시겠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문대식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황치국와 양태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황치국과 양태석 모두 껄끄러워 하며, 문대식과 눈빛을 마주치는 걸 회피했다.

‘그래. 이거지.’

개새끼라 불리는 백준열의 악명 치고, 경호가 너무 소홀하다 싶었다.

한데 문대식과 그 경호팀이, 앞으로 나를 24시간 경호 한다니 많이 안심 되는 게 사실이다.

사실 별장에서 납치범들과 조폭들이 싸우고 할 때는, 걱정이 많이 됐었다.

내 몸에 대한 직접적인 경호가, 너무 부실한 거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백준열의 몸과 머리는 그 점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했는데, 다 문대식과 그 경호팀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여유가 넘쳤던 것이다.

메밀차로 개운하게 입가심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자 문대식이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움직이며 말했다.

“황치국이. 똑바로 해라.”

“이씨....”

그 말에 황치국이 욱해서 문대식을 노려봤지만, 끄덕도 하지 않고 오히려 피식 황치국을 비웃는 문대식.

그 둘이 당장이라도 한 판 뜰 기세 속에, 양태석이 먼저 VIP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 * *

황치국은 문대식에 게임도 안 됐다.

여기서 게임은 백준열과의 친밀도를 말한다고 보면 되겠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해서 지금까지, 문대식은 백준열에게 몸으로 부딪치고 노는 친구 역할을 해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공부를 하러 간만큼 하루 12시간 이상을 공부에 매진했던 백준열은, 시간 날 때마다 문대식과 농구, 야구, 축구에 테니스까지. 각종 스포츠로 스트레스도 풀고 체력 관리를 했었다.

물론 그 사이사이 성적 욕구는 문대식 말고 그쪽으로 잘 노는 녀석들과 즐기고 풀었지만.

뭐 급하면 김 비서를 사용하고.

‘그렇게 말하니 김 비서가 무슨 성적 노예나 육변기 같네.’

근데 백준열의 기억에는, 실제로 그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누가 개새끼 아니랄까 봐 말이다.

황치국이 열어 주던 차문은 문대식이 열었다.

그걸 삐뚜름하니 지켜보다, 대 놓고 눈살을 찌푸리는 황치국.

언제 나타났는지 경호 차 두 대가, 내 차를 따라 붙으며 경호에 나섰다.

그걸 보고 나니 이제야 내가 재벌 3세, JYB엔터 대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불편한 점이라면, 문대식이 내 옆에 같이 탑승한다는 점이었다.

뭐 그렇다고 내 앉을 자리가 좁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있었다.

무슨 관종도 아니고, 틈만 나면 날 뒤돌아보며 애완견처럼 칭찬해달라고, 징징거리던 황치국이 문대식 덕분에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던 것.

문대식은 내가 뭘 묻기 전에는 마네킹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기 때문에, 그를 그냥 경호 인형이라고 생각하니 불편한 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든든하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한마디로 문대식은 경호의 기본을 아는 녀석이었다.

아니지. 그는 원래부터 경호원이었다.

백준열에게 올 때부터 뼈 속 깊숙이, 프로페셔널한 경호원 말이다.

여기서 내가 경호원을 강조한 것은, 문대식이 백준열을 경호하는 것 말고는, 그의 더러운 짓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를 하지 않았단 거다.

대신 그쪽 일은 운전석의 조폭 두목 양태석이 도맡았다.

그러니까 그 동안 백준열의 낮은 문대식이, 밤은 양태석이 양분해서 그를 지키고 도와왔다고 보면 됐다.

문대식에 대한 기억에다가, 그 동안 내가 양태석에게 시켰던 씻을 수 없는 각가지 범죄 행각들을 엄중하게, 머릿속으로 받아드리는 사이, 차가 JYB엔터테이먼트 사옥 정문에 도착했다.

그러자 앞쪽 조수석의 황치국이 냅다 차에서 내려서는, 문대식 보다 먼저 차문을 열었다.

나야 누가 차문을 열던 상관없었던 터라, 차에서 내려서 곧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문대식이 뒤에서 황치국에게 하는 말이 내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물론 그 소리는 원래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들리지 않아야 맞을, 문대식이 속삭이듯 황치국에게 한 말이었다.

“며칠 안 본 사이 간이 많이 커졌다. 황치국이?”

“이제 차문 정도는 내가 열게 해주지?”

“널 뭘 믿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는 안 돼. 이 사이코패스 새끼야.”

놀랍게도 문대식은 황치국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또 사람 모략한다. 내가 어디 봐서 사이코패스야? 이 뇌까지 근육인 새꺄!”

황치국의 목소리 톤이 살짝 높아지자, 문대식은 그를 무시하고 곧장 내게로 뛰어왔다.

그리곤 나를 앞질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서 먼저 버튼을 눌렀다.

원래 회사 안에서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거나 문 여는 건 수행비서인 황치국의 몫이었다.

한데 문대식이 그걸 뺏어버린 거다.

보아하니 좀 전 차문을 황치국이 연 것에 대한 보복인 듯 했다.

황치국은 그 때문에 씩씩 거렸는데, 그래도 본색은 드러내지 않았다.

황치국도 운동 꽤나 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격투기 쪽 만 12단인 문대식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 주름 잡는 격이라 감히 덤비지 못했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황치국이 처음 백준열의 수행비서가 되고, 그 다음날부터 내리 사흘을 출근하지 않았다.

주말까지 합치면 닷새 동안 백준열은 황치국을 보지 못한 거다.

그렇게 다음 주 월요일에 태연히 출근한 황치국은, 티 나지 않게 화장까지 했지만 멍자국을 다 숨기진 못했다.

아마 그때 황치국과 문대식 사이에 뭔 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게 백준열의 합리적 의심이었다.

퍽!

“아악!”

나와 경호팀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막 황치국이 엘리베이터에 들어오다가, 문대식에 조인트를 까이고 물러나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 버렸다.

황당한 얼굴의 황치국이 보였지만, 누구도 열림 버튼을 누르진 않았다.

그렇게 나와 경호팀만이 JYP엔터 대표실이 있는 8층으로 올라갔다.

* * *

대표실에 들어가기 전 김 비서가 내게 인사를 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점심 맛있게 먹었어?”

“네? 아네.”

“뭐 먹었는데?”

“그, 그건....크림 파스타 먹었습니다.”

“나도 면 먹었는데. 오래 살려고 국수.”

“....”

평소 안 하던 투머치토크까지 선보이는 나를, 김 비서뿐 아니라 문대식도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근데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괜히 아는 척 하며 대표실 앞에서 쓸데없는 소릴 늘어놓은 거다.

“다들 국수를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국수 가락처럼 길고 오래 살라는 뜻에서 생긴 상징이고, 미신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수 면발이 길기 때문에 오래 살게 해달라는 미신적 소망이 아니라, 면발이 길어지게 된 과학적 이유 때문이거든. 동양에서 밀가루 음식이 발달한 것은 한나라 때지만, 국수 면발이 길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당나라 때야. 이 무렵, 제분기술이 발달하면서 밀을 곱게 빻을 수 있게 됐고, 밀가루 반죽이 고와지며 국수를 길게 뽑을 수 있게 됐거든. 이렇게 만든 국수는 아무나 먹는 것이 아니라, 귀족과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최고급 음식이었단 말이지. 그러니 지금과 달리 평소에 수수나 기장처럼 거친 음식을, 주식으로 먹고 살았던, 평민들의 눈에는 밀가루를 곱게 갈아서 면발을 길게 뽑은 국수는, 먹기만 해도 오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야. 영양과잉 시대인 지금과 달리 옛날에는 국수를 먹으면 오래 살 것이라고 믿었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거지.”

“....”

어째 반응이 썰렁한 걸 뒤늦게 깨달은 나는, 무안해 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냥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아....거기서 왜 국수 타령을....그냥 김 비서가 식사 맛있게 했는지 만 묻고, 바로 들어왔었어야지.”

나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나불거린 내 입을 손으로 때찌 해주고, 대표실 내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막 내 책상의자에 앉자마자, 인터폰이 울리며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익!

=대표님. 이번 주, 주간 스케줄이랑 오늘 스케줄 표 가지고 들어갈까요?

“아, 아니. 아직 업무 시간 아니잖아. 1시 되면 그때 가지고 들어와.”

지금 시각 12시 52분. 아직 나에게는 8분의 시간이 남아있다.

짧지만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대고 잠깐 눈을 감은 채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한결 개운 해진다.

똑! 똑!

달칵!

정각 한 시가 되자, 김 비서가 알아서 문 열고 대표실로 들어왔다.

‘와아....’

맨날 보는 김 비서지만 진짜 외모하나는 퍼펙트 하다.

그런 내 눈길을 느낀 걸까? 내 책상에 결재판을 올리며 김 비서가 말했다.

“지금 하시려고요?”

“뭐?”

“스케줄 표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럴 시간 없습니다만.”

그녀 말에 결재판을 열고 안에 오늘 스케줄 표를 본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무슨 스케줄이 분 단위로 조정 되어 있었던 것.

“허어. 이대로라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겠는데?”

내 그 말에 김 비서가 대꾸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도 일을 하실 수 있게 꾸며 놓으셨잖습니까?”

“아아. 그, 그랬지 참.”

6개월 전인가? 백준열이 개지랄을 떠는 바람에, 대표실 안에 화장실 개보수 공사가 밤새 진행됐었다.

그때 아마 김 비서는 그 공사를 관리감독 하느라 퇴근도 못하고, 밤새 대표실을 지킨 것으로 기억한다.

스케줄 표를 쭉 살피니 JYB엔터 업무 관련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80%고, 대표로써 꼭 해야 할 일로 인한 미팅과 통화가 15%, 그리고 나머지 5%가 내 개인적인 영입, 즉 오늘 나와 계약하기로 한 세 명의 배우, 김명석, 최수현, 하종미와 스포츠 에이전시로 계약을 맺을 계획인 골프 여제, 민혜주와의 미팅과 실시간 계약체결 건이었다.

“이야. 그래도 네 사람과 만나는 데, 달랑 30분은 좀 심한 거 아냐?”

“그러니까요. 왜 그들을 굳이 월요일에 만나 계약하시겠다고, 이렇게 무리한 스케줄을 잡으신 걸까요. 대표님?”

“그거야 누가 채가기 전에, 그들을 영입해야 하니까.”

“무슨 근거에서요?”

“뭐?”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셨을까요? 엔터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시는 분이신데.”

살짝 비꼬는 투의 김 비서의 말에도, 이상하게 나는 그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마도 평소에도 김 비서가 백준열에게, 이런 식의 팩폭을 자주 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저랑 한가하게, 저랑 얘기하고 있을 시간이 없으실 텐데요?”

“으아아아!”

스케줄 시간표에 지정 된 시간에서 벌써 2분이 지났다.

“빨, 빨리 결재 서류부터 가져 와.”

나는 급하게 외쳤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자, 일 때문에 시간에 몰릴 거란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비껴갔다.

왜냐하면 빅준열. 이 새끼 이거 일하는 거 하나는 타고 났다고 해야 할까?

괜히 자기를 천재라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니었다.

뭐 녀석이 머리 좋은 건 며칠 살아본, 나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좀 늦게 시작한 결재 서류들 처리를, 나는 5분 빨리 끝내 버렸다.

그 말은 내게 5분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는 얘기고, 난 이때 꼭 통화를 해야 할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