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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8화 (5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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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점심으로 나의 선택은 국수.

다행스럽게도 백준열도 국수는 좋아했다.

국수는 대한민국에서 라면 만큼이나 서민적인 음식이다. 분식점 단골 메뉴이기도 하고.

하지만 백준열이 어디 분식점에서 국수 먹을 인간이던가?

맞다. 서울 미슐랭 레스토랑에 녀석이 생각 날 때마나 한 번씩 먹곤 했던 국수가 있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미슐랭 레스토랑은 예약도 어렵고, 원하는 창가 자리를 구하긴 더 어렵다.

하지만 거기 VVIP고객인 나는 당연히 지금 예약해도 예약이 된다.

“준비 됐습니다. 대표님.”

마치 그게 자신의 공이냔 희희낙락거리는 황치국.

녀석이 한 건 그냥 전화해서 주둥이 좀 놀린 거뿐이다.

본질적인 건 다 내 후광이 해결 해 줬다는 거다. 녀석은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하긴 금수저 물고 태어난 저 놈이 그런 걸 벌써 알 리 없지. 언제 철이 들지는 저놈 만 알겠지만.

“어어. 그래. 수고했어.”

칭찬 안 해 주면 계속 뒤돌아 날 쳐다보고 있을 거 같아서, 대충 몇 마디 형식적인 칭찬 말을 던져 줬다.

그랬더니 좋다고 웃으며 몸을 돌리는 녀석.

한데 자동차 전면 유리에 그늘이 지며, 살짝 녀석의 얼굴이 반사 되어 내게 보였다.

그때 녀석의 싸늘한 얼굴.

‘어린 노무 새끼가 벌써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네.’

그 가면 쓴 얼굴로 녀석이 어떤 놈인지는 더 안 봐도 알 거 같았다.

‘위선이 아주 몸에 습관처럼 밴 녀석이로군.’

나 같이 되는 게 꿈이라며 내게 접근해 온 녀석이다.

그건 어지간한 야심 없이 불가능한 일.

‘자아. 이제 진짜 네 놈의 냄새를 맡아 보자고.’

녀석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 나는 「개코」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러자 녀석에게서 좀 전 내가 맡았던 냄새보다, 더 다양하고 풍성한 냄새들이 복합적으로 나기 시작했다.

‘이거 분석 결과가 기대 되는 걸.’

여태 맡아 본 그 어떤 사람의 냄새보다, 복합적이면서 또 특이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특이한 냄새가 내 신경을 제일 자극했는데....

‘우씨. 그 냄새가 그럼....사이코패스 냄새였어?’

황치국에게서 아주 위험천만 냄새가 나고 있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우리는 사이코패스라 부른다.

‘평소에는 정신병질이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범행을 통하여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아마도 그 특징이라지?’

우린 사이코패스를 흔히 미친놈이라고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겠나? 진짜 미친놈이니까.

‘어째 느낌이 쎄하더라니. 귀찮게 생겼군.’

대한민국 CEO들에게 물어 봐라.

자신의 수행비서가 사이코패스라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때 간밤에 녀석에게 버림받고 울며 분해하던, 그 여공시생 이지숙이 문득 생각났다. 근데 그녀가 진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왜냐하면....

‘이 냄새는....’

그리고 녀석에게 뒤끝이 묵직한 냄새가 배어나왔다. 그 냄새는 나도 이미 맡아 본, 바로 죽음의 냄새였다.

그렇다는 건....

‘이 새끼 사람 하나 둘 죽인 게 아닌데?’

녀석의 의중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런 놈이 연예계에, 그것도 나처럼 영향력이 엄청난 CEO가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무래도 이 새끼 한 달 뒤, 그냥 내보내진 못하겠다.

그 전에 무슨 조치를 취해야지. 하지만 그 애비가 5선 국회의원에 법사위원장이다.

황치국 의원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이놈을 못 건드린다.

그 말은 내가 이놈을 한 달 더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고.

그 동안 불편한 동거가 계속 되어야 하는 데, 나로서는 여간 곤욕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쩌겠나?

‘이거 잘하면 대표가 수행비서 비위 맞춰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그때 황치국이 또 내게로 몸을 돌려 예의 그 최대한 착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대표님. 다 왔습니다. 먼저 내리실 거죠?”

“어? 어어. 그래.”

잠시 뒤 차가 미슐랭 레스토랑 입구 앞에 멈춰 섰고, 먼저 내린 황치국이 차 뒷문을 열었다.

나는 차에서 내리며 황치국 말고, 양태석이 듣게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국수 세 그릇 시켜 놓을 테니, 두 사람 다 들어 와요.”

자기 말고 양태석까지 끼워서 그런지, 순간 황치국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모른 척 했다.

두 달 뒤 녀석을 제거해야 하는 데, 그 사이 녀석이 조금이라도 그럴 낌새라도 챈다면 곤란할 테니 말이다.

* * *

삼명조선해양은 경남 거제군 장승포읍 아주리 일대에 위치해 있다.

거제도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라지만, 촌구석이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일.

“하아....”

오늘도 일에 치여 밤 10시를 넘겨 퇴근 중인 박인호 본부장.

그의 직함은 으리으리, 근사했다.

바로 경영전략본부장!

거기에 속아서 이곳에 좌천 아닌 좌천 되어, 여기 온지도 횟수로 어언 4년이 다 되어갔다.

“개새끼!”

자기만 믿으라면서 온갖 달콤한 말들을 다 해놓고, 막상 거제도로 내려오자 얼굴을 싹 바꾸는, 극과 극의 포스를 선보이는 현 삼명조선해양의 CEO 이병훈.

대 놓고 그의 이름까지 거론하고 욕은 못하지만, 매일 개새끼를 입에 달고 사는 박인호였다.

이병훈이 그를 거제도까지 데려 온 목적은 딱 하나였다.

그를 노예처럼 부려 먹기 위해서.

대표가 해야 할 온갖 일들이, 그가 신설한 경영전략본부로 이첩 되어 올 때부터, 어째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대학 선배로 본사에서 그를 끔찍이 아껴줬던 이병훈이, 설마 그에게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일은 그에게 다 시켜 놓고, 매일 골프와 술 접대 받으러 다니기 바쁘신 이병훈 대표님.

“내가 미쳤지.”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병훈에게 사정도 해봤다.

그랬더니 이병훈 개새끼 왈.

“그럼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들은 누가 해?”

그거야 대표인 네가 해야지.

그 말이 목을 넘어 막 입 밖으로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아 낸 박인호.

그 만큼 박인호는 절실 했는데, 이병훈은 간단히 그의 의사를 묵살해 버렸다.

“이번 드윈드사 인수건만 해결하고 나면 그때 생각해 볼게.”

벌써 그런 소리 한 게 100번은 넘었다. 그냥 못 보내 주겠단 거다.

“아아....”

절망한 박인호가 축 어깨를 늘어트리자, 이병훈의 말이 더 가관이다.

“정 힘들면 서울에서 너 대체 할 만 한 녀석으로 몇 놈 불러내려.”

그때 박인호는 생각 같아서 이병훈 짓패고 싶었다.

대기업, 그것도 대한민국 일류기업이라는 삼명그룹에 다니는 녀석 중, 누가 이런 섬에 들어오겠나?

제가 제 발등 찍은 격이니 누구를 탓하려 만, 이곳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박인호는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만약 지금 날 여기서 꺼내 주는 본사 임원이 있다면....내 그분을 부회장까지 올려 준다.”

물론 어떤 미친 본사 임원이, 그 같은 섬에 좌천당한 거나 마찬가지인 녀석을 서울로 불러올리겠나?

“한 병 불고 빨리 자자.”

요즘 숙소에 가면 소주 한 병 원 샷 때리고 자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박인호였다.

그래서 그나마 잠을 잘 수 있었으니까.

아니면 온갖 잡념 때문에 박인호는, 하루 한 시간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 잡념의 100%는 이병훈에 대한 원망과, 이런 미친 선택을 한 아둔한 자신을 탓하는 거였다.

벌컥! 벌컥! 벌컥!

“크으으으....쓰다.”

달게 술을 마신게 언젠지 모르겠다.

그렇게 소주 한 병을 다 들이 붓고 나니 알딸딸한 것이 몸에 힘이 쭈욱 빠지는 박인호.

그는 어떻게 걸어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무튼 침대로 가서 그대로 뻗어 잤다.

“으으으으....물....물....”

깨어보니 늘 그렇듯 그의 숙소 침대.

매일 술 마시고 자다보니, 깨면 물을 찾게 된 박인호는 아예 침대 밑에 500ml 생수를 박스 채 놔뒀다.

그 생수 하나를 까서 한 통 다 비우고 나서, 겨우 정신을 차린 박인호는 씻고 평소처럼 출근을 준비했다.

* * *

삼명조선해양은 풍력사업 진출을 위해서, 미국 풍력발전업체 드윈드사 인수를 계획 중이었다.

당연히 그 일은 전적으로 박인호의 몫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의 CTC사의 자회사인 드윈드사의 지분 100%를 다 인수하려는 박인호.

하지만 역시 인수 대금이 문제였다.

그쪽은 최소 6천만 달러를 요구 중인데, 이쪽은 최대 5천만 달러 밖에 줄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박인호가 누구던가?

얼마든지 잔머리를 굴려서 5천만 달러 [email protected]를 제시해서, CTC사가 만족하게끔 만들 자신이 있었다.

삼명조선해양이 드윈드사를 인수하려는 이유는, 바로 풍력발전기 때문이었다.

실제 드윈드사는 캐나다 최고의 풍력 연구 기관인 웨이컨(WEICAN)사로부터 D9.2 모델 풍력발전기 5기를 수주 받기로 되어 있었고, 또 텍사스주 프리스코 풍력단지에 10기, 오클라호마주 노부스 풍력단지에 40기 등, 총 50기의 풍력발전기를 공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인수하면 바로 돈이 되는 기업이란 소리다.

그걸 알아 낸 이병훈 대표가 일을 벌인 것이고 말이다.

물론 그 달콤한 성과는, 이병훈 대표 혼자 다 쳐드시겠지만.

오늘 드디어 드윈드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날이었다.

이미 그 실무진은 미국에 가 있는 상황.

한데 그 일을 전부 맡아 추진해 온 박인호는, 왜 여기 있는 걸까?

당연히 그가 가서 계약을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병훈 대표가 절대 박인호를 거제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그랬다가 박인호를 딴 삼명그룹의 임원이나, 계열사 대표가 채 가면 안 되니 말이다.

그 정도로 이병훈 대표는 철저하게 박인호를 감시하며 그를 지키려 혈안이었다.

그만큼 박인호의 경영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한 것이었으니까.

그런 귀한 인재는 절대 밖으로 내돌려서는 안 된다는 걸, 이병훈 대표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최대한 박인호를 이용해서 충분히 성공한 뒤에, 후배에 대한 미안함을 충분히 보상해 줄 생각이었다.

“대표님. 미국에서 온 연락인데 무사히 계약 성사 됐답니다.”

“오케이. 잘 됐다. 잘 됐어. 하하하하. 그 동안 수고들 많았어.”

이병훈 대표는 늘 그렇듯 사람 좋은 얼굴로, 이번 일에 수고를 많이 한 직원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한 사람, 경영전략본부장 박인호는 슬그머니 건너뛰었다.

왜냐하면 그도 사람인데, 자신 때문에 늘 희생하는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야 왜 없겠나?

‘그래. 내가 잘 되는 게 먼저야. 그 다음 반드시 너 챙겨 준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괴변을 늘어놓고, 그걸 또 스스로 믿게 만든 이병훈 대표는, 이따 점심 먹고 누구랑 골프 치러 가기로 했는지, 그쪽으로 생각을 옮겨갔다.

박인호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이병훈 대표의 머릿속에 더 이상 그라는 존재는 없었다.

그렇게 그가 막 대표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사장님. 서울 본사에서 긴급 인사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뭐? 인사명령?”

인사명령은 최고 경영자가 조직 내 보직과 임명, 승진, 휴가, 파견, 후송, 휴직 등의 인사 변동이 발생 할 때, 이를 공적으로 전파하고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 발령하는 것으로, 이를 거부하면 파면이 가능한 강력한 조치였다.

“가져 와봐.”

이병훈 대표는 불길한 느낌에, 직접 비서로부터 서울에서 내려 온 인사공문을 살폈다.

“어억!”

그때 이병훈 대표의 눈이 화등잔 만해졌다.

그럴 것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지금 그 앞에 일어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돼! 절대 안 돼! 이건 절대로 받아드릴 수 없어.”

자기 입으로 절대란 말을 두 번이나 내 뱉은 이병훈 대표.

그는 즉시 본사에 연락을 취해서, 이런 인사명령을 내린 게 누군지 알아봤다.

“비서실장 오규동?”

이병훈 대표는 즉시 오규동에게 연락을 취했다.

비서실장의 직급은 삼명그룹에서 사장 급이었다. 때문에 이병훈도 오규동에게 함부로 대하진 못했다.

“실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하지만 기분이 상한 만큼 말투가 곱진 않았다.

=뭐가 말입니까?“인사명령 말입니다. 실장님 지시라면서요? 현장 일을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장 회장님께 보고 드려서....”

회장님께 직보 하겠다며 오규동을 압박하려던 이병훈 대표.

하지만 그가 그 말을 꺼내자 오규동이 단박에 그의 말을 잘랐다.

=보고해요.

“뭐요?”

=보고하라고. 참고로 그거 내가 내린 인사명령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내리신 인사명령입니다.

“....”

그 말에 이병훈 대표는 더 할 말을 잃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신 거 같은데. 제가 좀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오규동은 그 말 후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잠시 전화기를 잡고 어버버 거리던 이병훈 대표.

“하아....”

긴 한숨과 함께 전화수화기를 내려놓으며, 갑자기 그의 대표실이 떠나가라 소릴 질렀다.

“으아아악!”

와장창창!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집어던졌다. 그 소리에 놀라 비서가 대표실에 들어와 보고 기겁을 했다.

한 마리 미친개가 대표실 안에서, 아주 개지랄 염병을 떨고 있었으니까.

* * *

입맛은 없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회사 구내식당에 가서 겨우 한 술 뜨고, 테이크아웃한 커피 한 잔을 들고서, 정처 없이 바다를 보고 있던 박인호.

“이런....”

점심시간이 채 5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후다닥 뛰어서 사무실로 들어간 박인호.

“어?”

그런 그의 눈에 게시판에 붙어 있는 인사명령 공문이 보였다.

거기에는 딱 한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중요한 건 그 이름이 바로 자신이란 거다.

성명: 박인호.

[현] 삼명조선해양(주) 경영전략본부장 ---> [변] JYB엔터테이먼트 전무

귀하는 이 공문을 보는 즉시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JYB엔터테이먼트 본사로 이동하기 바람.

자세한 것은 JYB엔터테이먼트 본사로 가서....

그 뒤 공문의 글은 더 이상 박인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붉어진 그의 눈시울에서, 결국 눈물 폭탄이 터져 버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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