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3화 (5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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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때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차를 몰아가면서 여전히 길바닥에 헐벗은 채 주저앉아 씩씩거리고 있는, 이지숙을 잠깐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결국 그 입이 화를 부른 것 같았다.

그 말버릇을 고치지 않는 한, 저 여자는 지금보다 더 큰 횡액을 겪게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조심하라고 말해 주고 싶기는 한 데, 저년과 나사이가 유턴 까지 해서 굳이 일부러 찾아가 얘기 해 줄 정도까지는 아니지.

“원래 인생은 각자도생이거든.”

이때도 마찬가지다. 슬프게도 각자가 도움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위하는 세상이 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디링! 견신이 공감합니다. 다소 매정해 보이지만, 지금은 각자도생이 필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견신이 개지수 10포인트를 지급합니다.

개에 관한 속담 말고 자신과 내가 공감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렇게 고맙게 개지수를 지급해 주시다니. 역시 훌륭하고 거룩하신 신이십니다.

-디링! 견신이 앞으로 잘하랍니다. 추가로 개지수 10포인트 지급합니다.

너무 과분한 견신의 사랑 앞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때 라디오에서 요즘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슈퍼보이즈의 ‘꺼져!’가 흘러나왔다. 나는 바로 라디오를 꺼버렸다.

“노래 참 거지같네.”

참고로 슈퍼보이즈의 소속사가 바로 JYB엔터테이먼트다.

그때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울려왔다.

-레벨 업 됩니다.

오오! 견신의 은혜로움으로 인해 개지수 20포인트를 득템 한 결과, 레벨3에서 레벨4로 벌써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게 됐구나.

그때였다. 견신 시스템이 무슨 말을 더 했다.

-레벨4가 되면서 「개눈깔」아이템의 ‘귀신 보는 눈’이 드디어 개안을 합니다. 당신은 앞으로 귀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말 후 견신 시스템은 더 자세한 설명을 내 머릿속에 데이터로 주입시켜 주었다. 내 머리에 새로운 정보가 다 들어오고 나자, 견신 시스템이 내 눈앞에 상태창을 띄워 주었다.

[이름: 백준열(Lv4)]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1Up), 「개좆」(Up)], 「개목걸이」(Up), 「개코」(Up)

[보유 스킬: 「말하는 개」(일,Up), 「충견」(일,Up), 「개 끗발」(역,Up), 「개호구」(역,Up)

[특성: 개(1차Up->2차UP진행중)]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개지수: 0]

레벨이 4가 됐고, 보유 아이템 항목에서 「개눈깔」아이템을 보면 1Up이라고 되어 있는데, 견신 시스템의 정보에 따르면, 아이템 능력이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그 수치가 올라간다고 한다.

‘그나저나 귀신을 볼 수 있다고?’

앞서 「개눈깔」아이템을 득템 했을 때, 견신 시스템이 그랬다.

내가 ‘귀신 보는 눈’과 ‘색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감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고 말이다.

그 뒤 「개코」아이템은 많이 사용했지만 「개눈깔」아이템은 처음부터 귀신 운운해선지 선뜻 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 딱히 쓸 일도 없었고.

한데 견신 시스템의 정보에 따르면 어차피 쓸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귀신 보는 눈은 레벨4에서 개안을 해야 쓸 수 있고, 색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은 레벨5가 돼야 쓸 수 있었으니까.

“개안이라....”

그러고 보니 좀 전 지나쳐온 이지숙이란 여자 말이다.

왠지 큰 횡액을 겪게 될 거란 느낌이 든 것도, 내가 개안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뭐 더 자세한 건 내가 겪어 보고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견신 시스템이 알려주는 정보는 많기는 하지만,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결국 내가 부딪쳐 보고 깨달아 나가는 과정에서, 그 정보의 내용도 하나둘씩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 * *

드디어 호텔이다.

자정도 훌쩍 넘은 시간이라, 발렛 파킹 해주는 호텔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하도 많이 와서인지 이곳 지리는 다 알 거 같았다.

그래서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차를 파킹하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 곧장 스위트룸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디리릭! 철컥!

내가 쓸 스위트룸은 스위트룸 중에서도 특별한 로열 스위트룸이다.

그래서 문도 지문 인식으로 열렸다.

이때로 봐서 가히 최첨단 장치라 할 수 있었다.

오직 로열 스위트룸만의 차별화 된 서비스랄까?

실제 여기 호텔 측에서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안은 모든 게 최고급이었다.

넓고 쾌적한 것은 기본이고, 럭셔리하고 우아함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특히 프라이빗 풀과 스파는 백준열이 여기서 제일 좋아하는 시설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피곤하고 빨리 자야 한다.

벌써 12시 30분이다.

신림 원룸 건물의 내 집에서 씻고 온 터라, 바로 침실로 향하던 나는 징 하게 울리는 핸드폰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봤다.

모르는 번호인데 왠지 받아야 할 거 같아 그냥 받았다.

“여보세요?”

=준열. 나야. 지금 어디야?

나라고 하면 네가 누군지 어떻게 아냐?

얘야, 말하는 것 자체로 에이미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모처에 좀 와 있어.”

나와 에이미는 떡 치는 사이일 뿐,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일체 공유할 이유가 없다.

내가 어디 있고 뭘 하는지 그녀가 알 필요가 없단 소리다.

=그래? 그럼 나도 가야겠다.

“너무 늦었어. 그냥 거기서 자고 내일 나가.”

=그래도 돼?

“뭐 어때.”

“그럼 나 여기서 그냥 자고 간다?”

“어.”

“야아! 신난다.”

뭐 신날 거까지야.

“참. 에이미. 너 성은 어떻게 돼?”

“나? 페렛. 에이미 페렛이야.”

지금까지 내가 본 에이미는 참 밝다.

그런 애가 어쩌다가 연예계 발을 들이게 된 건지 정확한 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밤에 내가 없앤 그 두 강간 마들에게 당했을 거란 추측은 가능했다.

아마 그 충격이 상상이상으로 컸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 일은 결국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째든 에이미가 그런 끔찍한 일을 겪지 않게 됐다는 사실에 흡족해 하며, 나는 그녀와 통화를 끝냈다.

내가 에이미에게 그녀의 성을 물은 건,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호주의 그녀의 뒤를 캐보기 위함이었다.

“페럿?

이전 나도 삼명물산에 다녔던 상사맨으로 호주 재벌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특히 10대 재벌은 다 꿰고 있었는데, 그 중 페럿이라는 성을 쓰는 부자는 없었다.

내가 왜 호주 10대 재벌을 운운한 거냐 하면, 내가 맡은 향은 카네기였다.

당시 미국 제일 부자였던 그와 같은 냄새가 날 정도면, 에이미의 가문이 호주 10대 재벌 안에는 들어야 맞다고 생각한 거다.

“이상하네. 뭐 내일 조사시켜 보면 알겠지.”

사람 뒷조사는 김비서가 잘 했다.

내일 김비서에게 호주에 사는 에이미 페럿에 대해 캐 보라고 하면, 그녀가 에이미 페럿에 대한 건 싹 다 알아내서 내게 보고할 거다. 그러니 이제 자자.

* * *

어른 넷은 누워 자도 될 거 같은 따따블 킹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피곤한 탓에 잠이 쏟아졌고, 그렇게 자는 가 싶었다.

근데 갑자기 산불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죽기 몇 달 전에 호주에 산불이 크게 났었다.

그때 영상인데 노년의 호주 남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호주 광산 거물 앤드루 포레스트.

그가 호주 산불 진압과 구호를 위해 7,0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고, 전 세계 언론들이 앞 다퉈 보도하고 있었다.

그가 쾌척한 기부금은 포레스트 족이 운영하는 자선단체인 민더루 재단(Minderoo Foundation)을 통해 운용될 예정인데, 거기 재단 이사장이, 앤드루 포레스트의 딸인 다이안 포레스트고, 그녀의 남편인 맥도널 패럿은 변호사로 재단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

‘가만! 맥도널 패럿?’

아무래도 에이미 페럿이 호주의 어떤 부자 가문과 연관 있는지 찾아 낸 거 같았다.

‘만약 에이미가 맥도널 패럿의 딸이라면....’

에이미는 호주 3위 철광석 생산업체인 포테스큐멘탈스(Fortescue Metals Group)의 회장의 외손녀가 된다.

앤드루 포레스트의 자산은 130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이전부터 사회 환원에 많은 관심을 둔 그는, 지금으로부터 7년 뒤에 호주 역사상 단일 기부 최고액인 4억 달러를, 사회에 환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카네기의 냄새가 났구나.’

악덕 자본가라는 비판 속에서 평생 모은 재산의 4분의 3을 기부한 카네기.

그처럼 앤드루 포레스트 역시 자신이 번 돈을 기부하고 있었다.

나는 내일 김비서에게 에이미보다는 맥도널 패럿에 대해 알아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으으으....으아아아함!”

알람을 맞춰 둘 필요도 없이, 평소처럼 정확히 아침 8시에 잠에서 깼다.

내가 백준열의 몸에 빙의한 이후, 아마 오늘이 제일 바쁜 하루가 될 거 같았다.

일단 내가 저지른 일만 처리해도 쉴 틈이 없을 테니까.

그러니 아침은 든든히 먹어야 했다.

그래서 룸서비스로 해장국을 시킨 후 샤워실로 가서 몸을 씻고, 나와 호텔 문을 여니 오늘 내가 입을 옷들이 이동식 옷걸이에 걸려 있었고 그 밑에 박스에는 각종 액세서리들이 들어 있었다.

호텔에서 미리 준비해 주는 맞춤 서비스다. 그 옷들과 액세서리들을 챙겨 들고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갖춰 입고 액세서리들을 착용하고 나자, 해장국이 배달되어 왔고 식사 후 지갑과 차 키를 챙겨서 호텔방을 나섰다.

오늘 아침 출근은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갈 거라 미리 얘기 해 둔 터라, 내 수행비서인 황치국과 운전기사 양태석은 각자 알아서 JYB엔터로 출근 할 거다.

출근 하러 호텔을 나서 주차해 둔 차로 가는 중에 전화가 왔다.

확인하니 골프 여신 민혜주다.

“어어. 혜주씨.”

=오빠. 딱딱하게 혜주씨가 뭐야? 우리 사이에 정말 이럴 거야?

“그럼 뭐라고 불러?”

=혜주야. 라고 해봐.

“혜주야~.”

=오올. 이 오빠 오늘 마음에 드네. 나 계약하러 몇 시에 가면 돼?

“오후에는 회사에 있을 거니까 그때 아무 때나 와.”

계약서 도장 찍는 건 금방이다. 특히 민혜주처럼 나와 얘기가 다 끝난 경우는.

=알았어. 그럼 3시에서 4시 사이에 갈게.

“그래. 그때 보자.”

민혜주와 간단히 통화를 끝내고 차에 탑승했다.

막 차에 시동을 거는 데 또 전화가 왔다.

김비서라 바로 전화를 받았다.

“왜?”

=본사 회장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영감탱이가 보제?”

=네. 가급적 빨리 오시랍니다.

“알았어. 그럼 오전에는 못 들어 갈 거 같으니까 김비서 혼자 점심 먹어.”

=네?

“뭐?”

=아, 아닙니다. 혼자 꼭 점심 먹을 게요.

그렇게 김비서와 통화를 끝내고 나니, 그 동안 백준열이 김비서 식사는 전혀 챙기지 않은 게 생각났다.

이러면 김비서가 나를 자꾸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말이다.

“에이. 몰라.”

나는 차를 몰아서 삼명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인, 삼명생명 태평로 사옥으로 향했다.

평소의 백준열이라면 자기가 직접 운전해서 본사 왔을 시, 본사 앞에 그냥 차를 대고 본사 건물 안으로 쌩하니 들어갔다.

물론 차키는 꽂아 둔 채로. 그럼 경호팀이 됐던 관리팀이 됐던 알아서 그의 차를 주차 시켰다.

하지만 나는 백준열이 아닌지라 내가 알아서 건물 지하 주차장에 고이 차를 주차시키고, 다른 직원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때까지 삼명 그룹 직원들은, 내가 그들과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줄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백준열은 본사에 오면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기에는 엘리베이터 걸도 있었다.

‘무슨 구시대도 아니고 엘리베이터에 인력을 낭비 해.’

보나마나 회장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방편 인 모양인데, 꼰대라는 소리 딱 듣기 좋은 짓거리다.

근데 엘리베이터 걸 하니 백준열의 기억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우씨....’

백준열. 이 미친 새끼.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 걸을 건드렸다.

그것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 * *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일단 입으로만 서비스를 받은 상태고, 다음에 오면 엘리베이터 걸의 밑구멍 맛을 보겠다고 떠벌렸다. 이 주둥이로.

‘진짜 재봉틀 있으면 확 집어버렸으면 좋겠다.’

어떻게 사람 입으로 그런 말을 씨불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 걸이 대체 나를 뭐로 생각하겠나?

띵동!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더 많은 직원들 엘리베이터를 탔다.

삐이이!

그러다 만석이 되자 맨 마지막에 탔던 직원이 내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닫혔다.

그리고 층층별로 직원들이 내리는 가운데, 나만 끝까지 남아서 23층까지 올라갔다.

띵동!

회장실이 있는 23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곧장 비서실로 향했다.

나를 발견한 회장 비서실 비서들이 전부 일어섰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모닝 티 한잔 마시던 중이었던 회장 비서실장 오규동이, 날 보고 꿈쩍도 안고 인사말만 건넸다.

‘아아. 저 새끼는 백준경이 따까리지.’

백승렬 회장에서 장남 백준경으로 자리를 갈아 탄 뒤, 오규동은 날 보고 이제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는다.

말로라도 이렇게 인사를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의 유들유들하게 웃는 낯짝을 보고 있자니, 욱하니 화가 치밀었지만 신기하게도 금방 가라앉는다.

하긴 아무리 백준열이 미친놈이라도, 감히 회장실을 앞에 두고 개짓거리를 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을 테지.

“회장님께서 오라고 해서 왔는데....”

일단 비서실에 용건은 밝혀야 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오규동이 회장실 문을 열어준다. 나는 열린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JYB엔터의 대표실도 넓은데 여기는 무슨 운동장 같다.

“뭘 그리 두리번거려? 빨리 와서 앉아!”

그때 백승렬 회장의 특유한, 그만의 걸걸한 목소리가 회장실을 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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