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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분식점을 나서자, 에이미가 캔 사이다를 따서 내게 먼저 권했다.
“준열. 마셔.”
“괜찮아.”
그까짓 거 먹고 싶으면 사 먹으면 된다.
원래 백준열은 사이다 같은 살찌는 1등 요인, 당성분이 과다한 음료는 절대 안 마셨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그 백준열이 아니다.
분식점 맞은편에 편의점이 있다.
그쪽으로 향한 나는 누구 보란 듯, 제일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서 계산대로 향했다.
사이다를 마시던 에이미가 내 아이스크림을 보고 입맛을 다셨지만 사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툭!
“어?”
근데 그년이 다른 걸로 나를 경악케 만들었다.
누가 존나 빠른 년 아니랄까?
언제 챙겨 왔는지 계산대 위에 3개들이 콘돔 한통을 시크하게 던져 놓은 것.
그리고 하는 말이 더 내 감성에 스크래치를 냈다.
“준열이 쓸 거니까 준열이 계산 해.”
그 말 후 먼저 편의점을 나가 버리는 에이미.
그때 아이스크림 바 코드를 찍고, 콘돔을 보고 어쩔 거냐고 날 쳐다보는 편의점 알바생.
“같이 계산해 주세요.”
그렇게 나는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다른 손에는 콘돔을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 사이 휑하니 원룸 건물로 걸어가던 에이미.
그녀가 갑자기 뒤돌아서는 날 보고 손짓을 했다.
“준열. 빨리 와봐. Hurry up!”
다급해 보이는 에이미의 반응에 나는 냅다, 내 소유의 원룸 건물을 향해 뛰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달려가 에이미에게 묻자, 에이미가 곤욕스런 얼굴을 손가락으로 자기 앞을 가리켰다.
그곳은 내 원룸 건물 입구로 거기에 3명의 여공시생들이 모여 있었는데, 무슨 일 때문인지 몰라도 다들 서로를 끌어안고 울고 있었다.
“다들 왜 울어요?”
나는 건물주라는 이유로 그녀들에게 다가가 우는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세 여공시생들 중 한 명이 울먹이며 내게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흐흑....그냥 너무 기뻐서. 역시 하느님은 계신 거 같아요.”
그 말 후 그 여공시생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걸 보고 다른 여공시생들도 따라 하늘을 향해 기도를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여공시생들에게 계속 물었지만, 그녀들은 당최 입을 열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진정이 된 그녀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원룸으로 돌아가 버렸다.
“하아....”
“준열. 정말 이상한 여자들이야. 흥칫뿡!”
이상한 걸로 치면 내가 아는 여자들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에이미가, 그 세 여공시생들을 보고 그럴 정도니 말 다한 거지.
하나면 미쳤다고 하겠는데 셋이 다 그러니, 진짜 왜들 저러는지 궁금했다.
“응?”
그때 내 눈에 원룸 입구 앞에 경비실의 문이 열려 있는 게 보였다.
경비가 퇴근하면서 경비실 문 잠그는 걸 깜빡한 모양이었다.
나는 경비실 문을 안에서 잠근 다음, 문을 닫으려 했는데 이때 경비실 전화가 울렸다.
세대에서 경비실로 걸려 온 전화가 아닌, 외부에서 걸려 온 전화라 나는 무심결에 그 전화를 받았다.
“네? 경찰서요? 네. 네.”
그리고 알게 됐다. 세 여공시생들이 왜 그리 울면서 기뻐했는지.
또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했는지를.
* * *
내 원룸 건물의 경비와 관리인이, 오늘 중에 죽을 거란 건 익히 알고 있던 바였다.
그렇게 하라고 처리자들의 고용한 게 바로 나니까.
근데 경찰에 의해 그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직접 들으니 기분이 좀 싸했다.
=아까는 여자 분이 받더니, 이번에는 남자분이 받네. 여기 서울 관악경찰서인데요. 거기 경비 김봉천씨와 관리인 오석천씨가 오늘 오후 5시 30분과 40분에 각각 교통사고와 선로추락사고로 돌아가신 것 때문에, 내일 수사대가 그쪽으로 출동할 계획입니다. 협조 바란다는 말씀 전하려고,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협조라? 해야지. 물론 나는 아니고. 근데 수사대가 여기 왜 오지? 아니. 왜 오게 만든 거지?
처리자들이 이렇게 일처리가 미욱했나?
백준열이 아는 처리자들은 결코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하지 않았다.
어째든 관악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고 난 뒤, 나는 경비실 안을 한 번 훑어봤다.
어차피 여기 경비가 다시 출근할 일은 없을 테니, 여기 있는 물건들은 치우거나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그때 경비 책상 서랍 중 하나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게 보였다.
아마 열쇠는 경비가 가지고 다니는 모양. 하지만 자물쇠라는 게 풀려고 하면 금방 풀린다. 어떻게?
그건 좀 있다 알 수 있을 거고, 그 전에 나는 내가 들어 온 경비실 안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에이미에게, 내 집 도어록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있어. 난 여기 대충 정리 좀 하고 올라 갈 테니.”
“오케이!”
그렇게 에이미를 보내고 나서, 나는 경비실 안에 있는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냈다.
그리고 잠겨 있는 자물쇠를 몇 대 쥐어 패자 알아서 입을 열렸다.
‘사람이나 자물쇠나 역시 패야 말을 듣는구나.’
거의 박살 난 자물쇠를 옆 쓰레기통에 버리고, 서랍을 여니 그 안에 다이어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뭐야?”
나는 다이어리 안의 내용을 살폈고, 그 내용을 보는 동안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애써 억눌러야만 했다.
“이 미친 새끼가....”
그러니까 다이어리는 여기 경비 김봉천의 범행 일기였던 것.
그 동안 어떤 식으로 원룸 세대 중 3명의 여공시생들을 강간하고, 농락해 왔는지를 날짜별, 시간별로 상세히 적고 있었다.
충격적인 건 놈들이 여공시생들을 강간할 때, 동영상을 찍었단 점이었다.
내가 냄새를 통해 견신 시스템에게 정보 분석을 시킨 결과 나왔던 내용들과 놈들의 범행들이 완벽히 일치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동영상으로 여공시생들의 입을 다물게 했고, 수시로 그녀들의 원룸을 찾아가 자신들의 더러운 욕구를 해소했다.
“동영상이라....”
아무래도 이미 죽은 두 놈이 어딘가 숨겨 둔, 그 동영상이 향후 문제가 될 거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단 처리자들 쪽에 물어 봐야겠군.”
나는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처리자들의 고객으로서, 오늘 미진한 부분에 대해 얘기를 했다.
바로 관악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수사대 운운한 점 말이다.
내 말을 듣고 난 양태석의 입에서 제법 묵직한 침음 성을 흘리며 말했다.
=흐흠음! 이는 처리자들의 명백한 실수입니다. 차후 이런 일이 없도록 그쪽에 확실하게 컴플레인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놈들 강간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것도 챙겼는지 물어 봐 주세요.”
=네.
그렇게 양태천과 통화 후 나는 좀 더 경비실 안을 살폈다.
“킁킁킁....”
그때 경비실 안에서 희미하게, 죽은 경비 김봉천의 냄새가 났다.
* * *
나는 그 냄새의 출처를 더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서, 내 견신 시스템의 「개코」아이템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 냄새의 정체부터 밝혀졌다.
“김봉천의 정액 냄새라고?”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그 냄새가 나는 경비실 구석으로 움직였고, 거기 코너 벽을 손으로 툭툭 치자 한쪽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거길 집중적으로 건들여 봤더니.
덜컥!
뭔가 끼워져 있단 빠지는 소리와 함께 코너 벽 한쪽에 빈틈이 드러났다.
그 틈 속에 USB 하나가 들어 있었는데, 그 USB에 남은 지문에 김봉천의 정액 냄새가 배여 있었다.
“그러니까 그 새끼가 이 USB를 노트북에 꽂아, 세 여공시생들의 강간 동영상을 보면서 딸딸이를 쳤다는 거네?”
더러워서 바로 만지지 못하고, 휴지 한 장을 빼내서 그 USB를 챙긴 나는, 아무래도 이번 일을 맡은 처리자들이 걱정 됐다.
“이게 내 손에 있다는 거 자체가, 그들이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한 거니까.”
아마 이 사실을 알면 양태천이 그 처리자들을 가만 두지 않을 공산이 컸다.
내가 아는 양태천은 의리와 신뢰를 목숨처럼 여기는 자이니 말이다.
이 일은 처리자들이 그와 신뢰는 깬 거나 다름없었다.
양태천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도 궁금하고 지켜봐야 할 일 같다.
일단 양태천이 알아야 하니, 나는 내가 그 강간 동영상을 찾았단 사실을, 양태천에게 문자로 알렸다.
그 뒤 나는 내친김에 관리인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경비실에는 이 건물의 마스터키가 있었다.
때문에 건물 관리인이 사무실로 쓰는 기계, 전기실 키 역시 그 마스터키에 열렸다.
웅웅웅웅웅!
기계, 전기실답게 안에 일정한 소음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는데, 내 「개코」아이템이 귀신같이 여기 관리인의 냄새를 맡았다.
“둘이 똑같은 놈들이네.”
관리인도 USB를 여기 숨겨 뒀는데, 역시나 그 USB에서 놈의 정액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혹시나 해서 더 둘러봤지만 그것 왜에 관리인이 뭘 숨겨 둔 건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 USB를 챙겨서 기계, 전기실을 나왔다.
그때 내 문자를 본 듯 양태석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네.”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와우! 그 과묵한 인간이 도대체 몇 마디, 아니 몇 글자로 말을 한 거야? 이거 세 봐야 하나.
“뭐 괜찮습니다. 내가 찾았잖습니까?”
괜찮긴 개뿔. 의뢰자가 주요 증거를 스스로 찾을 거 같으면, 뭐 하러 그 비싼 돈 들여가며 처리자들을 고용하겠나?
내 말 속에 뼈가 있단 걸 모를 양태석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단호히 컴플레인을 걸었고, 그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서 이번 의뢰에 대해 의뢰비를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그걸로 끝나는 건가요?”
=해서 그쪽 대표가 대표님을 한 번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처리자들 대표가요?”
=네.
처리자들은 이미 대한민국 최상류층들이면 다 알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 재벌가 몇 곳에서는 그들을 통째 영입하려는 시도도 있은 걸로 알고.
하지만 처리자들의 대표가 정중히 그 제안을 거절한 걸로 안다.
‘가만, 처리자들도 결국의 에이전시잖아? JYB엔터에서 그들을 인수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안 그래?’
누구에게 묻는 건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하다하다 에이전시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처리자들 에이전시까지 인수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가 사업가 아니랄까 봐. 그래. 되면 되고 말면 말지 뭐.’
“좋습니다. 약속 잡죠.”
=시간과 장소는 대표님이 정하십시오.
그 정도 편의는 양태석 자신의 입김으로 해결이 가능하단 얘기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죠?”
나는 당장 내일 처리자들 에이전시 대표를 만나려다 생각해 보니, 그간 내가 저질러 놓은 일들이 꽤 많았다.
그 일은 대부분 월요일에 몰려 있었고. 해서 하루 늦춰 얘기했다.
“화요일 저녁 6시 30분에 화유각에서 보도록 하죠.”
화유각은 갑자기 내 머릿속에 떠오른 요정인데, 백준열이 중요한 손님을 접대할 때 애용하던 곳이었다.
뭐 어차피 한 번은 갈 곳이라 거기서 보자고 했는데, 거길 양태석도 아는 모양이다.
=그럼 내일 화유각에서 저녁 6시 30분에 만나는 거로 하고, 예약은 제가 해 두겠습니다.
“고마워요.”
양태석과 통화 후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5층으로 올라갔고 별 생각 없이 내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백준열로부터 처리자들의 일처리가 미욱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양태석은 고개가 갸웃거렸다.
그가 아는 처리자들의 대표 김훈은 그렇게 허술하게 일처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백준열이 그렇다니 일단 확인은 해야 했다.
이때까지 양태석은 백준열의 말보다는, 김훈의 실력을 더 신뢰했다.
=그래. 태석아.
양태석이 전화하자, 김훈이 바로 반갑게 그의 전화를 받았다.
둘의 인연은 사실 별거 없었다. 친한 사이도 아니다.
양태석이 한창 무술 수련에 열중이었을 때, 가라데 도장에서 만난 호적수?
둘 다 실력이 대단해서 언제고 붙으면 재미있을 거란 소문이 도장 내 퍼졌을 때, 김훈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고, 양태석은 전국구 조폭 조직의 2인자로, 김훈은 처리자들 에이전시 대표로 작년에 만났다.
뭐 그래도 같은 도장에서 한 솥밥을 먹었으니, 생판 남은 아닌 셈.
아무래도 대표로 사업가라고 할 수 있는 김훈이, 더 적극적으로 대시를 해서 겨우 같은 도장 친구 사이 정도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양태석의 입에서 예의, 존중 같은 게 들어갈 리 없었다.
“우리 대표님이 관악경찰서 짭새 따위한테 전화나 받게 하고. 일 처리를 그딴 식으로 밖에 못하나?
=뭐?
양태석의 말에 김훈이 많이 놀란 듯 했다.
=잠깐만. 무슨 착오가 있는 거 같은데. 내가 좀 알아보고 다시 전화할게.
“그러던지.”
사실 양태석은 정말 무슨 착오가 있기를 바랐다.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이때까지도 개새끼 백준열보다는 김훈에 대한 신뢰가 더 컸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백준열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훈에 대한 그의 신뢰가 깨질지 몰랐다.
김훈은 양태석이 인정한 몇 안 되는 실력자였다.
그런 그와 신뢰에 금이 가는 건 양태석도 원치 않았다.
하지만 30분 뒤에, 김훈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양태석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미안하다. 우리 정보팀에서 실수가 있었다. 바로 수습에 들어갔으니, 경찰이 다시 너희 대표를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실망이다.”
이미 엎질러 진 물. 양태석은 김훈에 대한 그간 신뢰를 무無로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