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46화 (4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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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박칠석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라도 하듯, 길게 한숨을 내 쉰 뒤 양태석의 전화를 받았다.

“왜?”

=이제 어쩔 생각이냐?

“어쩌긴 뭘 어째? 가까운 충길이한테 애들 좀 지원받아서, 재성이 은퇴시켜야지.”

=그건 네 생각이고. 만약 재성이가 그분의 허락을 받았다면?

“뭐, 뭐? 그, 그럴 리가 없다. 아까 새벽에 그분께 충성을 맹세 했다고.”

=그야 그때는 네가 거기 보스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이이....”

박칠석의 까칠한 얼굴이 아주 핼쑥해졌고,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딱 봐도 양태석의 말에 크게 동요한 듯 보이는 박칠석.

양태석이 뼈 때리는 말에 분통이 터지지만 그게 또 맞는 소리다 보니, 박칠석은 막상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박칠석이 이도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할 때 양태석이 하던 말을 마저 이어 했다.

=일단 그분께 연락을 취해 보마.

그 말에 질끈 박칠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던지 입술이 터져 피가 주르르 흘러 턱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태석아. 부탁 좀 하자.”

여태 살아오면서 친구에게만은 절대 아쉬운 소리를 해 본 적이 없었던 박칠석.

그가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자존심을 다 접고, 양태석에게 처음으로 부탁이란 것을 했다.

=전에 나대신 칼침 맞아 준 거 고마웠다.

친구끼리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는 법이건만.

양태석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박칠석은 질끈 두 눈을 감아버렸다.

과묵한 양태석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건, 당시의 그 빚을 지금 청산하겠다는 얘기였다.

이제 둘 사이는 조폭 친구만 남았다.

언제 배신해도 이상할 게 없는, 깃털보다 가벼운 우정을 자랑하는 그 조폭 친구 말이다.

언제고 이런 날이 올 줄 박칠석은 알고 있었다.

자기 같은 촌구석 조폭 두목이, 감히 전국구 조직 중에서 서울을 장악하고 있는, 태천파 2인자와 친구 사이란 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서울 가면 연락할게.”

=....

하지만 양태석은 박칠석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같이 있는 스파이 녀석을 바꾸라고 했다.

“네. 형님. 네. 네. 그렇게 조치를 취해 놓겠습니다.”

양태석과 잠깐 대화를 나눈 스파이 녀석이, 박칠석에게서 거리를 두고 돌아선 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바쁘게 전화 걸고 끊기를 몇 차례하고 난 녀석이, 박칠석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여기서 좀 더 올라가다보면 산책로가 나오는 데,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체육공원이 나옵니다. 거기 양평의 임충길이 있을 겁니다. 일단 그와 같이 양평에 가 계십시오.”

“그럼 여기는?”

“저희 쪽 사신대가 가평에 다와 간다는 연락을 좀 전에 받았습니다.”

“태, 태천파의 그 사신대 말이냐?”

“네.”

태천파의 사신대는 소수정예로 구성된, 군대로 치자면 기동부대(機動部隊:특수임무가 부여된 특별 편제의 부대)라 보면 됐다.

주로 태천파에 척 진 자들, 주로 상대 조직의 보스나 간부들을 제거할 때 동원 되는데, 그들이 여기 왔다는 것은, 양태석이 구재성만 조용히 제거하겠다는 뜻이었다.

구재성만 없으면 가평의 보스는 여전히 박칠석이니까.

“정리 되면 바로 연락드릴 테니 그때 가평으로 오십시오.”

그 말 후 스파이 녀석이 앞장을 서서 산길을 걸어갔고, 박칠석은 그런 그의 꽁무니를 쫓아 열심히 발을 놀렸다.

* * *

우리는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내 삶이 불평등하고,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불변의 진리와 대면한다.

20대 청년 세대가 되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불공정함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나는 ‘쭈욱’ 불공정한 세상에서 살아왔었다.

그 뒤 죽고 회귀하고 빙의까지 해서, 이제는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건 내 밑에 사람들이 하는 거고.

내가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는, 아주 공정한 세상에서 아주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칠석이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하아....”

양태석이 나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이런 것도 청탁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결정은 내가 내렸지만, 견족의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취한 조치였다.

박칠석이 됐던 구재성이 됐던 둘 중 강한 견족 인간이, 나의 일족이 되어 나와 같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

그 공평성을 위해 나는 박칠석에게 전화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 전화를 받지 않은 건 박칠석이고.

문제는 내게 부탁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양태석이란 점이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래. 이 기회에 양태석을 잡을 수 있다면....’

견족의 약육강식의 법칙도 중요하지만, 결국 견족에 있어 최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종족 번영이 아니겠는가?

그 번영을 위해 일족을 늘려 가는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내가 불공정하게 박칠석을 선택함으로 해서, 양태석을 일족으로 거둘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종족을 위하는 게 아니겠나.

-디링. 견신이 일리가 있다고 합니다.

내 설득에 순순히 넘어가 주는 견신.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거 자체가, 예전에 불공정한 세상을 누구보다 원망했던, 이전 나에게 미안해 질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쩌겠어. 지금의 나는 백준열인데.’

나의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초조한지 양태석이 연신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소리가 일반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을 테지만, 내 귀에는 너무도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렸다.

“박칠석이를 살리면....양태석씨는 내게 뭘 줄 수 있습니까?”

=원하시는 게 뭡니까?

“1년. 딱 1년만 내 밑에 있어요.”

=네?

지금 양태석은 내 밑에 있다.

그 기간이야 늘리고 줄이는 거야, 태천파 보스인 양태천과 내가 결정할 일이고.

때문에 내가 지금 양태천에게 말한 요구사항은 하나마나한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양태천이 의아해 한 거고.

물론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아는 거지만.

“설혹 양태천이 불러도 1년 안에는 절대 태천파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양태석은 태천파 2인자다.

그 보스이자 자신의 친형인 양태천이 부르는데 조직으로 가지 말라니.

이게 말이냐? 방구냐?

“싫으면 저는 구재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태석 때문에 지금 박칠석이 나한테 찍힌 거다.

=으흐음....

나의 연이은 압박에 양태석이 입으로 묵직한 침음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다 이내 그가 내게 말했다.

=1년입니다.

아마도 양태석은 자기가 조직에 없어도, 천하의 태천파가 1년을 못 버틸 리 없다는 생각을 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양태석의 판단 미스다. 비록 전국구라 하지만 검경이 작심하고 칼을 휘두르면, 태천파는 한 달도 버티기 어려웠다.

“물론이죠. 내가 한 입으로 두 말 안하는 건 태석씨도 잘 알잖아?”

개새끼 백준열은 자기 한 말은 꼭 지켰다. 대신 책임 질 말을 거의 안했지만.

=그렇다면....그렇게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그럼 이제 내가 뭘 하면 되나?”

나는 은근슬쩍 양태천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내 운전기사 양태천은 태천파에서 보낸 사람이고ㅡ 지금의 양태천은 자기 스스로 내 밑으로 들어오기로 한 사람이다.

태천파 사람은 외인이지만ㅡ 내가 거두기로 한 양태천은 내 밑에 사람이다. 그러니 말을 놓는 거다.

=나머지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박철식에게 내가 서울에서 보잔 다고 전해 주고.”

=네.

그렇게 양태석과의 통화를 끝낸 나는, 켜진 채 열심히 열을 내고 있는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점심에 삼계탕을 먹어선 가? 저녁은 매운 게 당기네.”

백준열은 원래 입이 짧았다. 하지만 나는 뭐든 잘 먹는 잡식성 입맛을 자랑했다.

그런 내가 오늘 매운 등갈비 찜이 당겼다.

원래는 남양주시에 본점이 있는데, 서울 사당역 근처에 분점을 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작년부터 분점 문을 열었을 테니, 거기 가면 내가 좋아하는 매운 등갈비 찜을 먹을 수 있을 거다.

오후 5시가 좀 넘어서 원룸 건물의 내 집을 나섰다.

“이것들 뭐야?”

근데 경비와 관리인이 5시에 칼 퇴근하고 없었다. 공무원도 6시 퇴근하는데....

기가 찼지만 어차피 다시 볼 일 없는 인간들이다.

“벌써 시작 했겠네.”

처리인들이 오늘 중 그들을 제거하겠다고 하면 그런 거다.

그들의 무서운 점은 철저하게, 그들이 세운 계획 하에 움직인다는 거.

때문에 대비를 하고 있어도 그들에게 당하기 일쑤다.

하물며 자신들이 곧 죽을 거란 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100% 당한다고 보면 된다.

고로 내가 여기 건물 경비와 관리인을 다시 볼 일 없을 거라고 자신 한 거다.

* * *

나는 원룸 건물 밖으로 나와서, 곧장 내 전용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준열!”

그때 누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자 웬 금발 미녀가 날 보고, 손까지 흔들며 반갑게 웃고 있었다.

금발이라고 내가 다 미녀라 부르진 않는다.

나도 팔등신의 늘씬한 금발 미녀를 좋아하지만, 다소 아담한 체구의 예쁘장한 금발 미녀를 더 좋아한다.

지금 내 눈앞에 등장한 저 금발 미녀처럼 말이다.

“누구?”

“오 마이 갓! 준열. 나 까먹었어? 에이미잖아.”

“아아! 에이미!”

금발 미녀가 자기 이름을 밝히자 그제야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났다.

작년에 백준열이 이 건물에 올 때 마다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서는, 내가 건물주라며 어찌나 뜯어 먹어댔던지 아주 학을 떼....

“헉!”

그러고 보니 에이미는 국제적인 울트라 빈대였다.

워낙 사교성과 말 빨이 좋다보니 일단 그녀에게 걸렸다하면, 뭐라도 사주거나 입에 처넣어 줘야만 풀려 날 수 있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내 차로 뛰었다.

먼저 리모컨으로 차에 록(lock)을 풀고, 운전석 쪽 문을 연 다음 막 타려는 데....

“하이! 준열. 차 진짜 좋다.”

언제 탔는지 에이미가 먼저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내 살다살다 이렇게 빠른 년은 처음 봤다.

‘존나 빠른 년!’

순간 에이미의 별명이 즉석에서 지어졌다.

“하하하하. 지갑 좀 꺼내려던 건데....”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빨리 차에서 내리라고 턱짓을 했지만, 에이미는 요지부동 바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생깠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에이미는 떡볶이라면 환장을 했다.

“나 지금 떡볶이 먹으러 갈 건데....”

“진짜?”

그제야 나를 쳐다보는 에이미에게, 내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빨리 안 내리면 떡볶이 국물도 없다.”

내 그 말에 후다닥 차에서 내리는 에이미.

하지만 언제 움직였는지 내 옆에 나타나서 내 팔짱을 끼고 있다.

내가 못 튀게 미리 족쇄를 채우는 거다.

그걸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그녀의 별명을 되뇌었다.

‘존나 빠른 년! 근데 냄새가 좋은데?’

내가 코를 킁킁거리자 에이미가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과정에서 팔짱은 풀렸지만, 여전히 두 손으로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에이미에게서 나는 향긋한 돈 냄새를 맡았다.

그 말은 에이미가 돈이 많거나, 그런 집안의 혈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하긴 원래 있는 것들이 더 한 법이지.’

다들 미국의 강철 왕으로 불렸던 케네기에 대한 일화는 한 번씩 들어 봤을 거다.

사람들이 그를 자주 회자 하는 건, 그가 철강 왕보다는 자선가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에 번 돈은 죽기 전에, 좋은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인생철학을 가지고 산,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짠돌이였다.

그런 그의 일화를 말해 보자면, 어느 날 그가 호텔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런데 그 호텔에서 가장 작고 값싼 방을 예약하는 것이 아닌가?

“사장님, 사장님 같은 부자가 왜 이런 작고 값싼 방을 예약하시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좀 화려하고 비싼 방으로 바꾸시는 게 어떠십니까?”

“아니, 나는 여기 값싼 방이 좋소. 내가 가난하던 시절에 살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좋거든.”

“지난주에는 사장님 아드님도 이 곳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아주 넓고 호화로운 방에서 묵어 갔습니다만.”

“아, 그래요? 그 놈은 부자 아버지를 두었으니까 그렇게 해도 되겠지요. 나는 가난뱅이 아버지를 둔 걸 어쩌겠소.”

라고 했단다. 뭐 내가 볼 때는 그냥 돈이 아까워서 싼 방에서 잔거지. 자식과 아버지 핑계는 왜 대나?

뭐 그래도 자기에게 엄격하기가 쉽지 않은 데, 대단한 양반이긴 하다.

하긴 당대 세계 최고 부자가 아무나 되는 건 아니겠지만.

에이미를 카네기와 비교하는 건 많이 과한 처사지만, 그래도 그녀에게서 카네기의 냄새가 났다.

‘가만....내가 카네기 냄새를 어떻게 아는 거지?’

카네기는 1835년에 태어나서 1919년에 죽는다.

그와 나 사이는 한 세기란 세월의 벽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다.

근데 내가 100년도 더 전을 살았던 카네기의 냄새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 * *

오후 5시 정각!

칼 퇴근하는 오석천과 김봉천.

원래 건물주가 진짜로 상주하는 건물이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었다.

하지만 여기 건물주는 그냥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와 너구리가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거다.

“김씨. 내일 봐.”

“그려.”

둘은 신림 역 앞에서 헤어졌다.

오석천은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고, 김봉천은 버스정류장이 있는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부아아앙!

“어어!”

퍼억!

그때 갑자기 시속 120Km/h의 속도로 달려 온 오토바이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김봉천이 부딪쳤다.

그냥 오토바이 옆에 부딪쳤으면 몸이 튕겨나며, 몇 군데 골절상은 입었을망정 죽지는 않았겠지만, 그대로 정면으로 부딪친 탓에 허공으로 족히 5미터는 솟구쳤다가, 차도로 나뒹군 김봉천.

다행히 머리가 아닌 다리부터 떨어져 하체에 아무 감각은 없었지만, 이때까지 그의 의식은 살아있었다.

“으으윽....으아아악!”

그때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5톤 트럭에 다시 부딪치면서, 김봉천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정말 불운한 사고고 안타까운 죽음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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