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8화 (3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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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박칠석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생사를 오가고 있을 때 나타난 백준열. 그가 한 제안을 말이다.

“충견이라....”

자신의 충견이 되라고 하더니, 자기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 정도는 하라는 건 또 무슨 말인지.

아무튼 무식한 자신의 머리로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살린 건 사실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 뭔가 있었을 겁니다.”

그때 박칠석 옆에서 아까부터 귀찮게 계속 씨불이고 있는 인간이 하나 있었다.

“보스가 누구보다 잘 알잖습니까? 여기 가슴에 찔린 상처. 근데 지금 보십시오.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용건이 박칠석 보란 듯 그의 가슴 깨를 대 놓고 손으로 더듬었다.

그런 용건의 손을 박칠석이 귀찮다는 듯 자기 손으로 뿌리치며 말했다.

“뭔 소리야? 가슴에 찔린 상처라니?”

“네?”

“내가 언제 가슴 찔렸어?”

“뭐, 뭐라고요?”

“재성아. 용건이 우리 애들 돌보느라 너무 무리한 모양이다. 잠깐 정신이 해까닥 했네. 쯧쯧. 갈 때 100만원 더 쥐어줘라.”

“네. 형님.”

구재성이 박칠석의 말에 대답하고, 눈치껏 옆에 수하들에게 박칠석을 귀찮게 하는 불법 왕진 의사 용건이를 치우라고 턱짓을 보냈다.

“용건아. 가자. 아직 니 치료가 필요한 애들 많다.”

“내 팔 좀 집어 주라.”

“아니. 보스. 이건 아니지. 당신 가슴 찔렸잖아?”

안 그래도 생각할 게 많은 데 용건이 계속 시끄럽게 굴자 박칠석이 인상을 팍 썼다. 그걸 보고 눈매를 조히고 울컥한 2인자 구재성이 버럭 소리쳤다.

“빨리 치워!”

결국 조폭들에 의해 끌려 나가는 불법 왕진 의사.

“재성아. 너 뭔 일 있냐?”

“네?”

“왜 성질을 내고 그래. 그것도 내 앞에서.”

“죄,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상한 애들이 많다보니, 제가 좀 예민해진 모양입니다.”

“그래? 나는 또 내가 죽다 살아나서 네가 실망한 줄 알았네.”

“아, 아닙니다. 형님. 실망이라니요. 이렇게 살아주셔서 얼마나 기쁜데요.”

박칠석은 자신에게 억지로 웃어 보이는 구재성을 보고 픽 웃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아무래도 남원 내려 보낸 이장식이 다시 불러 올려야겠네.’

구재성은 너무 티가 났다. 그리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리기도 했고.

적어도 박칠성의 숨이 넘어가고 나서 터트려야 했다.

거기다가 박칠성이 살아나고 나서, 그를 대하는 태도도 문제다.

재끼려면 확 재끼고 숙이려면 푹 숙여야지. 이도저도 아니고 말이다.

‘이런 놈이 무슨 2인자라고....’

그래도 이장식이 다시 불러 올 때까지, 자기 손발 노릇은 계속 해줘야 하니, 꼴 보기 싫어도 그걸 티내지 않는 박칠석이었다.

“VIP는?”

“2층 자기 방에 있습니다.”

“가자.”

“네?”

“으으윽!”

가슴의 자상이야 백준열이 준 약을 마시고, 거짓말처럼 나았지만 복부의 자상은 그대로였다.

몸을 일으키던 박칠석은 저리면서 욱신대는 배의 통증에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용건이에게서 진통제 4알을 받아 한 입에 털어 넣고 나서, 기어이 몸을 일으킨 박칠석은 2층에 있다는 백준열을 보러 직접 움직였다.

* * *

박칠석의 판단에 지금 그는 한가롭게 누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백준열이 자신을 거두려는 저의부터 파악해야 했다.

그래야 그 다음 자신의 행보를 결정지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왔어?”

박칠석을 보자마자 백준열이 반말을 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박칠석은 전혀 불쾌감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살짝 흥분이 됐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박칠석도 지금 당장은 어떻게 표현 할 수가 없었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칠석은 먼저 머리를 조아렸다. 그걸 보고 백준열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목숨을 구해줬는데 인사부터 해야지. 배는 어때?”

백준열은 박칠석의 가슴의 자상이 다 나은 걸 알고 있었다.

“가벼운 칼침 한 방입니다. 한 사나흘 쉬면 다 나을 겁니다.”

박칠석이 나름 가슴을 펴고 호방하게 대답했다.

“뭐가 궁금해서 왔어?”

마치 박칠석의 생각을 자신이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백준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직시하며 말하자, 박칠석은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왔다.

‘씨발! 정신 차려. 박칠석!’

박칠석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자신이 왜 여기 왔는지 거듭 상기했다.

“저, 저를 어디에 쓰실 생각이십니까?”

“쓸 데가 있으니 거뒀겠지. 그런데 당장 쓸 수는 있고?”

“네?”

“서울 올라 와. 서울에 내 건물 몇 채 관리해 보고 세를 키워. 그걸 보고 널 어디다 쓸지 결정하도록 하지.”

“아아!”

백준열의 말을 듣고 난 박칠석의 희열에 찬 얼굴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드디어 서울로 간다.’

백준열이 박칠석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서울의 건물이다. 그걸 몇 채 관리하란 건 그의 손에 돈줄을 쥐어 주겠다는 얘기.

그 다음 세를 불리는 건 전적으로 박칠석의 능력에 달렸다.

박칠석은 자신 있었다. 태천파 보스 양태천도 하는 걸 자기가 못할 리 없었다.

양태천에게 운이 따랐다면 박칠석은 능력이 있었다.

그의 능력이면 1년 안에 서울에 전국구 조직 하나 키워 내는 건 일도 아니다.

박칠석이 장밋빛 자신의 미래를 꿈꿀 때, 백준열이 그의 환상을 깨며 말했다.

“자아. 이제 슬슬 그 놈들 만나 보자고.”

백준열의 진짜 볼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때문에 박칠석도 오늘 칼침을 맞고 죽을 뻔 했고.

칼침 얘기가 나오니 자기 가슴에 칼침을 먹인 그 미친 싸움꾼 녀석이 생각 난 박칠석.

그가 으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놈들을 지금 여기로 데려 오겠습니다.”

“아냐. 여긴 너무 좁아. 거실에서 볼게.”

그 말 후 몸을 일으킨 백준열은, 먼저 1층 거실로 내려갔다.

박칠석은 백준열이 그의 방을 나가자마자, 옆에 있던 구재성에게 지시를 내렸다.

“들었지? 그 새끼들 거실로 데려 와라.”

“네. 형님.”

구재성을 보내고 수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박칠석.

그런 그의 눈에 삼분의 일 정도 남은 와인병이 보였다.

“쩝....”

밥 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박칠석이다. 술보다는 여자를 쬐금 더 좋아하고.

재벌 3세인 백준열이 마시는 와인이라면 분명 귀한 것이겠지.

마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지금도 배가 쑤신다.

용건이가 그랬다 하루는 물도 마시지 말라고.

그런데 술을 마신다? 아무리 술이 좋아도 마시면 죽는 독주까지 마실 수는 없는 노릇.

“에이....”

더 봐야 마시지도 못할 술.

박칠석은 미련을 많이 남기고 몸을 돌렸다.

* * *

시간이 어느 새 새벽 3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으아아아함!”

늘어지게 하품을 한 나는, 지금 내 별장 거실에서 내 별장관리인과 그의 조력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재동을 어떻게 영입할지는 이미 계산이 서 있었다.

아까 견신 시스템이 이재동에 대한 힌트를 줄 때, 내 머릿속에 딸려 온 정보에 따르면 이재동은 지금 돈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그래서 이번 일에도 가담한 거고.

돈으로 사람을 사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편견을 지닌다. 그런 사람을 나쁘게 보고.

그럼 물어보자. 사람은 뭐로 사야 할까?

뭔가 가치 있는 걸로 사람을 사야하는 데, 그 중 가장 보편적이고 쓸데가 많은 것. 맞다. 그게 돈이다.

물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또 없다.

나는 이재동이 필요한 돈으로 그를 살 것이다.

비록 그가 내가 아닌 내 돈에 충성을 해도 별 상관없다.

사람은 같이 있다가 보면 물이 든다.

내가 그에게 물이 들던 그가 내게 물이 들던.

나는 확신한다. 그가 내게 물이 들 것을. 왜냐하면 그가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게 너무 차이가 나니까.

드디어 놈들이 온다. 조폭들에 의해 들려서.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 중에 비교적 성해 보이는 두 녀석은 패스. 저것들은 볼 것도 없다.

나의 시선은 오로지 나를 찌르려 한 이재동에 꽂혀 있다.

근데 나 말고도 이재동에게 유독 관심이 많아 보이는 인간이 하나 더 있다.

‘아주 살기등등하네. 저러다 사람 잡지.’

이재동에게 칼침 두 방을 맞은 박칠석이 이재동을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이대로 놔두면 이재동은 박칠석의 손에 죽는다.

이재동이 살려면 결국 내 품에 안기는 수밖에 없다.

“너. 날 위해 일해라.”

내 말에 이재동이 히죽거리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입을 열었다.

“좆 까!”

“저 새끼가....”

바로 박칠석이 나섰다. 녀석이 핑계 낌에 이재동을 죽이려 한다.

주먹으로 사람 패는 걸 즐기는 박칠석의 손에 지금 쇠파이프가 들려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내가 이재동을 거두면 그로써도 손쓸 방법이 없음을 저 영리한 조폭 두목 새끼가 눈치 깐 거다.

“잠깐!”

내가 그런 박칠석을 멈춰 세웠다.

“대표님!”

박칠석이 곤란한 얼굴로 날 쳐다본다. 그래도 보스인데 주위 보는 조폭들 눈도 있지.

그게 자기체면 좀 세워 달란 얼굴임을 나도 안다.

하지만 녀석의 체면 보다 견신의 돌발 미션 수행이 먼저다.

“칠석아. 짖어 봐.”

“네?”

“짖으라고 이 개새끼야!”

내 눈을 직시하는 박칠석.

이내 내 눈에서 진심을 읽은 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멍! 멍! 멍! 멍!”

나는 박칠석에게 자신의 주제를 알려줬다. 그는 내 충견일 뿐이다.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무는.

나의 시선이 다시 이재동을 향했다. 이재동도 박칠석이 짖는 걸 보고 꽤 놀란 얼굴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지금 그가 가장 원하는 걸 제시했다.

“돈 줄게. 현금으로 일억!”

“....”

날 보고 좆 까라고 할 때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던 이재동이었다.

하지만 현금 1억이 그의 눈빛 뿐 아니라 그의 몸까지 들썩거렸다.

“일, 일억을 준다고?”

“그래. 내 충견이 된다면 지금 당장 일억을 주마.”

이재동이 비록 나 때문에 물러났지만 여전히 곧 죽일 듯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박칠석을 쳐다봤다.

자신이 내게 일억을 받아도 저 박칠석이 자신을 죽여 버리면 그 일억이 무슨 소용이겠나?

한데 나는 보여 주었다.

박칠석이 내 충견이라는 걸 말이다.

즉 이재동이 내 충견이 되면 박칠석은 그를 해칠 수 없었다. 그 주인이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 군. 그래 봐야 결론은 하나다.’

이재동은 자신이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내게 충성할 수밖에 없다는 걸 지금 깨닫고 있는 중일 것이다.

“좋다. 그쪽 제안을 받으께.”

“‘좋습니다. 대표님의 제안을 받아드리겠습니다.’라고 해야지. 뭐 처음이니까 그건 넘어가고. 계좌 불러.”

그 말 후 내가 핸드폰을 꺼내자 그걸 보고 이재동이 잠깐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분명 현금으로 일억을 주시겠다고 했다 아임니까?”

“그래. 현금. 내가 네 계좌로 일억 쏴주면 니가 은행에서 현금 찾아. 일억.”

“....”

내 말에 황당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이재동.

“내가 너에게 주는 돈이 불법이 아닌데 뭐가 문제야?”

“아아!”

그제야 내 말을 이해한 이재동이 말했다.

자기가 가져 온 가방 속에 통장이 있다고 말이다.

나는 조폭들을 시켜 그 통장을 가져 오게 한 후, 이재동이 보는 앞에서 모바일 뱅킹으로 그의 통장 계좌로 일억 오천만원을 쏴 주었다.

“일억 인데 예. 오천만원 더 너어십니더.”

그걸 보고 이재동이 내게 말했다.

“너만 입이냐? 가족들도 먹고 살아야지.”

내 그 말에 감격한 이재동. 그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표님의 충견이 되겠심니다.”

그 말을 하고나서 이재동은 그 자세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그런 그를 조폭들이 들고 용건이라고 불법 왕진 의사에게 데려갔다.

* * *

대 놓고 말은 못하지만 내 결정이 못내 아쉬운 듯 입이 툭 튀어 나온 박칠석.

하지만 주인이 개 비위를 맞출 수야 있나. 대신 녀석의 기분을 풀어 줄 만한 걸 주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

그 말 후 일어나는 나를 향해서 별장관리인의 조력자 중 한 명이 외쳤다.

“저도 개가 되겠습니다. 시키시는 건 뭐든 할 테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아까부터 내 눈치만 열심히 보던 그 아저씨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내 아버지, 그러니까 백승렬 회장이 요즘 들어 자식들에게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시다.

하물며 늙어 빠져서 큼큼한 곰팡내 풀풀 풍기는 저 아저씨는 어디 쓸 데도 없다.

차라리 별장관리인은 여기 별장 관리 하나는 잘한다.

뭐 그렇다고 날 납치해서 끝내 죽이려 한 인간을 내가 살려 줄 리 없고.

내 「개코」아이템이 이재동을 제외한 나머지 4명에 대한 냄새 분석을 끝내 놓은 상태다.

결론은 그냥 넷 다 땅에 묻어 버리는 게 이 나라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낫다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이 바뀔 일은 없을 거다.

나는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잠, 잠깐만....으아악!”

“이것들 다 지하실로 데려가.”

박칠석이 저들을 그냥은 안 죽일 모양이다.

뭐 그러라고 그에게 저들을 넘겼으니까. 여기서 내가 딱히 할 일도, 할 말도 없다.

인과응보다. 나를 죽이려 했으니 저들도 죽는 거다.

나는 곧장 2층 내 방으로 올라갔고, 남은 와인이 날 유혹 했지만 뿌리치고 침대에 누웠다.

안 그래도 피곤했던 터라, 눕자마자 수마가 밀려왔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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