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4화 (3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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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다들 사연이 있는 자들이었다. 최무룡 자신도 마찬가지고.

그런 그들이 한 가지 공통점 때문에 여기 모였다. 그건 바로 돈.

최무룡은 자신의 조력자들에게 늦어도 사흘 안에 1억 씩 현금으로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르면 내일 당장 그 1억을 줄 수도 있었다.

물론 그들이 돈 값을 했을 때란 전제가 붙었을 때 얘기지만.

“다 왔다.”

최무룡의 말에 4명의 조력자들이 다들 각자 짐을 챙겼다.

그 사이 최무룡이 모는 승합차가 별장 문 앞에 잠시 정차했다.

그리고 운전석 차창이 내려가고 거기서 손이 하나 나왔다.

그 손에는 작은 리모컨이 쥐어져 있었는데 최무룡이 그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별장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촤르르르르!

최무룡은 열린 별장 문 안으로 승합차를 몰고 들어갔고, 리모컨은 다시 누른 듯 열렸던 별장의 자동문이 도로 닫혔다.

덜컥! 촤라락!

안에서 승합차의 차문이 열리고, 그 안에 타고 있던 4명의 조력자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 뒤 운전석에서 내린 최무룡은 가장 먼저 마당에 주차 되어 있는 백준열의 벤츠 차를 확인하고, 그 다음으로 별장 건물 2층을 쳐다봤다.

건물 2층에 백준열의 방이 있었고, 그 방에 희미하나마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아마 백준열이 스탠드의 무드 등을 켜놓고 잠이 든 모양이다.

손목에 차고 있던 전자시계로 바로 시간을 확인한 최무룡이 뒤돌아 자기가 데려 온 4명의 조력자들에게 말했다.

“서둘러. 벌써 새벽 1시가 넘었다.”

최무룡의 말에 4명의 조력자들이 각자 들고 온 가방에서 필요한 것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무룡이 직접 준비한 복면 4개를 그들에게 전달했다.

“자. 다들 써.”

그 말 후 최무룡 본인도 복면을 썼다.

원래는 복면까지 쓸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혹시 모른다며 조력자 중 이재동이 복면 쓸 것을 고집했고, 최무룡도 생각해 보니 쓰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아까 군내 시장에 들렀는데 마침 거기 안면을 다 가려주는 복면 마스크를 파는 게 아닌가?

최무룡은 잘 됐다 싶어 그 복면 마스크 5장을 구입했다.

당연히 복면 마스크가 일반 복면에 비해 쓰기도 쉽고 또 숨쉬기도 훨씬 수월했다.

“이거 좋은데!”

“이런 것 좀 진즉 나오지.”

두 어린 조력자들이 복면 마스크에 만족감을 드러낼 때, 일행 중 최고령자 Y씨가 그들을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이걸 만들어서 어따 팔아먹게? 니들 같은 놈들 쓰라고 만든 거 아니거든.”

“아니. 저 영감이....”

“니미. 시비 좀 작작 거쇼.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드셨나?”

“뭐? 이 피라미 새끼들이....”

놔두면 Y씨가 두 어린 조력자들과 드잡이 질까지 할 거 같자, 최무룡이 나서서 말했다.

“자자. 곧 작업 들어가야 하는 데 이렇게 싸울 거야?”

“애송이들. 두고 보자.”

“네에. 그래 두고 보자고요.”

“영감탱이. 진짜 쩐다. 쩔어.”

셋은 티격태격하면서 준비가 갖춰지자 최무룡을 따라 움직였다.

그때 맨 마지막으로 일행들을 따라가던 4명의 조력자 중, 가장 조심성이 많은 이재동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위가 와 이리 조용하노? 아무리 촌구석이라도 너무 조용한 거 아이가.”

이재동이 의구심에 사로잡혀 주위를 좀 더 자세히 살피기 시작할 때였다.

“재동아. 문 열었다. 빨리 와라.”

별장 건물 스페어 키를 최무룡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문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빨리 오라고!”

“알았어요. 갑니다요. 가.”

이재동은 별 수 없이 활짝 열린 현관문을 통해 그대로 별장 안으로 들어섰다.

* * *

백준열에게 큰소리 떵떵 쳐 놓은 박칠석.

막상 그가 생각 한 대로 2중, 3중으로 놈들이 빠져 나가지 못할 그물을 치다보니, 그의 조직원 20명으로는 사람이 모자랐다.

급한 대로 인근 양평군의 조폭들 지원까지 요청한 박칠석.

“충길아. 고맙다.”

=뭘. 이웃끼리 돕고 사는 거지.

“신세 꼭 갚으마.”

=무슨 신세까지. 술이나 한잔 사라.

“그래.”

박칠석은 양평군의 조폭두목 임충길과 통화 후, 그가 보내 준 10명의 조직원까지 가세 시켜서, 백준열이 말한 별장 관리인과 그 조력자 일당을 사로잡기 위한 완벽한 함정을 팠다.

그렇게 자정이 조금 넘었을 때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그 놈들을 기다릴 때 백준열이 느긋하게 별장에 나타났다.

“좀 늦었죠?”

“아닙니다.”

“곧 놈들이 올 겁니다. 으음. 잘 해 놓으셨네요. 좋습니다. 굿!”

제가 뭘 안다고 마치 자신이 준비해 놓은 걸 다 파악한 것처럼 구는 백준열을 보고 박칠석은 웃으며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양태석이 알려 준 백준열을 상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말이다.

그 뒤 백준열이 별장 건물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던 박칠석은 혹시 자신이 판 함정에 있을지 모를 빈틈을 찾았다.

“야이. 씨.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열려 있잖아?”

“죄, 죄송합니다.”

“확실히 잠가!”

“네. 형님.”

그가 찾아 낸 빈틈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면서 점점 더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놈들이 나타났다.

“다들 숨어.”

이제 남은 건 놈들이 함정에 빠지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제발....”

어쩌면 이번이 박칠석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일지 몰랐다.

이번 일로 앞서 실수를 만회하고 백준열의 신임을 받는다면, 박칠석은 서울에서 독자 세력을 키워 나갈 수 있었다.

그 다음 영역(나와바리) 넓히는 거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문제는 그 돈인데 이왕지사 인연을 맺은 거, 박칠석은 백준열의 똥구멍이라도 핥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단무지라도 썰어 봐야지. 나라고 서울에서 전국구 보스 되지 말란 법 있나.”

양태석의 형인 양태천도 시작은 건달이었다.

사실 친구인 양태석의 도움을 받아서 얼마든지 서울로 진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박칠석은 진짜 보스가 아닌 게 된다.

태천파 중간 보스 중 한 명 일 뿐이지.

“나는 뱀 대가리로 살지 용꼬리로는 못산다.”

나름 야심이 큰 박칠석인데 여태 운이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대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대운을 잡기 위해 박칠석은 오늘 뭐든 다 할 수 있었다.

* * *

비스마르크와 잘 작별하고 별장으로 잘 가던 중, 나는 차를 멈춰 세웠다.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나라고 멈추고 싶어서 차를 멈춘 건 아니었다.

바로 견신의 전언 때문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견신님. 좀 전에 저 한데 한 말 다시 좀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의 정중한 부탁에 나에 대한 호감도가 무지 높은 견신께서 자신의 전언을 기꺼이 리피트(Repeat) 해주셨다.

-디링! 애완견과 당신의 돈독한 우정에 견신이 크게 감동하셨습니다. 이에 특별히 「개목걸이」아이템의 새로운 능력을 하나 더 개화 시켜 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추가 될 능력은 물리적 능력으로 바로 아이템 사용 시, 상대를 꼼짝달싹 못하게 제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존 「개목걸이」아이템은 상대의 약점이나 비리를 알려줬는데, 거기에 견신께서 추가로 능력 하나를 더 줬고, 그게 바로 상대를 제압해 주는 거란 말이다.

“잘 됐다.”

안 그래도 백준열이 싸움을 못해 혼자 움직일 때는 사실 불안 했다.

한데 물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니 크게 안심이 됐다.

“고맙습니다. 견신님.”

견신의 이런 총애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물들어 왔을 때 배 저으랬다고 나로서는 가급적 많은 아이템과 스킬을 획득해 둘 필요가 있었다.

앞서도 견신 시스템이 그 점을 두고 나에게 그쪽으로 많은 정보를 줬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열심히 사는 거뿐이다.

단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산다는 전제 하에.

딱히 견신 시스템은 반응이 없었다.

단지 견신이 기존 「개목걸이」아이템에 추가 능력을 부여한 거라 상태창에도 변화가 없다보니, 견신 시스템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는 말을 내 머릿속에 전달했을 뿐.

견신과 볼일도 다 봤고 별장으로 가기 위해서 정차 중이던 차를 다시 몰고 가려 할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내 핸드폰이 울렸다. 자정 다 되어 가는 데 뭔 전화람?

박지수의 일도 있었고 해서, 나는 일단 누가 이 시간에 몰지각하게 전화를 건 건지 확인했다.

“어? 이번호는 김명석 전번인데?”

모레, 아직 자정이 안 됐으니까 말이다.

JYB엔터로 와서 배우 전속 계약을 체결하기로 한 그 양반이, 이 시간에 나한테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지?

“여보세요?”

=주운여얼. 나야. 명석이 형아.

딱 들어도 김명석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네. 형. 목소리가 한 잔 걸치신 거 같네요.”

=어어. 기분이 좋아서. 마셨지. 히히히.

그때 김명석의 주위에서 말하는 소리가 내 귀에 선명히 들려왔다.

보통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도 나에게는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인 *소리가 잘 들립니다.*가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진짜야? 진짜 그 개새끼 JYB 백준열이라고?

=형 전화하고 계시잖아요. 그럼 맞겠죠. 그리고 누나가 직접 본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런 사람에게 개새끼라니. 그건 좀 심한 말 아닌가요?

=심하긴 뭘 심해. 백준열 개새낀 거 이 바닥 사람들은 다 안다고.

특히 김명석 주위에 남녀가 시끄럽게 설전 중이었다.

제 아무리 김명석이라도 대표인 내가 그가 취해서 하는 아무 말 대잔치나 듣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월요일에 볼 건데 보고 싶어서 전화 거신 건 아닐 거고. 하실 말 있으시면 하세요.”

바로 용건을 묻는 내게 김명석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뭐, 뭐....할 말이 있기는 한데. 저기....부탁 좀 하자.

“네. 하세요.”

김명석이 하는 부탁쯤이야 못 들어 줄 것도 없지.

=내 후배 중에 괜찮은 애가 있거든.

=오빠. 난 싫어. 하지 마.

=그 녀석 소속사가 망해 버리는 바람에....

=하지 좀 마. 내가 싫다잖아. 그래. 여기 수현이 해 줘 그럼.

=저는 왜....

귀가 너무 잘 들려도 문제다.

김명석 주위 사람들의 아무 말 대잔치에 내 꼴이 지끈거리며 아파온다.

* * *

아무래도 취한 김명석에게 주변 교통정리부터 시켜야 할 거 같았다.

그걸 알려면 그들이 누군 지부터 파악 할 필요가 있었다.

“형. 옆에 누구 있어요?”

=어어. 종미랑 수현이.

아까 김 비서가 보낸 김명석에 관한 정보 파일에서 그들 이름을 찾아봤다.

물론 그 일은 자칭 자신을 천재라고 자부하는 백준열의 머리가 다 알아서 해 준다.

‘있다. 하종미와 최수현. 둘 다 서울예대 출신으로 김명석의 대학 후배들.’

“잠깐! 하종미면 영화 ‘구라쟁이’에서 '오빠 생각'을 불렀던 그 여배우?”

=어라! 준열이가 너 안다. 종미야.

“최수현은....”

2-3년 뒤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시청률 40%가 넘은 주중드라마이자, 국민 드라마로 불리는 ‘해를 품은 여자’를 통해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탑스타가 되는 배우다.

‘대박!’

하종미는 몰라도 최수현은 반드시 JYB엔터로 데려 와야 한다.

이때 최수현은 아직 어리다.

아마 이제 갓 일일시트콤 단역으로 데뷔해서, 무명 배우로 전전하고 있을 때 일 것이다.

‘당연히 소속사는 없을 테고....’

이 당시에도 배우는 완전 시작단계에서는 소속사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독립영화나 단편영화 등에 활동을 하거나, 혹은 상업영화나 방송드라마에서 단역 등으로 작은 배역을 맡아서 하다가 이슈가 되고, 혹은 가치를 인정받으면 그때 소속사에서 접촉이 들어왔다.

‘내가 알기로 최수현은 카이스트로와 계약을 했었지.’

내가 그걸 기억하는 건 최수현이 카이스트로와 끝까지 의리를 지켜 재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걸 신문에서 제법 크게 다뤘고, 나는 그때 그 신문을 읽었고,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고.

카이스트로는 이때도 배우 전속 매니지먼트사 중에 탑 쓰리에 들어가는 대형 기획사였다.

배우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1순위 소속사 말이다.

‘카이스트로에서 채가기 전에 무조건 내가 먼저 영입 해야지.’

생각 같아서는 김명석에게 지금 어딘지 물어서, 당장이라도 거기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가평이고 시간도 곧 자정이다.

간다고 해도 그들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여기 일은 또 어쩌고.

=수현이는 너도 모를 거야. 작년인가? SVS 드라마 ‘메리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라는 작품에서 고수열 배우 아역으로 나왔는데....제법 주목을 받았는데....아아. 맞다. 카이스트로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었지?

=네. 그래서 다음 주에 거기 가 보려고요.

‘거기 가면 안 되지. 가긴 어딜 가.’

“월요일에 형 오실 때 최수현씨도 같이 데려오세요.”

=뭐? 정말?

“형이 인정한 배운데 당연히 저희 회사에서 모셔야죠.”

=야! 최수현! 너 JYB에서 영입하겠단다.

=네?

=근데 종미야. 너 진짜 싫어?

=어. JYB같이 큰 데는 별로.

하종미의 그 말을 엿들은 나는 속으로 ‘나도 너 같은 무명 연기자 영입 할 생각 전혀 없거든.’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종미란 배우는 영화 ‘구라쟁이’에서 확실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나도 기억하고 있는 거고.

하지만 이후 TV나 영화, 연극, 뮤지컬 등에서 본적이 없다.

그 말은 그녀가 연예계에서 반짝 빛났다가 사라지는 아이돌 그룹처럼 그저 그런 연기자 중 한 명이었단 얘기다.

=무엇보다 남편이 JYB라면 학을 떼서.

그때 하종미의 남편이라는 말에 나의 눈이 커졌다.

‘설마....’

내가 죽은 그 해 구정 연휴가 막 끝났을 때 한 여배우의 부고가 전해졌다.

그녀는 8년 넘게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 전혀 식지 않았다고, 그 남편이 인터뷰에서 얘기 할 때 나도 눈물을 흘렸었다.

‘맞아. 그 하종미가 지금 이 하종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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