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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23화 (2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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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가평의 내 별장은 청평호와 호명산 자락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백준열이 이곳에 별장을 지은 것도 산과 호수가 가까워서다.

“컹! 컹! 컹!”

하지만 자연친화적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둘 사이 끼다 보니 안개가 자주 끼었고, 습기 차고 또 벌레가 많았다.

특히 모기가 극성이다. 또한 산에서 가끔 내려오는 산짐승들 때문에, 별장 주변 잔디와 화단이 엉망이 되기 일쑤였고.

해서 별장 관리인까지 뒀건만. 하필 백준열이 뽑은 별장 관리인이 강도짓이나 저지르고 다니는 나쁜 놈이라니.

뭐 그 새끼야 이따 밤에 손 봐 주면 될 일이고, 갑자기 별장 주변에서 시끄러운 개소리가 울려왔다.

개 목청을 봐서 대형견인데 보아하니 또 산에서 산짐승이 기어내려 온 모양이었다.

“꾸에에엑! 꾸에엑!”

그때 돼지 멱따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왔다.

“뭐, 뭐야?”

돼지 멱따는 소리를 실제 들어 본 적 없는 나지만, 딱 듣는 순간 이게 그 소리란 걸 알 정도로 시끄럽고 듣기 험악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국 그 소리가 울린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오!”

그리고 봤다. 족히 150Kg은 나갈 거 같은 야생 멧돼지가 쓰러져 있었고, 그런 녀석과 같이 시커먼 개 한 마리가 누워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 개가 멧돼지의 목줄을 물고 있었다.

시커먼 개도 덩치가 상당했는데, 멧돼지가 나 죽는다고 꽥꽥 거리며 몸부림을 쳐댔지만, 그 개는 악착같이 멧돼지의 목줄을 물고 놓지 않았다.

그렇게 10여분쯤 지났을까?

“....꾸어어억!”

결국 멧돼지가 마지막 단말마격의 울음 섞인 소리를 내뱉고는 몸을 축 늘어트렸다.

그렇지만 시커먼 개는 여전히 멧돼지의 목줄을 물고 있었다.

“응?”

그때 나는 그에게서 이상한 끌림을 느꼈다.

마치 저 개를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거 같은 그런 친근감? 오랜 정? 하여튼 묘한 이끌림에, 나는 멧돼지가 있는 쪽으로 넋 놓고 걸어갔다.

내 걸음 소리에 검은 개의 귀가 쫑긋 해졌다.

더불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거 같더니, 절대 놓을 거 같지 않았던 멧돼지 목줄에서 입을 떼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 개.

“어?”

그 개가 혀를 내밀고는 곧장 내게로 뛰어왔다. 딱 봐도 반가워 내게 안기려 뛰어오는 모양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글쎄....’

그냥 알 거 같았다. 날 물려고 뛰어오는 개라면 저렇게 신나게 꼬리를 흔들어 대지는 않을 테니까.

근데 잘 뛰어오던 그 개가 갑자기 픽 쓰러졌다.

그걸 보고 경악한 내 입에서 그 개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비스마르크!”

기억났다. 저 녀석은 백준열이 유학가기 전에,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던 세파트였다.

“세파트는 날렵하면서도 각진 얼굴형을 하고 있는데, 눈빛에 언제나 총명함이 깃들어 있어, 카리스마와 특유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지. 뭐, 뭐야?”

이건 백준열의 기억이다.

녀석은 놀랍게도 비스마르크를 진짜 좋아했다.

그러니 세파트란 견종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겠지.

* * *

내가 녀석의 이름을 불러서 일까? 쓰러졌던 녀석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바로 내게로 뛰어오지 못했다.

어디가 아픈 듯 머리를 숙이고 힘겹게 내게로 걸어오는 녀석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녀석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그 거구의 멧돼지와의 혈투 속에, 어딘가 극심하게 다친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린 곧 만났고 내가 녀석에게 바짝 다가가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자, 녀석이 힘겹게 머리를 들어 내 얼굴을 혀로 핥았다.

멧돼지를 물어 죽인 녀석의 입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강하게 났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혀가 전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이다.”

백준열이 비스마르크를 본 게 벌써 7개월 전이었다.

“이 별장을 지은 이유가, 다 너 때문이었다는 거네?”

백준열은 대형견인 비스마르크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길 바랐다.

그래서 서울이 아닌 이곳에 녀석이 살 수 있게, 널찍한 별장을 짓고 녀석을 여기서 살게 한 거다.

그런데 그렇게 주인의 관심을 받는 애완견 치고 비스마르크는 너무 더러웠다.

“아니. 이 인간이....”

별장 관리인. 그 개새끼가 아무래도 비스마르크를 홀대한 모양이다.

이 별장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말이다.

백준열은 순전히 비스마르크를 위해서 이 별장을 지었다.

그랬기에 별장 건물 자체도 형식적으로 대충 지었고.

“그래서였군. 어째 별장 치고 외형이 너무 딱딱하다 싶더니....”

이제 생각났다. 가평군청의 건축계장인가?

하여튼 그 인간이 다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맡겼더니, 이 따위로 건물을 지어 놓았지 뭔가.

백준열이 아무리 미적 감각이 떨어져도, 이건 아니지 싶었는데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디링! 견신이 고개 숙여 사과합니다. 그 동안 당신을 오해했다고 말입니다.

“뭐?”

-디링! 당신이 견족을 비하하는 발언을 자주해서, 견신이 그 동안 당신 욕을 많이 했답니다. 사과의 의미로 견신이 「개치료제-알약」을 제공합니다.

그 소리와 함께 내 손에 갈색 알약 하나가 쥐어졌다.

이어 견신 시스템이 「개치료제-알약」에 대한 정보를 알아서 내 머릿속에 주입시켜 주었다.

“그러니까 이 알약 하나면 비스마르크가 바로 정상으로 돌아 온 단 거네?”

견신 시스템의 정보에 다르면 「개치료제-알약」은 개에게 있어서 만병통치약이었다.

“깨애앵!”

어디가 많이 아픈지 신음 소리를 내는 비스마르크.

“자아. 입 벌려.”

당연히 내가 입 벌리란다고 입을 벌릴 개가 어디 있겠....있네. 하아!

비스마르크가 주둥이를 내 쪽으로 향하더니, 턱 관절을 움직여 쩍 하니 입을 벌렸다.

나는 그런 비스마르크 입 안에다가 알약을 던져 넣었다.

개가 삼키기 좋게 최대한 안쪽으로 말이다. 그리곤 비스마르크에게 말했다.

“삼켜!”

꿀꺽!

그랬더니 비스마르크가 그 알약을 삼켰다.

그걸 보고 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비스마르크에게 물었다.

“너 내 말 알아듣지?”

끄덕끄덕!

“허얼!”

아무래도 얘가 진짜 내 말을 알아듣는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말하는 개」라는 스킬이 있었지 참.

이 스킬을 사용하면 내가 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했던가?

‘어디 지금 써 볼까?’

나는 견신 시스템이 알려 준대로 「말하는 개」 스킬을 비스마르크에게 사용한 후 녀석에게 말했다.

“비스마르크. 내게 말해 봐.”

=뭔 소리래?

“허억!”

비스마르크가 진짜 말을 했다.

어찌나 놀랐던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던 나는, 벌러덩 뒤로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긴 개가 말을 하는 데, 이렇게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지.

* * *

=그거 먹고 나니 하나도 안 아파. 신통방통하네. 고마워. 쭌!

“허얼....”

비스마르크가 날보고 하는 말을 들으며, 한 동안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했다.

=할 만한 암컷이라도 봤나? 쭌. 왜 침을 질질 흘리고 지랄이야?

비스마르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아무래도 나를 쭌이라고 부르는 듯 했다.

그래서 녀석에게 물었다.

“내가 쭌이야?”

=어. 처음 만난 날, 날보고 쭌이라고 부르라며?

그 말을 듣고 보니 생각났다.

백준열이 비스마르크를 만나 그의 이름을 지어 줄 때 녀석에게 분명 자신을 쭌이라고 부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견신 시스템의 「말하는 개」 스킬은 개 말은 알아들어도 그 개와 소통은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하는 개」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기 전까지는....”

한데 지금 나는 비스마르크와 소통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건 아예 대화를 나누는 수준이 아닌가?

그 의문에 대해 견신 시스템이 아닌 견신의 전언이 답변을 내 놓았다.

-디링! 견신이 비스마르크와 당신의 끈끈한 우정에 감격해서 특별히 둘에 한해서, 당신이 「말하는 개」 스킬을 쓸 경우 서로 대화가 가능하게 배려를 해 주신 겁니다.

“아아!”

그제야 비스마르크와 내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이유를 알게 됐다.

하지만 견신의 전언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디링! 앞서 말했지만 견신은 당신을 오해 한 것에 대해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합니다. 해서 사과의 의미로 당신에게 아이템 하나를 선물하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지금 받으시겠습니까? [Y/N]

견신 전언의 선물이란 말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히 준다는 데 받아야지. 그걸 말이라고....

“예스, 예스!”

견신의 의중까진 아직 파악을 못했지만, 워낙 잘 퍼주는 분이 아니신가?

원래 내게 뭘 공짜로 주는 사람은 ‘분’이고 내 것을 뺏어가는 사람은 ‘놈’인 법이다.

‘개코! 개코! 개코....’

나는 이번에도 저번 「개 목걸이」아이템을 획득 했을 때처럼, 속으로 내가 받았으면 하는 아이템을 계속 되뇌었다.

그 기대를 견신은 이번에도 배신하지 않았다.

내가 바라 마지않았던 「개코」아이템을 견신이 준 거다.

‘견신님. 정말, 정말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아니지. 월월월월!’

바로 견신 시스템의 「개코」아이템에 대한 세부 정보가 내 머릿속에 주입 되었다.

그게 끝나자마자 내 눈앞에 바뀐 상태창이 떴다.

[이름: 백준열(Lv2)]

[나이: 27]

[보유 아이템: 「개눈깔」(Up), 「개좆」(Up)], 「개목걸이」(Up), 「개코」(Up)

[보유 스킬: 「말하는 개」(일,Up), 「충견」(일,Up), 「개 끗발」(역,Up)

[특성: 개(1차Up완료)]

*냄새를 잘 맡습니다.*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

*행동이 빠릅니다.*

*잘 짖습니다.*

*교미 합니다.*

[개지수: 50]

보유 아이템 항목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개코」아이템.

「개목걸이」아이템에 이어, 「개코」아이템을 획득하면서, 나는 냄새로 상대에 대한 더 많은,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를 잘 이용한다면 앞으로 견신 시스템이 내 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게 한결 수월해 질 건 자명한 일이었다.

* * *

=쭌. 너 미쳤냐?

나의 상념을 비스마르크의 목소리가 확 깼다.

나는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을 지우고 녀석에게 말했다.

“아픈 건 괜찮고?”

=어. 니가 준 거 먹고 나니 하나도 안 아프다니까. 아까 말했잖아. 우씨! 한 말 또 하게 만드네.

말을 해 보니 비스마르크는 생각보다 까칠한 녀석이었다.

“잘 됐네. 근데 저기 저 멧돼지는 뭐야?”

내가 죽어 있는 멧돼지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묻자, 녀석이 아주 득의만만해서 대답했다.

=내가 물어 죽였지. 새끼가 겁도 없이 덤비더라고. 좆만 한 게.

좆이 저렇게 크진 않지. 코끼리 좆도 저 멧돼지 보다는 한참 작다.

“너 참 말을 잘하는구나?”

=당연하지. 내 전 주인이 무려 언어학자였는데.

“전 주인?”

순간 머리가 깨질 듯 아프더니, 그 뒤 마치 장막 속에 감춰져 있던 진실 하나가 툭 튀어 나왔다.

“염정연....내 이모....”

백준열에게 비스마르크를 선물해 준 사람이다.

백준열의 외가 쪽으로 유일한 혈육이었는데, 미국 유학을 다녀 온 사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주르르!

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분명 나는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다. 하지만 눈물이 났다.

아마 백준열의 몸이 그의 이모를 그리워하고 사무치게 보고 싶은 걸 테지.

백준열의 모친은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 그러니까 지금 백승렬 회장의 부인은 백준열의 친모가 아니다.

아이러니한 건 백준열 위의 두 형인 백준경과 백준호 역시, 현 삼명그룹 사모의 친 자식들이 아니란 거다.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법적 부인인 서지현은 딸만 셋을 낳았는데, 그 중 둘은 외국에서 살고 있고 국내 하나 있는 딸은, 현재 삼명그룹에서 일하고 있었다.

바로 삼명호텔 백지연CEO!

삼명호텔 자체가 국내 최고 호텔이라 그렇게 티가 나진 않지만, 그래도 백지연 대표의 경영 능력은 재계에서도 인정하는 바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삼명가家 사모님은 자기 딸인 백지연이 백승렬 회장 뒤를 이어 삼명그룹 회장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그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백승렬 회장은 남아선호사상이 그 누구보다 강했고, 이미 백 회장의 많은 지분이 아들들에게 넘어가 있는 상태였으니까.

실제 그가 죽고 나서, 서지현과 백지연 모녀는 백준경과 백준호 형제 등살에 못 이겨, 결국 해외로 나가 살았다.

아마 그녀들이 해외로 가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백준열처럼 실종 처리 됐다가, 나중에 자살로 사건 종결 되는 처지가 됐을 거다.

백준열의 생모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백준열이 이모인 염정연과 달리, 기억 차단의 장막을 몇 개나 더 쳐 두어서 말이다.

뭐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나도 딱히 백준열의 생모에 대해 알고 싶지는 않다.

이모인 염정연의 기억만으로도, 이 몸이 이렇게 힘드니 말이다.

염정연은 모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다.

그런 그녀가 커다란 세파트 한 쌍을 키웠고, 그 2세 중 한 마리가 바로 비스마르크였던 것.

안타깝게도 염정연이 교통사고로 죽을 때, 그녀가 몰았던 차에 그녀의 애견 두 마리도 같이 타고 있었고, 주인처럼 그 개들도 전부 죽었다.

그러니까 그때 비스마르크도 부모견을 모두 잃은 것.

=미안하다. 전 주인 얘기를 괜히 해서.

비스마르크는 내가 우는 걸 보고 사과하며, 혀로 내 눈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때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울려 왔다.

-「말하는 개」의 스킬 사용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컹! 컹! 컹!....”

그 뒤 비스마르크의 목소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개 짖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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