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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21화 (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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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준호!”

내 핸드폰에 뜬 이름.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둘째 아들이자 삼명생명의 부대표다.

백준열의 바로 위, 형이기도 하고.

내가 알기로 백준호는 이때 꽤 많은 삼명생명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삼명생명의 대표가 되기도 한 인물이고.

이때만 해도 장남인 백준경과 삼명그룹 회장 자리를 두고, 팽팽하게 기 싸움을 하고 있었던 백준호.

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백준경에게 약점을 잡히고 만다.

그 뒤 부친인 백승렬이 삼명그룹을 백준열에게 넘기려는 낌새가 보이자, 백준경과 손을 잡고 부친을 죽이고 동생까지 제거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작자다.

그 덕분에 욕은 자신이 다 들으면서, 백준경을 삼명그룹 회장에 추대하고 자신은 부회장이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삼명그룹 2인자였지만, 삼명물산에 다녔던 나도 알았다.

그게 허울 좋은 자리라는 걸 말이다.

실제로 나도 본적이 있었다. 무슨 일로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백준경 회장이 삼명물산 본사 1층 로비에서, 부회장인 백준호의 뺨을 때리는 걸 말이다.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백여 명도 넘었다.

백준경 회장도 주위에 사람이 많은 걸 알았다.

알면서 그랬다는 건 그 만큼 그가 동생인 백준호를 하찮게 여기고 있단 얘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퇴사하기 전까지도, 백준호는 삼명그룹의 부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보세요?”

백승렬 회장과 달리 백준호 전화까지 벨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받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일부러 벨이 10번 넘게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전화를 받았다.

그 사이 백준호가 전화를 끊어 주면 고맙고.

평소 남이나 마찬가지인 백준호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는 것 자체가, 뭔가 그쪽에 아쉬운 게 있어서다.

=왜 이렇게 전화 안 받아?

신경질 적인 백준호의 목소리. 막상 듣고 보니 백준열의 기억 속에도 있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백준열이 유학 갔다가 와서 엔터 사업에 성공하자, 그 뒤부터 그 만보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백준호였다.

“운전 중이야. 할 말만 빨리 하지?”

개새끼 백준열은 인간관계에서도 호불호가 확실한 놈이었다.

자기 싫어하는 백준호와 관계 또한 좋을 리 없었다.

=말하는 거 보소. 하아. 새끼가 형님한테....아니다. 개새끼한테 뭐라고 하는 내가 미친놈이지.

백준호도 백준열을 대하는 데 있어 말에 거침이 없었다.

평소 다른 사람이 ‘개새끼’라고 하면 못 참고 지랄 발광하는 백준열이지만, 백준호가 개새끼라고 하니 아무 감흥도 없었다.

=너 아버지가 시킨 일 잘하고 있지?

“당연하지.”

보아하니 백준호가 삼명전자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힘들면 얘기 해. 거기 실무자가 알고 보니 내 처남과 같은 MIT출신이더라고.

“도움은 사양. 관심은 빨리 꺼주고. 용건이 그게 다면 끊는다.”

백준호의 가소로운 소리에, 나는 평소 개새끼 백준열이, 이 상황에서 할 만한 말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입밖으로 내뱉었다.

=야! 어디서 형이 말하는데. 너 이 개새끼. 내 말 잘 들어. 아버지가 널 좀 예뻐라 한다고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 모양인데. 그러다 훅 간다.

내가 백준열스럽게 말하자 백준호도 여지없이 자신의 본색을 드러냈다.

문제는 장차 미래에 내가 좀 전 백준호의 말처럼 된다는 거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알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운명이 몇 년 뒤, 형제들에 의해 참혹히 죽는 거라면 그 기분이 어떨까?

“진짜 엿 같네.”

=뭐, 뭐? 엿? 야 이 개....

나는 백준호가 더 내 욕을 하기 전에 먼저 전화를 끊어 버렸다.

* * *

어쩌면 좀 전 백준호는 나름 백준열에 대해 호의를 가지고 전화를 건 것일 수 있었다.

백준호가 정말 삼명전자를 가지고 싶었다면, 그의 성정 상,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내 앞에서 얼마든지 웃을 수 있는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백준열의 기억이 기반이 된 나의 자아가, 그런 백준호의 호의에 내 통제가 어려울 만큼의 거부 반응을 보였다.

백준열은 벌레를 지독히 싫어했다. 하지만 그 벌레보다 더 싫은 게 백준호였고, 그 백준호보다 더 무섭고 징글징글한 인간이, 바로 큰형인 백준경이었다.

유년 시절 백준열이 그 두 형들에게 당한 치욕스런 괴롭힘과 따돌림, 무시, 천대는 트라우마가 되어 그의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 되어 있었다.

“그래서 백준열이 더 기를 쓰고 삼명그룹 회장이 되려 한 거로군.”

백준열은 두 형에게 꼭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깔보고 업신여기든 자기가, 그들을 짓밟고 당당히 그들 위에 서는 걸 말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삼명그룹 회장이 되어야 했다.

백준열이 왜 그리 기를 쓰고 삼명그룹 회장이 되려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으윽!”

너무 과도한 기억을 끌어 낸 탓일까?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고 나는 제대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마침 국도변에 휴게소가 보여서 그쪽에 차를 댔다.

운전석의 등받이를 뒤로 넘기고 눈을 감은 채, 가급적 편안하게 누워 있자 점점 두통이 사그라졌다.

“휴우....”

여전히 지끈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을 거 같았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이 차 안에는 그가 복용하는 두통약이 구비 되어 있었다.

“찾았다.”

운전석 옆 조수석 앞의 데시보드 커버를 열자, 그 안에 비상약통이 있었고 그 통 안에 두통약이 있었다.

하지만 차 안에 물이 없었고 별수 없이 두통약을 챙긴 나는, 차에서 내려서 휴게소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나는 생수를 챙겨 계산대로 직행했다.

지금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손에 든 두통약을 먹는 일이었다.

“500원. 계산하겠습니다.”

내가 내민 카드를 받은 카운터 남자 점원이 막 계산을 하고 내게 물었다.

“영수증 드릴까요?”

이때 나는 입 안에 두통약을 넣고 막 딴 생수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해서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마침내 두통약을 먹는 데 성공한 나는, 먼저 대답을 하지 못한 카운터 남자 점원에게 사과부터 했다.

“아아. 미안합니다. 영수증은 됐습....어어!”

근데 왜 내 눈앞에 국민배우 김명석이 서 있는 거지? 지금 촬영 중인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그런 내 행동에 김명석이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손님. 뭐 잃어버리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뇨.”

아무리 살펴도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지금은 10년 전이다.

김명석이 유명해 진 것은 9년 전이었고.

그 전에 김명석은 오랜 무명으로 배우를 그만둘 결심을 했었다고 했다.

‘아마 지금이 그때인 거 같은데....’

나는 김명석에게 카드를 돌려받고 편의점 밖으로 나가지 않고 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더 살 것이 있는 냥.

* * *

편의점 한쪽으로 들어간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김 비서에게 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김명석이라니....”

이건 길가다가 금화도 아닌 금괴 하나 주운 거나 진배없었다.

물론 아직까지 확실한 건 없다.

이때 김명석에게 소속사가 있었을 수도 있었고.

뭐 있다고 해도 내가 데려 와야지.

JYB엔터 대표가 무명 배우 하나 빼내 오지 못할까.

“맞다. 내가 그 유명한 개새끼 백준열이지.”

다른 연예 기획사에서, 그 소속 연예인 교묘히 빼내는 데 도가 튼 게 백준열이었다.

실제 현 JYB엔터 소속 연예인 중 70%가, 그렇게 백준열이 빼낸 연예인들이니 더 말해 뭐할까.

일단 내가 알고 있는 김명석은 메소드 연기에 일가견이 있었다.

“배역 연구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소화불량과 식도염을 얻을 정도라고 했던가?”

그런 배우를 찾는다면 영국 배우 크리스찬 베일 정도?

나는 한 동안 김명석의 미래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편의점 안을 어슬렁어슬렁 거렸고, 그런 나를 김명석이 점차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할 무렵, 내 핸드폰에 기다리던 문자가 왔다.

확인하니 역시나 김 비서가 보낸 보고서.

바로 김명석에 대한 정보였다.

JYB엔터가 왜 국내 3대 연예기획사 중 하나인지 증명하듯, 연예인들에 대한 정보만큼은 독보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었다.

“어디 보자.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하고 SVS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군. 근데 신인상은 MVC에서 ‘뜨거워서 좋아’로 받았네. 호오. 소싯적 VJ에 지원한 흑 역사가 있어?”

내가 김 비서가 보낸 문자 보고서에 푹 빠져 있을 때, 카운터의 김명석이 나와서 내게 말했다.

“손님. 뭐 찾으시는 거 있으십니까?”

말은 정중했지만 그 속에 뼈가 있었다. 눈에 거슬리니까 살 거 있으면 빨리 사고, 편의점을 그만 나가 줬으면 하는.

“네? 아아. 네. 찾는 거 있어요.”

나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손가락으로 김명석을 가리키며 이어서 말했다.

“바로 당신!”

“뭐, 뭐요?”

자기보다 확실히 어려 보이는 내가 손가락질을 하니, 김명석의 얼굴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그 모습이 마치 내년에 김명석이 주연을 맡았던 ‘충무공 이순신’의 이순신이 판옥선에서 추상같이 호령할 때 모습 같았다.

하지만 잔뜩 인상 쓰고 있는 김명석의 얼굴을, 단박에 풀어 줄 키워드를 나는 알고 있었다.

“혹시 ‘뜨거워서 좋아’에 나온 김명석 배우님 아니세요?”

“헉! 저, 저를 아세요?”

누가 천생 배우 아니랄까? 그야말로 순식간에 얼굴색을 바꾸는 김명석.

“그럼요. 저 김명석 배우님 찐 팬인데. 예전에 VJ하셨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 그건....”

나의 VJ라는 말에 김명석이 곤욕스런 얼굴이 됐다.

“알아요. 배우님 성우 쪽으로도 진로를 잠시 생각했던 시절에 잠깐 VJ로 활동한 거.”

“허얼.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긴. 다 그쪽 정보를 봤으니 알지.’

김 비서가 보내 준 김명석에 대한 정보가 이렇게 내 손안에 있는 한, 그는 부처님 손바닥 안에 손오공이나 다름없었다.

* * *

김 비서의 보고서 문자 중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그가 어디 소속 되어 있냐는 거였다.

‘완전대박이네.’

그러니까 한 달 전에 김명석은, 기존 그가 소속 되어 있었던 배우 기획사와 상호 합의 하에 전속계약을 해지 한 상태였다.

그 말은 그를 당장 JYB엔터로 데려 가도 된다는 얘기.

국도변 편의점이라 손님이 뜸한 편이었지만, 시간이 정오가 되어가자 사람들이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나는 바빠지기 시작한 김명석을 도와주며 그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됐고, 점심 타임인 12시와 1시가 지나면서 좀 한가해지자, 김명석이 컵라면과 편의점 도시락을 챙겨왔다.

“먹어.”

“잘 먹을 게요.”

재벌 3세 백준열은 몰라도, 나는 컵라면과 편의점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 보니...’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인스턴트 라면은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

당연히 편의점 도시락 따윈 쳐다도 안 봤고.

그래서 그런지 처음 먹을 때 강하게 거부감이 들긴 했다.

하지만 이전 삶의 나는 그것들을 즐겨 먹었기에 그대로 밀어 붙여버릴 수 있었다.

“미안하다. 대접할 게 이것 밖에 없어서.”

김명석 배우는 자신의 찐팬이라는 내게 정말 미안해했다.

“아니에요. 맛만 있구먼. 형님도 드세요.”

“그래. 잘 먹어주니 고맙네.”

우리는 맛있게 점심을 먹었고 후식으로 편의점 커피를 즐겼다.

김 비서가 준 정보가 있어서, 나는 한결 수월하게 김명석과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한데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결국 내 정체를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가만. 너 차타고 온 거 아냐?”

“네.”

‘그럼 이런 국도변의 휴게소를 차타고 오지 않으면 뭘 타고 오나? 아아. 오토바이도 있겠네.’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얼굴이 확 굳어진 김명석이 날보고 말했다.

“너 누구야?”

“네?”

“밖에 차라고는 저 차뿐인데....”

김명석이 편의점 창 너머에 휴게소 주차장에, 달랑 한 대 서 있는 벤츠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젠장....’

그냥 벤츠도 아니고 국내 몇 대 없다는 벤츠 메이바흐 57S다.

그걸 새파랗게 젊은 내가 탄다는 건....

“하아. 들켰네.”

나는 그냥 이실직고하기로 했다. 명함케이스를 꺼내 그 안의 명함을 김명석에게 건넸다.

“....”

그 명함을 확인한 김명석이 두 눈이 동그래지고 입을 ‘쩌억’ 벌린 채 나와 명함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다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내뱉었다.

“진, 진짜....JYB엔터 대표?....그 개새끼라고....네가?”

“형. 사람 면전에 두고 개새끼가 뭡니까?”

김명석의 말에 내가 투덜거리자, 그가 흠칫 하더니 말투를 싹 고쳐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경황중이라 말실수를 좀 했습니다.”“뭘 또 그렇다고 말을 높이고 그래요. 형 동생하기로 해 놓고.”

“그, 그것은....”

“저 개새끼지만 내 배우는 안 뭅니다. 내가 개새끼란 걸 아는 걸 보니, 내가 또 ‘엔터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린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네. 뭐....”

나는 거두절미하고 김명석에게 화끈하게 얘기했다.

“저하고 같이 일해요. 형.”

“....”

그런 나의 제안에 한 동안 황당해 하던 김명석. 그가 갑자기 복잡해진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사실 그 바닥 떠날 생각이었다. 곧 아이는 태어나는 데 와이프 산부인과 갈 돈도 없고. 근데 너라면....확실하게 날 성공시켜주겠지?”

“그럼요. 형을 10년 안에 국민 배우로 만들어 드릴게요.”

확신에 찬 내 대답이 마음에 든 듯 모양이다. 김명석이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백 대표님.”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김명석 배우님.”

나는 김명석이 내민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며 웃었다. 그런 내 웃음이 전염이라도 된 듯 김명석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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