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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준열이 이미 한물간 배우인 박지수를 굳이 자신의 여자로 만든 이유는....
“그녀가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까지, 그 새끼 로망이었기 때문이라고?”
당시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박지수는 그의 첫 몽정과 첫 딸딸이의 여주인공이었다.
그래선지 몰라도 원래 백준열은, 박지수를 자신의 첫 경험의 상대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 인기가 너무 많았던 그녀는 백준열이 아니라 백승렬 회장도 건드리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백준열이 박지수를 유혹해서, 그녀와 첫 관계를 맺을 정도로 그때 잘난 것도 아니었고.
결국 백준열은 다른, 아주 특별한 여자와 첫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여자가 누군가 하면....
“미친....”
이건 가히 충격적이다 못해 엽기적이며, 반 패륜적이었다.
“진짜 개새끼네.”
백준열도 이건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 중 하나였다.
“이건 내 입으로도....차마 말 못하겠다.”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는 게 좋겠다. 내가 그 여자를 만났을 때 말이다.
그 말은 나와 그 여자가 조만간 만나게 되어 있단 얘기다.
여하튼 백준열에게 박지수는 추억 속 로맨스 여인이었고, 가장 섹스하고 싶은 여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녀를 처음 안는 순간, 백준열은 자부했다. 여태 자신이 한 결정 중 박지수를 자신의 여자로 삼는 게 탑 쓰리 안에 든다고 말이다.
백준열의 그 기억을 떠올려 본 나는, 그가 왜 그런 말했는지 이해가 돼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정기업 손경미 대표처럼 박지수도 명품 보지, 즉 명기를 소유한 여자였군.”
평생 한 명의 명기를 접해 보지 못하고, 삶의 종지부를 찍는 남자가 부지기수다.
명기를 소유하고 싶은 것이 남자들의 욕망이 되었고, 대부분 최고 권력자들이 명기녀를 취했다.
하지만 그들은 명기에 어울리는 악공은 못 됐다.
고로 명기를 가졌지만 제대로 연주하고 즐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명기 둘을 알게 됐고, 하나는 이미 내 소유이고.
또 하나는 언제든 내가 불러내서, 연주하고 즐길 수 있는 관계였다.
백준열의 기억 속 박지수와의 섹스 경험들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대부분 자기만족에 그친 섹스였다.
이전 백준열은 박지수란 명기를 연주 할 자격도 없는 악공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나는 명기인 그녀를 잘 연주 할 자신이 있었다.
“쩝!”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그녀 집에 가서 그녀와 질펀하게 섹스 한 판을 벌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내일 내 스케줄이 다 꼬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다음 주 금요일까지만 참으면....”
나는 일주일만 참자고 생각하며 룸살롱 ‘데미안’을 나섰다.
나의 등장에 가게 앞에 대기 중이던, 내 전용차의 운전기사가 허겁지겁 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아마 내게 차문을 열어 주려는 모양이었다.
“됐어요.”
나는 그런 운전기사를 만류하고 내 손으로 그 차 문을 열고 차 안에 탔다.
곧바로 운전석에 돌아 온 운전기사가 황급히 사과를 해 왔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니에요. 이 시간까지 고생 하시는데....내가 얘기 해 놓을 테니 내일은 하루 푹 쉬세요.”
“아이고. 아닙니다.”
JYB엔터의 임원 운전기사들은 전부 계약직이었다.
예전의 백준열은 자기 회사 직원들을 자기 노예처럼 여겼다.
그런 녀석이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에 차별을 두지 않을 리 없었다.
‘아니. 아주 모욕을 했군. 하여튼....’
백준열이 개새끼인줄 익히 알고 있지만, 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녀석이 살아 온 삶 그 자체가, 나로서는 영 마땅찮았다.
“뭐 지금부터 싹 다 바꾸면 되니까.”
“네?”
“아닙니다. 근처 아무 호텔로....아니 힐튼 호텔로 가주세요.”
백준열의 기억에도 이 시간에 마땅히 갈만한 곳은 없었다.
그래서 인근 호텔에서 대충 밤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어차피 아침에 깨면 계약 문제로 마크를 만나야 했다.
그렇다면 아예 마크가 묵고 있는 호텔로 가서 거기서 묵으면, 시간도 아끼고 그 시간 동안 잠도 더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시간 마크는 딴 호텔에서 김 비서 연기를 하고 있는 호스티스와 뜨거운 시간을 갖고 있겠지만, 깨면 힐튼 호텔로 돌아 올 테니 그때 약발이 제대로 먹힌, 그와 계약을 해 버리는 게 나한테도 여러모로 유리할 것이고.
나를 태운 차가 곧바로 힐튼 호텔로 향했고, 호텔에 도착한 나는 서둘러 체크인 하고, 내게 배정 된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웠다.
씻고 자야 하는 데 막상 호텔 방에 들어오자 모든 게 귀찮았다.
그 만큼 피곤한 하루였고 밀려오는 수마에 별 다른 저항 없이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으으으....추워.”
마크는 잠이 더 왔지만 몸이 떨려 결국 잠에서 깼다.
“응?”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자신이 알몸으로 욕실 욕조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마크는 안 그래도 지끈 거리며 아픈 머리를 열심히 돌려서,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해 봤다.
“아아....”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 된 마크는 갑자기 헤벌레 웃었다.
간밤에 킴과의 뜨거웠던 섹스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의 생각대로 킴은 진짜 죽여주는 여자였다.
대체 몇 번의 사정을 했는지 기억도 없었다.
짜내고 짜내다가 더는 안 나올 거 같아, 더는 못하겠다며 킴을 밀쳐 냈던 마크.
그리고 도망치듯 여기 욕실로 들어 왔는데, 그런 그를 쫓아와 기어코 입으로 한차례 더 사정을 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그때 킴이 해 준 똥까시였다.
똥까시는 처음인 마크는 너무 좋아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니 어떻게 더 버티랴. 결국 정액을 토해냈고 그 뒤 기억은 나지 않았다.
아니 더 할 필요도 없었다. 욕조 안에서 뻗어 잤고 지금 깼으니까.
“으윽!”
온몸이 쑤셨지만 욕조 옆 손잡이대를 집고 몸을 일으킨 마크는 욕실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어떻게 침대까지 이동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푹신한 침대에서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그런 그를 깨운 건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였다.
“Oh Shit!”
짜증 가득한 마크가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호텔 객실 전화를 받았는데, 프런트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일행인 수행원 테일러가 마크가 잘 있는지 체크를 부탁했다는 것.
그제야 정신이 든 마크는 30분 뒤, 로비에서 보잔 다고 테일러에게 전해 달라고 프런트에 말하고, 곧장 몸을 일으켜서 욕실로 향했다.
씻고 옷을 챙겨 입은 마크가 호텔 로비로 내려가자, 거기 테일러가 환한 얼굴로 그를 맞으며 말했다.
“마크. 얼굴이 핼쑥한 걸 보니 어제 제대로 즐긴 모양입니다?”
테일러의 그 말에 마크가 피식 웃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테일러.”
실제 테일러의 얼굴도 핼쑥했다. 그때 그들 앞에 인상 험악한 거구의 한국인이 불쑥 나타났다.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혹시 백 대표가 보낸 사람입니까?”
“....”
한국말로 테일러가 묻자 그 험상궂게 생긴 한국인이 과묵하게 입을 꾹 다문 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백준열이 보낸 사람을 따라 호텔 입구를 나섰고, 거기 대기 중인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들이 묵고 있던 힐튼 호텔에 도착해서 로비로 들어섰을 때, 거기 백준열이 무슨 세일즈맨도 아니고 직접 서류가방을 든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으음....”
습관적으로 잠에서 깼다.
어제도 그렇고, 백준열은 보통 아침 8시면 하루를 시작했다.
그 버릇 때문에 어제 새벽에 잠이 들었건만, 더 자지 못하고 정신이 든 나는, 더 잘까 하다가 그냥 몸을 일으켰다.
‘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고, 아니지.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룸서비스로 몇 가지 주문을 하고는 욕실로 향한 나는, 새벽에 씻지 못한 몸부터 깨끗이 씻었다.
막 씻고 나오자 객실 벨이 울렸고, 내가 룸서비스로 시킨 블랙퍼스트를 먹었다.
그 사이 내가 미리 프런트에 얘기했던 또 다른 룸서비스, 바로 오늘 내가 입을 옷들이 도착했다.
다른 특급 호텔과 마찬가지로 힐튼 호텔에서도 내 취향의 속옷은 물론, 양말과 내가 오늘 입을 캐주얼정장을 구해주었다.
그 사이 나는 몇 군데 더 전화를 걸었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그제야 느긋하게 티타임을 가졌다.
객실이지만 스위트룸이라 전망 하나는 끝내줬다.
그 전망에 한 동안 멍 때리고 있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흐른 모양이다.
전화가 걸려왔고 그 전화를 받은 나는 곧장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대표님!”
거기서 내 히든 비서랄까?
“어어. 박 비서. 쉬는 날 불러 미안 해.”
“아닙니다. 말씀하신 계약서류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키는 나보다 좀 작지만 누가 봐도 잘 생기고 몸매도 좋은 젊은 남자.
그는 김 비서 말고 백준열의 또 다른 비서인 박재범이었다.
백준열은 JYB엔터 말고 일종의 자산운용사라 볼 수 있는 ‘블랙머니’라는 사업체를 운영 중이었다.
직원이래야 5명밖에 되지 않지만, 거기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여느 대기업 못지않았다.
그러니 주위에서 백준열을 ‘투자의 신’으로 부르는 거고.
나는 박 비서가 건네는 서류가방을 받아 챙기며 말했다.
“수고 했어. 그만 가 봐.”
“....”
백준열이었다면 자기 편리를 위해 박 비서를 계속 붙잡아 뒀을 거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박 비서는 내 말이 진짜인지 한 동안 머뭇거리다가, 내가 거듭 손짓을 하며 가라고 하자, 그제야 몸을 돌려서 휑하니 호텔을 빠져 나갔다.
그 뒤 로비에서 10여분 쯤 기다렸을까?
내가 기다리고 있던 마크와 수행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몰라서 내가 보낸 양태석이 마크와 그 수행원을 잘 데려 온 거다.
당연히 양태석은 자기 일을 하고 나자 쿨하게 자기 갈 길을 갔다.
“백!”
“어땠어? 죽이지?”
이미 양태석을 통해서 김 비서를 가장한 호스티스가, 마크를 뿅 가게 만든 걸 알고 있는 나다.
마크는 그런 식으로 대뜸 말하는 나를 보고 많이 당황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생각할 시간 따윌 줄 생각이 없었다.
“자아. 이제 줄 건 줬으니 받을 건 받아야지. 안 그래?”
나는 마크와 같이 그가 묵고 있는 객실로 향했다.
거기서 마크와 마주 앉은 나는 그에게 계약서류를 내밀었다.
“확인하고 사인해.”
마크는 삼명전자에서 제시한 반도체 기술 이전료가 500만 달러임을 확인하자 군소리 없이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가 한국에 올 때 목적한 바를 이뤘다보니, 회사 일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야 고맙지.’
이로서 나는 중간에서 7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그렇게 별 진통 없이 원만하게 협상이 타결 되었고, 같이 점심이라도 먹자는 내 제안을 마크가 딱 거절했다.
뭐 이걸로 자기 볼일은 다 봤다 이거지.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마크는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긴 밤새 쪽쪽 빨렸으니 피곤 할만도 하지.’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침실로 향하는 마크를 보고 몸을 일으켜서, 그와는 정반대로 그 방을 빠져 나와서 가벼운 걸음으로 힐튼 호텔을 나섰다.
* * *
백준열은 주말에는 가급적 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여기서 가급적이란 사전적 의미는 ‘할 수 있으면’, 또는 ‘형편이 닿으면’으로, 그는 그냥 주말에도 개지랄을 하러 다녔다고 보면 됐다.
그게 개새끼 백준열에게는 쉬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백준열과 다르게 주말에 진짜 쉬고 싶다.
다행인지 백준열에게는 서울 주변으로 별장을 다섯 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백준열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은 당연히 그게 다가 아니다.
“와아....”
서울 강남에만 빌딩 5채가 그의 소유고 서울 전역으로 20채의 건물을 더 가지고 있었다.
백준열은 주식 투자 말고도 부동산 쪽 투자에서 일가견이 있었던 것.
실제 그가 산 건물들은 평균 3.5배나 시세가 올라 있었다.
나야 백준열의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니, 그 기억에 기분이 확 좋아졌다.
그때 김 비서에게 문자가 왔다.
확인하니 어제 내가 시켰던 일에 대한 결과를, 짧게 보고서 형식을 빌려 문서파일로 보내 놨다는 거다.
바로 확인에 들어간 나의 입에서 절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와아아....”
빙의물 소설에 보면 주인공이 제일 먼저 하는 게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새로운 주체적인 나를 확립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빙의되기 전 자신부터 찾아야 하는데, 나 역시 그걸 했을 뿐이다.
바로 김 비서에게 흥신소를 통해 지금의 나, 즉 ‘김성훈’을 찾아보게 한 거다.
한데 이때 당시 내가 살았던 곳에 그 김성훈이 없단다.
마치 드라마에서 배역 하나를 빼 버린 것처럼 싹 사라진 것.
그런데 또 신기한 게 내 부모님은 거기 살고 계신단다.
단지 그들에게 김성훈이란 아들이 없다 뿐이지.
“잘 됐네.”
뭔가 좀 서운하면서도 마음은 홀가분했다.
이로서 내가 김성훈이 아닌 백준열로 살아갈 명분이 더 확실해졌다.
나는 서울 외곽 별장 중 여기서 거리상 가장 가까운 가평 쪽 별장으로 가서 남은 주말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새벽에 나를 호텔까지 태워 준 운전기사에게, 차를 그냥 두고 가라고 했기에 나는 그 차를 몰고 가평 별장으로 출발했다.
“이야....”
벤츠 메이바흐 57S는 내가 죽기 전 많이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운전해 보는 건 처음이다.
확실히 비싼 차가 비싼 값을 했다. 이전 삶에서 내가 몰아 본 차들 중 이 차에 견줄만한 차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좋군. 좋아.”
그래선지 가평까지 드라이브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한데 그 기분을 갑자기 걸려 온 전화 한통이 망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