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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17화 (1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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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여기 마담은 내 운전기사인 양태석과 아는 사이였다.

양태석은 워낙 과묵한 사람이라, 그 입으로 직접 확인하진 못했는데 마담의 말에 따르면 그와 한때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양태석은 여기 오는 걸 상당히 꺼려했다.

때문에 내가 여기 올 때는 다른 기사와 오거나 아니면 직접 운전해서 왔었다.

“양 기사는 그 여자만 데려다 주고 바로 퇴근 할 겁니다.”

“대표님이 양 기사보고 여기 좀 있다가 가라고 하면 안 돼요?”

“네. 안 됩니다.”

나의 칼 거절에 황당한 얼굴의 마담. 그런 마담에게 내가 물었다.

“정마담은 퇴근 했는데 직장 상사가 부르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요?”

“엿 같겠죠.”

“양 기사 기분 엿 같이 만들고 싶습니까?”

“아, 아뇨.”

마담도 양태석이 성질부리는 건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하긴 대한민국 최대 조폭 조직의 No2가 양태석인데, 일개 룸빵 마담이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뭐 좋을 게 있겠나.

나는 그런 마담 옆을 지나쳐서 이곳 룸빵 VIP룸으로 향했다.

매번 왔었던 곳이라 그런지 이곳이 내 집 마냥 편안하게 느껴졌다.

VIP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바로 못 볼꼴을 봤다.

마크와 그 수행원이 미인 한 명 씩을 끼고 벌써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벌써 그녀들과 키스를 하고 그녀들의 몸을 조몰락거리고 있었던 거다.

“크음....”

내가 나타나자 그래도 마크는 체면치레라도 하려는 듯 미인에게서 떨어졌는데, 그 수행원은 아주 미인에게 빠져서 눈치도 없이 하던 짓을 계속 하고 있었다. 아직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김 비서 안 불러도 되겠는데?”

마크의 행태에 내가 비아냥거리며 말하자, 그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너는 맨날 빵만 먹냐? 파스타도 먹고 스프도 먹는 거지.”

“허얼....”

이런 걸 두고 내로남불이라고는 건가? 마크는 자기한테 유리하게 갖다 붙이는데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저런 놈에게 김 비서를....어림 반 푼어치도 없지.’

나는 싹 얼굴을 바꾸고 마크 옆으로 움직였다. 어째든 접대의 기본은 친절 아니겠나?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마크 옆에 앉은 다음, 그의 잔에 양주를 가득 따랐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잔비에 옷 젖는다고, 마크에게 계속 술을 먹여서 그를 취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너도 받아.”

그런데 마크 이 개자식이 만만찮다. 내 잔에도 양주를 넘치게 따라주는 녀석.

“자. 건배!”

“Cheers!”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으며 양주잔을 기울였다.

* * *

마크 그 개자식이 어째 내가 주는 술을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신다 싶었다.

알고 보니 마크 그 놈 술이 진짜 세단다. 그의 수행원이 내가 마크와 세 잔째 양주잔을 부딪치자 혼잣말로 중얼 거리는 걸 내가 들었다.

아마 내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 중 *소리가 잘 들립니다.*때문인 거 같다.

“저렇게 같이 마시다가 좆 될 텐데. 마크 저 인간 양주 10병마시고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운전해 간 인간인데 말이야.”

양주 10병이라니. 그 정도 마시면 위에 빵구가 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튼 마크가 술이 엄청 세다는 비보에 벌써 골치가 아프다.

“잠깐 화장실 좀....”

나는 마크와 다섯 잔 째 양주를 마시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띵했다.

하긴 10여분 사이 양주를 그렇게 마셔댔으니. 그런 내 눈에 벌써 두 병째 비어 있는 양주가 보였다.

그래도 마크에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똑바로 걸어서 VIP룸을 나섰다.

여기서 한국의 룸빵 VIP룸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다. 하지만 미국인인 마크는 그걸 모른다.

나는 그걸 이용해서 VIP룸 밖으로 나왔고, 곧장 핸드폰을 꺼내서 양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자는 준비 됐습니까?”

=네. 지금 도착했습니다.

“휴우. 잘 됐네. 여자는 마담에게 넘기고 먼저 퇴근하세요.”

=네.

평소 과묵한 양태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백준열.

한데 전화상으로 상대하기에 그보다 편한 사람도 없을 거 같다.

양태석과 짧게 통화를 마친 나는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 술기운을 어떻게든 이겨 보려 진짜 화장실로 향했다.

최악의 경우 좀 전 마신 양주를 토해 내기라도 해야 할까 싶었다.

그때 내 머릿속을 울리는 견신 시스템.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인간이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정신 좀 차리게 살짝 패 주고 개지수의 포인트를 획득하세요.

불쑥 부여하는 이런 미션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나지만, 지금 미션은 정말 반가웠다. 왜냐하면 다음 이어지는 견신의 전언 때문에.

-디링! 견신이 ‘악마가 사람을 찾아다니기 바쁠 때 대신 보내는 것이 술이다.’고 합니다. 그 술이 당신을 집어 삼키는 게 심히 우려 된다면서 이번에 한 해 특별히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개만족-드링크」를 하사합니다.

내가 견신의 전언을 듣고 기뻐 할 때 내 손에 뭔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손을 들어 보니 역시나 내 손에 드링크 음료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점점 더 심해지는 취기에 서둘러 드링크 음료의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오오!”

그랬더니 효과 직빵으로 취기가 싹 사라졌다. 그때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가 내 머리를 울렸다.

-지금 술 마시면 개가 되는 인간이 잠깐 담배 피러 룸빵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소리에 나는 피식 웃으며 가려던 화장실의 반대 쪽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갔다.

그 끝에는 비상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위로 올라가면, 룸빵 밖에 담배 피기 좋은 공터가 있었다.

거기는 이곳 룸빵의 단골만이 아는 장소인데, 술 마시면 개가 되는 인간도 거길 아는 모양이었다.

“잘 됐네.”

저번 미친 개 패는 미션은 양태석을 이용했지만, 이번 미션은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해 보기로 했다.

백준열이 비록 싸움은 못해도 꾸준히 몸을 만들어 온 건 사실이다.

그러니 나보다 체구가 작은, 거기다 술까지 좀 마신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두들겨 팰 수 있을 거란 게 내 판단이었다.

“어어?”

그런데 막상 비상계단 문을 열고 룸빵 밖으로 나가자, 웬 꿈동산 땅딸보가 하나가 담배를 피면서 통화 중이었는데 말 중 절반 이상이 욕이었다.

아아! 여기서 꿈동산이란 머리가 큰 사람을 말했다.

왜 ‘모여라 꿈동산’이라고, 사람이 머리에 큰 인형 탈을 쓰고 연기하는 프로그램이 있지 않았나?

그때 머리가 큰 사람을 ‘모여라 꿈동산’ 또는 줄여서 ‘꿈동산’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아무튼 인형 탈까지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보다 한두 배는 더 큰 머리에 키는 170센티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가, 전화상으로 누군가를 영혼까지 탈곡하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웬 삽자루가 보였다. 주위에 공터라곤 여기뿐이라서 그런지 여기에 분리수거 안 되는 건 죄다 버리고 있었다.

삽머리 없는 그 삽자루를 챙겨든 나는 곧장 꿈동산에게 다가가서 냅다 뒤통수를 후려쳤다.

빡!

“켁!”

그래도 사람인데 어떻게 대 놓고 사람을 때릴 수 있냐고?

나도 꿈동산이 진짜 사람이라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견신 시스템이 그러지 않았나.

꿈동산 이 새끼는 술만 마시면 개가 된다고 말이다.

이미 놈에게서 술 냄새가 풀풀 났다. 그러니 내가 때린 건 사람이 아니라 개란 거다.

“으으으으....”

삽자루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꿈동산은 픽 쓰러져서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런 놈을 보고 더 패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견신 시스템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울려왔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술 마시면 개가 되는 인간이 오늘 일로 정신을 차립니다. 보상으로 개지수 30포인트를 지급합니다.

그 소리에 나는 들고 있던 삽자루를 공터 안 쪽으로 냅다 던져 버리고 왔던 비상계단을 통해 룸빵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 * *

방송국 갑질이야 이미 유명했다.

그 중에서 최근 SVC는 20년차 프리랜서 촬영감독에게 6개월 임금 900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가, 프로그램이 종료하고 4개월 뒤에, 임금을 백화점 상품권으로 줘서 물의를 일으켰다.

이 사실을 사전에 알게 된 SVC 예능 담당 피디는 내부 관행인데 그걸 기자한테 말했냐고 상품권 페이 제보자를 겁박하기 까지 했다나?

실제 이런 불공정한 임금 문제는 SVC는 물론 KVS, MVC 공중파도 흔했다.

여기서 그 상품권 페이 문제를 야기 시킨 SVC 예능 담당 피디는 지금도 아주 잘 나가고 있었다.

바로 SVC 김성국 피디!

SVC는 방송국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김성국 피디 같은 자를 옹호했다.

그래서 이번 편성에서 김성국 피디는 SVC 예능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질주자’의 메인 피디가 되었다.

그걸 축하하는 회식 자리에서 김성국은 ‘질주자’ 출연자들의 소속사 대표들을 소집시켰다.

말이 소집이지 군대식 집합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리 피디라지만 연예 기획사 대표들을 함부로 불러 낼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김성국이 말은 ‘질주자’ 출연자들의 소속사에서 알아서 자신의 비위를 맞추란 거였다. 새로운 권력자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당연히 그걸 모를 소속사들이 아니었고 그들끼리 얘기 끝에 회식이 끝날 무렵 ‘질주자’ 출연자들의 소속사들 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김성국을 강남에서 최고 비싼 룸빵으로 데려 간 거다.

“이야. 김성국이 성공했네. 여기가 대한민국 상위 0.3%만이 올 수 있다는 그 VIP룸빵 이란대구나.”

김성국은 거만하게 룸빵 상석에 앉았고 그런 그를 보는, 오늘 재수 꽝인 소속사 관계자들은 억지웃음을 짓기 급급했다.

그 자리에서 김성국이 술만 마시면 개가 된다는 걸 모르는 소속사 관계자들은 없었다.

그걸 알기에 김성국을 접대하는 자리에 서로 가지 않겠다고 싸우기까지 한 소속사 관계자들이었다.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하기로 했고 그 결과 뽑힌 재수 없는 사람들이 여기 있는 소속사 관계자들이었다.

“여자들 부르고 술 빨리 내 오라고 해.”

김성국의 성화에 곧장 술판이 벌어졌고 술이 들어가자 김성국은 점점 개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김성국의 핸드폰이 울렸다.

“뭐야?”

핸드폰을 확인하던 김성국은 이건 받아야 할 전화라며 핸드폰을 들고 룸빵 밖으로 나갔다.

“하아. C발새끼.”

“뭐 저딴 인간이 다 있어.”

그가 나가자마자 룸빵 안의 소속사 관계자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일제히 김성국을 욕해 댔다. 단지 아직 김성국에 대해 잘 모르는 룸빵 호스티스들만, 그런 다른 손님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해 했다.

김성국이 진상 손님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이곳 룸빵에서 흔한 부류에 속했으니까.

* * *

김성국이 나가고 10분 쯤 지났을까?

“이 새끼 왜 이렇게 안 들어와?”

“혹시 밖에서 사고치는 거 아냐?”

“그렇게 취해 보이지 않던데?”

“맞아. 이제 양주 한 병 깠는데 무슨.”

“1차 회식 자리에서도 마셨잖아?”

그렇게 10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벌써 들어와야 할 김성국이 여태 나타나지 않자 소속사 관계자들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가 보자.”

“그래.”

그 중 두 명이 룸빵을 나갔고 한 명은 룸빵 직원에게 김성국에 대해 물었고 다른 한 명은 화장실이며 룸빵 안을 뒤졌다. 그러다 룸빵 카운터 직원이 김성국이 룸빵 밖으로 나갔다는 말을 했고 두 사람은 곧장 룸빵 밖으로 나가서 그를 찾았다.

“어? 저거 김 피디 아냐?”

그런 두 사람은 룸빵 옆 공터에 쓰러져 있는 김성국을 발견했다.

“김 피디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이봐요. 정신 차려 봐요.”

두 사람이 우르르 쓰러진 김성국에게 달려가서 엎어져 있는 그의 몸을 뒤집었다.

“으으으으....”

그러자 바로 누운 김성국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119!”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그 소리를 했고 나머지 사람이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119에 신고를 했다.

잠시 뒤 119구급차가 공터에 나타났고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김성국을 싣고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다.

“휴우. 끝났군.”

“그래. 끝났어.”

그렇게 김성국 피디를 위해 마련 된 접대 자리는 사실상 파토가 났다. 룸빵에 남은 소속사 관계자들은 사실 좋았다. 김성국의 개지랄을 보지 않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로인한 후폭풍이 어떤 식으로 그들 소속 출연자들에게 미칠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자. 그만들 가자고.”

“그래. 우리가 여기서 고민한다고 해결 될 일도 아니잖아.”

“맞아. 우리야 회사에 보고만 하면 되는 일이잖아. 나머진 회사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소속사 관계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서 룸빵을 나설 때였다.

“우와아....”

“여기 물 진짜 좋네.”

“그러게. 근데 같은 룸빵인데 왜 이렇게 수질이 달라?”

룸빵을 나가는 길. 소속사 관계자들은 외국인 두 명이 끼고 나가는 초 울트라 급 미인 호스티스들에 완전 넋이 나갔다.

소속사 관계자들은 어지간히 예뻐서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만큼 예쁜 여자들이 그들 주위에 널렸으니까.

“이야. 우리 수연이 보다 더 예쁘네.”

“몸매는 우리 현지 뺨치겠는 걸.”

“저런 애들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소속사 관계자들은 다들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무나 연예인이 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잠시 후 그들이 부른 대리운전기사들이 오자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한 소속사 관계자들. 그들이 다 떠나고 나서 룸빵 안쪽 VIP룸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젊은 남자가 핸드폰을 귀에 댄 체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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