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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은 활성화 후 레벨 업이 되면서, 그 효용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나는 앞서서 JYB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사업 본부장 차명석에게서, 성공의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다.
이제는 냄새만으로 상대가 내게 호감이 있는지, 아니면 적의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김 비서처럼 내게 궁금한 게 있는지, 혹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도, 예측 가능케 됐다.
상대가 내게 호감이 있으면 좋은 향기가 났고, 적의가 있으면 썩은 내를 풀풀 풍겼다.
그 이외 궁금한 거나 할 말이 있으면 살짝 탄내가 났고.
견신 시스템은 상대에게서 나는 냄새에 따라 상대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게 자세한 정보를 내게 빠르게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특성보다는 아이템이지.’
괜히 아이템빨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견신 시스템의 개 특성이 수박 겉핥기라면, 아이템이나 스킬은 수박 속의 과육을 먹는 수준이었다.
그 만큼 그 효과에 격차가 컸다.
‘그러니까 「개코」아이템을 빨리 획득할 필요가 있단 얘기지.’
내가 견신 시스템으로부터 받은 미션을 수행해 「개코」아이템을 획득하게 된다면, 냄새로 상대에 대한 더 많은,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될 거다.
‘「개목걸이」아이템도 득템 해야 하는데 말이야.’
상대의 약점과 비리를 알 수 있는 「개목걸이」아이템도, 빠른 시간 내에 내가 획득해야 할 아이템 중 하나였다.
하지만 견신 시스템의 정보에 따르면 아이템을 획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스킬 역시 마찬가지고.
초반에야 견신이 나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때문에 나를 주시하지만, 그도 무지 바쁜 신이었다.
그의 관심이 사그라지면 내가 기댈 곳은 견신 시스템뿐인데, 원래 시스템 자체가 유저에게 인색하게 만들어진다는 게 시스템계의 통설이라 견신 시스템이 알려줬다.
‘뭐 견신 시스템의 정보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때문에 나로서도 초반인 지금 열심히 미션을 수행해서, 견신에게 예쁨을 받는 동시에 가급적 많은 아이템과 스킬을 챙겨 놓을 필요가 있었다.
개미와 배짱이의 교훈처럼 내게도 언젠가 혹독한 겨울이 찾아올지 모르니 말이다.
김 비서는 궁금한 것을 바로 내게 물어 보려 했지만, 나는 때로 가까운 길도 돌아가라고 했듯이 여유를 부렸다.
그녀에게 창문을 열어 대표실 안을 환기 시키고, 차도 한 잔 내 오라고 한 거다.
“으음. 좋군.”
내가 평소 좋아하던 녹차의 일종인데, 중국 5대 차 중 하나로 꼽히는 육안과편(六安瓜片)으로, 중국 육안 지역의 가장 오래된 차 중 하나다.
길쭉한 잎이 말려 있는 찻잎의 모양이 오이나 참외의 씨앗과 같다고 해 ‘과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새싹 없이 오로지 잎만을 사용해 만들어지지만 녹차 특유의 떫은맛이 적고 매우 부드럽고 잘 우려낸 육안과편에서는, 삶은 밤 같은 고소한 냄새와 맛이 난다는데, 지금 내 입안에 그 고소한 밤 냄새가 가득하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꽤 거금을 들여서 중국에서 직수입해 온 귀한 차였다.
그러고 보니까 백준열은 비싸면 다 좋다는 통념이 강한 녀석이었다. 그래선지 싸구려는 절대 사지 않았다.
‘차라리 안 쓰고 말지.’
그런 백준열과 이전 삶의 나를 비교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는 커피 한 잔도 500원 더 싸다는 이유로 200미터를 더 걸어가서 마시곤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김 비서는 할 일도 없는 지 내 방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 * *
내가 차를 다 마신 듯 보이자, 김 비서가 쪼르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다 드셨으면 치울까요?”
“그래.”
우리는 동갑이지만 나는 반말을 쓰고, 김 비서는 존대를 한다. 그게 우리 사이 룰이다.
그녀와 나는 노예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이 끝나려면 아직 5년이 남았다.
김 비서는 어쩔지 몰라도 나는 내 여자인 김 비서를 계속 내 곁에 두고 싶다.
그러려면 앞으로 잘해 줘야겠지.
“저어. 대표님 거시기 있잖아요?”
“거시기?”
“성기요. 대표님의.”
“그게 왜?”
“확 커졌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어디서 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물어보고 넘어가려고.
“비밀!”
“네?”
“비밀이라고. 내가 비서에게 내 사생활까지 일일이 보고해야 해?”
“아, 아뇨.”
“근데 그게 궁금한 거였어?”
“아니요. 제가 궁금한 건 비트라 코인이에요. 거기 투자 안하기로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왜 재투자하시겠다고 하신 거예요?”
“지금은 별거 없는데 몇 년 뒤에는 괜찮을 거 같아서.”
내 대답에 눈빛을 강하게 빛내는 김 비서. 내 속내를 어떡하든 파악해 보려 하지만 그게 쉽겠나?
“그러니까 장기 투자를 하신 셈이네요.”
“뭐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단기로 투자해서 수익을 낼만 한 종목은 뭐예요?”
“그게 왜 궁금해?”
“저도 투자 좀 해 볼 까 해서요.”
“돈 필요해?”
“호호호. 돈이야 누구나 필요하죠.”
“얼마나 필요한데?”
나의 그 물음에 갑자기 웃던 김 비서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에요. 혼자인 제가 무슨 돈이 필요하겠어요.”
그러면서 슬그머니 찻잔을 챙겨서 대표실을 빠져나가는 김 비서.
“으음. 이게 수상쩍은 냄새로군.”
그때 내 코가 김 비서에게서 나는 약간 톡 쏘는 냄새를 맡았다.
그런 냄새가 났다는 건 확실히 김 비서가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얘기. 그게 뭔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시간 상 지금 나가야 넉넉잡고 저녁 식사를 하고, 늦지 않게 마크를 접대하러 갈 수 있었다.
나는 곧장 인터폰을 눌렀다.
=네. 대표님.
“차대기 시키고 그랑블루에 자리 예약 해.”
=그랑블루요?
김 비서의 목소리 톤이 확실히 높아졌다.
그럴 게 거기는 하와이안 레스토랑으로 카후쿠 쉬림이라고 쉬림프(Shrimp, 새우)요리의 끝판 왕격인 요리들이 거기 있었는데, 그 중 훌리 코코넛 쉬림은 김 비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래. 이왕 먹는 거 김 비서 좋아하는 걸로 먹자고.”
=....
“싫어?”
=아뇨. 좋아요. 바로 예약 하겠습니다.
새우 요리라면 백준열도 좋아해서 기억하고 있는 음식이었다.
그것 말고 백준열은 김 비서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가 김 비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섹스 할 때 그녀 어디를 어떻게 자극하면 빨리 흥분하는가, 정도인데 그것도 오늘 보니 다 틀린 정보였다.
애당초 김 비서는 백준열에게서 오르가슴을 맛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은근 미안하네.”
물론 그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그래도 5년 동안 거의 매일 보고 살아 온 여자가 아니던가?
변변찮게 그녀를 위해 뭐 하나 선물을 해 준 적 기억도 전혀 없다.
진짜로 백준열은 김 비서를 노예로 여겼던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말로 잘해 주자.”
5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남은 그 기간 동안이라도 나는 김 비서를 내 여자 대접을 해 줄 생각이다. 그 다음 그녀가 내 곁을 떠나겠다면....
“보내 줘야지.”
나는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거다.
그러니 내 여자도 그럴 권리가 있다. 그녀가 원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녀를 놓아 줄 생각이다.
* * *
외출하기 위해 옷을 갖춰 입고 대표실을 나서자, 김 비서도 나갈 준비를 하고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김 비서의 얼굴에 잔뜩 기대감이 어려 있다.
그 만큼 지금 가는 그랑블루라는 레스토랑에 가고 싶었던 모양.
“가지.”
“네.”
내가 앞장서서 걷고 김 비서가 내 옆을 바로 따라 붙었다.
내 수행비서인 황치국은 벌써 퇴근한 상태.
회사에 오자마자 황치국이 필요 없어진 내가 그에게 퇴근해도 좋다고 한 것이다.
어차피 마크 때문에 김 비서와 다녀야 하는 내 입장에서, 황치국은 거추장스러운 존재 일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내가 탈 차가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운전기사도 바뀌었다.
내 전용운전기사인 양태석에게는 따로 시킨 일이 있다 보니, JYB엔터의 임원 기사 중 한 명을 김 비서가 끌어 온 것.
“이태원 쪽으로 가 주세요.”
차에 탑승하자 김 비서가 운전기사에게 바로 말했다.
그 뒤 김 비서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안내를 했고, 그랑블루 앞에 차를 댄 운전기사는 우리가 내리자 알아서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러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랑블루는 다양한 새우요리 중에서도 아주 매운 메뉴인 볼케이노 쉬림이 있었다.
바로 백준열이 좋아하는 요리.
새우를 반으로 길게 갈라 껍질째 튀겨낸 뒤, 특제 소스와 함께 복아 내는 데, 그 모습이 마치 활짝 핀 꽃송이 같달 까?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고추 엑기스만 사용해, 인위적이지 안혹 담백한 매운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반면 김 비서는 코코넛 향이 어우러진 부드럽고 달콤한 훌리 코코넛 쉬림을 좋아했는데, 역시나 내가 볼케이노 쉬림을 주문하자, 그녀도 바로 훌리 코코넛 쉬림과 파이어락 맥주를 시켰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전에 하와이 같을 때 그렇게 먹더니, 그 둘의 음식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었다.
백준열도 하와이에서 자신이 마셨던 롱보드 맥주를 시켰다.
“음. 너무 맛있어.”
김 비서는 진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정작 내 입맛에는 맵기만 하고 별로였다.
그래도 김 비서가 맛있게 먹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맛있어?”
“네.”
“그럼 하나 더 시킬까?”
“....”
김 비서는 내가 뭘 해주겠다고 하면 사람이 움츠러들었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는 백준열이 잘 알았다.
‘새끼. 작작 좀 할 것이지.’
그러니까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뭐든 대가 없이 그녀에게 해 준 게 없었다.
그렇다보니 그녀는 백준열이 뭘 해주겠다고 하면, 일단 저렇게 의심스런 눈으로 날 보는 거고, 또 그게 뭐가 됐던 거절부터 하고 본다.
“됐어요.”
하지만 내가 먹을 거라고 주문해서 조금 먹고 배부르다며 슬쩍 그녀에게 떠넘기자 그건 또 잘 먹었다.
그렇게 나는 대충 먹고 김 비서는 배불리 먹인 뒤, 가게 앞에 대기 중인 차를 타고 강남에서도 최고급 룸빵들이 즐비한 역삼동으로 향했다.
그 중 백준열의 단골가게인 ‘데미안’은 술값만 최소 1천200만 원에 달하는 최고급 업소로, 성매매를 지칭하는 '2차'를 가려면 수천만 원은 족히 써야했다.
이런 곳을 백준열은 일주일에 2-3번은 갔으니, 재벌 3세의 돈 씀씀이가 얼마나 헤픈지 알 수 있었다.
* * *
개새끼 백준열 답게 그는 이곳 룸빵에 김 비서를 데려 온 적이 있었다.
‘오 마이 갓!’
그때 백준열의 기억 속에 여기 룸빵에서 김 비서와 섹스를 한 기억도 났다.
그래선지 저녁 먹을 때까지는 밝았던 김 비서의 얼굴이, 여기 도착하는 순간 살벌하게 변해 있었다.
김 비서에게 여기는 두루두루 안 좋은 기억이 많은 곳인 듯 했다.
“대표님. 제가 꼭 저기 따라 가야 하나요?”
“그럼 어떡해? 마크가 네가 보고 싶다는데.”
내 그 대답에 김 비서는 기가 찬다는 듯 날 쳐다봤다. 뭐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어째든 그녀는 마크에게 얼굴을 비쳐야 하니까. 그 다음은 내가 다 알아서 할 테지만.
“얼추 마크 올 때 다 됐어.”
마크는 김 비서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가 호텔에 그를 데리러 가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본인이 직접 여기로 오겠다고 했고. 그 때문에 김 비서와 내가 같이 여기로 온 거다.
원래 김 비서는 나와 저녁을 먹고 어디 잠깐 가 있다가, 밤 10시쯤 되서 룸빵을 찾아오게 할 생각이었다.
근데 마크가 하도 설치니 어쩔 수 없었다.
나야 그가 알아서 와 주면 고맙지. 대신 리무진 서비스는 그가 사용할 수 있게 리무진 운전기사 전화번호는 그쪽에 알려줬다.
아까 보니 마크의 수행원이 한국말을 잘했는데, 그 사람이라면 마크와 같이 리무진을 타고 여기 잘 찾아 올 거 같았다.
“새끼. 양반은 못 되겠네.”
내가 마크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그를 태운 리무진이 룸살롱 앞에 막 도착했다.
나는 이대로 마크에게 김 비서를 보여 줄 생각은 없었기에 그녀에게 말했다.
“근처 카페에 가 있어. 내가 전화하면 그때 여기로 오고.”
나는 김 비서의 등을 떠밀어 보내고 룸살롱 입구로 가서 리무진에서 내려 룸살롱으로 걸어오고 있는 마크를 맞았다.
“어서 와. 저녁은 먹었고?”
“그럼 시간이 몇 신데. 근데 킴은 어디 있어?”
“오고 있는 중이래. 너도 알다시피 킴이 워낙 유능하다보니 그녀가 없으면 회사가 안돌아가거든.”
김 비서가 나와 같이 여기 있지 않다는 사실에 마크가 잔뜩 인상을 썼다. 그러던 말던 나는 뻔뻔하게 나갔다.
“들어가서 한잔 하고 있으면 금방 올 거야.”
그렇게 마크와 그 수행원과 같이 룸빵으로 들어가자, 미리 얘기 해 둔 터라 그곳 마담이 우리를 반겼다.
그 마담 양 옆으로 딱 봐도 눈이 절로 그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만큼의, 늘씬한 몸매의 미인들이 생글거리고 서 있었는데, 그녀들을 보고 마크와 그 수행원의 얼굴이 저절로 밝아졌다.
“VIP룸으로 모셔.”
“네. 언니.”
그 미인들이 마크와 수행원의 팔짱을 끼고 이끌자 입이 헤벌레 해져서는 맥없이 끌려가는 두 사람. 남은 나는 마담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좀 있다 양 기사가 아가씨 한 명을 데려 올 겁니다. 그 아가씨 가게 안에 잘 데리고 있다가 내가 데려오라고 사인을 보내면 마담은 아가씨를 룸빵으로 들여 보내주면 됩니다.”
“뭐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네요. 그렇게 할게요. 근데 양 기사는 오늘 몇 시 퇴근이에요?”
그렇게 묻는 마담의 두 눈에서 누가 봐도 알 거 같은, 욕정 가득한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