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3화 (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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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마크는 김 비서를 원했고, 그녀를 내 주지 않는 한 이번 협상은 험로가 예상 됐다.

개새끼 백준열이라면 마크가 본색을 드러냈을 때 잘 됐다 싶었을 거다.

김 비서처럼 똑똑하면서도 예쁘고 섹시한 여자는 흔치 않다는 건 그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가야 할 성공의 길에 쓰고 버려야 할 소모품 중 하나 일뿐이다.

김 비서 같은 여자야 그가 또 발굴해서 키워 내면 그만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형들에게 밀려서 끽 해야 계열사 하나 받아서, 그것도 눈치 보며 경영하며 구차하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그럴 바에야 애초 삼명그룹 일에 관여하지도 않았을 거다.

부친이 상속해 줄 삼명그룹 주식 가지고, 자기 사업하면서 속편하게 잘 먹고 잘 살지 말이다.

‘내 생각대로군.’

백준열이 부친이 시킨 대로 하버드에서 MBA 과정을 졸업한 것도, 귀국해서 바로 삼명그룹에 들어가지 않고 자기 사업을 시작한 것도, 다 아버지인 백승렬 회장 때문이었다.

백승렬 회장은 자신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과 달리 그룹 내 기반이 전혀 없는 백준열이 바로 삼명그룹에 들어왔을 때, 맨땅에 헤딩하고 나자빠지는 걸 우려했다.

그래서 그룹 밖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고, 또 그룹에 필요한 일을 척척 해결 해 내면서, 안에서도 인정을 받아 당당히 그룹에 발을 딛기를 원했다.

그 바램은 백준열이 JYB엔터를 통해 증명했고, 몇 차례 그룹의 난제를 해결하면서 안팎으로 충분히 검증이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승렬 회장은 차일피일 미루며 백준열을 삼명그룹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다.

이게 다 백승렬 회장의 과한 욕심 때문이었다.

가만 보니 백준열을 좀 더 밖에서 굴려도 될 거 같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삼명그룹이 쑥쑥 커가는 걸 보면서 말이다.

이에 백준열은 더는 백승렬 회장을 믿지 않게 되었고, 이번 마크의 일 부터는 무보수로 더는 일을 해결해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실제 백준열은 인텔사의 반도체 기술 이전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삼명유통 대표 자리를 꿰차게 된다.

하지만 그건 백준열에게 있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로인해 백승렬 회장의 눈 밖에 나 버린 백준열은, 다시 백승렬 회장의 인정을 받기까지 3-4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백승렬 회장의 장남과 차남은 그룹 내 자기 자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버렸다.

백승렬 회장이 뒤늦게 후계자를 바꾸려 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말이다.

오히려 그런 백승렬 회장의 의도를 간파한 장남과 차남이 움직였고, 얼마 뒤 백승렬 회장은 갑자기 죽고 만다.

백 회장이 죽자 끈 떨어진 연이 된 백준열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실종 되었다가 죽은 체 발견 되었고. 검경은 자살이라고 공표 했지만 과연 그게 사실일까?

삼명물산에 다녔던 이전 삶의 나는 당시 삼명그룹 미래전략실에서 그 일을 주도 했던 김준표 상무를 통해 그 전말을 알게 됐다.

바이오 접대 후 잔뜩 술에 취한 그를 당시 막내였던 내가 집으로 모시던 중, 김준표 상무가 그게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던 것.

“백준열 그 새끼....까불다가 결국 내 손에 죽었지. 흐흐흐흐.”

나는 그가 한 말이 취중진담이라고, 사실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을 해결하고 나서 나는 백 회장과 손절한다.’

예전의 백준열처럼 구질구질하게 이번 일을 해결했다고 백 회장에게서 삼명유통 대표 자리를 뜯어내는 일은 없을 거다.

내가 끌어 모으고 있는 비트라 코인은 앞으로 4년 뒤에 200달러를 뚫고 ,그 다음해에는 1,200달러를 찍는다. 그 후 등락을 거듭하지만 2년 뒤에는 2,200달러 이상으로 거래가 되는 걸로 기억한다.

돈은 비트라 코인으로도 충분하다. 대기업? 앞으로 미래에는 엔터, 미디어사업이 대세다.

잘 키운 아이돌 하나만으로 그 기획사 공모주가 100조를 훌쩍 넘겼다.

그런 글로벌 아이돌을 내가 키운 JYB엔터에서 선보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뿐만 아니라 나는 앞으로 연예 판에서 누가 유명해질지, 또 몰락 혹은 파멸할지 알고 있다.

‘골치 아픈 삼명그룹 회장 자리는 당신들이나 해.’

자식도 사업을 위한 이용 도구로 여기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쏙 빼닮아 냉혈한인 두 형들과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은 내가 멋모르고 하겠다고 했으니 그냥 해결 해주겠지만, 백승렬 회장을 비롯한 삼명가家 사람들과 나의 인연도 이걸로 끝이다.

* * *

자신이 한 말이 충격적이었을까? 마크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의 백준열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그래. 놀랐을 거다.’

저놈은 미국에 있을 때도 그랬다. 자기 것에 누가 손대면 아주 미쳐 날 뛰었다.

그냥 더러워서 피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백준열은 'Prick(좆같은 새끼)'이다.

그런 놈이 자기 여자에게 흑심을 품고 있단 걸 아주 대 놓고 얘기하는 자신을 보고 지금 억지로 괜찮은 척 하고 있었다.

‘아마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겠지.’

그래도 인내심이 많이 늘었다. 미국에 있었을 때였으면 벌써 주먹이 날아왔다.

“내일은 킴을 꼭 데리고 와라. 안 그러면 이번 협상은 결렬 된 거로 간주하겠다.”

“....”

마크는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백준열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백준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마크의 말에 가타부타 아무 대꾸도 없었다.

“내 말 들었어?”

“....”

“What the fuck!”

마크는 그제야 백준열이 뭔가에 넋이 나가 있었고, 여태껏 자기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는 걸 알고는 불 같이 화를 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백준열이 마크를 진정 시키며 말했다.

“워워. 진정해. 마크. 너무 놀라 그랬어. 네가 킴을 진짜 좋아하긴 좋아했구나. 근데 뭐라고 했어?”

마크는 백준열이 자기 생각처럼 놀랐다는 말에 치민 화를 내리누르며 속으로 웃었다.

‘새끼. 얼마나 놀랐으면 완전 넋을 놨군. 놨어. 그렇다면....’

“내일 킴 데리고 나오라고.”

“아아. 그러지 뭐. 아니다. 오늘 밤에 당장 보자.”

“뭐?”

“네가 원하는 거 김 비서하고 한 번 하는 거잖아?”

“뭐, 뭐라고?”

백준열의 직설적인 말에 마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이렇게 대 놓고 노골적으로 말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싫어? 뭐 싫으면 말고.”

“누, 누가 싫다고 했어. 그냥 킴을 그렇게 해도 되나 싶어서. 그녀는 네 여자잖아?”

“내 여자? 푸하하하하.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녀는 내 비서일 뿐이야.”

킴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는 백준열을 보고 마크는 거듭 놀랐다.

그런 그에게 백준열이 비열하게 웃음 띤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너도 김 비서 데리고 살 건 아니잖아. 안 그래?”

“뭐, 뭐?”

“왜 진짜 김 비서 미국 데리고 가서 결혼해서 같이 살려고?”

“그, 그건....”

킴은 백준열의 여자다. 미국에서 마크는 수시로 봤다. 백준열이 킴과 섹스 하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킴이 걸레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백준열의 말을 듣고 보니 왠지 찜찜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쓰인 마크의 콩깍지도 하나 둘 빠르게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넌 킴 한 번 따 먹고 나는 네 덕분에 수월하게 협상하고. 괜찮지?”

“그, 그래. 좋아.”

킴과 오늘 밤 섹스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크는 머릿속에 하얘졌다.

협상? 그거야 적당히 타결하면 됐다. 단지 너무 헐값만 아니라면 아버지도 뭐라고 하시진 않을 거고.

“최소한 500만 달러는 줘야해.”

기분이 좋아서일까? 마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내뱉었다.

“500? 걱정 마. 그 정도는 맞춰 줄게.”

다행히 백준열이 쪼잔 하게 굴지 않고 바로 오케이 해 주니 마크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 * *

삼명 전자에서 제시한 기술 이전료는 대략 1,200-1,500만 달러. 한데 마크는 그 절반 보다 싼 값을 불렀다.

‘그렇다면....’

나는 이중 계약을 생각했다. 중간 브로커로 나와 삼명 전자가 1,200만 달러에 계약을 하고, 나와 마크는 500만 달러에 따로 계약을 체결하는 걸로 말이다.

그럼 중간에서 700만 달러를 내가 챙길 수 있었다.

예전의 백준열이었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짓이지만 나는 할 수 있었다.

백 회장이라면 바로 알아채겠지만, 이건 순수하게 내 능력으로 챙기는 돈이니 뭐라고 하진 않을 거다.

백 회장이 짠돌이긴 하지만 돈 쓸데는 또 화끈하게 쓰는 배포도 있었다. 그러니 대기업 회장 노릇을 하는 거고.

“다 왔습니다.”

마크와 미국에서 추억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는 사이 리무진이 서울 힐튼 호텔에 도착했다.

뒤따라 온 차에서 내린 내 수행비서와 마크의 수행원이 짐을 챙겨서 먼저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그 중 내 수행비서 황치국이 호텔 프런트로 가서 예약 해 둔 마크의 방을 체크인 했다.

그리곤 호텔 키 카드를 받아서 그 카드를 마크의 수행원에게 건네는 걸 보고 내가 마크에게 말했다.

“일단 쉬어. 저녁 식사하고 이따 8시쯤 올 테니까. 그때 나와 같이 움직이자.”

“한국 룸빵 가는 거냐?”

마크가 한껏 기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보아하니 마크가 한국 접대 문화를 어느 정도 꾀고 있는 듯 했다.

“그래. 하지만 그냥 룸빵은 아냐.”

“그렇겠지. 재벌 3세가 가는 룸빵이니까. 아주 Special 하겠네.”

“큭큭큭. 맞아. 기대해도 좋아.”

나는 좋아 죽겠다는 표정의 마크와 악수를 한 후 황치국이 렌트한 차를 타고 일단 호텔을 빠져 나왔다.

황치국은 렌트한 리무진을 아예 힐튼 호텔에 주차 시키고, 운전기사도 근처에 대기 시켜 두었다. 어차피 사흘 동안 빌린 차고 오늘 저녁에 또 쓸 테니까.

그 보고를 하면서 또 나를 돌아보는 황치국.

이 놈은 아무래도 내 칭찬을 못 받아 환장한 관심종자 같다.

‘그래. 옛다.’

“잘했어. 그러니까 앞 좀 보고 운전하자.”

“네. 대표님.”

내 칭찬에 싱글벙글, 연신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황치국.

그런 그와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연히 황치국의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면, 나는 그를 내 수행비서에서 자를 생각이다.

나 뿐 아니라 다른 CEO들도 마찬 가지일 거다.

자기 곁에 유능한 수행비서가 함께 하길 원하지 관종을 달고 다니고 싶진 않을 테니까.

“헤헤헤헤. 대표님. 신나는 음악 틀까요?”

그래도 저 헤픈 웃음과 넉살 좋은 얼굴은 가끔 생각 날 거 같기는 하다.

뭐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 사이 저 놈과 정이 든 모양이었다.

“그래.”

까짓 얼마 보지 않을 사이인데, 녀석이 원하는 거 하나 쯤은 들어 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결정을 바로 후회했다. 녀석의 신나는 음악과 내가 생각하는 신나는 음악은 그 정서부터가 완전 달랐던 것.

덕분에 차가 JYB엔터 본사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계획에 없었던 귀 고문을 당해야만했다.

* * *

황치국의 음악 테러에 초췌해진 얼굴의 내가 대표실에 들어서자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 있었어요?”

“별 일 아냐. 그 보다 오늘 저녁에 야근 좀 같이 해야겠어.”

“네. 시간 비우겠습니다.”

늘 있어 온 초과 근무라 그런지 김 비서는 별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미국에서 마크가 왔어. 그와 같이 술 한 잔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

나는 김 비서가 별 말 없자 곧장 대표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눈치 빠른 김 비서가 미국에 있을 때 마크가 자신을 좋아한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아마 백준열 몰래 마크가 김 비서에게 여러 차례 추파를 던졌을 거야 뻔하고.

김 비서는 내 핑계를 대며 마크의 애정 공세를 거절 했을 게 자명하다.

이런 내 생각은 백준열의 기억에 근거를 두고 있는 거니 아마 맞을 거다.

그런데 그 마크를 내가 오늘 밤에 만나서 같이 술을 마실 거라고, 굳이 김 비서에게 얘기까지 한 건 그 자리에 그녀도 데려 간다는 얘기.

딱 봐도 김 비서는 마크가 전혀 반갑지 않은 얼굴이다.

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대충 짐작이 갔다.

“마크. 그 새끼 김 비서한테 스토커 짓이라도 한 모양이네.”

미국은 스토커의 물리적 폭력(납치와 감금, 성폭력, 살인 등)은 물론 정서적 폭력(감시, 미행, 추적, 성희롱과 언어폭력 등)도 일찌감치 구애가 아닌 범죄(중형주의)로 규정한다. 그러니까 김 비서가 녀석에게 스토커 당한 건 확실해 보인다.

뭐 이미 지난 그 일로 마크를 어쩔 수는 없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김 비서에게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인터폰으로 김 비서를 대표실로 불렀다.

“마크 말인데. 우리가 미국에 있을 때 그가 김 비서에게....”

나는 대 놓고 마크가 김 비서에게 스토커 짓을 했는지 물었다.

“네. 몇 차례 그런 일이 있었고 혹시 몰라서 탐정을 고용해서 증거를 수집해 뒀었죠.”

“뭐? 증거라고!”

미국의 경우 스토커 범죄의 초기조사는 경찰 대비 기초사실조사가 수월한 탐정이 맡는 게 보편적이다.

김 비서는 딱 자기 상식선에서 대응을 했을 뿐이고.

“그 증거 아직 가지고 있나?”

“네. 집에 있을 건데. 왜 그러시는지?”

“후후후. 긴요하게 쓸 데가 있을 거 같아서. 그 증거 내일 가져 와.”

“네.”

미국의 경우 한국과 달리 스토커는 징역형을 살아야했다.

1990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모든 주에서 이른바 '반 스토킹 법'을 만들었고, 스토커 범죄자에게 2년 이상 4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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