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3화 (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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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내가 죽기 전 개처럼 살겠다고 한 건 내 하고 싶은 대로, 내 꼴리는 대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지금부터 나는 실제로 그렇게 살 생각이다.

“앞으로 일어날 10년의 기억, 그리고 재벌 3세의 재력, 거기다가 신이 준 시스템까지....”

이 정도면 내 마음대로 하고 살아도 되지 않겠나? 아니 그리 살아야 맞다.

그렇게 나는 이미 죽은 김성훈이 아니라 백준열로 멋지게 인생 제 2막,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삐이이익! 삐이익!

그때 인터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비서실, 그러니까 김 비서의 호출이다.

“왜?”

내가 인터폰을 받자 김 비서가 바로 말했다.

=드라마사업 본부장님께서 급하게 대표님을 찾으십니다.

JYB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사업 본부장은 차명석이다.

공영미디어 KBC에서 CP까지 지낸 인물로 백준열, 그러니까 내가 삼고초려까지는 아니고 두 번씩이나 만나서 겨우 영입한 인재였다.

“차 본부장이?”

=네. 어떻게 할까요?

“들여 보네.”

원래는 오늘 일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백준열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차 본부장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날 보러 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김 비서의 인터폰을 받고 나서 내가 대표 책상 앞의 응접 상석 1인 소파에 앉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대표님!”

얼굴은 딱 봐도 40대 중후반이지만 젊은 캐주얼 정장 차림의 차 본부장이 대표실 안으로 들어서며 날 향해 깍듯이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내가 웃으며 반기자 차 본부장이 곧장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앉으세요.”

내가 자리를 권하자 바로 내 왼편 응접 소파에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차 본부장.

그때였다. 갑자기 차 본부장에게서 냄새가 났다. 고소하니 마치 깨 볶는 냄새가.

‘뭐지?’

차 본부장이 고소한 향수를 자기 몸에 뿌리고 다닐 리 없을 테고.

내가 이상하게 생각할 때였다.

-성공 냄새가 진하게 납니다.

내 머릿속을 울리는 시스템의 목소리.

“뭐?”

그 소리에 놀란 내가 차 본부장 앞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 * *

연예계에 개새끼로 유명한 백준열 대표.

하지만 자기 앞에서 만큼은 늘 웃는 얼굴로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한데 이제는 그 가면을 싹 벗기로 한 모양이다.

옆에 앉히더니 아주 대 놓고 반말을 지껄였다.

그럴 거 같으면 대표실에 자기가 들어왔을 때부터 말을 까던지 말이다.

기껏 존대해 놓고 옆에 사람 무안하게 이게 무슨 짓인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만 참 힘들다.’

KBC의 정권에 따라 바뀌는, 영혼 없는, 고인물 조직문화에 학을 떼고 옮겨 온 곳이 이곳 JYB엔터였다.

대표가 개새끼라는 거 빼고 나면 JYB엔터테인먼트는 차명석이 바라던 완벽한 직장이었다.

그 대표도 사실 입사 후 오늘 처음 본다.

그 만큼 차명석은 JYB엔터에서 죽자 살자 일만했다.

그 결과물로 차명석은 5편의 드라마를 기획했고, 그 중 3편은 지상파에 2편은 케이블 채널과 종합편성채널 쪽에 각각 편성 받아냈다. 그리고 5편 모두 대박을 쳤다.

그랬기에 차명석은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여기 대표실을 찾아 올 수 있었다.

오늘 JYB엔터테인먼트 드라마 사업본부의 수장으로써 차명석은 오늘 개새끼 대표와 담판을 지을 일이 있었다.

“대표님. 이번에 OCB에 들어가기로 한 드라마 말인데. HQ엔터에 제작권을 넘기기로 하셨다면서요?”

“아아. 그 ‘응답해 봐. 1995’ 말이군요. HQ엔터 정 대표가 하도 죽는 소릴 하기에 생각해 보겠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안 됩니다. ‘응답해 봐. 1995’는 그 시대와 사회적 이슈를 담은 레트로 드라마로 대표적인 스탠드 얼론 시퀄이 될 게 확실합니다. 또 시리즈 화 하면 몇 번은 더 히트 칠 수 롱런 작품이 될 거고 말이죠. 그러니까 반드시 저희 손으로 직접 제작해야만 합니다.”

“가령 ‘응답해 봐. 1998’, ‘응답해 봐. 2002’ 같이 말이죠?”

“네? 네. 뭐....”

당연히 대판 싸울 각오로 온 대표실. 한데 그 개새끼 대표가 정작 자신과 말이 너무 쉽게 통하자 차명석이 다 얼떨떨해졌다. 그런 그에게 개새끼 대표가 한술 더 떠서 말했다.

“배우 캐스팅 할 때 말입니다. 주역 배우들도 메이저 반열의 스타보다 살짝 준 메이저급으로다가, 연기력은 되지만 인지도가 후달리는 중고 신인이나 지상파 기준 조연급 인물들, 또는 아이돌 출신 연기 관련 신인들로 새롭게 발굴하는 거 어때요?”

“그, 그건 담당PD와 작가와 상의를 해 봐야....”

“시리즈 화 되면 그렇게 발굴된 배우들 인기가 상당할 겁니다. 그럼 응답해 봐 시리즈가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 같은 느낌의 드라마가 될 수 있을 테고요.”

“네. 뭐....”

차명석은 오히려 자신보다 더 ‘응답해 봐. 1995’의 성공을 확신하는 개새끼 대표의 말에 더 할 말이 없어졌다.

“HQ엔터 정 대표가 지랄하겠지만 차 본부장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응답해 봐. 1995’의 제작은 저희가 하는 걸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응답해 봐 시리즈를 성공시키겠습니다.”

“그래요.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개새끼 대표의 배웅까지 받으며 대표실을 나온 차명석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의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응답해 봐. 1995’의 담당 PD와 작가에게로 향했다.

* * *

차명석 본부장을 만나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백준열의 기억을 빠르게 되찾아 나갔다.

거기다가 김성훈의 기억까지 더해지면서 JYB엔터테인먼트가 이때 놓쳤던 대박 드라마 하나를 내가 도로 챙기는 성과를 이뤄냈다.

“호오! ‘응답해 봐. 1995’가 원래 JYB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려 했던 드라마였었다니....”

김성훈의 기억에 따르면 응답해 봐 시리즈는 HQ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었다.

그러면서 원래 편성 잡혔던 종편방송인 OCB에서 다른 케이블 채널인 TVM으로 바뀌었고, TVM에서 대박을 치면서 지상파 드라마를 위협하는 방송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걸 내가 초쳐 놓은 셈이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백준열은 오늘 자신을 찾아 온 차명석 본부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거다.

그 때문에 ‘응답해 봐. 1995’제작권이 HQ엔터로 넘어가고 TVM에 좋은 일만 시켜주었다.

TVM의 모기업인 CB그룹은 김성훈이 다녔던 삼명그룹과 특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아. 그러고 보니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다.

사실 김성훈이 죽기 전에 다녔던 대기업이 삼명그룹이다.

김성훈은 삼명그룹의 계열사 중 삼명물산에 다니다가, 개인투자 실패로 인한 과도한 빚으로 인해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성훈은 개인적으로 삼명그룹에 대해 잘 알았다.

대기업에 다녔다보니 대기업의 앞으로 행보에 대해서도 잘 알 수밖에 없었고, 특히 주식 투자 쪽은 빠삭하다고 보면 됐다.

달리 백준열이 된 지금의 내가 앞으로 내 마음대로 살 거라 자신하는 게 아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아니까 막 살아도 두려울 게 없는 거다. 미래를 통해 언제든 내 살 구멍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견신이 내게 선물한 그 시스템의 능력도 확실히 범상치 않았고.

‘개의 특성을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니....’

개는 후각이 발달한 동물이다. 냄새를 잘 맡는 그런 개의 특성이 성공에 대해 그런 고소한 향으로 알려 주다니.

‘그렇다면 다른 개의 특성도....’

분명 내게 어떤 식으로든 유용하게 작용할 게 확실했다. 왜냐하면 견신이 준 시스템이 자기 입으로 말했다. 조력자로써 내게 꿀팁을 줄 거라고.

삐이이익!

그때 또 인터폰이 울렸다.

“왜?”

내가 받자 김 비서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퇴근 시간 다 됐습니다. 차 대기 시킬까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싶어 확인하니 이제 오후 5시이다. 근데 벌써 퇴근한다고?

내가 대기업 다닐 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이곳 JYB엔터테인먼트 역시 마찬가지일 것.

보통 대기업의 출퇴근 시간은 오전 09시 출근, 18시 퇴근이다.

하지만 승진을 위해서 높은 연봉을 위해서, 인정되지도 않는 조기 출근과 퇴근은 22시가 넘는 것이 보통이다.

야근은 거의 매일 한다고 보면 되고, 주말도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출근해서 일을 한다.

대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희생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게 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비해 연봉이 높고 복리후생 등이 좋기 때문에 다들 대기업에 들어오려고 하다 보니 생긴 병폐지.”

지금의 나도 누가 대기업 갈래? 중소기업 갈래? 물으면 바로 대기업 간다고 할 거다.

* * *

김 비서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있어보라’고 말한 뒤, 나는 퇴근 후 내가 주로 뭘 하는 지 재빨리 생각해 봤다. 그랬더니 주로 한 일이 나쁜 쪽이었다.

내가 나쁘다고 말하는 건 백준열이 개새끼 짓을 한다는 얘기다.

그런 뒤 신기하게도 집에는 꼬박꼬박 들어갔다. 문제는 그 집이 매일 바뀐다는 거지만.

“와아....”

놀랍게도 김 비서 말고도 백준열에게는 여자가 많았다.

당장 미국 유학 가기 전부터 알고 지냈던 여자만 10명이었고 유학 다녀와서 새로 만든 여자가 50명이 훌쩍 넘었다.

그 중에 현재 백준열이 동거하고 사는 여자는 모두 5명으로, 그 중 3명이 JYB엔터 소속 연예인이다.

나머지 2명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탑 배우와 탑 가수 겸 탑 배우였다.

그 두 여자들은 다들 1인 기획사에 있었기에 백준열도 그녀들을 굳이 JYB엔터로 끌어 오지 않았다.

백준열은 주말을 빼고 나머지 주중은 그 다섯 여자들과 같이 살았다. 그리고 오늘 백준열이 찾아 갈 집에는 JYB엔터 소속 여자 아이돌 멤버가 살고 있었다.

“맙소사! MP4의 멤버 우희가 백준열의 여자였다고?”

이우희. 그녀는 걸그룹 MP4 출신 가수이자 배우로 팀 내에서 비주얼 담당이었다.

깨끗한 피부와 길고 뾰족하게 트인 눈매, 도톰한 입술, 이목구비와 조화로운 얼굴을 가진 그녀는 글래머러스한 몸매까지 갖춰서, 걸그룹 멤버 중 섹시한 멤버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그 이름이 나왔다.

연기까지 잘한 덕분에 걸그룹 MP4가 해체 되고 나서도 배우로서 인기가 많았던 그녀는 6년 뒤에 갑자기 자살을 했다.

항상 소신껏 자기 할 말은 하고 살았던 이우희. 악플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

김성훈이 군대 있을 때 위문 공연 왔을 때 본 이우희는 그야말로 여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김성훈이 제대하고 3년 쯤 지났을 때니 이우희의 미모도 여전, 아니 더 만개해서 예뻐져 있을 것이다.

왜 연예인은 인기가 높을수록 더 예뻐지니까. 이때쯤 MP4의 인기는 여자 걸그룹 중 단연 탑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퇴근해서 집으로 가면 그 이우희를 만날 수 있다는 거네?”

내가 딱히 이우희의 광팬이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버린 그녀를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사실 더 컸다. 또....

“꿀꺽!”

그녀는 현재 백준열의 여자고 당연히 그와 그녀는 섹스를 했다.

그 상황의 기억이 지금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즉 일주일 전에 나는 이 손으로 이우희이 몸을....

“흐흐흐흐....추릅!”

나도 모르게 음흉하게 웃다가 침까지 질질 흘리던 나는, 곧바로 인터폰을 누르고 김 비서에게 말했다.

“차대기 시켜.”

지금 퇴근하겠단 얘기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

“집.”

=알겠습니다.

오늘 내가 가는 집이 어딘지는 내 차를 모는 운전기사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 * *

퇴근 준비가 끝나자 대표실을 나섰다.

“....”

대표실 밖 김 비서가 그런 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인다.

김 비서는 내가 퇴근하고 나서야 비로소 퇴근이 가능하다.

그 전에는 반드시 내 곁에서 나를 수행해야 한다. 그게 그녀와 나 사이에 맺은 계약이다.

그녀는 내가 놓아 주기 전에, 그러니까 나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 내 곁을 떠날 수 없다.

왜냐하면 밝혀지면 절대로 안 되는 그녀의 약점을 내가 쥐고 있었으니까.

‘와아. 완전 개새끼네.’

그녀와 나 사이, 말도 안 되는 진짜 노예 계약을 맺은 과정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열불이 치밀었다.

근데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덜 이기적인 사람과 조금 더 이기적인 사람으로 나뉠 뿐, 모든 사람에게 이기적인 면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건 사람인 나도 마찬가지고.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아마 나는 참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나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김 비서를 스쳐 지나 대표 비서실의 자동문을 막 열었을 때 내가 말했다.

“수고했어. 푹 쉬어.”

나도, 아니 백준열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진정한 휴식 시간이란 나와 떨어져 있을 때란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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