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6화 (255/259)

'플라리티'라고 쓰인 고급스러운 건물이었다.

그냥 봐도 웬만한 금화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앨버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와 찰스 아저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시야에 보이는 공격대 위치 정보 마법은 확실히 건물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 있는 것이 맞나? 마법이 잘못됐나? 스승님은 대마법사야....그럴 리는 없을 텐데….'

정말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다면….

아무리 스승님에게 많은 금화를 받았어도 이렇게 흥청망청 써도 되는 걸까?

에일린은 앨버트와 찰스가 조금 걱정이 됐다.

그녀는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던 마음을 굳히고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세 좋게 들어왔지만, 안의 화려한 실내 풍경에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종종 반쯤 벗고 다니는 미녀들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그냥 술만 마시는 곳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에일린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머, 귀여운 마법사 아가씨. 여기는 여자는 안 받는 곳인데…."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중년 미부가 다가오며 말했다. 나이가 있지만 기품 있는 그 모습은 그녀가 이곳의 마담이라고 추측됐다.

"아, 전 이곳의 마담 줄리아라고 해요."

"예? 예....저, 저기…."

너무나도 다른 세계를 사는듯한 그녀 화려함에 에일린은 당황하며 우물쭈물했다.

마담 줄리아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물었다.

"아! 애인 찾으러 왔어요?"

이런 일이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예? 아, 아니....요"

"어머, 애인 찾으러 온 게 아니에요?"

"그, 그건 아니고...도, 동료를 찾으러…."

에일린은 우물쭈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동료요? 음....이곳에 온 손님을 찾으러 왔군요? 약속했나요?"

"그, 그건…."

"찾는 분 이름이 뭐예요?"

"이, 이름이요? 애, 앨버트....에요…."

에일린은 마담에게 말을 하면서도 앨버트가 이곳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앨버트가 이곳에 있을까?'

주변에 돌아다니는 예쁜 여자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에일린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그, 곱상하게 생긴.....도련님…."

마담 줄리아의 입에서 아는듯한 말이 나오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호, 혹시 이곳에 있나요?"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어본다.

"동생...안 되겠다. 내 동생 같아서 그냥 두지 못하겠어."

"예?"

"넌 마법사 아니니? 앞날이 창창한데 왜 그런 남자에게 매달리는 거니? 나도 이런 장사를 하는 입장이지만.....이런 곳을 들락이는 남자는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그래도 마법사 아가씨가 동생 같으니까 말해주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에휴....이렇게까지 하진 않으려고 했는데....따라와 봐."

"예? 예?"

에일린은 마담 줄리아의 손에 끌려 안쪽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어두운 조명과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었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특별히 동생이니까 보여주는 거야."

둘은 복도 끝에 있는 화려한 문 앞에서 섰다.

마담은 입술에 검지를 붙이고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하고 슬쩍 문을 열어 자그마한 틈을 만들었다. 

그 문틈으로 미약한 술 냄새 남녀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일린은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마담이 한번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인다.

보면 후회할 거 같았다.

하지만….

'제발..제발….'

에일린은 홀린 듯이 문틈에 얼굴을 붙였다.

크고 화려한 룸이 보였다.

그 안은 벌거벗은 4명의 남녀가 뒤엉켜있었다.

"....."

룸 안의 광경을 본 에일린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곳에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다란 소파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앨버트. 그의 사타구니 사이에 나체의 여자가 얼굴을 묻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앨버트는 자신의 물건을 빨고 있는 여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쾌락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다.

찰스 아저씨는 앨버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벌거벗은 또 다른 여자를 끌어안고 열심히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에일린이 보기에 그녀들의 얼굴은 자신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흐허억! 아, 아가씨....자, 잠깐....나, 나옵니다."

앨버트가 엉덩이를 치켜들더니 이내 곧 몸을 움찔움찔 떨기 시작한다.

에일린의 눈에 앨버트가 꼴사나운 표정으로 쾌락에 젖어 사정하고 있는 것이 여실히 들어왔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에일린은 순간 다리에 힘이 빠졌다.

-비틀….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 한 에일린을 마담 줄리아가 부축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괜찮아? 마법사 아가씨?"

"예? 예.....예?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지….

에일린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정신이 없었다.

"그 앨버트란 아이를 좋아하는 거 같은데....너무 실망하지 마...애인이 아닌 것이 다행이지 뭐. 동생은 마법사니까 좀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가 있을 거야."

에일린은 마담 줄리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도 큰 충격에 머릿속이 멍했다.

에일린은 넋이 빠진 상태로 비틀비틀 플라리티를 나섰다.

-쿠릉….

자신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천둥과 함께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에일린은 멍하니 비를 맞으며 공허한 눈으로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혼이 빠져나간 듯이 걷다 자신의 방을 지나쳐 스승인 운호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

*

*

*

테이블 위에는 와인 한 병과 안주로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예쁘장하게 생긴 카나페가 놓여있었다.

잔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달콤한 포도 향이 입안을 거쳐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쿠릉….

천둥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와 가느다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린다.

폭풍전야….

승부는 띄웠다.

만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나는 이때를 위해 치욕스럽지만, 녀석들에게 원치 않은 미소까지 보였다.

앨버트….

네가 허접한 건지….

아니면 내가 허접한 건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똑똑.

"......"

노크 소리가 있었지만....조용했다.

마리나 클로에는 아니라는 소리다.

오늘은 오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지능력을 확장해 살펴보는 그런 재미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기대를 하며 방문을 열었다.

그곳엔 비에 홀딱 젖은 검은색 생머리를 가진 청순해 보이는 소녀가 처량하게 서 있었다.

에일린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크으음...에일린이구나....앨버트 녀석들과 한잔한다고 하더니.....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예상은 갔지만, 모른 척을 했다.

내 다정한 말에 에일린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흐윽...스승님…."

에일린은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내 품에 얼굴을 묻고 그 가녀린 몸을 가늘게 떨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줬다.

그러자 에일린은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흐앙~!"

나는 그렇게 한동안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등을 두드려 줬다.

"진정이 좀 됐나?"

"훌쩍...네…."

에일린이 내 품에서 얼굴을 떼자 콧물이 길게 늘어진다.

"죄, 죄송해요…."

화들짝 깜짝 놀란 에일린이 얼굴을 붉히고 급하게 소매로 콧물을 닦는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웠다.

수건으로 비에 젖은 그녀의 몸을 덮어주며 말했다.

"감기 걸리겠다. 따뜻한 물로 씻거라."

다소 정신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욕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훌쩍....네…."

욕실 안에는 갈아입을 옷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에일린을 위해 준비했다기보다 마리와 클로에가 언제나 준비해놓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있었나?

기특한 녀석들이다.

한동안 샤워를 한 그녀가 귀여운 잠옷 차림으로 내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욕실에서 나왔다. 

그녀의 볼은 복숭앗빛으로 귀엽게 상기되어 있었고 긴 머리카락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처음보다 조금은 진정이 된 기색이다.

하지만 축 처진 어깨와 붉게 물든 눈가가 그녀의 우울한 기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스승님 이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병과 반쯤 비어있는 와인잔을 본 에일린이 물었다.

"가볍게 한잔하려고 했는데....마침 같이 마실 친구가 필요하던 참이다. 함께 해주겠느냐?"

한잔하고 싶었지만, 제자들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주고 혼자 외로이 술을 마시려 한 스승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스승님…."

노린 게 먹혔는지 에일린의 눈망울이 다시 촉촉해진다.

"네! 저라도 괜찮다면 같이 마셔드릴게요."

그녀는 가라앉은 기분에도 밝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게 말에요....제가 얼~마나 마음고생했눈지 아라요? 그때만 해도.......그런데.....앨버트는…."

"....."

에일린은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테이블 위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와인병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있었다.

"스승님~ 아시게써요?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눈지~ 그런데 앨버트, 이 나쁜 놈이!"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꽤 거나하게 취했다.

그동안 들은 에일린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앨버트는 생각보다 더 등신이었다.

앨버트는 그녀를 가질 기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충 그녀에게 들은 것만 해도 10번이 넘었다.

고자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에일린의 지금 반응을 보면 플라리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걸로 보이니, 고자는 아니었다.

앨버트 녀석은 옆에 잘 구워진 1++최고 등급 한우 스테이크가 있는데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불고기 버거에 손을 뻗은 격이다.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그렇죠? 그런데 앨버트는......흐아앙!!"

갑자기 테이블 위에 없어져 울기 시작하는 에일린이다.

나는 슬쩍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어깨를 토닥여 줬다.

"...스승님~"

고개를 든 그녀가 눈물이 흠뻑 젖은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부른다.

"제가 그렇게 여자로서 매력이 없나요? 그곳에 있는 여자들보다?"

"허허...그럴 리가 있겠나. 그곳에 있는 여자들과 넌 비교할 수 없이 예쁘다."

"정말요?"

"그럼. 너는 누가 봐도 매력적인 여자다."

"정말요?"

"그래."

몇 번이고 내게 물어온다.

여전히 자신이 없는 불안한 눈빛이었다.

서로의 눈을 한동안 마주 보는 상황이 이어졌다. 

"....."

"....."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취기에 그녀의 달아오른 얼굴이 더욱 붉어진 듯도 보였다.

"하아....왜....왜 이렇게 덥지?"

에일린이 내 눈을 슬며시 피하며 잠옷의 목 부분을 잡고 가볍게 펄럭인다. 그녀의 품에서 나온 따뜻한 공기가 얼굴에 닿으며 농밀한 여체의 향기가 느껴졌다.

"못 믿겠어?"

"예? 네…."

그녀가 나를 슬쩍 쳐다보며 시무룩하니 자신 없게 대답한다.

"증명해주지."

"증명이요? 어떻게…."

취기로 상기된 에일린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그녀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면서 눈을 감았다.

떨리는 속눈썹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았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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