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4화 (253/259)

제롬의 머리가 바닥을 구른다.

-털썩….

뒤늦게 놈의 몸도 바닥에 쓰러졌다.

실내의 고급스러운 집기는 다 박살이나 지면에 흩어져 있었다.

난장판이었다.

마력창에 머리가 박살이 난 흑마법사 놈의 시체 하나.

그리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5개의 머리통.

머리가 잘린 흑마법사들과 제롬의 시체가 나뒹굴며 살벌한 살인 현장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나는 시체들을 슬쩍 훑어보고는 시스템 창을 살펴봤다.

스킬포인트가 5개가 들어와 있었다.

미궁 안에서 받은 마왕 추종자 처리 퀘스트.

한 마리당 스킬포인트 하나.

흑마법사 놈들의 숫자와 일치했다.

'아무래도 죽었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이상하다.

이런 큰 소란이 있는데 클랜의 그 누구도 상황을 보러 오지 않는다.

"......"

감각을 퍼트려 건물 안을 살펴봤다.

건물 안에 사람이 없었다.

'뭐야......다 건물을 빠져나갔다고?'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꽤 있었던 거 같은데….

자신의 보스가 공격받는데...대피했다라.

이건 충성심의 문제가 아니다.

미리 이야기된 건가?

'그렇다고 봐야겠지?'

제롬이 흑마법사 놈들을 믿었다고 볼 수 있다.

클랜에 소속돼 있는 모험가들은 흑마법사의 존재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흑마법사는 이 세계에서 상당히 배척받는 놈들이다.

그런데 놈들과 함께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

제롬은 흑마법사의 존재를 클랜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미리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빠져나가라는 명령을 내리진 않았을까.

그런데 제롬 이놈.

상당한 재생능력을 보여준 놈이다. 

그랬던 것 치고는 의외로 쉽게 죽었단 느낌이 든다.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미궁에서 잡았던 흑마법사들의 리더 놈.

그놈의 괴이하고도 상당히 질긴 생명력을.

그러니 혹시나 이놈도 어떤 반응이 있을까 하고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다시 살아나려는 기색은 없었다.

전에 그놈 같은 건 아닌가 보군….

방금 전투에서 보여준 상당한 재생력에 목이 잘려도 살아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다고 하염없이 기다리며 상태를 살필 생각은 없다.

슬슬 마무리하고 가야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냥 갈 수는 없다.

인벤토리에서 소이수류탄을 꺼냈다.

좀비 세계에서 살덩이 괴물 놈에게 재미를 좀 보기도 했으니, 원래 세계에 갔을 때 박격포의 포탄이랑 소이수류탄의 보급을 좀 해왔다.

소이수류탄을 흑마법사 놈들의 시체에 던졌다.

물론 제롬의 시체에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소이수류탄을 던져줬다.

소이수류탄의 화염은 시체를 뒤덮고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슬러버에서 가장 큰 모험가 단체 중 하나의 리더가 흑마법사와 손을 잡고 있었다.

다른 길드 마스터 놈들은 어떨까?

그놈들도 흑마법사와 관계가 있는 건가?

음모의 냄새가 났다.

그런데 그걸 내가 파헤쳐야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 세계의 관리자가 내가 흑마법사와 만난 것을 봤을까?

왠지 봤을 거 같다.

봤다면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판테라 관리자한테 메시지가 꽤 와있을 거 같은데....녀석이 보내는 메시지는 전에 귀찮아서 차단해놨다.

'한번 볼까…? 아니, 보지 말자.'

잠깐 고민했지만 역시 보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보면 후회할 거 같았다.

주변을 둘러봤다.

불이 번져서 주변이 활활 타고 있었다.

이렇게 요란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암살은 성공했다.

내 모습은 본 이들은 다 죽었으니 아무튼 암살이다.

그리고 아직 할 것이 남았다.

내가 들어온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지붕으로 올라섰다.

빠르게 번지는 불에 연기가 건물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염력으로 몸을 하늘로 띄웠다.

발밑으로 어두운 밤에 활활 붉게 타오르는 다크 블러드 클랜 하우스가 보였다. 그 밑에는 클랜원들이 불타는 클랜 건물을 보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전단지다.

미궁 11층 진입동굴의 위치를 표시한 전단지.

수니를 이용해 프린트해온 거다.

그녀는 미궁에 간 적이 없다.

내가 미궁에 갔을 당시 수니는 정령의 씨앗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내 기억을 들여다보게 해 전단지를 만들었다.

도시를 날아다니며 셀 수 없이 많은 전단지 뭉치를 지상으로 뿌렸다.

전단지가 눈처럼 흩날리며 지상으로 떨어진다.

미궁 11층 입구의 정보는 귀하다.

정보 값이 꽤 되겠지만.

마석이 남아도는 내게 돈이 부족하진 않았다.

정보를 통제해 사냥터를 통제하려고 했던 놈들의 행태가 괘씸했다.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정보를 뿌려 미궁 11층 진입동굴을 막은 길드 놈들에게 엿먹일 생각이었다.

괘씸한 양아치 같은 놈들이니 또 요새를 지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전단지를 뿌린다면 내가 부순 요새를 다시 짓기는 힘들 거다.

이 일은 원래 미궁에서 나왔을 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앨버트 놈이 찰스를 제자로 삼아달라는 충격적인 짓을 하는 바람에 까먹었다.

일단 이 정도만 하기로 했다.

이래도 분수를 모르고 깝죽댄다면 제대로 본때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

*

*

다크 블러드 클랜 하우스는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사방이 화염으로 뒤덮인 제롬의 집무실.

검은 로브를 쓴 흑마법사가 포탈을 열고 나타났다.

아이작이였다.

그는 제롬의 눈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쯧....터무니없는 판단오류였군…. 이게 고위마법사라고? 놈은 초월자였어."

불에 타고 있는 제롬의 시체가 보였다.

얼굴이 저절로 찌푸렸다.

오랫동안 무던히 포션을 뿌려 발견한 적합자다.

적합자가 아닌 인간들은?

몬스터가 되어 모험가들을 잡아먹거나 사냥당하면서 미궁을 배회하고 있을 거다.

"허....얼마 지나지 않았으면 그분에게 부끄럽지 않은 제물이 됐을 텐데.....손실이 너무 크구나...그래도 남은 거라도 써야지. 어쩔 수 없군."

무려 7년 가까이 키운 제물이다.

목이 잘렸을 때도 재생을 시킬 수도 있었지만, 초월자 앞에선 의미 없는 짓이기에 내버려 뒀다.

그가 손을 휘젓자 주변의 불이 사그라든다.

그러나 시체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뭐지? 새로운 번(burn) 마법인가?"

초월자의 마법일지도 모른다.

아이작은 시체에서 불이 잘 꺼지지 않는 부위의 살점을 도려내고 나서야 불이 꺼졌다.

그리고 그는 불에 탄 제롬의 시체와 흑마법사들의 시체를 챙겨 그대로 사라졌다.

*

*

*

세 사내가 커다란 둥근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하얀 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차가운 인상의 사내.

카림 길드의 마스터, 파야즈.

후덕한 인상의 골드 핸즈 길드의 마스터, 벤자민.

그리고 브라운헤어와 푸른 눈을 가진 잘생긴 중년 남자, 트라이 길드의 마스터 콘라드.

그들은 슬러버에서 가장 큰 세 길드의 마스터 들이다.

의자는 네 개였지만 한 자리는 비어있었다.

다크 블러드 클랜의 마스터 제롬의 자리였다.

그는 실종됐다.

커다란 경쟁자가 하나 사라졌음에도 그들의 얼굴은 잔뜩 긴장되어있었다.

"역시 그...마법사인가?"

벤자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겠지…."

제롬은 고위마법사를 습격한다고 거창하게 길드 마스터들에게 주변을 통제해달라는 말을 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크 블러드 클랜 하우스는 불타고 제롬도 실종됐다.

아마 죽었을 거다.

게다가 그 마법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11층 입구의 위치를 사방에 뿌렸다는 거다.

그가 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그러했다.

"쯧....자신만만하더니 뭔가 있을 줄 알았더니 괜히 건드려서…."

벤자민은 짜증이 났다.

고위마법사는 미궁에서 나와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지냈다.

그런 걸로 봐서는 얌전히 지낼 생각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그걸 제롬이 건드려서 화를 돋운 모양이다.

그리고 정작 사고를 친 놈은 커다란 똥 덩어리를 던져주고 사라졌다.

이제 다시 그곳에 요새를 짓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위치가 만천하에 공개됐으니 상당한 모험가가 몰릴 거다.

한두 파티면 모를까….

더 이상의 통제는 불가능했다.

영주가 끼어들 명분도 생겼다.

아마도 영주는 자신들이 지었던 곳에 요새를 세울 가능성이 높았다.

명목상 미궁은 영주의 소유물이었으니….

원래는 영주 몰래 요새를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발견한 영주와 은근히 알력 싸움을 하던 중이었는데 다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는 건…."

콘라드가 걱정스레 말했다.

고위마법사의 보복을 이야기하는 거다.

마법사의 저택 습격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지만....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골치 아프군…."

세 길드의 마스터는 그 고위마법사의 분풀이가 그들이 운영하는 길드에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 고심이 깊어졌다.

*

*

*

슬러버 영주 해럴드 백작의 저택.

"고위마법사?"

해럴드 백작은 가신인 케니스 남작에게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보고를 들었다.

모험가 길드 놈들이 몰래 세워둔 미궁 요새가 무너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며칠 묵힌 변이 뚫린 듯 시원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 요새를 무너뜨린 인물이 소속이 없는 운호란 고위마법사였다.

그리고 다크 블러드 클랜의 마스터 제롬은 그 고위마법사를 건드려 클랜 하우스가 불타고 실종이 됐다.

아마 마법사에게 잡혔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썩 좋은 상황은 아닐 거다.

소속이 없는 고위마법사.

해럴드 백작은 당연히 탐이 났다.

그런데 고위마법사의 콧대는 상당히 높다.

적어도 후작이나 공작가 정도는 되어야 무시를 안 당한다.

중위 마법사만 돼도 남작의 작위는 받고 고위쯤 되면 백작의 작위까지는 우습게 받아 낸다.

물론 자신과 같은 영지를 가진 작위는 아니지만….

-톡톡.

해럴드 백작은 의자의 손잡이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그가 고민할 때의 버릇이다.

지금까지 소속이 없다는 이야기는...그 마법사가 권력에 크게 관심 없을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영입은 안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며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

*

*

클랜 하우스에 불을 지르고 전단지를 뿌린 후 시간이 꽤 흘렀다.

놈들에게서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포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는 모른다.

어찌 됐든 일단 더 이상의 침입자는 없었다.

릴리아나에게 쓸데없는 잔소리 들을 일은 없을 테니 그거면 됐다.

"....."

창밖을 보니 푸른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하얀 구름이 멋지게 피어있었다.

누구라도 밖으로 나가고 싶을 만한 좋은 날씨였다.

그 평화로운 날씨와는 다르게 난 왠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귀여운 클로에가 빼꼼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님, 앨버트 님이 복귀하셨습니다."

클로에가 안타까운 비보를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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