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3화 (252/259)

건물 안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인상착의도 듣고 왔다. 

검은머리에 붉은 눈이었던가.

놈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장 위층인 5층에 있었다.

가장 많은 마력량을 가졌고 인상착의도 일치했다.

흑마법사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연관이 없는 건가?

릴리아나가 잡은 흑마법사가 구라를 쳤다던가….

그녀의 심문이 그렇게 허술할 거 같지는 않지만...잘못 하지도 않은 놈 쳐 죽이는 것만큼 찜찜한 일도 없다.

여기서 고민해봐야 의미가 있을까.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다.

제롬은 클랜의 마스터답게 화려한 집무실로 보이는 곳에 앉아 있었다.

건물 곳곳은 규칙적인 마력 패턴이 느껴졌다.

마법이다.

특히 제롬의 집무실에는 꽤 많은 마법이 깔려있었다.

예전 같으면 마법이 걸려있다는 것조차 몰랐겠지만, 무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이런 것도 무난하게 파악이 됐다.

이런 걸 만류귀종이라고 하던가….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이야기다.

놈이 클랜의 마스터라는 것을 고려하면 집무실에 마법이 설치되어있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이 세계에서 보안장치로 마법처럼 좋은 것도 없다.

당연히 놈의 집무실에 어떤 마법이 걸려있는지까진, 마법에 무지한 나는 몰랐다.

지붕 위를 느긋하게 걸었다.

적당한 위치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쯤인가?"

제롬이 있는 집무실 바로 위였다.

발을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내리찍었다.

-쿵!

그 충격으로 지붕에 제롬의 집무실까지 가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뚫린 지붕으로 제롬의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단검이 날아온다.

투명화를 했다고는 해도 이렇게 요란히 들어왔으니 대비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날아오는 그 단검을 잡고 그대로 돌려줬다.

"헛?!"

빠르게 되돌아오는 단검에 놀란 제롬은 빠르게 검을 뽑아 튕겨냈다.

-쩡!!

놈의 검과 부딪친 단검은 그대로 터지듯 박살이나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제롬이 만만치 않은 충격에 비틀거리며 손아귀가 얼얼한지 쥐락펴락한다.

그런데 놈에게 어울리지 않는 뚜렷한 형태의 오러가 검을 감싸고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

소드 마스터의 상징이다.

가지고 있는 마력 양이 꽤 많다고 생각했더니….

겨우 모험가 클랜의 마스터로 지내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능력이다.

숨겼다고 하는 것이 맞을 거다.

다크 블러드 클랜 마스터가 소드 마스터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숨기지 않았다면 진작에 소문이 나고도 남았어야 했다.

소드 마스터가 뭐가 아쉬워 이런 모험가 집단을 운영하고 있나...모험가 클랜의 마스터가 좋다곤 해도 귀족에 비할 바는 아니다.

소드 마스터는 귀족 작위도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는 그런 존재다.

이런 모험가 일이야 귀족 질을 하면서 해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소드 마스터가 이런 작은 클랜을 운영하는 데 만족한다?

수상했다.

역시 흑마법사랑 연관이 있나?

"웬 놈이냐. 모습을 드러내라."

제롬이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잘 알 텐데....내게 선물도 보내지 않았나."

넘겨짚어 본다.

"네놈이 운호라는 마법사인가...설마....올 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진짜 올 줄이야......멍청한 놈, 무덤으로 제 발로 들어왔구나."

놈의 말은 범행을 자백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유죄 확정이군."

-쿵!

발을 굴려 놈에게 빠르게 접근해 주먹을 뻗었다.

제롬은 검을 오러 블레이드로 감싸 내 주먹을 막았다. 

그래도 소드 마스터라는 건가?

나도 소드 마스터 경지에 이른 인간에게 투명화가 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결과는 바뀌지 않을 거다.

-쾅!!

강력한 힘의 충돌에 건물이 흔들리고 집기가 폭풍에 휩싸인 듯 날아간다.

-으적….

오러 블레이드로 휩싸인 검에 금이 간다.

"뭣?!"

오러 블레이드를 감싼 검에 금이 가자, 제롬 놈이 경악했다. 

놈도 오러 블레이드가 깨진다는 상상은 해보지 못한 거 같다.

그 말은 허접들만 상대했다는 거다.

하긴 소드 마스터 이상의 강자를 만날 일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그대로 왼발을 돌려차 놀란 놈의 옆구리를 노렸다.

제롬의 검은 내 주먹을 막은 충격을 상쇄하지 못해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의 옆구리로 향하는 내 발차기 공격을 파악한 제롬이 다리를 들어 올려 막으려 한다.

염력을 사용해 다리를 올리지 못하게 저지했다.

놈의 다리가 잠깐 주춤한다.

내 염력이 소드 마스터의 육체 능력을 막을 정도는 아니지만 잠깐 느려지게 할 정도는 됐다.

콤마 단위로 이뤄지는 전투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놈이 당황한다.

내 크고 굵은 다리가 녀석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으적!!

내 발차기에 맞은 놈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척추뼈가 어긋나며 내장이 터져나갔다.

"크억!"

내 굵은 다리에 옆구리를 차인 제롬은 입에서 피를 내뿜으며 그대로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쾅!

"크윽.....마, 마검사…."

마법사라고 여긴 인간이 육탄전을 하니 당황한듯했다.

놈은 내부가 아작이 났다.

이건 전투 불능이다.

마무리하기 위해 느긋이 발걸음을 옮겼다.

쓸데없는 대화를 나눌 생각도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잠깐 심문할까도 생각은 했지만….

내가 고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구질구질한 상황이 이어질 거 같아 그냥 빨리 쳐 죽이고 돌아가 발 닦고 자기로 했다.

그때였다.

주변 마나의 흐름이 바뀐다.

마력 갑옷에 작용하고 있던 투명화가 흩어졌다.

[주, 주인님. 마력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현상이 있어요.]

수니는 투명화가 풀린 것이 미안한 거 같았다.

커다란 집무실의 곳곳에 포탈이 열린다. 

음침한 로브를 뒤집어쓴 놈들이 그곳에서 걸어 나온다.

5명이었다.

다른 인간들과는 질이 완전히 다른 마력.

흑마법사였다.

텔레포트는 상당히 고위 마법으로 알고 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웬만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마법이다.

라고 릴리아나가 말해줬다.

그렇다면 이건….

"함정이었나?"

"큭큭....멍청한 놈....반신반의하면서 준비는 했지만...진짜 쳐들어올 줄이야....마법사라는 놈이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다."

제롬이 나를 비웃는다.

"....."

이놈이….

바닥을 기는 개미가 어찌 하늘을 나는 이 운호 님의 마음을 알까….

멍청한 게 아니다.

이건 자신감이다.

힘이 없을 때나 조심하는 거다.

개미를 죽이는데 그냥 밟으면 되지 덫을 설치하고 심혈을 기울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제롬이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놈은 내 발차기를 맞고 단순히 갈비뼈뿐만 아니라 척추뼈에도 손상이 갔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부상이었을 거다.

그런데 일어선다.

제롬 놈의 얼굴엔 검붉은 핏줄기가 툭툭 튀어나와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음침한 놈들이 아니랄까 봐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흑마법사 놈들하고 손을 잡더니 이상한 짓을 하는군."

내 말을 들은 제롬의 눈깔이 붉게 빛난다.

"역시 살려둘 수 없는 놈이군…."

"저택의 인간들도 깨끗하게 처분해야 한다."

흑마법사 중 한 놈이 살인 멸구를 입에 담는다.

살인 멸구.

나도 지금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이 통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면 시간 끌 것은 없었다.

마력창을 만들어 재빠르게 가까운 흑마법사 놈에게 던졌다.

보호막이 일어나더니 마력창을 막는다.

그러나 마력창은 보호막을 그대로 부수고 흑마법사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아니?! 분명 마법은 사용할 수 없을 텐데!"

뭔가를 했다고는 생각은 했지만 그런 짓을 한 건가?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실제로 수니가 시전한 투명화가 풀렸으니.

하지만 내가 직접 관여한다면 달라진다.

앞으로 가는 트럭을 어린아이가 앞에서 막는다고 해서 막히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지금 마력을 쓸 수 없었다고 한들, 내 강인한 육체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했다.

흑마법사 한 놈이 죽는 걸 본 제롬이 급하게 내게 달려든다.

오러 블레이드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검이 나를 쪼개려 다가온다.

이젠 봐줄 필요 없다.

다가오는 검을 향해 마주 주먹을 뻗었다.

내 주먹과 놈의 오러 블레이드가 부딪친다.

검이 허무하게 그대로 부서져 나가면서 주먹이 놈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으적!

놈의 얼굴이 그대로 움푹 들어가며 뒤로 튕겨 나가 구르다 대자로 뻗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죽....진않고 정신을 잃은 거 같았다.

얼굴이 완전히 뭉개졌다.

죽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움푹 들어간 안면이 꿈틀거리면서 원상복구가 되고 있었다.

이놈 인간 맞아?

신기하고 궁금하긴 했지만, 놈에게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먼저 흑마법사다.

제롬이라는 방해물도 없다.

말 그대로 학살의 시간이다.

"마, 막아!!"

내 시선이 놈들에게 향하자 한 녀석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검은색 촉수 같은 게 바닥에서 솟아나 와 내 몸을 휘감는다.

가볍게 한 걸음 걷자 허무하게 촉수가 끊어져 나간다.

손에 마력으로 빠르게 생성되는 칠흑의 대검.

그것을 본 흑마법사들이 창백하게 질린다.

시간을 줄 생각은 없었다.

놈들이 도망갈 시간을.

어차피 쫄리면 도망갈 게 뻔했다.

그리고 마법사 놈들은 그 방법이 아주 탁월했다.

발악하듯 내게 날아오는 핏빛의 창.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하고는 흑마법사 놈들이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접근해 대검을 휘둘렀다.

놈들의 보호막은 종잇장처럼 찢기고 순식간에 목이 잘렸다.

4명의 목이 잘리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흑마법사 네 명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털썩털썩.

뒤늦게 몸통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엉망이 된 실내에는 재생을 마친 제롬만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 이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흑마법사 놈들의 머리가 전부 떨어져 있었으니 놈도 황당할 만했다.

그런 놈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

-스걱!

내 대검이 놈의 목을 스치고 지나간다.

녀석의 머리가 공중에 떠올랐다.

아직 당황한 놈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본다.

-데구르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