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에 놓여있는 플라스크가 보였다.
그 안에는 백옥색의 액체가 들어있었다.
정령과 성교를 하던 운호의 정액을 뒤집어썼을 때.
화를 내면서도 그의 정액을 몰래 챙겨놨다.
신기한 액체.....정액이다.
썩지도 않는다.
인간의 정액과 비슷한 하얀색이긴 했지만….
훨씬 영롱하고 깔끔한 색깔을 유지하고 있었다.
밀봉된 마개를 열었다.
-뽕.
인간의 정액에서는 도저히 날 수 없는 좋은 향기가 난다.
한 방울 정도 꺼내 손가락 위에 올려본다.
-킁킁.
냄새가 좋았다.
혀 위에 올려 살짝 맛을 봤다.
혀끝에 짜릿한 느낌이 들면서 굉장히 맛있었다.
그의 피도 맛이 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이었다.
자궁이 저릿하고 떨리며 반응이 온다.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릴리아나는 자기 신체 반응을 빠르게 분석했다.
일단 암컷을 흥분시키는 성분이 들어있는 것은 확실하다.
"확실히 최음효과가 있는 거 같아. 그리고 마력 반응도…."
그래서 그와 관계를 맺는 여자들이 그렇게 좋아 죽는 건가?
운호는 자기가 인간이라고 우기지만.
외견만 그럴듯하게 보일 뿐 당연히 저건 인간이 아니다.
모든 연구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다.
혈액과 정액을 봐도 답이 나온다.
그의 강함을 봤을 때 전설의 드래곤이 유력하긴 한데….
왠지 그것도 아닌 거 같다.
모든 고문서를 찾아봤지만, 운호와 같은 이종족을 찾을 수는 없었다.
둥근 플라스크에 담겨있는 영롱한 백옥 빛의 액체는 그동안 한 방울씩 맛본다는 게 벌써 절반이나 줄어있었다.
릴리아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의 정액 냄새와 맛을 봤더니 다시 성욕이 끓어오른다.
"하, 한 번만 더하자."
릴리아나는 의자에 다리를 벌리고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손으로 자기 음부를 비비기 시작했다.
-찌걱, 찌걱.
연구실에 음란한 물기 어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릴리아나는 어차피 자신 외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에 마음 놓고 자위했다.
"으응...하읏!"
음부에서 흘러내린 애액이 의자를 타고 바닥까지 뚝뚝 떨어진다.
"아으....가, 간…."
절정으로 가기 바로 직전.
-삑삑.
".....!"
알람이 울렸다.
저택의 구성원들은 이미 마력 패턴을 등록했다.
알람이 울렸다는 건 그 외의 인간이 저택에 들어왔다는 소리다.
자위에 몰두하던 기분이 순식간에 깨졌다. 그리고 시원하게 가기 직전에 벌어진 사태에 확 짜증이 솟구쳤다.
이미 상당히 늦은 시간.
당연히 손님은 아닐 거다.
릴리아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짜증을 추스르며 불청객들의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 비친 것은 시커먼 복장과 복면을 쓴 이들이 사방에서 담을 넘어 저택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인원수는 대략 20여 명.
그중 한 명은 마법사처럼 보였다.
난데없는 불청객이다.
릴리아나는 얼마 전 오랜만에 재회한 제자 녀석이 생각났다.
"베르나 녀석이 보낸 건가?"
그건 아닐 거 같았다.
베르나는 릴리아나가 저 정도의 인원수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베르나가 아니면?
자연스레 귀족을 두들겨 패고 성문까지 부수며 도주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어느 쪽이든 잡아보면 알겠지."
대마법사의 저택을 함부로 들어오다니….
배짱이 좋았다.
단순한 저택이 아니다.
대마법사가 자신의 마탑을 세우듯.
이곳은 릴리아나의 마탑이었다.
침입자의 등에는 다소 무거워 보이는 불룩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은밀한 침입을 하는데 다소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다.
저택이 그들의 몸을 스캔하며 릴리아나의 머릿속에 정보를 전달해 준다.
이곳에서는 릴리아나가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입고 있는 속옷의 정보까지 알 수가 있었다.
"뭐야?! 흑마법사잖아!"
흑마법사.
마왕의 추종자다.
스스로 힘을 쌓을 능력이 안 돼 마왕의 힘을 빌리는 무능한 놈들.
그리고….
놈들이 멘 배낭 안에도 심상치 않은 물건이 들어있었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로 인해 릴리아나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마력 폭탄이었다.
전쟁에서나 사용되는 병기였다.
그런 병기가 들어있는 배낭을 놈들은 하나씩 메고 있었다.
릴리아나는 놈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대번에 깨달았다.
말 그대로 폭탄과 함께 폭사하겠다는 의미였다.
미친놈들이다.
"이놈들이!"
저택을 끔찍이 아끼는 릴리아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릴리아나는 분노했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은은한 자색 빛을 발한다.
허공에서 고풍스러운 검은색 양산이 튀어나온다.
릴리아나는 손잡이를 움켜쥐고 양산의 끝으로 바닥을 찍었다.
-둥….
저택 전체로 은밀한 마력 파장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저택 안에 있던 침입자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릴리아나가 예전 운호 일행을 다른 공간에 격리했던 마법이다.
원래 아공간은 생명체가 들어갈 수 없다.
릴리아나는 그것에 의문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어떻게 하면 생명체도 아공간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연구는….
시공간을 왜곡시켜 생명체도 들어갈 수 있는 자신만의 아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로 인해 릴리아나는 초월자의 경지에 반 발짝 걸칠 수 있었다.
그 운호조차 애먹었을 정도의 아공간이다.
릴리아나는 운호의 무식한 공격에 고생해서 만든 아공간이 무너질까 싶어 협상했다.
공간이 무너진다면 다시 구축하는데 상당한 마력과 시간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하게 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마법은 일단 가둔다는 면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 안의 시간조차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과거로 돌리는 것은 안 되지만 빠르게 돌린다거나 느리게 가게 한다거나 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리고 그 안의 릴리아나는 저택 안에서처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다.
저택을 매개로 무한대에 가까운 마력을 끌어 쓸 수도 있으니 말 그대로 자신이 만든 아공간 안에서는 절대적인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단점은 저택 안에서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거다.
반대로 말하면 릴리아나는 저택 안에서만큼은 거의 무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놈들....감히 내 저택을 부수려 하다니 무슨 생각으로 어떤 놈이 보냈는지 철저하게 파헤쳐주마!!"
격노한 릴리아나의 앞에 검은색 타원형의 포탈이 열린다.
그녀는 거침없이 그 안으로 사라졌다.
릴리아나가 그렇게 사라지자….
연구실 바닥에는 그녀의 레이스 달린 자그마한 검은색 팬티만 외로이 홀로 남게 되었다.
*
*
*
다크 블러드 클랜의 마스터 제롬은 원래 삼류 모험가였다.
그가 클랜의 마스터에 이르게 만든 것은 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그 시절 삼류 모험가였던 제롬은 술집에서 기사와 시비가 붙었다.
술이 문제였다.
삼류 모험가와 기사.
이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그때는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제롬은 제대로 저항도 못 하고 정신없이 두들겨 맞다가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제롬은 죽지 않고 다시 눈을 떴다.
침상 옆엔 웬 검은 로브와 후드를 쓴 음침해 보이는 마법사가 있었다.
제롬은 그 마법사가 죽어가던 자신을 구해줬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 든 생각은 '왜?'였다.
마법사라면 자신과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자신을 구해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힘이 필요한가?"
음침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목소리는 평범했다.
그리고 뜬금없는 말이었다.
떨떠름하게 쳐다보는 제롬에게 마법사는 조용히 검붉은 포션을 하나 건네줬다.
포션은 불길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것이 네게 힘을 줄거다....더 필요하다면 다시 찾아오도록."
마법사는 그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제롬은 그렇게 얼떨떨한 기분으로 포션을 쥐고 마법사와 헤어졌다.
당연히 마실 생각은 없었다.
제롬은 수상한 포션을 마실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왠지 귀해 보이는 포션을 버리지도 않았다.
포션을 마실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자신은 삼류이기는 하지만 모험가였고 결국 미궁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궁을 들어간 제롬은 곧바로 위기를 맞이했다. 몬스터가 몰려 파티가 전멸할 위기에 빠진 거다.
제롬은 수상한 포션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포션을 마신 제롬은 단번에 오러를 각성하고 위기에서 탈출했다.
힘이 주는 쾌감은 대단했다.
제롬은 바로 다시 그 마법사를 찾았다.
"드디어 적합자가 나타났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마법사는 왜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
그리고 마법사는 군말 없이 검붉은 포션을 제롬에게 건네줬다.
"나는 줄게 없소."
제롬은 당연히 마법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언젠가 말하겠다."
이 마법사가 뭘 믿고 이러나 싶었다.
삼류 모험가를 단숨에 오러 유저로 만들어준 물건을 그냥 준다.
그렇다고 사양하는 것은 바보다.
"이름이 뭐요."
"......아이작이라고 불러라."
마법사가 주는 포션의 힘으로 제롬의 경지는 쑥쑥 높아졌다.
자신을 죽일 듯 두들겨 패며 비웃던 기사 놈을 갈기갈기 찢어 몬스터 밥으로 던져줬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쾌감을 안겨줬다.
제롬은 순식간에 슬러버 강자의 반열에 들었고 세력을 키웠다.
번듯한 모험단을 꾸린 제롬에게 아이작이 말했다.
"네가 마신 포션은 마족의 피를 정제해 만든 거다. 웬만하면 들키지 않겠지만.....신관이 면밀한 조사를 한다면 바로 탄로 나겠지."
"......"
협박이었다.
그제야 제롬은 아이작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후회...는 되지 않았다.
그 삼류 모험가 시절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포션을 마셨을 거다.
포션이 없었다면 자신은 이 위의 공기를 마시지도 못하고 미궁에서 죽었을 테니.
"내게....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지금은 없다. 이대로 세력을 키워라. 지원도 해주겠다."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척살령이 내려질 테니....거역할 순 없었다.
아이작도 그걸 노렸을 거다.
놈들은 거의 제한 없는 지원을 했다.
그렇게 슬러버에서 가장 큰 모험가 집단 중 하나인 다크 블러드 클랜이 탄생했다.
제롬 혼자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다.
놈들은 다행히도 크게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았다.
미궁 안의 마법 재료를 요구한다거나.
간혹 인간을 요구하기도 했지만....노예시장이 활성화된 슬러버에서 구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을 11층으로 보내주는 것도 그 부탁의 일환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모험가 길드 놈들이 맡기 귀찮아하는 요새 관리를 클랜에서 맡아서 하게 됐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미궁 요새의 초토화와 동생의 실종.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미궁 11층으로 향하던 흑마법사들의 실종.
실종이지만 누군가를 만나서 죽었다는 사실을 아이작이 찾아와 알려줬다.
흑마법사는 쉽게 죽일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그런데 한둘도 아니고 모조리 죽었다.
흑마법사를 처리한 놈들이 무언가 단서를 발견하기라도 했다?
아니, 미궁에 흑마법사가 있다고 신전에 말이라도 한다면….
동생의 복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생존과도 연관이 있었다.
재수 없으면 자신은 모든 세력을 잃고 도망자 신세가 될 거다.
서둘러 조사를 해보니 모든 사건의 범인은 한 인물로 귀결이 됐다.
운호라는 고위마법사다.
마법사라면 흑마법사라는 것을 눈치챘을 거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직 신전에 말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말을 했다면 신전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둘 수도 없다.
문제는 고위마법사는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는 거다.
"이 건은 우리가 처리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