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7화 (246/259)

-으드득!

반대쪽 팔이 가볍게 찢겨 뽑혀 나왔다.

-크아악!!

"제, 제발…."

협박이 통하지 않자 놈의 표정이 금세 겁먹은 개처럼 변했다.

무심하게 놈의 오른쪽 다리를 잡았다.

"그, 그만!!"

놈의 얼굴은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애원하는 듯도 보였다.

그런다고 내가 놈에게 티끌만 한 동정심이라도 생길 리가 없었다.

무시하고 놈의 양 다리를 차례차례 뽑아냈다.

"끄아아악!!"

시끄럽긴 했다.

지면은 놈이 흘린 피로 웅덩이를 이뤘다.

이놈….

몸뚱이에 대가리만 대롱 달린 이 모습.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아....데이먼인가 하는 레이첼의 남편이 죽을 때 이랬다.

무의식중에 그놈이 죽던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었나 보다.

그 와중에도 놈은 처절하게 마력을 총동원해 열심히 지혈하고 있었다.

살고 싶은 욕망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살고 싶나?"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후안.

"기회를 주지."

놈의 눈에 환희가 차오른다.

이 꼴이 돼도 어떻게든 살고 싶은 모양이었다.

녀석의 심장에 돌고 있는 7개의 고리와 오러 코어가 느껴졌다.

딱 보니 이놈은 마검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역시 불공평했다.

공평하게 만들어줄 때였다.

놈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퍽!!

그 충격에 놈의 코어와 고리가 순식간에 깨져나갔다.

"크억!!"

놈이 피를 토했다.

"아......안돼!!!"

후안 놈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는지 절규한다.

그래도 혹시 몰라 놈의 몸 안에 내 마력을 침투시켜 단단히 굳혀놨다.

적어도 10년은 유지되게.

설사 살아난다고 해도 능력을 회복하기는 요원할 거다.

"기회를 주마. 평소 좋은 일을 했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말하고 몸뚱이와 머리만 남은 후안 놈을 바닥에 던졌다.

사지가 잘렸다.

어떻게 지혈을 했다고 해도 누군가 그를 구해 치료해 주지 않는다면 곧 죽는다.

최악의 빌런이라고 불리는 놈이다.

원한을 압도적으로 더 쌓지 않았을까.

"박운호!!!"

후안 라즈카는 바닥에서 몸뚱이를 꿈틀거리며 울분을 토해냈다.

놈의 절망에 찬 절규는 내게는 좋은 음악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놈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

*

*

*

운호의 갑작스러운 폭주?에 가디언즈의 구성원들은 긴급회동을 가졌다.

어두운 밀실. 

테이블을 둘러싸고 S급 히어로 4명의 홀로그램이 자리하고 중앙에는 위성 촬영 화면이 떠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유성이 그대로 후안 라즈카의 거처로 알려진 고층 빌딩의 첨단에 충돌한다.

유성은 대기권에서 진입한 박운호였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어느샌가 후안 라즈카는 박운호에게 머리를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어째서인지 후안은 박운호에게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다.

아니, 저항은 했다.

그러나 어떤 공격도 박운호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S급 빌런이다.

남미의 폭군, 왕, 아니 신으로까지 칭송받는.

이곳의 누구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런 그가 별 반항도 못 하고 사지가 찢겨나갔다.

상식을 벗어난 말도 안 되는 강함이었다.

왕천, 멀린, 오라클. 

환생 3인방은 전생을 통틀어서도 저런 존재는 본 적이 없었다.

"....."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

멀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기권 바깥까지 나갔다고 하더군....인간이 맞나?"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저놈의 강함은 비정상적이다. 후안 라즈카가 벌레처럼 뜯겼다. 놈은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 있어!"

왕천이 심각하게 열변을 토했다.

그는 무복과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박운호에게 얻어터진 부기가 아직 빠지지 않았다.

"질투인가?"

엘라가 그 무거운 입을 드디어 열었다.

"뭐?"

"일반 각성자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그의 격차가 그 정도 벌어졌다는 이야기지. 자기보다 강한 존재가 나타났다고 난리를 피우는 모습은 질투로밖에 보이지 않는군."

"........"

엘라의 비꼬는 말에 멀린과 왕천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원래 멀린이 제자로 들이려고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런데도 오로지 본신의 능력만으로 S급의 반열에까지 오른 존재다.

박운호가 비전 도서관이라는 것을 개방하고.

그 비전 도서관을 본 그녀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는 멀린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엘라가 박운호를 은근슬쩍 옹호하는 것은.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다 움직인다면.....그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오라클이 멤버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

후안은 마법을 사용해 박운호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여기 있는 이들의 능력은 후안과 큰 차이가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럼 정해진 거 아닌가요? 쉽게 생각하시면 돼요. 그는 악인이 아니에요. 그런데 걱정할 게 있나요?

"그의 힘은 터무니없다. 혹시나 그가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만약에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죠. 지금은 그를 막을 수도 없고요."

"그의 여자들을…."

멀린이 슬쩍 음침한 의견을 던져본다.

오라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위험한 생각하지 말아요. 후안이 어떻게 됐는지 봐 놓고도 그런 소릴 해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는 후안에게 협박을 받자마자 움직였어요. 말도 안 되는 정보력이죠."

"정보 단체를 운영하고 있지는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

멀린도 그게 의문이었다.

박운호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조사는 철저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따로 정보 단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껏 해 봐야 히어로 프렌즈라는 회사인데….

그곳은 평범한 각성자 매니지먼트다.

박운호가 속해있으니 이젠 평범하지는 않지만.

컴퍼니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정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속도야.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자신만의 특별한 마법이 있을지도 몰라."

엘라가 말했다.

"그는 이 세계에 마법을 풀었어요. 우리가 모르는 마법도 많이 알고 있을 거예요. 괜히 그를 건드리지 마세요. 우리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것보다 위험한 상황은 없으니까. 저기 후안 보이죠? 

위성 촬영 화면이 몸통과 머리만 남아 꿈틀거리는 후안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 구성원 중 하나가 저 꼴이 된다면......그래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보기 좋진 않을 거 같아요."

후안의 모습은 박운호의 잔인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다른 히어로들 같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을 해치는데 거침이 없다.

히어로들은 살인을 어느 정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빌런이라고 해도 저렇게 잔인하게 처리하는 히어로는 거의 없다.

대격변 초창기 야만의 시기를 거치지 않은 젊은 히어로일수록 그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해결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

모두가 의아한 눈빛을 오라클에게 보냈다.

"운호 님과 사이좋게 지내는 거죠!"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오라클의 말에 멀린과 엘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고.

왕천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

*

*

후안 라즈카는 박운호에 의해 모든 능력을 잃고 몸뚱이만 남은 처참한 상황이 됐다.

마나 고리와 오러 코어가 산산이 조각났다.

사지가 잘린 채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설사 부하들이 자신을 발견한다고 해도 살려줄 가능성은 희박했다.

점점 의식이 흐려졌다.

'이대로 끝인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후안 님. 아직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웬 사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했다.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내의 얼굴을 보려 했으나 출혈 때문인지 시야가 흐릿해 잘 보이진 않았다.

"휴…. 다행입니다. 아직 살아계셨군요. 과연 후안 님이십니다. 이 정도의 중상인데도 살아남아 있다니."

후안은 비몽사몽인 정신 속 누군가 자기 몸을 옮기는 걸 느꼈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몇 번의 의식이 깜빡이다 결국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안은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사람 얼굴이 아른거린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초점이 잡혔다.

낯익은 젊은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다행입니다. 정신을 차리셨군요!!"

후안이 정신을 차리자 사내의 얼굴은 기쁨에 차 있었다.

"넌.....파블로?"

파블로는 휘하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뛰어난 능력을 보여 눈여겨보고 있었다.

"네.....후안님. 저 파블로입니다."

"여긴?"

"저만의 비밀 안가입니다."

"어떻게…."

"마력을 고갈할 정도로 힘이 들긴 했습니다만.....후안님을 빼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가 마법이라는 것에 꽤 재능이 있는 모양입니다."

자신이 이 꼴이 되었다는 걸 안다면 많은 놈들이 이빨을 드러낼 거다.

그 상황에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구하다니….

후안은 파블로의 충성심에 감동했다.

"파블로 고맙다. 내가 힘을 되찾는다면 너에게 이인자의 자리를 약속하마."

사지를 잃고 모든 힘을 잃었음에도 후안은 포기하지 않고 복수의 불씨를 불태웠다.

그런 후안의 모습에 파블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예? 풉....푸하하하....이건 정말.....놀랍네요!"

"뭐, 뭐냐. 파블로. 왜 그러는 거냐?"

후안은 그런 그의 모습에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설마 아직도 제가 충성심에 당신을 구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사방에 원한을 그렇게 쌓아놓고 정말....당신의 뻔뻔함도 대단하군요."

파블로의 말을 들은 후안은 불안함으로 눈이 떨렸다.

"한때 당신을 신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당신도 진짜 신을 만나자 한 마리의 벌레에 불과하더군요."

파블로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후안은 식은땀이 흘렀다.

"파, 파블로. 이인자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다."

"큭큭....당신이...신처럼 군림하던 당신이....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은.....꿈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절망이었죠. 신에 대항할 수 없다고 포기했습니다. 그런 신과 같던 당신이 이런 꼴이라니…."

파블로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런 그의 모습은 후안을 섬뜩하게 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파블로."

"후안, 당신은 신이 아니었습니다. 박운호 그분이야말로 신이었습니다."

파블로의 눈에 알 수 없는 희열이 깃들어 있었다.

-철컹.

불길한 쇠문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누워있던 후안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헥헥!!

거친 숨소리와 함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로트와일러였다.

후안이 잘 알고 있는 개이기도 했다.

"세, 세르난데스."

후안의 애견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사실을 기뻐할 수 없었다.

-지잉.

기계음과 함께 침대가 갑자기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파, 파블로!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에이...아시면서....당신이 즐겨하던 일이 있지 않습니까."

후안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자! 등짝, 등짝을 보여주십시오!"

후안의 몸이 저절로 뒤집힌다.

파블로의 염력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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