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과도 같은 놈의 정신파가 울려 퍼졌다.
그러게 진작에 살려달라고 빌었어야지.
그래도 살려주진 않았을 테지만.
드릴창이 가차 없이 그대로 놈의 코어를 찢어발겼다.
-푸확!!!
코어를 분쇄하자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공동이 요동을 쳤다.
무너져 내린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는듯했다.
악성종양이 녹아내려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공동이었던 곳을 중심으로 살덩이로 된 거대한 분지가 만들어졌다.
여전히 도시는 불타고 있었다.
사방에서 메케한 연기가 올라온다.
그런데 퀘스트 완료가 되지 않았다.
'방금 부순 게 코어가 아니었나?'
감각을 흩뿌려 주변을 훑었다.
분쇄된 코어의 잔해에서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역시 마석과는 다른.....
그곳에 거인의 손을 집어넣어 보니 딱딱한 게 느껴졌다.
그것을 뜯어 올렸다.
1미터쯤 되는 검은색 둥근 살덩이가 드러났다.
검은 살덩어리는 꿈틀거리고 있었다.
움켜쥐고 있으니 놈의 다양한 감정이 흘러들어온다.
분노. 두려움. 탐욕….
살려달라는 애원 같기도 했다.
'이게 진짜 코어인가?'
아직 포기하지 못하는지 검은 살덩이 코어가 스멀거리며 마력 거인의 손을 꾸물꾸물 침식하려 한다.
-퍼석!
손에 힘을 줘 코어를 터뜨렸다.
-༊༤ཥགྷ!!
단말마일까?
"....?"
그런데 여전히 퀘스트 완료가 되지 않는다.
'뭔가 더 있는 건가?'
터진 코어를 자세히 살펴봤다.
"어?"
박살 난 코어의 살점 틈에 칠흑빛을 내는 마석이 보였다.
그 마석은 보통 마석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고 있다.
잊을 수가 없는 마석이다.
검은 마석.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 거인화를 풀고 검은 살덩이 잔해 반쯤 파묻혀 있는 그 마석을 염력으로 들어 올려 가까이 가져왔다.
역시 맞았다.
과거 내게 흡수되어 각성의 원인으로 추측되는 그 마석.
검은 마석을 손에 올려본다.
역시 마석은 내 손을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마석은 그때와는 다르게 내 강인한 육체에 막혀 흡수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완 완전히 다른 존재다.
'허락'이 없다면 마석이 내 몸에 흡수되는 건 요원한 일이다.
그때였다.
<차원 상점에서 ??의 파편을 1조 코인에 매입하고 싶다고 희망합니다.>
"이, 일조?"
터무니없는 코인이다.
하지만 명백한 이상 상황이었다.
차원 상점은 개방이 되고부터 물건만 팔았지, 의견을 표현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짓을 한다?
그만큼 탐나는 물건이라는 말이다.
나를 각성자….
아니, 이런 터무니없는 놈으로 만들어준 물건이다.
차원 상점이 아니더라도 귀한 물건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상당한 코인이긴 하지만….
굳이?
지금 코인이 급한 상황도 아니고….
<차원 상점이 ??의 파편을 10조 코인으로 구매를 희망합니다.>
미친...열 배가 뛰어?!
차원 상점은 내가 팔 생각이 없어 보이자 갑자기 구매가격이 10배로 뻥튀기된다.
하지만 나는 기쁘다기보다 차원 상점 놈에게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안 팔아."
<1,000조 코인.>
니미….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자 기쁘다기보다 절대 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1경.>
"......"
그 후로 차원 상점에서 더 이상의 배팅은 없었다.
씹....이 개 생양아치 새끼.
이걸 보면 이놈이 얼마나 악랄한 놈인지 알 수 있다.
1경 코인 물건을 1조 코인에 사려고 한 거다.
터무니없는 눈탱이를 맞을 뻔했다.
이쯤 되면 확실히 영웅소환권도 확률 조작을 의심해 봐야 한다.
차원 상점이 안달 낼 정도의 물건.
수수께끼의 검은 마석은 영롱하게 검은빛을 내며 내 손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수니, 이게 뭔지 넌 알 거 같아?"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주인님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겠어요.]
흡수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일단 인벤토리 안에 고이 모셔두기로 했다.
귀한 물건이다.
섣부른 선택은 금물이다.
혹시 언젠가 다른 곳에 사용처가 있을지도 모른다.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은 신중하게 하는 것이 좋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격이 다를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이 검은 마석을 흡수하고 나서 별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바다에 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경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검은 마석이 너무 아까웠다.
내 여자에게 준다면 나와 비슷한 강력한 조력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말도 됐으니….
천천히 생각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말 그대로 살덩어리의 분지.
이 살덩이 분지 안에는 대량의 마석이 박혀있었다.
이거....캐야 하나?
지금 마석이 궁한 건 아니었다.
사냥꾼들이 청주에서도 열심히 캐고 있고.
그러고 보니….
퀘스트가 왜….
이놈 안 죽었나?
죽은 거 같은데….
.......그게 아니면.....침식체가 아니었다고?
생각해보면 최상급 침식체보다는 강한 놈이긴 했다.
이놈이 초월첸가 뭐시긴가?
확실히 이곳 퀘스트엔 판테라와는 다르게 초월체 처리 퀘스트는 없었다.
그렇게 의문점이 많은 현 상황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으니….
"운호! 내가 왔다!!"
까망이 하늘에서 내려오며 우렁차게 자신의 등장을 알린다.
녀석의 목소리는 왠지 신이 나 있었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 어느 때 보다 당당한 모습이었다.
까망은 그레이스를 등에 태우고 내 옆에 내려섰다.
"운호, 괜찮아?"
까망의 등에서 내린 그레이스가 날 살펴보며 걱정스레 묻는다.
"괜찮아."
그녀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안심시켜줬다.
"운호, 이거 먹어도 되나?"
까망은 그렇게 말하며 내가 쥐고 있는 검은 마석을 탐욕스럽게 힐끗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감히 검은 마석을 달라진 못하고….
검은 마석을 감싸고 있던 바닥에 흩어져 있는 박살 난 외피를 요구했다.
'그러고 보니......이 녀석….'
자세히 보니 덩치가 조금 더 커져 있었다.
녀석은 몇 포인트 정도 될까.
처음 만났을 땐 5포인트 정도 돼 보였는데….
다른 최상급보다야 조금 크기가 작기는 했지만 새라는 것을 감안해야 했다.
역시 10?
츄릅….
나도 모르게 군침이 흘렀다.
"왜, 왜 그러냐…."
내 심상치 않은 눈빛을 눈치챈 건지 까망 녀석이 내게서 슬금슬금 멀어진다.
눈치는 빨라서….
까망이는 공격대원이다.
녀석이 사냥하면 내게 이득이 된다.
꾸준한 스킬 포인트를 벌 수 있다.
황금알 낳는 거위.....까마귀다.
그런 까망이를 잡아먹을 수는 없었다.
".....먹어도 좋다."
"저, 정말이냐? 고, 고맙다. 운호."
내가 허락하자 녀석은 고맙다고 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부리로 콕콕 찍어 먹는 것이 언제라도 빠르게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
생존본능만큼은 기가 막힌 놈이었다.
*
*
*
그레이스와 나는 캠프로 귀환했다.
"운호!! 그레이스!"
캐리가 환한 얼굴로 뛰어와 내게 폴짝 안겼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줬다.
생존자 캠프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험한 여정?에서 돌아온 우리를 감동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나에 대한 호감도가 한껏 올라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먼저 복귀한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거다.
위기의 순간 동료를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한 나의 무용담을.
"아저씨!!"
꼬마 도로시가 도도도 달려와 내 다리를 끌어안고 좋아했다.
불편하다는 듯 다리를 살짝 흔들어도 봤지만, 눈치 없게 달라붙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뒤에 레이첼의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짓고 우리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게 다가온 필립이 손을 내밀었다.
"박운호. 그동안 내가 너를 오해하고 있었던 거 같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사과를 받아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받아줬다.
녀석은 운이 좋았다.
캐리라는 여동생 있었으니….
*
*
*
생존자 캠프의 간부 회의.
그레이스를 위시한 캠프의 간부들은 에드워드 녀석의 처분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자기 누나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공용식량창고에 불을 지른 죄는 컸다.
그는 현재 자숙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당연히 가차 없는 추방이었지만….
제시카가 에드워드의 처분을 고민하게 했다.
에드워드의 누나인 그녀는 쉘터의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마스터키가 물건이 아니라는 거다.
마스터키는 제시카 그 자체였다.
원래 하나뿐인 마스터키는 동생인 에드워드에게 줬다가 잃어버렸고, 이젠 그녀의 지문과 홍채 인식만으로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동생이 멍청한 짓을 했다는 건 알고 있어. 너희가 내 동생에게 어떤 처벌을 하던 나는 따를 생각이야. 그런데 아무리 못난 동생이지만 에드워드를 추방한다면 내가 기분 좋게 너희를 따라 쉘터로 갈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억지로 끌고 가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캠프의 사람들은 그런 짓을 할 인간들이 못됐다.
게다가 제시카는 유능했다.
세상에서 말하는 천재였다.
의사 면허증을 땄지만, 의사가 되지 않았고.
퓨쳐 인더스트리에서 동생과 함께 연구원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개 연구원인 네가 어떻게 쉘터를 열 수 있는 거지?"
그레이스의 의문은 타당했다.
단순한 연구원인 그녀가 쉘터를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할아버지가 퓨쳐 인더스트리의 회장이야."
그녀의 그 한마디로 단번에 이해가 갔다.
제시카 남매는 금수저였다.
어쩐지 곱게 자란 듯한 얼굴이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