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2화 (241/259)

그대로 삽을 내려찍어 살점을 퍼 올렸다.

-푸확!!

커다란 살점이 떨어져 나간다.

그와 동시에 재생이 이루어진다.

'이게 맞아?'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본다.

-푹! 푹! 푹!

연달아 삽질하면서 놈의 살점을 떼어 퍼 올렸지만, 계속 채워지는 모래 안에서 삽질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내가 파고들어가는 속도가 더 빠른 거 같기도 했다.

살덩어리 산이 크게 꿈틀거린다.

놈의 분위기가 바뀐다.

악성종양 놈도 느낀 거 같다.

이대로라면 놈이 소중하게 여기는 곳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까와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거대 촉수가 내게 파도처럼 밀어닥쳐 휘감아 온다.

온몸이 촉수에 감기고.

그대로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놈은 일단 나를 이 거대 악성종양에서 떨어뜨리려는 느낌이 강했다.

벗어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촉수를 끊어내면 금세 다른 촉수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몸을 더 키울 필요가 있었다.

60, 70미터….

이 이상의 크기는 자제하는 편이 좋았다.

말 그대로 마력을 쏟아부어 만드는 거인이다.

어느 정도 여력은 남겨두는 것이 좋았다.

덩치가 커지자 감싸고 있던 촉수들이 찢겨나간다.

무게도 덩달아 수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몸에 붙어있는 촉수들을 뜯어내자 공중에 떠 있던 몸이 지면으로 떨어진다.

-쿠웅!!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거대 악성종양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거대한 촉수가 내게 쏘아진다.

마력으로 빠르게 거대한 거인의 검을 만들어냈다. 덩치답지 않은 빠른 움직임으로 그 거검을 휘둘러 촉수를 잘라냈다.

마력으로 만든 거인이기는 했지만, 마치 내 몸처럼 부드럽게 움직여줬다.

그러나 쉬지 않고 촉수를 쏟아내는 거대 악성종양. 

나는 놈이 쏟아내는 촉수를 끊임없이 잘라냈다.

거검으로 끊어낸 촉수가 꾸물꾸물 점막으로 흡수되는 것이 보였다. 

이 점막도 놈이었다.

재생력을 억제하려면 심층에 있는 놈의 코어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저 살덩어리 안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런데 놈은 내가 접근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촉수를 쏟아낸다.

말 그대로 재생능력을 믿고 물량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촉수는 내가 빠르게 휘두르는 검막에 말 그대로 갈려 나간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끊임없이 쏟아지는 촉수.

뚫으려는 자와 막는 자.

둘의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노가다도 이런 노가다가 없었다.

놈의 재생능력이 어느 정도 될까.

이놈은 끊임없이 재생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언제일지 모른다는 거다.

놈은 코어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마석을 품고 있다.

그 마석까지 생각한다면….

하루 이틀로 끝날 거라 생각할 수 없었다.

놈의 재생능력은 확실히 성가셨다.

그러나 쫄리진 않는다.

지구력에서는 나도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지루하다.

솔직히 이놈은 두들겨 패는 재주밖에 없는 나와 상성이 좋지 않았다.

차라리 릴리아나 녀석이 오히려 쉽게 처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바쁘진 않지만….

이런 촉수 괴물 놈과 그렇게 오랜 시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봉인했던 물건을 쓸 때였다.

'수니. 비상 상황이다. 그걸 준비해라.'

[옛썰~!!]

*

*

*

그레이스는 거대 종양과 검은 거인의 경천동지한 싸움을 보고 입이 저절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보니 그가 거대 살꼽등이와 싸우면서 보여준 것조차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때보다 몇 배는 더 큰 거인을 만들어낸 운호는 종양에서 쏟아져나오는 촉수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자의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넋을 놓고 운호와 촉수 괴물의 대전을 보고 있던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웬 아름다운 검은 머리의 소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군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구, 군인?'

군인이라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너, 너는?"

"전 수니라고 해요. 주인님을 모시고 있는 정령 같은 존재라고 이해하시면 편할 거 같아요."

"저, 정령?!"

"네! 아쉽지만.....이야기를 길게 나눌 시간이 없네요. 까망 님! 저 빌딩 옥상으로 가주세요!!"

"알았다."

운호와 악성종양 괴물이 전투하는 상공을 배회하던 까망이 방향을 틀어 수니가 가리킨 빌딩으로 향했다.

수니가 가리킨 곳은 그레이스도 잘 알고 있었다.

컬럼비아 센터.

시애틀에서 가장 높은 고층빌딩이다.

까망이 컬럼비아 센터 옥상에 착지하자 수니는 재빠르게 뛰어내려서 주변을 둘러본다.

"지금 뭐 하려는…."

"이곳이 좋겠네요!"

수니가 그 말을 하자마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커다란 물건이 나타났다.

신기하지만 익숙한 광경이었다.

운호가 사용하던 초능력과 비슷했다.

".......박격포?"

최첨단 신형무기처럼 보이는 박격포였다.

박격포는 저절로 지지대가 내려오더니 그 동체가 움직이지 않게 고정했다.

"각도는 이 정도면 괜찮아 보이네요."

수니는 어디서 나온 건지 지휘봉으로 운호와 싸우고 있는 거대한 악성종양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발사!!"

-펑!

박격포에서 날아간 포탄은 거대 살덩어리의 위에서 터져 하얀 연기를 길게 늘어뜨리는 불의 비를 떨어뜨린다.

백린탄이었다.

거대 악성종양 위에 떨어진 백린은 그 살덩어리에 꺼지지 않는 불을 붙인다.

그 고통 때문인지 그 거대한 살덩어리가 크게 꿈틀거린다.

"좋아요! 효과가 있어요!! 연속 발사!!"

-펑 펑펑!!

조작하는 사람도 없건만 전자동 박격포에서 연이어 발사되는 포탄이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운호가 화한 검은 거인도 포함되어있었다.

운호는 이젠 불의 거인이 되어 그를 밀어내려는 거대 종양을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레이스가 걱정스레 수니에게 물었다.

"운호......괘,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요!! 주인님은! 맨몸으로 맞아도 괜찮으실걸요? 저것 봐요!"

수니가 도시의 한 곳을 가리켰다.

도시에 퍼진 점막과 촉수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운호가 싸우고 있는 거대 악성종양 괴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맞았다.

"녀석도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끌어모을 정도로 급하다는 거겠죠! 계속 발사합니다!!"

그와 함께 연속으로 박격포의 포격이 이어졌다.

불구덩이 속에서 싸우는 불의 거인과 거대한 살덩이 촉수 괴물.

그 위로 쏟아지는 불의 비.

두 거대한 괴물들의 싸움으로 주변은 초토화가 되고 있었다.

'저게 초능력이라고?'

그레이스는 운호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었다.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싸움이다.

인간의 싸움으로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초능력이라고 해도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레이스는 운호가 한 말의 의미를 이제야 제대로 알 거 같았다. 

저런 능력을 본다면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를 두려워할 것이다.

*

*

*

하늘에선 불의 비가 떨어지고.

대지가 불탄다.

나와 저놈의 촉수 괴물도 온몸이 불에 휩싸여 싸우고 있었다.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된 듯했다.

놈의 피부는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거인 역시 화염에 휩싸여 있었지만, 놈과는 다르게 아무런 영향이 없다.

박격포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저놈의 박격포 때문에 제주도까지 내려갔다.

청주에서 쓸 당시에는 개 뻘짓했다고 생각해 속이 좀 쓰렸지만.....결국은 이렇게 유용하게 쓰게 됐으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당연히 이 살덩이 괴물 놈은 소이탄만으로는 절대 처리할 수 없는 괴물이다.

그렇지만 놈은 나와 팽팽하게 대치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이 차이는 컸다.

소이탄이라는 변수가 끼어들자 기세는 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주인님! 임무 완료했슴다! 이제 포탄이 다 떨어 졌슴다!]

어디서 배운 말투인지….

촉수 괴물 놈은 재생능력이 떨어져 있었다.

점막이 사라지고 불바다가 되자 놈에게 유리했던 전장이 이젠 내게 유리한 환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놈은 내가 잘라낸 촉수의 흡수마저 원활히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쏟아지던 촉수가 어느 순간 주춤했다.

지금이 기회다.

이제 승부를 볼 때였다.

지금 놈에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커다란 덩치를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놈의 안에 파고들기엔 지금의 거인은 너무 크다.

거인의 덩치를 반으로 줄였다.

반이라고 해도 30미터가 넘는 크기다.

거인의 몸을 줄임과 동시에 들고 있는 거검을 거대한 창으로 변형시켰다.

창의 모양은 특이했다.

그 끝에는 터무니없이 거대한 드릴이 달려있었다. 그 크기는 거인의 전면을 대부분 가릴 정도로 거대했다.

그 거대한 드릴이 회전을 시작한다.

-위이잉!!

그 드릴창을 앞세우고 발을 강하게 굴렀다.

-쿵!

지면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며 순식간에 거체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수니.'

[갑니다요!]

거인의 등짝에 거대한 둥근 추진 장치가 생성됐다.

-콰앙!!!

등 쪽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짐과 동시에 폭발적인 추진력이 발생했다.

순식간에 가속이 붙었다.

드릴창이 놈의 살을 분쇄하며 파고들었다.

-푸화악!!

놈이 재생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빠르게 뚫고 들어갔다.

놈의 재생능력이 떨어진 것이 컸다.

-드드드득!!

살덩이를 갈아내는 드릴의 표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등판에서 일어나는 추진력을 이용해 강하게 발을 굴려 드릴창을 밀어붙이며 앞으로 돌격했다.

삽보다는 드릴이었다.

사람은 문명의 이기를 써야 한다.

순식간에 놈의 몸을 관통해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공동의 벽 역시 꿈틀거리는 검붉은 살덩이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동의 중앙에 누가 봐도 중요해 보이는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10미터는 될법한 그 거대한 둥근 살덩어리에는.......공동의 벽에서 뻗어 나온 수없이 많은 살덩이 줄기가 연결되어있었다.

누가 봐도 놈의 코어.

약점이라고 강렬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지체하지 않고 그 코어를 향해 돌진했다.

공동의 벽에서 수많은 촉수가 나와 나를 붙잡으려 쫓는다.

그러나 내가 더 빨랐다.

-ཌཛྷ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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