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8화 (237/259)

"무, 무슨 일이야?!"

옆에서 곤히 자던 캐리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제 알아봐야지."

캐리와 함께 빠르게 옷을 입고 복도로 나갔다. 

먼저 나온 일행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레이스와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무언의 인사를 했지만, 그녀는 어색하게 내 시선을 슬며시 피한다.

'어젯밤의 일이 부끄러운 건가?'

제시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보안실로 가보자."

우리는 보안실로 이동해 감시카메라 화면을 살펴봤다.

"여기야."

제시카의 말과 함께 한 화면의 크기가 확대됐다.

그 화면에는 우리가 타고 온 엘리베이터를 비추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두꺼운 금속 문은 약간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벌어진 문틈 사이로 꿈틀거리는 검불은 살점이 보인다.

-끼기긱!!

문틈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제시카가 태블릿을 조작하더니 말했다.

"저 엘리베이터 구역은 폐쇄했어. 하지만 보다시피 그렇게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시간이 없어. 이제 바로 탈출해야 해."

-쾅!

엘리베이터의 문짝이 찢기듯 터져나가며 살점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어서 그곳을 비추고 있던 감시카메라의 화면이 먹통이 됐다.

"서둘러."

그 화면을 보고 있던 제시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우리는 서둘러 준비하고 폐쇄된 열차 정류장 입구 앞에 섰다.

구더기가 없다 뿐이지, 이곳도 상당수의 좀비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쾅!

진동과 함께 전등이 깜빡인다.

살덩이 괴물 놈이 연구소의 폐쇄된 지역을 뚫으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태블릿을 조작하고 있던 제시카가 말했다.

"열게."

"잠깐."

내가 저지하자 제시카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곧바로 내게서 흘러나온 마력이 나와 일행의 전신을 감쌌다.

마력 갑옷이었다.

"히어로 슈트!"

캐리가 신나서 소리쳤다.

그녀는 마력 갑옷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나중에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진짜 히어로 슈트라도 하나 사다 줘야 하나?

"히, 히어로 슈트? 이건 뭐지?"

제시카가 신기한 듯 자기 몸을 감싼 마력 갑옷을 살펴보며 물었다.

"내 초능력이야. 그게 있는 한 좀비 놈들에게 물려도 큰 문제 없을 거다."

"에드워드 말고도 다른 초능력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이건 정말 신기하네. 좀 더 물어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는 게 아쉬워. 그럼 문 열게."

제시카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익!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폐쇄된 열차 정류장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정류장을 가득 채운 좀비들의 시선이 동시에 우리 쪽으로 쏠린다.

"크에엑!!"

좀비들이 미친놈처럼 괴성을 지르며 우리에게 우르르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작은 에드워드였다.

그가 초능력을 사용해 주변으로 화염을 흩뿌렸다.

몰려오던 수십의 좀비가 불타오른다.

그러나 좀비는 여전히 많았다.

뒤에 있던 좀비들이 불타는 놈들을 밀어제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레이스와 필립, 리처드가 앞으로 뛰어나가면서 좀비들을 말 그대로 학살한다.

마력 갑옷 때문에 물려도 겁날 일이 없다.

그러니 거침없이 움직일 수가 있는 거다.

지상에서 쭈글거리던 이들이 지하의 좀비 상대로는 여포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파죽지세로 좀비들을 밀어붙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정도로 초능력자가 많으니 좀비 녀석들도 별거 아니네. 호럇!"

캐리가 주먹을 좀비의 입안으로 쑤셔 넣어 박살 낸다.

"캐, 캐리! 가만히 있어!"

필립이 캐리의 그 모습을 보고 식겁한 듯 소리쳤다.

"필립, 걱정하지 마. 봐봐. 이렇게 멀쩡하잖아."

캐리가 멀쩡한 손을 보여주며 태연하게 말했다.

마력 갑옷이 육체의 힘까지 올려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캐리는 가볍게 좀비를 처리했다.

특별한 수련도 하지 않은 보통 여자가 마력 갑옷을 입었다고 해도 저렇게 좀비를 때려눕히진 못한다.

필립은 잘 모르는 듯했지만, 캐리의 저 모습은 각성의 전조증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좀비는 많았지만, 마력 갑옷도 있고 초능력자가 나를 제외하고도 4명이나 되니 좀비 떼를 무난하게 돌파하게 됐다.

선로로 내려와서는 오히려 편해졌다.

열차 정류장 처음 입구만큼 좀비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차가 다니는 통로를 따라 목표지점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쿠르릉….

뒤쪽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살덩이 놈이 지하 연구소를 박살 내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를 들은 일행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그렇게 종종 나타나는 좀비를 처리하면서 한동안 이동을 하고 있으니….

-으드드드득!!

무언가 억지로 비집고 밀려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땅에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속도를 늦춰 후방으로 이동해 어두운 선로 끝을 살펴봤다.

어둠은 내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

선로 끝에서부터 열차 통로를 꽉 채운 채 밀려 들어오는 거대한 살덩이가 보였다. 그 피부엔 수많은 눈알이 박혀 데굴거리는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놈은 그동안 보아온 살덩이들과 궤가 다른 괴물이라는 것을 느꼈다.

"놈이 온다. 달려!"

나는 일행에게 그렇게 말하고 제시카와 캐리의 허리를 끌어안아 옆구리에 끼고 달렸다.

"뭐 하는…."

제시카가 갑자기 자신을 낚아채 옆구리에 끌어안고 달리는 내게 놀라 뭐라 하려 했지만, 말을 잇진 못했다.

뒤쪽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눈동자들을 본 거다.

내 경고에 뒤를 본 일행도 열차 통로를 가득 메운 채 다가오는 살덩이 괴물에 아연실색하며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살덩이 괴물에게 쫓겨 달리고 있으니 에드워드가 점점 뒤로 쳐진다. 

그는 이곳에서 캐리와 제시카를 제외하면 가장 체력이 떨어진다.

당연한 결과였다.

"에드워드 뭐해!! 빨리 안 달려?!"

내게 들려있던 제시카가 에드워드에게 소리쳤다. 말은 거칠게 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있었다.

"헥! 헥! 누, 누나…."

'역시 버리면 안 되겠지?'

제시카의 동생이다.

버린다면 그녀의 호감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었다.

앞을 보니 저 멀리 통로가 넓어지는 곳이 보였다.

정류장이다.

목표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부터는 캐리와 제시카가 그냥 뛰어가도 될 만한 거리였다.

들고 있던 그녀들을 바닥에 내려줬다.

"운호?"

캐리가 의아한 듯 나를 부른다.

"먼저가."

캐리가 내 말에 흠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달렸다.

제시카도 동생이 걱정되는지 잠깐 주춤했지만 내 무언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달렸다.

그녀는 에드워드가 걱정될 거다. 

그런데도 상황판단이 빨랐다. 

자기가 있어 봐야 별 도움이 안 될 것을 안 거다.

에드워드가 헐떡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헥헥! 우, 운호 님..."

당연히 기분 나쁘게 남자 녀석을 안고 뛸 생각은 없었다.

에드워드 녀석의 팔을 잡았다.

"어?"

그는 내가 팔을 잡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대로 에드워드를 일행이 달리고 있는 앞으로 던졌다.

"으악!!"

순식간에 일행을 추월해 앞으로 날아가 바닥을 뒹구는 에드워드.

주변에 있던 좀비들이 녀석을 덮친다.

"사, 살려줘!!"

쫄보 녀석.

마력 갑옷을 입고 있으니 다칠 일은 없었다.

에드워드는 초능력을 사용하면 되는데 패닉에 빠져 그것도 못 하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레이스를 비롯한 일행이 빠르게 달려들어 에드워드에게 붙은 좀비들을 처리한다.

"이 멍청아. 엄살피우지 말고 일어나."

"어? 어…."

제시카에게 구박받고 머쓱하니 일어나는 에드워드.

-드드드드득!

거대 살덩이가 밀려온다.

감각을 확장해서 놈에게 마석이 있나 살펴봤지만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본체인가?'

생긴 것도 그렇고 그 초거대 살덩이에서 뻗어 나온 촉수일지도 모르겠다.

밀려오는 거대 살덩이를 향해 소이 수류탄을 몇 개 던졌다.

-푸확!!

소이 수류탄이 터지자 살덩이가 화염에 휩싸인다.

-뀌에엑!!

놈은 뜨거운 열기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주춤하더니 다가오는 속도가 확연히 줄었다.

이것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행이 도망가는 시간을 버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달리면서 계속 놈에게 소이 수류탄을 던져줬다.

살덩이 촉수는 화염에 휩싸였음에도 꾸역꾸역 움직여 따라온다.

열차의 정류장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물류창고 지하.

우리가 지상으로 올라가기로 한 목적지였다.

"운호!!"

그레이스가 반쯤 열린 차단문에서 급하게 나를 부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꾸물꾸물 쫓아오는 살덩이를 슬쩍 보고는 소이 수류탄을 몇 개 더 던져주고 반쯤 열린 차단문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쿵.

내가 안으로 들어오자 차단문이 완전히 닫혔다.

-콰앙!

살덩이 괴물이 부딪친 건지 상당히 두꺼운 금속으로 된 차단문이 삐걱거린다.

안심할 수 없다.

이것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 같았다.

모두 그것을 느낀 건지 우린 쉴 새 없이 계단을 타고 지상으로 향했다.

바깥으로 나오자 맑은 하늘과 태양이 우리를 반겨줬다.

-헉! 헉!

급하게 지상으로 올라 온 일행은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아...하아...타, 탈출 성공?"

-콰앙!!

캐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물을 부수며 거대한 촉수가 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 살덩이에 박혀있는 눈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언가를 찾는다.

그리고 그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됐다.

거대 촉수가 가로막는 건물들을 부수며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젠장!! 좀 쉬게 좀 해달라고!! 아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쫓아오는 거야?!"

캐리가 쉴 새 없이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게, 말이다.

역시 에드워드 때문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이 빌딩에 들어가겠다고 점막을 불로 태우면서부터 이 사달이 난 거 같다.

말리려면 그때 말렸어야지 이제 와서 그때 일어난 일을 탓해봐야 의미 없다.

일행은 계획대로 픽업트럭을 주차해둔 곳으로 쉬지도 못하고 도주를 시작했다.

다시 촉수와 쫓고 쫓기는 마라톤이 시작됐다.

나는 가장 체력이 약한 제시카와 캐리를 양팔에 한 명씩 안아 들었다.

캐리는 익숙하게 내 목을 끌어안고 자세를 잡는다.

제시카도 내 품에 안기자 약간 흠칫하긴 했지만 이내 안정적으로 내게 기대왔다.

이렇게 내가 두 여자를 안고 달리자 문제는 또 에드워드 쪽에서 나타난다.

녀석이 슬슬 처지는 기미가 보였다.

"필립, 에드워드 좀 업어라. 애인을 버릴 셈이냐?"

"어? 저 필립이란 보안관이 에드워드 애인이었던 거야?!"

에드워드의 애인이라는 소리에 제시카가 깜짝 놀란다.

"시발! 애인 아니라고!"

필립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부정한다.

그러나 에드워드를 업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사람 둘이나 들고 달리는 내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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