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가 신이나 앞장서 안내를 시작했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살점 구더기들이 보였다.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나는 그곳에 소이 수류탄을 던졌다.
-푸확!!
소이 수류탄이 터지면서 불길이 치솟는다.
-뀌이익!!
구더기들이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불타오른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하다.
커다란 구더기들이 뒤에서 밀려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곳에 소이 수류탄을 몇 개 더 던졌다.
다가오다 불타 죽기도 했지만, 워낙 많은 구더기가 쏟아지다 보니 소이 수류탄으로 막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보였다.
마법 지팡이를 꺼내 익스플로전을 사용할까 하다가 상당히 지저분한 상황이 벌어질 거 같아 자제했다.
그렇다면 그것보다 조금 온순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주먹을 움켜쥐고 그대로 앞으로 내질렀다.
-펑!
주먹 끝에서 풍압이 터져 나온다.
그 풍압에 구더기들이 터지며 바깥으로 밀려 날아간다.
이것도 잠깐의 미봉책일 뿐.
금세 다른 구더기가 그 틈을 메웠다.
"운호! 빨리 와!"
그레이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후방에서 구더기를 막고 있는 나를 부른다.
다시 밀려드는 구더기들을 향해 소이 수류탄을 몇 개 더 던지고 일행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일행은 복도 끝에 있는 커다란 금속 문 앞에 서 있었다.
문 위쪽 빨간불이 반짝이는 감시카메라가 움직이며 일행을 살펴보는 게 보였다.
에드워드가 카메라를 향해 다급하게 손을 흔든다.
"누나! 제시카! 나왔어!"
제시카? 에드워드 녀석의 누이 이름인가?
-덜컹.
굳게 닫혀있던 금속 문이 양옆으로 열린다.
그리고 안쪽에서 환한 빛이 쏟아졌다.
안쪽은 깔끔한 은색의 금속 방이었다.
에드워드가 그 안으로 들어가 일행을 부른다.
"어서 타세요!"
방안은 우리 일행이 다 들어가도 충분한 여유가 있을 만큼 넉넉한 크기였다.
일행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꾸물꾸물.
복도 끝을 보니.
구더기들이 말 그대로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빠, 빨리 문 닫아!"
캐리가 그 장면을 보고 식겁하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괴물 구더기들을 향해 소이 수류탄을 던졌다.
-푸확!!
소이 수류탄이 터지면서 불길이 일어나자 잠깐 주춤하는 듯하더니….
이내 '꾸역꾸역' 복도를 가득 메운 구더기들.
소이 수류탄의 불길마저 덮고 봇물 터지듯 다가오는 그 모습은.
나도 살짝 긴장될 정도였다.
무섭다기보다 저 더러운 구더기를 뒤집어쓰고 싶은 인간이 누가 있을까.
다행히도 구더기 괴물들이 도착하기 전에 문이 닫혔다.
-두두두두두.
구더기 괴물들이 두드리는지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문쪽에서 들렸다.
-우웅.
기계음과 함께 몸이 잠깐 붕 뜨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밑.....지하로 내려가는 듯했다.
평범한 엘리베이터라기에는 상당히 큰 규모였다.
'화물 엘리베이터인가?'
주변을 둘러보니 위쪽 구석에 감시카메라가 한 대 보였다. 그러나 단순한 엘리베이터라고 보기엔 조작할 수 있는 어떤 버튼도 보이지 않았다.
외부에서 조종하는 것일까?
에드워드의 얼굴엔 편안함과 기쁨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동안 밑으로 내려간 엘리베이터는 어느 순간 멈췄다.
목표지점에 도착한 듯했다.
-덜컹.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안경을 쓴 이지적인 백금발의 미녀가 하얀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른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은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미모가 바래진 않았다.
오히려 그것조차 매력적으로 보이는 미녀였다.
'이 여자가 제시카?'
에드워드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동안 조금이나마 그를 의심했던 과거의 나를 조금 반성했다.
이곳까지 큰맘 먹고 온 보람이 있었다.
"누나!!"
에드워드가 기뻐하며 누나로 보이는 그녀에게 양발을 벌리고 달려든다. 하지만 그녀는 에드워드와는 다르게 그다지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퍽!
그녀가 기쁨의 허그를 하려 한 에드워드의 정강이를 찼다.
"악!"
정강이를 부여잡고 '깡충깡충' 뛰는 에드워드.
"누, 누나 왜…."
에드워드가 제시카에게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하아....이 똥멍청이가......도망치라고 내보냈더니 다시 여길 기어들어 오네…."
제시카는 무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에드워드를 욕한다.
"구, 구조대를 부르라고 했잖아."
"구조대는 무슨.....내 동생이지만 눈치가 이 정도로 없을 줄은 몰랐네....그건 널 보내려고 그냥 한 소리였지. 너도 나가 봤으면 알 거 아냐. 구조대 따윈 없다는걸."
"그, 그런…."
누이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한 그 노력에 감동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에드워드.
이놈도 이제 보니 심각한 시스콘 냄새가 풀풀 풍겼다.
"그러고 보니 누나 다른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에드워드가 묻는다.
"다 죽었어."
"주, 죽었다고?"
"어, 내가 죽였어."
자신이 살인했음을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별 변화가 없었다.
"왜, 왜?!"
자기 누나의 충격적인 말에 에드워드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희망이 없어지니, 나를 한번 따먹고 싶다고 온몸으로 표출하더군. 그래서 죽였어."
잘했군.
나는 박수를 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리려 하다니….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화끈한 성격이 마음에 드는 여자였다.
"그나저나 구조대 같진 않은데....보안관이 보이는 걸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제시카는 우리를 슬쩍 훑어보며 말했다.
보안관 복장을 한 필립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죄송하지만 구조대는 아닙니다. 에드워드에게 당신이 쉘터의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필립이 제시카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쉘터? 그곳의 마스터키는 에드워드도 가지고 있었을 텐데...이곳에서 탈출시킬 때 쥐여주고 보냈어."
제시카의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의 눈이 에드워드에게로 무섭게 쏠린다.
특히 필립의 눈길이 살벌했다.
그는 한껏 움켜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개자식이…."
필립의 애인 폭행 라이브 생중계를 현장에서 볼지도 모르겠다.
'허허 에드워드 이놈도 참….'
그에 반해 나는.
제시카의 동생인 에드워드에게 한껏 너그러워져 있었다.
"여,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오해입니다. 쉘터의 마스터키는 호, 호수에 빠졌을 때 잊어버렸습니다…."
에드워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변명한다.
당연히 일행은 그의 말을 믿는 기색이 전혀 아니었다. 그동안의 그가 해온 전적이 있으니 믿는 게 이상했다.
지금 당장 몰매를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의 누나인 제시카가 억제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 진짜입니다! 한번만 믿어주십시오!"
그를 향한 불신의 눈빛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
*
*
제시카가 그동안 지낸 이곳은 화이트톤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연구소처럼 보였다.
"연구소 맞아. 주로 소재를 연구하고....그 외에도 이것저것 연구하는 곳이지."
우리는 제시카의 안내를 따라 긴 테이블이 늘어져 있는 식당으로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죄송하지만, 지금 대접해 줄게 물밖에 없네. 저기 정수기 보이지? 거기서 떠다 먹으면 돼."
"누나 식량은?
"떨어진 지 좀 됐지. 지금은 물만 먹고 있어."
굶고 있다는 소리다.
에드워드가 깜짝 놀라 허겁지겁 자기 배낭에 있던 에너지바를 꺼내 제시카에게 건네준다.
에너지바를 받은 그녀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한창 자살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나도 운이 좋은 건가?"
"그, 그런 소리 하지 마. 누나."
"에드워드, 그러면 이 누나가 쫄쫄 굶으면서 괴로워하다 죽었어야 한다는 말이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시카에게 쩔쩔매는 에드워드를 보니 평소 어떤 관계였는지 알 거 같았다.
누나에게 완전히 쥐여사는 남동생의 표본이라고 해야 하나?
"제시카, 너는 왜 동생과 탈출하지 않은 거지?"
내 질문에 에드워드에게 받은 에너지바를 꼭꼭 씹어먹던 제시카가 말했다.
"에드워드는 초능력을 각성했고 체력이 약한 나는 짐밖에 안 될 거로 생각했어. 그래서 연구소 가드들과 함께 동생을 탈출시켰지."
"그 가드들은?"
"다.....죽었습니다."
에드워드가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겨우 혼자 살아남아 필립에게 건져진 거다.
"역시 내 판단이 옳았네. 그때 따라갔으면 아마 다 죽었을 테니."
에드워드는 누나인 제시카를 버리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을 확률이 높았다.
"그나저나 당신들도 무모하네."
"무모?"
"쉘터의 마스터키를 구한다고 이곳까지 오다니. 키를 주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이제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건…."
아까 그 구더기들을 봤으니 다들 말문이 막힌듯했다.
"따라와."
제시카는 에너지바를 먹어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조금은 발걸음이 가벼워진 모습이다.
그녀는 우리를 수많은 화면이 보이는 방으로 안내했다. 화면엔 연구소 곳곳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 지하 연구소의 보안실 같았다.
"여길 봐."
그녀가 가리키는 화면엔 먼 지상의 전경이 보이고 있었다.
상당히 높은 상공에서 촬영하는 것 같았다.
"드론?"
"위성이지."
그녀가 위성의 화면을 확대했다.
"보여?"
시애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볼 수 있었다.
도시 한쪽에 자리 잡은 흉측한 초거대 살덩이를.
놈에게서 나온 촉수들이 도시 전체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까망이가 말한 굉장한 놈이 저 살덩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모두 놀라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주시했다.
"저 알 수 없는 살덩이는 악성 종양처럼 주변을 집어삼키고 있어. 도시 안의 그 수많은 좀비도 저 살덩이에 전부 삼켜졌지."
화면이 이 지하 연구소 위에 있는 빌딩을 확대한다.
거대 구더기들이 빌딩과 그 주변에 바글거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웩! 더러워…."
그 모습을 본 캐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럽긴 더러웠다.
그리고 그 장면은 내게 잊고 싶었던 과거의 두려운 기억을 끄집어 올렸다.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댁에 갔을 때였다.
그곳에는 공포의 화장실이 있었다.
깊은 구멍을 파고 그 위에 나무판자 달랑 두 개만 놓은 화장실.
상상을 초월하는 지독한 냄새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똥파리들.
그 밑에는 보고 싶지 않은.
그러나 볼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