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4화 (233/259)

그레이스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살덩이 괴물에 대해 한동안 생각에 잠겨 가만히 서 있던 내가 걱정이 된 모양이다. 

"어,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출발하지."

그때 까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까망: 운호, 인간을 발견했다.」

까망이의 보고에 하늘을 쳐다봤다.

까마득한 상공을 나는 까망이 한 지점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그곳에 인간이 있다는 신호 같았다.

"캐리, 저쪽으로 한번 드론 날려봐."

"저쪽? 알았어."

나는 까망이 가리키는 쪽으로 캐리의 드론을 유도했다.

드론 촬영 화면을 보던 캐리가 놀라 소리쳤다.

"어? 운호! 피, 필립이야!"

캐리의 드론 촬영 화면엔 필립 일행이 살덩이 괴물들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걱정할 거 같아 말하진 않았지만.

살덩어리 괴물과 싸워 본 나는, 솔직히 필립 녀석의 생존을 높게 보진 않았었다.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니, 용케 잘 숨어다닌 모양이다.

그들을 쫓고 있는 살덩이 괴물들의 모양은 다양했다.

네발 달린 짐승부터.

발이 여러 개 달린 벌레 같은 모습까지.

그 살덩이 괴물들은 지옥에서나 볼법한 기괴하고도 흉측한 모습이었다.

놈들의 속도는 상당히 빨라 필립 일행과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진다.

"아, 안돼!"

캐리가 필립 일행의 위기에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때 에드워드가 괴물들을 향해 손을 휘젓자 화염이 부채꼴로 흩뿌려진다.

불에 닿자 주춤거리는 살덩이들.

그 틈에 필립 일행은 다시 거리를 벌린다.

그리고 그사이 회복한 살덩이 괴물들이 다시 그들을 쫓는 형세였다.

역시 마석을 뽑아내지 않고 단순한 불만으로는 살덩이들의 재생능력을 완전히 억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운호, 저거?"

에드워드의 손짓에 피어나는 화염을 본 그레이스가 내게 확인하듯 묻는다.

"에드워드 녀석, 결국 다급하니 초능력을 사용했군. 화염 계열 능력자 같아."

"역시, 에드워드가 식량창고 화재의 범인이었어!"

캐리는 에드워드에게 화가 난 듯 말했다.

하지만 그 덕에 필립이 살아있는 거 같기도 했으니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하나?

"어, 어떻게 하지?"

괴물들에게 쫓기는 필립의 모습을 본 캐리가 안절부절못한다.

지금 에드워드 덕에 그럭저럭 도망은 치고 있다고 해도 아직 위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살덩이 괴물들이 처리되지 않는 이상.

에드워드의 마력이 바닥이 나는 순간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도 간당간당한 느낌이었다.

선택은 어차피 두 가지다.

그들을 이대로 내버려 두던가.

구하던가.

캐리와 그레이스가 당연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으니 버린다는 선택지는 사라진다.

"업혀."

"응."

내 의도를 파악한 캐리가 익숙하게 내 등에 찰싹 업힌다.

그레이스를 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필립 일행은 이곳에서 네다섯 블록은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그레이스와 나는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을 구하려면 우리 쪽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캐리. 드론으로 필립을 이쪽으로 유도해."

"아, 알았어."

캐리가 드론의 고도를 낮춰 필립 앞에 알짱거리면서 시선을 끌었다. 아주 눈치가 없진 않은 모양인지 필립은 이채를 띠면서 드론을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 필립 일행이 보였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이동하니 마주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업고 있던 캐리를 내려줬다.

"천천히 따라와."

"알았어. 조심해."

나는 빠르게 그들을 향해 달렸다.

정확하게는 살덩이 괴물들이 목표였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를 본 필립이 놀란다.

"박....운호?"

나는 그들을 뛰어넘어 괴물들을 향해 쇄도했다.

"뭐 하는?!"

순식간에 살덩이 괴물들을 향해 뛰어드는 내 모습에 놀라 달리는 것도 멈춘 필립 일행이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자 괴물들이 품고 있는 마석이 느껴졌다.

그곳을 향해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뻗었다.

창끝이 괴물에게 닿는 순간 손목을 비틀어 회전을 준다.

단순한 회전일 뿐이지만. 

강력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그것만으로 살덩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어 버린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어지는 연격.

창이 마치 여러 개가 생긴 듯 잔상을 일으키며 괴물들을 향해 쏘아졌다.

-퍼퍼펑!

살덩이 괴물들의 몸에 구멍이 뚫렸다.

그와 동시에 괴물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반짝이는 마석들.

이어서 소이수류탄이 구멍 난 살덩이 안에 떨어진다.

-푸확!!

구멍에서부터 솟구친 불꽃이 괴물들을 집어삼켰다.

-끼에엑!!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쪼그라드는 살덩이들은 결국 시커멓게 탄 고깃덩어리가 됐다.

그렇게 쩔쩔매던 괴물들을 순식간에 처리한 내 모습을 본 필립 일행은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이 괴물들을 단숨에…."

에드워드가 놀란 입을 뻐끔거린다.

"너.....어, 어떻게 여기에…."

필립은 난데없이 나타난 내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아...진짜.....필립....생각 없이 뭐 하는 짓이야."

어느샌가 다가온 캐리가 필립에게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그녀의 얼굴엔 그가 무사한 것에 대한 안도의 표정이 서려 있었다.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인물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필립이 캐리를 바라본다.

"캐, 캐리?! 너....너…."

그러면서 나에게 확 인상을 쓴다.

"박운호! 이런 곳에 캐리를 데려오다니 무슨 짓이냐!"

필립은 자신의 시스터를 이 위험한 곳에 데리고 온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민폐 덩어리가 누군데 적반하장이다.

"캐리는 걱정하지 마라. 네가 죽어도 그녀가 다칠 일은 없을 테니. 그리고 네놈이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지. 캐리 아니었으면 구하러 오지도 않았어. 그 덕분에 살은 놈이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쯧쯧."

"으윽!"

말문이 막힌 필립은 분을 참고 나를 노려본다.

그러든 말든 나는 살덩어리 괴물들로부터 척출한 마석을 챙겼다.

"그런데 그건 왜 아까부터 줍는 거야?"

마석을 줍는 나를 본 캐리가 궁금증이 솟아난 듯했다.

"귀한 물건이야."

"그게 귀한 물건이라고?"

"에너지 결정체입니다."

에드워드 녀석이 버릇없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이놈 마석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건가?

내가 의아한 얼굴로 녀석을 보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운호 님."

갑자기 내게 감사 인사를 한다.

이놈이 왜 이래.

기분 나쁘게 친한 척이다.

그러고 보니….

"에드워드......너…."

"예?"

"얼굴이 왜 그러냐."

얼굴이 누가 봐도 누구한테 쥐어터진 얼굴이었다.

"그, 그건…."

에드워드가 반사적으로 필립을 슬쩍 본다.

"허....필립, 예전에 보안관이었다고 하더니.....애인의 얼굴을 이렇게 패다니 데이트폭력 아닌가? 이 정도까지 타락했나? 실망인데…."

"박운호! 애인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냐! 그리고 그놈은 맞을 만한 짓을 했다."

필립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아! 드디어 깨달은 건가? 쯧쯧. 내가 그렇게 뭐랬냐. 에드워드가 범인이라고 했잖아. 사랑에 빠져 사리 분별 못하더니…."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떠는 필립.

결국 화풀이하듯 에드워드를 노려보고.

에드워드는 찔끔하며 고개를 숙인다.

애인의 배신에 분노하는 필립이었다.

*

*

*

우리는 필립 일행에게 대충 에드워드의 사정을 듣게 됐다. 

이야기를 들은 두 여자의 에드워드를 향한 눈초리가 곱지 못하다.

"지금 그 괴물들을 보고도 그곳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맞아, 필립. 괴물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으면서 거기까지 어떻게 가려고?"

에드워드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그의 누나를 구하려 하는 녀석들에게 그레이스와 캐리가 질책한다.

필립과 리처드는 그녀들의 갈굼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느꼈을 거다.

이곳이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두 여자의 반대에 슬슬 분위기가 복귀 분위기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운호 님!! 제발! 제 누이를 구해주세요!!"

그때 갑자기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하는 에드워드.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었다.

내가 괴물들을 처리하는 것을 봤으니 내게 매달리는 것이 누이를 구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그사이 판단한 거다.

"뭐야....기분 나쁘게. 난 남자한테 관심 없어."

여자도 아니고 남자 놈이 바짓가랑이를 잡다니 소름이 끼쳤다.

-퍽!

"으헉!"

내가 발을 털어내자 에드워드가 데굴데굴 뒤로 구른다.

"제발! 운호 님! 제 누나를 구해주십시오. 이렇게 빌겠습니다."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난 에드워드가 이제는 바닥에 엎드려서 내게 부탁한다.

미국인 주제에 도게자는 어디서 배웠는지.

"......"

"운호? 어떻게 할 거야?"

"흠.....일단 그와 따로 이야기해보지."

에드워드에게 물어볼 말이 있었다.

"........이야기한다고?"

그레이스가 갸웃한다.

"따라와."

"예? 에!!"

구명줄을 잡은 듯 기뻐하며 나를 따라오는 에드워드.

녀석을 일행이 보이지 않는 조용한 뒷골목으로 끌고 갔다.

남자 놈과 단둘이 이야기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필요한 일이다.

에드워드는 긴장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예쁘냐?"

"예?"

이놈이 눈치 없이 바로바로 알아들을 것이지.

"네 누나. 예쁘냐고."

잠깐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는 에드워드.

"예! 정말! 예쁩니다!"

이놈....말을 믿을 수 있을까.

"제 누나는 모델 제의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이쁘고 의사 자격도 있습니다!"

내 의구심 어린 표정을 읽었는지 이등병처럼 제 누나의 장점을 필사적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미녀 의사라….

이런 곳에서 죽기에는 안타까운 인재다.

"크흠...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무, 물론입니다."

"만약...그 말이 거짓이라면…."

내가 조용히 노려보자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키는 에드워드.

"각오를 해야 할 거다."

"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에드워드의 눈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필립에게 쥐어터져 볼품없이 변하긴 했지만, 본판은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다.

하긴.....유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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