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3화 (232/259)

이제 오후 3시였다.

아직 어두워지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필립은 커튼을 슬쩍 젖히고 바깥을 살펴봤다.

"!!!"

깜짝 놀란 필립은 급하게 커튼을 닫았다.

"왜 그러지?"

리처드가 물었다.

"바깥에 있어."

리처드가 필립의 뜬금없는 말에 갸웃하며 커튼을 살짝 젖히고 바깥을 살펴본다.

그도 마찬가지로 바로 커튼을 빠르게 닫았다.

"으음…."

리처드가 침음성을 흘렸다.

필립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른 창문도 커튼을 슬쩍 젖혀 살펴봤다.

그리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곳은 괜찮을까 싶어 혹시나 하고 사무실을 나가서 조심스럽게 건물 안을 살펴봤다.

역시나 건물의 바깥에 살덩이가 들러붙어 꿈틀거리며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갇혔어…."

*

*

*

"제 능력이면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에드워드의 말에 필립과 리처드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저 살덩이가 불에 약한가?"

필립은 에드워드가 좀비를 불에 태워죽이는 것을 보고 그의 능력을 유추했다.

"네, 꽤 효과가 있습니다."

"하....그런데 너는 우리가 좆빠지게 도망 다니는 동안 손가락 빨고 있었고."

"그, 그건…."

찔끔한 에드워드가 필립의 눈치를 본다.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 조금 더 기다려 보자. 필립. 시간도 애매하고."

리처드의 말대로 무리하게 돌파하기보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지금 돌파한다고 해도 곧 해가 질 거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에드워드가 말한 곳까지 시간 안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살덩이가 건물 안까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유리를 못 깨는 건 아닐 테고.....우리들이 이 안에 있는 것을 모르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일행과는 상관없이 다른 건물들처럼 살덩이를 휘감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만한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시간을 끌면 운 좋게 살덩이들이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건물을 감싼 살덩이들의 변화는 없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마냥 며칠이고 기다릴 순 없다.

기동성 때문에 식량을 많이 가져오지 않았다.

짧으면 이틀이면 될 거로 생각했고.

길게 잡아 3일 정도 일정을 잡고 식량을 챙겨왔다.

최대한 기다려봐야 내일 아침.

"푹 쉬면서 컨디션 회복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탈출한다."

필립의 말에 에드워드와 리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캐리가 주변을 둘러보며 의문을 가졌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 이유를 알 리가 없었다.

도시 안쪽은 바깥에서 볼 때 보다 더욱 기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건물 곳곳을 휘감고 있는 검붉은 살덩어리들. 

어떤 건물은 덩굴이 아니라 통째로 살덩어리에 덮인 모습이었다.

"운호, 이것 좀 봐 심각한데?"

캐리가 내게 드론이 촬영하고 있는 화면을 보여줬다.

어디선가 뻗어 나온 괴이한 검붉은 살덩이로 인해 도시 대부분이 뒤덮여 있었다.

"으웩! 저게 뭐야…."

캐리가 도로 위에서 꿈틀거리는 소형차 크기 정도의 커다란 검붉은 살덩어리를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저놈도 몬스터인가?'

생긴 건 흉측하지만 슬라임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이런 부류의 몬스터가 나온다고 보면 되나?

호기심이 생겼다.

"잡으려고?"

내가 창을 들고 접근하자 그레이스가 물었다.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살덩어리를 창끝으로 툭툭 찔러봤다.

"우, 운호. 조심해…."

캐리가 걱정스레 말했다.

-텁!

살덩어리가 창을 붙잡았다.

당겨서 빼려고 하니 상당한 장력이 느껴졌다.

-투둑!

창을 힘을 줘 뽑아냈지만, 보통 인간의 힘으로는 뽑기 힘든 수준이었다.

창끝을 살펴봤지만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레이스, 무기 쓸 때 주의해. 이놈들 무기를 잡아채는군."

"알았어."

그레이스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살덩어리가 기괴하게 꿈틀거리더니 변형을 시작했다.

"크, 크랩?"

캐리가 그것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게....같긴 한데….

그 게의 손이 사람처럼 손가락이 달린 손이었다. 네 쌍의 다리도 사람 발처럼 보였다.

게다가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게라기에는 상당히 흉측하고 기괴한 모습이라는 거다.

"내가 주의를 끌지."

나 혼자 보다 그레이스와 함께 녀석을 잡아보기로 했다.

이건 그레이스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이런 괴물이 몇 마리가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다.

어떤 습성을 가졌는지 파악해야 나중에 돌발적인 상황에서 그녀가 대처하기도 편할 거다.

라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그레이스는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살덩어리 게 괴물에게 도끼를 빼앗겼다.

붙잡는 힘이 상당하다고는 생각은 했지만, 육체가 강화된 각성자의 힘으로도 뿌리치지 못할 줄은 몰랐다.

"이거....이러면 손을 댈 수가 없어."

그레이스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끼 말고도 정글도와 창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또 무기를 뺏길까 싶어 주저하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시끄러운 총을 쏠 수도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오러나 마력 발현할 정도의 수준은 돼야 그럭저럭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레이스의 지금 레벨로는 상대하기 힘든 고렙 몬스터라는 거다.

'이놈들....살아있으려나 모르겠군.'

몬스터 수준을 보니 필립 일행들의 생존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시간이 하루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 하나?

"그레이스, 잠깐 물러서 있어. 내가 좀 더 상대해 볼게."

그레이스가 손을 못 쓰니 혼자 상대해 보기로 했다.

붙어 싸우기 싫은 놈이다.

벌레보다야 덜하지만.

질척한 살덩이는 본능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살덩이 괴물의 피부는 큰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고 창을 찌르는 대로 푹푹 박혔다.

마치 고깃덩이를 찌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창이 빠져나온 자리를 금방 살로 채우는 그 모습을 보면 데미지를 받는 느낌이 아니었다.

재생력도 상당한 것 같았다.

그냥 찔러서는 큰 데미지가 없다.

그렇다면.

창에 마력을 씌우고 찌르면서 회전을 줬다.

-펑!

창에 걸린 강한 회전에 놈의 살점이 터져나가며 팔이 떨어져 나갔다.

"효과가 있어!"

캐리가 그 모습을 보고 환호한다.

하지만 이내 꾸물거리며 팔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떨어져 나간 팔은 꾸물거리며 살덩이 괴물 쪽으로 이동하더니 흡수가 된다.

참나….

재생 속도도 그렇고 만만한 놈이 아니다.

창에 회전을 먹이며 연타로 찔러 살점을 터뜨렸다.

-퍼퍼퍼퍼펑!

놈은 순식간에 모든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가며 몸통만이 남는다.

-꾸물꾸물….

그런데도 질리지 않고 재생하는 살덩이 괴물.

놈이 재생하지 못하게 계속 창을 찔러넣어 살점을 터트렸다.

"계, 계속 재생하는데? 이, 이거 잡을 수는 있는 거야?"

캐리가 질린 듯이 말했다.

무한......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아닌 평범한 능력자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재생력이었다.

특히 오러나 육체 강화계열 각성자에게는 상당히 상성이 좋지 않은 놈이다.

'역시 속성공격을 해야 하나?'

하지만 나의 속성은 거의 물리 하나라고 보면 된다.

약점이 있을까?

혹시 코어 같은 게 있나?

내 인지능력을 집중시켜 녀석을 자세하게 살펴봤다.

느껴졌다.

유난히 에너지가 뭉쳐있는 핵 비슷한 것이.

그 핵은 놈의 몸속에서 계속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재생력도 미쳤는데 그 약점으로 보이는 핵도 계속 움직인다. 평범한 각성자들이 상대하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놈이었다.

그래도 내게는 어렵지 않은 목표기도 했다.

회전하는 창이 움직이는 핵을 찌른다.

-퍼엉!

살덩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반짝이는 무언가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톡. 톡.

그게 뭔가하고 살펴봤다.

은은한 푸른빛을 내는 작은 돌.

마석?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마석으로 보였다.

"우, 운호!"

그레이스가 살덩이 괴물을 보고 놀라 소리친다. 놈이 꾸물거리며 창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허....이것도 약점이 아니라고?"

그래도 아주 효과가 없진 않았는지 재생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진 것이 보였다.

마석에서 마력을 뽑아 재생능력을 높인 건가?

생각보다 더 지독한 놈이다.

역시 속성공격이 답인가?

인벤토리에서 소이수류탄을 하나 꺼내 놈이 재생하고 있는 구멍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동안 재미를 못 봐서 쓸 일이 없을 줄 알았건만.

-퍼엉! 화르륵!!

-찌이익!!

놈은 입도 없는 거 같은데 고통스러운 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불쾌한 냄새와 함께 불에 타올랐다.

효과가 있는 건가?

살덩이 괴물은 불타는 그 와중에도 재생하며 버티려고 했지만 결국 시커멓게 되어서 움직임을 멈췄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불에 타면서 재생 속도가 못 따라간 느낌이었다.

미리 마석을 척출하지 않았으면 꽤 버티지 않았을까?

바닥에 떨어진 마석을 주웠다.

크기로 보면 중급 침식체에서 나올법한 크기였다

그런데 퀘스트 반응이 없었다.

질기기도 질긴데 실속도 없는 놈이다.

이런 경우를 겪어 본 적이 있다.

대전 남쪽에 있는 괴물 장수말벌 놈들.

그놈들도 상당히 실속이 없는 축에 속했다.

'그래도 마석은 주니 그놈들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자기 위로를 해본다.

'역시 본체가 따로 있을까?'

이 세계는 각성자들의 레벨에 비해 몬스터들이 너무 강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법이나 오러 단련법을 뿌리는 정도다.

나머지는 각성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운호,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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