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2화 (23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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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일행의 앞에 기괴한 살덩어리가 나타났다.

소형자동차 크기 정도 되는 살덩이는 혹처럼 지면에 붙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외에 특별한 움직임 자체는 없었다.

"피, 필립 님....너무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것이…."

그 살덩이를 살펴보던 필립에게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때였다.

그 살덩이에서 촉수 하나가 튀어나와 필립을 향해 쏘아졌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빠르게 쏘아진 촉수를 대비하지 못했을 테지만 그는 초능력 각성자다.

필립은 가볍게 몸을 움직여 촉수를 피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도끼로 촉수를 내려찍었다.

-철퍽!

잘린 촉수가 바닥에서 꿈틀거린다.

"별거 아닌가?"

"필립."

리처드가 심각한 얼굴로 필립을 불렀다.

"어?"

살덩이가 뭉클뭉클하더니 형태가 변해간다.

흉측한 살덩이를 가진 인간 형태의 모습으로.

그 덩치는 3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괴물의 피부 위는 흉측한 촉수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쿵. 쿵.

살덩이 괴물이 필립 일행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피, 필립 님. 일단 피하는 것이…."

에드워드는 겁을 먹은 듯했다.

크기는 변형체 좀비보다 조금 더 커 보였다.

필립이 보기에 민첩성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리처드와 함께라면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리처드, 내가 주의를 끌 테니까."

그것만으로 리처드는 필립의 말을 알아듣고 살덩이 괴물의 뒤로 돌았다.

그리고 필립이 주의를 끄는 사이 리처드가 변형체 좀비를 상대할 때처럼 살덩이 괴물의 오른쪽 무릎을 도끼로 힘껏 내리쳤다.

-철퍽!

질척한 소리와 함께 도끼는 박혀 들었지만, 괴물은 전혀 타격을 받은 느낌이 아니었다.

리처드는 재차 공격하려 도끼를 빼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살덩이가 증식하며 도끼를 타고 올라온다.

위기를 느낀 리처드는 도끼를 놓고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렀다.

"필립 일단 피하자."

살덩이 괴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이상 후퇴하는 것이 옳았다.

다행인 것은 살덩이 괴물의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 거리를 벌리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필립 일행이 그렇게 안심할 때였다.

살덩이가 다시 인간의 형태에서 뭉개지더니 다른 모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네발 달린 짐승 형태를 한 살덩이였다.

"달려!!"

그 모습에 위기를 느낀 필립이 소리쳤다.

네발 달린 살덩어리로 변신한 괴물은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이대로라면 괴물에게 따라 잡힐 거라 생각한 필립 일행은 도로를 벗어나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을 통해 도망치려던 그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기괴한 살덩어리의 벽이 골목 끝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다른 길이다.

곧 살덩이 괴물이 쫓아온다.

시간이 없다.

필립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위쪽에 건물 옆에 붙어있는 외부 철제 계단이 보였다.

필립은 반대편 건물을 벽을 박차고 뛰어올라 철제 계단의 난간을 잡고 계단 위에 올라섰다.

초능력 각성자이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네발 달린 살덩어리 괴물이 골목에 나타나더니 리처드를 향해 달려왔다.

"빨리!"

다급한 필립의 외침.

리처드가 빠르게 에드워드를 위로 던졌다.

필립은 어렵지 않게 에드워드의 팔을 잡아끌어 올렸다.

리처드는 간발의 차이로 달려드는 살덩이 괴물을 피해 필립처럼 벽을 딛고 점프해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렇게 한숨 돌렸다고 생각한 순간.

리처드를 놓친 살덩이 괴물이 다시 꿈틀댄다.

그리고 녹아내리듯이 뭉개지더니, 껌딱지처럼 벽에 붙어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필립 일행은 화들짝 놀라 다급하게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옥상에 오른 필립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옆에 살덩이가 덮여있지 않은 깨끗한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옥상까지 거리가 약간 있었지만, 각성자인 필립과 리처드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필립이 먼저 옥상에서 뛰어 가볍게 건너편 건물에 착지했다.

그 모습을 본 리처드가 에드워드를 필립에게 던졌다.

"억!"

깜짝 놀란 에드워드가 헛숨을 삼켰다.

필립이 가볍게 에드워드를 받는 걸 본 리처드도 점프해 건넜다.

건너왔던 건물을 보자 살덩이 괴물이 옥상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빠르게 건물 옥상 문을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간 후에, 문을 닫아 잠그고 밑으로 내려갔다.

주변을 살펴보며 내려가던 필립 일행은 사무실 같은 곳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사무 책상들 틈 사이로 이동해 몸이 안 보이게 자세를 낮췄다.

"허억! 허억!"

조용한 사무실 안에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두근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울렸다.

필립은 그렇게 웅크리고 한동안 조용히 바깥쪽에 귀를 기울여 봤지만,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따돌린 건가?'

슬쩍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봤다.

어두운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

커튼이 쳐져 어둡긴 했지만, 낮이라 그런지 은은히 들어오는 햇빛으로 인해 시야에 크게 방해가 되진 않았다.

필립 일행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조심스럽게 이동한 필립은 사무실 커튼을 슬쩍 젖히고 밖을 살펴본다.

삭막한 거리와 반대편 괴이한 살덩이에 뒤덮인 건물이 보였다.

"괜찮은 거 같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여기서 잠시 쉬고 이동하지."

그제야 안심한 필립 일행은 바닥에 주저앉아 가방에 있는 단백질 바와 물을 꺼내 마시며 가볍게 휴식을 취했다.

한동안 체력을 보충한 필립 일행은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 뭐 쓸만하게 없는지 살펴보는 행동은 생존자의 버릇과도 같았다.

에드워드도 주변을 둘러보다 탕비실 문을 열었다.

"크어!"

탕비실에서 좀비가 튀어나와 에드워드를 덮쳤다.

"으헉!!"

"에드워드!"

그 모습을 본 필립이 놀라 달려가려 했지만, 도저히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는 거리였다.

에드워드는 그대로 허무하게 좀비에게 물려 죽는 듯했다.

그 순간.

-화악!

좀비의 몸에 갑자기 불이 붙더니 순식간에 화염으로 뒤덮였다.

"케에엑!!"

화염에 휩싸여 버둥거리던 좀비는 새까맣게 타 바닥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에드워드는 구사일생했지만….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고, 그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이 일어난 이유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너.......초능력자였나?"

필립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분노가 섞여 있었다.

"피, 필립 님…."

어색한 에드워드의 표정.

필립은 에드워드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식량창고에 불을 낸 범인이 그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뻑킹!! 애즈홀!!"

필립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에드워드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억!"

"에드워드! 이 새끼! 널 믿었는데! 날 속여?!"

"피, 필립 님. 제, 제발 좀…."

"닥쳐!!"

박운호, 그 자식이 이 일로 얼마나 자신을 비웃을지….

게다가 에드워드 이놈이 박운호에게 범인으로 지목되었을 때 감싸다가 게이로 몰리기까지 했다.

필립은 그걸 생각하니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아 올랐다.

그대로 에드워드의 가슴 위에 올라탄 필립은 주먹으로 그의 안면을 연신 두들겼다.

-퍽! 퍽!퍽! 퍽!

그동안 박운호에게 받은 수치와 울분이 엄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컥! 컥!"

에드워드는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왜인지 반격하지 않고 맞기만 했다.

결국 필립의 일방적인 구타를 본 리처드가 그를 말렸다.

"그만해. 필립."

"후욱! 후욱!"

얼굴이 부은 에드워드는 쌍코피와 입안이 피로 물들어있었다.

"죄, 죄송합니다....하, 하지만 쉘터의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조용히 그를 노려보는 필립과 리처드.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퓨쳐 인더스트리에서 탈출했습니다. 구조대를 부르기 위해."

"허...이 자식,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이었군."

전에 에드워드는 이 사태가 발생하고 시애틀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괴, 괴물들을 피해 호수에 빠진 건 진짜입니다."

"겨우 그거 하나?"

필립이 비아냥거린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리처드가 물었다.

식량창고에 불을 지른 것을 말하는 거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

"퓨쳐 인터스트리에는 제 누이가 있습니다. 저는 시애틀에서 탈출하고 구조대 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게 불을 지른 거랑 무슨 상관인데."

"필립 님은 이곳에 제 누이가 있으니 구해달라고 했으면 바로 이곳으로 와주셨을까요?"

"그건…."

솔직히 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쉘터 이야기가 매력적이긴 했지만….

식량창고가 불타기 전의 캠프는 식량 사정이 꽤 넉넉했으니.......지금보다 훨씬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계획을 세워 느긋하게 오지 않았을까.

"여러분들과 다르게 제 누이는 시간이 없습니다. 식량도 이젠 거의 없을 테고요. 아니, 지금쯤은 다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시발! 그렇다고 식량창고에 불을 질러?!"

에드워드는 자기 누나 때문에 캠프를 궁지로 몰아넣은 거다.

사정이 있다고 해도 면죄가 되지 않는다.

"그건....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쉘터의 마스터키만 얻으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제 누이가 쉘터의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이는 의사 자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허......이 개자식…."

에드워드는 어떻게든 자기 누이를 구하기 위해 그 장점을 어필하고 있었다.

"후.....리처드...미안해. 다 내 실수야. 어떻게 할 거지? 네 말대로 하겠다. 네가 이대로 복귀하겠다면 돌아가지."

"그, 그건. 제, 제발."

필립의 복귀한다는 소리에 에드워드가 간절한 표정을 짓는다.

"시발! 닥쳐! 에드워드, 넌 발언권이 없어."

해명 아닌 해명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필립의 에드워드에 대한 배신감과 신뢰가 회복될 리가 없었다.

"필립, 쉘터의 마스터키를 구하자."

리처드의 결정에 에드워드가 얼굴이 환해진다.

"가, 감사합니다! 리처드 님! 필립 님!"

"시발! 에드워드! 그 입 좀 닥쳐!"

"넵."

리처드는 이놈을 한 번 더 믿기로 한 모양이다. 아니면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확인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누이를 구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진짜인 거 같지만....누이가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진짜일까?'

이미 에드워드를 불신하게 된 필립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리처드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고, 그 말을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알았어. 리처드, 네 생각에 따르지."

고개를 끄덕이는 리처드.

그때 갑자기 사무실 안이 어두워졌다.

이상함을 느낀 필립과 리처드가 숨을 죽이고 날카롭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어두워진 거 말고 특별히 뭔가 변한 것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진다고 해도 이렇게 급격하게 어두워지지 않는다.

'구름이라도 낀 건가?'

필립은 시계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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