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218/259)

그리고 여분의 스킬 포인트는 72포인트가 모였다.

이 정도로 빨리 쌓인 것이 이그니스와 수니의 공이 크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들이 아니었으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다.

물론 나도 알래스카에서 여기까지 날아오며 꾸준히 사냥을 했다.

캐나다에서는 최상급 침식체도 한 마리 잡았다. 그때 잡은 최상급 침식체는 거대한 사슴이었다.

이대로 라면 다음 강화 레벨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거 같았다.

「백설화: 낭군님. 시간 괜찮으신지요.」

시야에 설화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운호: 괜찮아.」

「백설화: 낭군님. 험프리스 캠프에서 마력 발전기와 물 공급 장치의 구매를 희망합니다.」

「운호: 마력 발전기는 네 뜻대로 하고 물 공급 장치는 지금 여분이 없으니 기다리라고 해.」

「백설화: 예, 알겠습니다. 낭군님.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력 발전기야 여분으로 몇 개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물 생성 장치를 만들려면 판테라에 있는 앨버트 녀석이 정령석을 가져와야 해결이 된다.

판테라에 가서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결과가 나온다.

당연히 나는 지금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내가 급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스킬포인트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똑똑.

공격대 메시지로 설화와 간단한 회의를 마치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저녁 식사가 준비됐다는 신호일 거다.

문을 열자 잊기 힘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진한 갈색 머리와 옅은 녹색 눈동자를 가진 미인.

캐리였다.

필립과 싸운 건 그새 기분이 풀린 듯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녁 드셔야죠."

먹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미녀의 초대를 거절할 순 없었다.

"환영파티를 준비했어요."

캐리는 조금은 신이 난듯했다.

"환영파티?"

집 밖을 나서자 보이는 공터 가운데 커다란 캠프파이어가 보였다.

그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집 안에 있는 동안 바깥이 조금 어수선한 거 같더라니......이런 걸 준비한 모양이었다.

"이들이 전부인가?"

대충 세어보니 3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집단이었다.

"네.....몇 안 됐죠?"

캐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캐리와 함께 그곳으로 다가가자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지며 내게 시선이 쏠렸다.

그레이스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내 옆에 서더니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대충 이야기는 들어 알고 계시겠죠? 이분은 박운호 씨예요. 오늘 제가 꽤 위험한 순간이 있었는데 절 구해주셨죠. 저희 그룹에 합류하게 됐어요."

-짝짝짝.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표정을 보면......그다지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필립 한 놈 빼고.

(엄청나게 크군......풋볼선수였나? 우리 편이라니 듬직해 보이긴 하는군.)

(어머, 저 근육 좀 봐.)

(저렇게 크다니, 동양인처럼은 보이긴 하는데...진짜 동양인 맞아?)

(초능력자라지? 그레이스가 데려왔으니 괜찮은 사람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소곤소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들렸다.

까슬한 수염을 가진 190cm는 될법한 거구의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리처드 코헨이라고 하네."

"리처드도 저희와 같은 초능력자에요."

그레이스가 말했다.

강화계로 보였다.

(와우...진짜 크군. 같이 서 있으니 리처드가 아이처럼 보이는군.)

(저 사람 옆에 서 있으면 다 아이처럼 보일걸.)

환영파티라고 해도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캠프파이어를 피우고 그 주변에 앉아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음식을 먹는 것뿐이다.

나도 적당히 잘라 바닥에 깐 통나무 위에 앉아 커다란 캠프파이어를 구경하며 잘 구운 물고기를 뜯었다.

무슨 물고긴지 모르겠지만.

나름 소금 후추 같은 간을 해서 맛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신선도를 보면 호수에서 잡은 듯했다.

물고기 하나를 통째로 들고 있는 사람이 나뿐인 걸 보면 나름 대접한다고 한 모양이었다.

신나서 놀고 있는 꼬맹이들도 몇 보였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내게 다가오려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얕보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세종시의 꼬맹이들처럼 되면 곤란했다.

"다들 이곳에 몇 달 동안 갇혀있었어요. 말은 안에도 굉장히 답답해하고 있을 거예요. 당신이 새로 합류한 것만으로 이렇게 분위기가 들뜰 정도로요."

옆에 있던 캐리가 넋두리를 늘어놓듯 말했다.

"저도 답답해서 보급이라도 나가보고 싶었지만, 필립이 필사적으로 막고 있죠. 그래서 말인데…."

그녀는 잠깐 말을 멈추고 내 눈치를 본다.

내게 뭔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운호는 초능력자니, 보급을 하러 나갈 거예요. 혹시 그때 저도 데려가 줄 수 있어요?"

그렇게 힘든 부탁은 아니었다.

"데려가 줄 수야 있지만…."

"저, 정말요! 야호!"

그녀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좋아했다.

이게 이렇게 좋아할 만한 일인가?

물론 나는 좋았다.

예상치 못한 미인의 포옹이었으니.

"그런데 내가 데려가고 싶어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시스콘 필립 놈이 반대할 게 뻔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동안 절 데려가겠다는 사람조차 없었거든요. 저 지독한 필립 녀석 때문에요! 운호만 허락해준다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몇 달 동안 이곳에 갇혀있었다고 하더니 바깥 구경을 어떻게든 하고 싶은 거 같았다.

그렇게 볼 거도 없는데 말이지….

멀리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그레이스가 보였다.

"혹시 그레이스에게 관심 있어요?"

캐리가 물었다.

"그래."

초등학생도 아닌데 굳이 숨길 이유도 없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막말로 그녀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오...이런...불쌍한 필립."

캐리도 필립의 그레이스에 대한 마음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안타까워한다기보다 오히려 악동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때, 그레이스는 애인이 있나?"

캐리에게 필립 놈이 무시한 질문을 했다.

"없어요."

이곳에 좀 더 눌러앉아 있어도 될 거 같았다.

*

*

*

집으로 돌아온 그레이스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괴물에게 죽을 뻔도 했고 운호 덕에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강력한 초능력자인 그를 영입했다.

당시에는 다소 충동적이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괜찮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놀라운 능력을 생각하면 보급도 지금보다 훨씬 더 수월해질 거다.

운호의 환영파티는 나쁘지 않게 끝이 났다.

그의 영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오랜 섬 생활에 지쳐있던 이들에게 새로운 인물인 운호의 등장은 나름 답답한 공기를 환기해줬다고 할 수 있다.

-똑. 똑.

그레이스는 노크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필립이 서 있었다.

"필립, 무슨 일이야?"

볼일이 있다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이었다.

필립은 잠깐 멈칫하더니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저기......전에 이야기해 본 건 생각해봤어?"

그의 말을 듣고 그레이스는 전에 그가 사귀자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 당시 거절하려 했으나 그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부탁했었다.

"미안, 필립. 난 아직 그럴 생각이 없어."

그레이스는 미세하게 표정이 굳는 그의 표정을 읽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필립은 괜찮은 남자다.

이 생존자 집단에서도 젊은 편에 속했고 여자들에게 꽤 인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레이스에게는 필립이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와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부모가 서로 친분이 있어 자주 같이 놀기도 했다.

너무 오랜 시간 함께였다.

그레이스에게 필립은 남자라기보다 가족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학창 시절에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때도 거절했고 그는 그 후 다른 여자와 사귀었다.

'마음을 접은 줄 알았는데….'

이곳에 와서 다시 대시를 하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바뀌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레이스는 그때와 크게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

"혹시…."

"응?"

무언가 말 꺼낼까 말까 주저하며 입을 들썩이는 필립.

".......미안,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네."

"괜찮아."

".....그럼 가볼게…."

"응."

필립은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곤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레이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는 보통의 사람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연애라….'

캠프 안에도 연애하는 이들은 있다.

그런 생각을 한순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구해준 운호의 사내 냄새 물씬 풍기는 강인한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이 약간은 뜨거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

*

*

*

다음날.

내게 반갑지 않은 얼굴이 찾아왔다.

필립이었다.

"보급 일정을 이야기하려고 왔다. 초능력자들은 순번을 정해 보급하러 나간다."

"그렇군."

대충 예상했던 일이다.

어제 하는 것을 보니 초능력자와 대충 일반인 한둘 껴서 보급품을 가져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내 보급일은 그레이스와 같이 나갔으면 좋겠군."

내 요구에 필립의 인상이 대번에 찌푸려진다.

"보급은 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일만 잘하면 별문제 없지 않나?"

"허...정말 제멋대로군. 내가 그 요구를 들어줄 거로 생각하나?"

"네가 그걸 정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나는 초능력자야. 그 정도 건의는 할 수 있지 않아?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크게 무리한 부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

대충 보니까 그레이스와 필립, 보안관 둘이 어느 정도 이 집단을 컨트롤하고 있는 거 같았다.

리처드도 초능력자이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야 있겠지만, 이런 일에는 크게 관여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레이스에게 말이나 해봐. 그녀가 극구 싫다고 하면 나도 생각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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