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5/259)

『두 마리야.』

"아까 헤어진 곳으로 유인해."

『오케이.』

"아저씨, 변형체야. 아까 필립과 헤어진 교차로로 가야 해."

그레이스와 험프리는 식료품이 잔뜩 들은 가방을 메고 빠르게 달렸다.

교차로에 도착하자 3미터 가까이 되는 거구의 변형체 좀비 둘에게 쫓기는 두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레이스는 가방을 내려놓고 벌목 도끼를 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변형체 좀비를 향해 달렸다.

변형체 좀비에 쫓기느라 창백하게 질려있는 메튜.

일반인인 메튜와 험프리는 좀비와의 싸움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메튜, 험프리 아저씨한테가!"

"아, 알았어!"

그레이스가 도착한 것을 본 필립이 변형체 좀비의 앞에서 알짱거리며 주의를 끌었다.

그의 모습에 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필립이 주의를 끄는 틈을 타 뒤로 돌아 변형체 좀비 하나의 무릎을 도끼로 찍었다.

-으적!

-쿵.

무릎이 부서진 변형체 좀비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일반인이 아니기에 낼 수 있는 파괴력이었다.

좀비의 고개가 그레이스에게로 향하려던 순간 그녀의 도끼가 매끄럽게 변형체 좀비의 머리를 내려쳤다.

-퍽!

머리에 도끼가 깊숙이 박힌 변형체 좀비는 그대로 쓰러졌다.

필립은 여전히 남은 한 마리의 주의를 끌고 있었다.

그 뒤로 접근한 그레이스는 같은 방법으로 능숙하고 빠르게 변형체 좀비를 처리했다.

"잘했어. 파트너."

필립이 내민 주먹에 그레이스는 피식 웃으며 주먹을 마주쳤다.

"그레이스!!"

그때 소리치는 메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또 다른 변형체 좀비가 좀 떨어진 곳에 몸을 피한 험프리와 메튜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일반인인 그들이 변형체 좀비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식량을 든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필립과 그레이스가 대처하기에 조금 먼 거리였다.

그레이스는 어쩔 수 없이 허리춤에 있던 리볼버를 꺼냈다. 그리고 변형체 좀비를 조준했다.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되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총알에 의념을 실었다.

'폭발.'

그레이스의 또 다른 초능력.

그녀는 총알에 의념을 넣어 속성 비슷한 무언가를 담을 수 있었다.

-탕!

커다란 격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날아간 총알이 변형체 좀비의 머리를 맞고 작은 폭탄이 터진 듯 폭발했다.

-펑!

머리가 사라진 좀비가 그대로 쓰러졌다.

그 덕에 메튜와 험프리 둘은 위기를 넘겼지만, 마을 곳곳이 소란스러워졌다.

총의 소음은 상당히 크다.

그 소리를 듣고 마을 안에 있던 좀비들이 반응하는 소리였다.

"챙길 건 챙겼어. 마을에 잇는 좀비 놈들 다 몰리기 전에 빨리 나가자."

그레이스의 말에 필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드득! 으직으직!

그때 어디선가 무언가 부러지면서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그레이스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을 뒤쪽에 있는 숲, 그곳에 길게 솟은 나무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놈이 오고 있었다.

그레이스는 본능적으로 변형체 좀비에 비할 바가 아닌 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달려!! 메튜! 차에 시동 걸어!"

그들은 서둘러 주차해놓은 픽업트럭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콰앙!

건물 하나가 무너지면서 먼지 속 커다란 실루엣이 보였다.

그것은 거대한 크로커다일이였다.

체고만 2미터, 몸길이가 족히 20미터는 넘을법한 거대한 괴물 크로커다일.

건물을 박살 내고 거리로 나온 괴물 크로커다일의 쭉 찢어진 눈동자가 그들을 향했다.

-쿵쿵쿵쿵.

크로커다일이 그들을 향해 빠르게 기어 왔다.

그레이스의 총소리를 듣고 거리로 나오던 좀비가 크로커다일에 깔려 그대로 뭉개진다.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차를 향해 달리는 그레이스 일행.

그레이스는 이대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대책 없이 도망친다면 몰고 온 차는 반드시 박살이 난다.

차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차가 없다면 피난처까지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피난처까지 하루 만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차를 잃는다면 언제 괴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바깥에서 노숙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레이스는 달리던 방향을 틀었다.

"그레이스!"

필립이 그녀를 보고 기겁해 소리쳤다.

"잠깐 유인할 테니까. 내가 도착하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차 대기시켜놔!"

"뭐?!"

그레이스는 필립의 대답을 듣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녀가 혼자 방향을 틀었다고 해도 거대 괴물 크로커다일은 진격 방향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먹이 하나보다는 셋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거 같았다.

그레이스는 리볼버를 꺼내 괴물 크로커다일의 머리를 조준했다.

'관통.'

총알에 새로운 의념을 부여했다.

전에도 저 정도 급의 괴물을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폭발'은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한 점을 뚫는 파괴력은 관통속성이 강했다.

터무니없는 괴물이다.

겉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피부를 봐서 '관통'으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레이스는 그나마 약해 보이는 크로커다일의 눈을 조준했다.

-탕!

빠르게 날아간 총알이 괴물 크로커다일의 눈에 박혔다. 그녀의 예상대로 효과가 있었다.

-크어엉!!!

괴물 크로커다일이 총알에 맞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남은 한쪽 눈알의 동공이 자연스레 자신에게 고통을 준 그레이스를 향했다.

그 괴물의 눈동자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쿵쿵쿵쿵.

괴물 크로커다일이 그레이스 쪽으로 방향을 틀어 빠르게 기어 왔다.

그녀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쫓는 괴물 크로커다일은 짧은다리임에도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그레이스와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왔다.

'이대로 라면 잡혀!'

아니 먹힌다.

그레이스는 괴물 크로커다일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상점 건물 사이 좁은 골목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드드드득!

"이런 무식한 놈!"

나름 놈의 속도를 저지할 수 있을까 싶어 건물 사이로 들어왔는데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괴물 크로커다일은 건물 벽을 불도저처럼 밀어 버리면서 쫓아오고 있었다.

바로 뒤까지 쇄도한 괴물에 위기를 느낀 그레이스는 담벼락을 타고 뛰어올랐다.

간발의 차이로 크로커다일의 쩍 벌어진 입이 담벼락을 부수고 그레이스의 발밑을 스치고 지나쳤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로 놈의 입안에 들어갈 뻔했다.

공중에 뜬 그레이스가 아래를 보니 상처를 입지 않은 나머지 한쪽 눈이 바로 밑에 보였다.

저 눈을 잃게 된다면 악어는 시력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놈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한 그레이스는 들고 있던 도끼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리고 그대로 떨어지며 괴물 크로커다일의 눈을 향해 도끼를 힘껏 내려쳤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건지 크로커다일이 눈을 감았다.

-깡!

강력한 반발력과 함께 도낏자루가 부러졌다.

"쉣!!"

그레이스는 겨우 눈꺼풀 하나를 뚫지 못하고 부러지는 도낏자루에 경악했다. 도대체 피부가 얼마나 단단한 건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등줄기에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정글도를 꺼내 막았다.

괴물의 거대한 꼬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얇은 정글도로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레이스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몸을 급하게 뒤로 물렀다.

-쾅!

괴물 크로커다일의 꼬리가 정글도를 후려쳤다.

간발의 차로 꼬리를 막았지만 정글도는 박살이 나고 그레이스는 날아가 마을 어느 주택의 정원 바닥을 정신없이 굴러 담에 부딪혔다.

"커억!"

그레이스는 등에서 오는 강한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흐릿해진 시야가 빙빙 돌고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 알 수 있는 건….

톱니 같은 이빨이 달린 입을 쩍 벌리고 거대한 크로커다일이 그녀에게 다가온다는 것.

그레이스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죽음을 직감한 그레이스는 눈을 질끈 감고 죽음을 기다렸다.

-으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고통은 없었다.

정적이 흘렀다.

자신이 죽었을 시간은 한참 지났다.

의문을 느낀 그레이스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럭저럭 회복한 시야에 들어온 건.

거대 크로커다일의 다물려 있는 입과 옆으로 삐져나와 축 늘어진 거대한 혀.

자연스럽게 시선을 올려보니 괴물의 머리 위에 2미터는 가뿐히 넘을 듯한 상당한 거구에 탄탄하게 잘빠진 몸을 가진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역광으로 인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캐주얼한 복장과 검은 머리를 가진 사내라는 것 정도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내가 움켜쥔 기다랗고 굵은 창이 악어의 머리에 깊숙이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이 사내가 이 터무니없는.....괴물을 죽인 건가?'

그것도 단 일격.

이 거대 크로커다일의 피부가 얼마나 단단한지 잘 알고 있는 그레이스는 사내 역시 초능력을 각성한 인간으로 예상할수 있었다.

크로커다일의 머리에 박혀있던 커다란 창을 가볍게 뽑은 사내가 뛰어내려 멍하니 주저앉아있는 그녀에게 다가왔다.

"괜찮나?"

그렇게 말한 사내는 그 두텁고 커다란 손을 그레이스에게 내밀었다.

주저앉아있던 그녀는 얼떨떨해하면서도 그의 손을 잡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레이스에게 사내는 땅에 떨어져 있는 보안관 모자의 먼지를 털어 씌워주며 말했다.

"어디 다친 건가?"

"아, 아니. 괜찮…."

"그레이스!"

그때 그녀의 이름을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걱정돼 헐레벌떡 뛰어온 필립이었다.

자연히 그레이스와 사내의 시선이 필립에게로 향한다.

거구의 사내를 발견한 필립은 허리춤에 잇던 권총을 꺼내 들어 그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그녀에게서 떨어져!"

필립의 그 모습을 본 사내는 심드렁하게 턱을 긁적였다.

총이 겨눠져 있음에도 그는 전혀 겁을 먹은 기색이 아니었다. 그보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만해. 필립! 그는 나를 구해줬어."

그레이스가 빠르게 중재에 나섰다.

그녀의 말을 듣고 흠칫한 필립은 천천히 총을 내렸지만, 여전히 경계의 빛은 지우지 않았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은 괴물 못지않게 위험하다. 필립은 당연한 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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