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2화 (211/259)

"그래, 어서 내려가라."

까망이가 급하강을 시작했다.

커다란 마력창을 만들어 일단 캠프 장벽에 가장 위협이 되는 중급 침식체 좀비들에게 던졌다.

빠르게 날아간 마력창이 장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거대 좀비를 꿰뚫었다.

창에 꿰뚫린 거대 좀비가 꼬꾸라지며 작은 좀비들을 깔아뭉갠다.

연이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투창.

뒤쪽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거대 거인 좀비들의 시선이 까망이에게 쏠린다.

-우어어!!

이쪽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 누가 봐도 내게 화가 난 거 같았다.

화가 잔뜩 난, 좀비킹을 비롯한 거인 좀비들은 옆의 건물을 대충 한 움큼 잡아 뜯더니 던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까악! 위, 위험하다!!"

까망이 놈들의 포격을 피하느라 격하게 흔들렸다.

"수니, 바빠?"

[아니에요! 아직 한가해요!]

내 부름에 수니가 내 옆에 실체화하며 나타났다.

실체화한 수니에게 익스플로전 지팡이를 건네줬다.

내게 지팡이를 받아든 수니의 코스튬이 고깔모자와 마법사의 로브로 바뀐다.

"맡겨주세요!"

내가 지팡이를 건네준 것만으로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수니였다.

나는 그대로 까망이 위에서 뛰어내렸다.

낙하를 하며 마력을 바깥으로 뿜어내 거대화를 시작했다.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기선제압에는 크기만 한 것이 없었다.

지면에 닿을 때쯤엔 나는 좀비킹보다 월등히 큰 30미터의 검은 거인이 돼 있었다.

-쿠웅!

내 거대한 발이 지면에 닿자 그 밑에 있던 좀비가 깔리며 그대로 뭉개졌다.

<하급 침식체 처치: 6 / 10 >

<하급 침식체 처치: 7 / 10 >........

쉴 새 없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시스템 메시지.

시스템 메시지를 시야에서 지웠다.

상대적으로 꼬맹이가 되어버린 중급 침식체 거대 좀비가 겁도 없이 달려든다.

이제는 내 무릎에도 오지 않는 작은 크기다. 그대로 발로 차자 거대 좀비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거대화한 몸으로 주변에 발길질하며 발바닥으로 연신 지면을 찍어대자 좀비들이 벌레처럼 으깨진다.

"까망 님, 저쪽으로 가요!"

"난 네 부하가 아니다."

"저와 주인님은 일심동체에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어요?"

"아, 알았다."

수니는 나를 들먹이며 까망이를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녀는 까망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지상을 향해 익스플로전을 난사를 시작했다.

-콰콰콰쾅!

까망과 수니는 폭격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수니는 저 정도의 익스플로전을 연사할 만한 능력이 되진 않지만, 내 마력을 끌어다 쓰면 해결이 되는 문제였다.

우리 둘의 좀비 대량 학살에 공성전을 벌이던 좀비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크어엉!!

보스 놈이 화가 났는지 날 보고 포효했다.

그러자 옆의 호위로 있던 거인 좀비 놈들이 달려든다.

-쿵쿵쿵!

견적이 대충 나왔다.

좀비킹은 최상급 침식체.

호위 놈들은 상급 침식체 정도.

그리고 안타깝게 달려드는 호위 거인 좀비 놈들은 키가 1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정도도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30미터 넘게 거대화를 시킨 나와 체급 차이는 비교할 수 없었다. 놈들은 겨우 내가 만든 검은 거인의 무릎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이건 어른과 아이도 아닌....아기와의 싸움이다.

앞에 달려드는 놈을 향해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퍼엉!!

일격에 상급 거인 좀비가 터져 나가며 박살이 났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좀빈데 죽음이 맞나?'

뒤에 놈은 그대로 손을 뻗어 움켜쥐어 들어 올렸다.

-크어어!!

아기? 좀비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광한다.

-푸직!!

내가 손에 힘을 주자 하반신이 터져 나가며 상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어어!

좀비답게 끈질긴 생명력으로 하체가 없음에도 살아남아 지면에서 꿈틀거린다.

발을 들어 올려 그 위를 밟았다.

-쿵!

-뿌직!

바닥에서 버둥거리던 상체가 그대로 짓이겨졌다.

내 시선이 좀비킹에게 옮겨졌다.

나와 눈을 마주친 좀비킹이 주춤거렸다.

좀비킹의 검붉게 빛나는 그 두 눈이 떨린다.

겁을 먹은 거 같았다.

두 놈이 허무하게 터져 나가는 꼴을 봤으니 쫄 만했다.

그리고 좀비킹은 예상외의 행동을 했다.

어처구니없게 등을 돌리고 달리기 시작한 거다.

-쿵쿵쿵쿵.

좀비킹은 경로에 있던 건물들을 박살 내며 빠르게 내게서 멀어져갔다.

덩치도 있는데 생각보다 빨랐다.

'이것 참...좀비가 달아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왕으로서의 위엄이 없는 놈이었다.

왕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10포인트짜리다.

당연히 놓칠 수는 없었다.

멀어지는 놈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쿵쿵쿵쿵.

두 거인의 달리기에 건물들이 도미노 쓰러지듯 무너진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다리도 내가 더 길고 민첩성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대로 지면을 박찼다.

-쿵!

묵직한 폭음과 함께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검은 거인이 점프하는 모습은 내가 하면서도 경이로웠다.

순식간에 좀비킹의 머리 위까지 거리가 줄어들었다.

마력으로 거인의 손에 걸맞은 초거대 해머를 만들어 그대로 좀비킹의 머리를 향해 내려쳤다.

-꽈앙!!!

-으저적!!

-쿠르릉….

지반이 내려앉고 지진이 난 듯 주변 땅이 흔들렸다. 부실 공사였는지 어떤 건물은 무너지기도 했다.

좀비킹은 내 초거대 해머의 일격에 피떡이 되어있었다.

재빨리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해봤다.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올라오지 않았다.

'안 죽었나?'

의문을 가지고 피떡이 된 놈을 자세히 살펴보니 살덩이에 파묻힌 심장 같은 것이 맥동하면서 주변의 피떡이 된 살점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이놈 재생능력까지 있는 건가?'

그 커다란 심장을 움켜쥐고 뜯어 올렸다.

-쿵쿵쿵쿵!

내 손에 들어온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죽음을 직감한 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살려 달라는 비명처럼도 보였다.

심장을 움켜쥔 손에 힘을 줬다.

-으적!

좀비킹의 심장이 검붉은 피를 뿜어내며 터져 나갔다.

<최상급 침식체를 처치했습니다.>

<스킬포인트 10을 획득했습니다.>

좀비 대군단을 처리하고 얻은 스킬 포인트를 대충 계산해보니.

총합 34의 스킬포인트를 얻었다.

겨우 단 하루 만에 벌은 포인트다.

짭짤했다.

'지금처럼만 한다면 며칠 안 걸려 목표 달성 아닌가?'

거대화를 풀고 놈의 심장에 박혀있던 마석을 염력으로 뽑아내 인벤토리에 넣었다.

생존자 캠프 쪽도 대충 정리가 된 것인지 나를 뒤따라온 까망이가 내 옆에 내려앉았다.

"주인님!"

까망의 등에서 수니가 내게 뛰어내리며 안겨 왔다.

그녀를 가볍게 받아들었다.

"우, 운호...이 심장 내가 먹으면 안 되나?"

내 눈치를 보며 묻는 까망이는 부리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내가 부순 좀비킹의 심장을 굉장히 먹고 싶은 거 같았다.

앞으로 많이 부려 먹을 테니 어느 정도 당근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 먹어라."

"고맙다. 운호!"

녀석은 신이 나서 부리를 쪼아 좀비킹의 심장을 먹기 시작했다.

이걸로 은혜 갚는 까마귀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인님, 마석도 다 회수하고 왔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는 수니였다.

그녀는 내 목을 끌어안고 칭찬해달라는 듯 촉촉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까망 녀석에게만 당근을 주는 건 불공평했다.

수니에게도 당근을 줄 필요가 있었다.

거대한 당근을….

자연스레 서로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츄읍. 츕. 츠룹.

농밀한 키스와 함께 자연스럽게 수니의 말랑한 엉덩이에 손을 뻗어 주물렀다.

'까망이 저 녀석이 심장을 먹는 동안 잠깐 영웅의 안식처에 들어갔다 오면 되겠군.'

수니에게 본격적인 커다란 당근을 줄 생각을 하던 그 순간.

"아! 죄송해요! 주인님! 구조요청이 들어왔어요! 가봐야겠어요!"

수니는 그 말만 남기고 그대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매정하게 사라지자 내 손은 어색하게 허공만 휘젓게 됐다.

"쩝…."

내 마음도 몰라주고 바지 속 부풀어 오른 당근이 껄떡이고 있었다.

*

*

*

험프리스의 생존자들은 인지를 초월한 존재들의 싸움에 얼이 빠졌다.

거인들의 싸움은 마치 신화 속에나 나오는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괴물들의 싸움에 대지가 울렸다.

도저히 인간이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변한 건가….'

사령관 다니엘은 지금까지의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좀비가 나오고 조금 더 강한 괴물이 나오는 것까지야 이해했지만......저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갑자기 나타난 검은 거인.

그 검은 거인은 순식간에 거인 좀비들을 으깨버리고 도망가는 거인 좀비마저 쫓아 북쪽으로 사라졌다.

"바, 방금 그게 뭐였지?"

사령관 다니엘은 부관인 월터에게 물었다.

그에게 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이 터무니없는 상황에 그냥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모르겠습니다. 그 존재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 것인지.......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확실한 건 그 덕에 우리가 살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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