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는 방금 목숨을 건졌다.
다행히 내 손으로 제자의 목숨을 거두는 일은 없을 거 같았다.
그리고 녀석의 입에서 나온 생소한 이름에 어리둥절했다.
"찰스? 찰스가 누구지?"
"예? 저, 저기 전에 미궁에서 스승님이 구해주신…."
"내가 구해줬다고?"
그럴 리가….
이름을 들어서는 시커먼 남자 이름이다.
남자 놈을 내가 구해줬다고?
미궁에서 내가 구해준 건 에일린......아, 그 앨버트 녀석에게 업혀나온.....그놈을 말하는 건가?
"그를 봐달라고.....허? 이 녀석 설마?"
내 찌푸려지는 얼굴을 본 앨버트의 눈빛이 불안함으로 떨린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면 그냥 만나 봐달라는 게 아니라 제자로 봐달라는 말일 거다.
"설마.....그를 제자로 들여달라는 말이냐?!"
"며, 면목 없습니다. 스승님…."
앨버트가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설마가 사람 잡았다.
이런.......미친....호의가 계속되니 둘리가 된 앨버트 놈은 도우너를 데려오려 하고 있었다.
머리가 띵했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은 크게 혼내주어야 했다.
내 분노의 기세를 느낀 건지 앨버트가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만 더하면 똥오줌 지릴 거 같았다.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허......네가 그렇게 부탁하니 한번 보자꾸나."
"스, 스승님!"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한 앨버트.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어제 먹은 게 올라올 거 같았다.
"하지만!"
앨버트가 놀라 마른침을 삼킨다.
"앨버트,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며 살 수는 없다. 네가 그를 소개해 준다는 건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다."
"채, 책임 말입니까?"
"그래, 너는 이 일로 네 제자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너는 그를 내게 소개해 줄 수 있겠느냐?!"
"그, 그건…."
내 말에 앨버트의 눈동자가 잠깐 떨렸지만, 이내 굳은 의지를 가진 진지한 얼굴이 됐다.
"찰스 형님을 보신다면 스승님도 만족하실 겁니다. 정말 마음 따뜻하고 좋은 형님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미친놈.
역시 예상대로 미친 호구 놈이었다.
만족할 리 있겠냐.
지금 내 제자로 만족하는 사람은 에일린 밖에 없었다.
*
*
*
앨버트에게 불려온 남자.
찰스는 날 보자마자 바짝 엎드렸다.
"나, 나리를 뵙습니다!! 전에 구해주신 것은 감사했습니다.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게 이놈들의 은혜를 갚는 방식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염치가 있으면 앨버트에게 부탁하질 말았어야지.
그때는 관심이 없어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이제 보니 순박한 노총각처럼 보였다.
앨버트보다 10살은 많아 보였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앨버트와 달리 얼굴은 그래도 볼만했다.
"그래.....너도 내 제자가 되고 싶다고?'
"네네, 그렇습니다."
"나는 원래 에일린 외에는 제자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내 부정적인 말에 찰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된 얼굴을 했다.
"그렇기에 앨버트는 제자가 되기 위한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합격했지."
내 말에 앨버트 녀석은 재수 없게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역시 예외가 아니다. 너도 알고 있겠지. 사람은 원하는 것을 그냥 가질 순 없다. 내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힘든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너는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되었느냐?"
"예!"
찰스는 각오를 단단히 다진 눈빛을 하고 우렁차게 대답했다.
여기까지는 앨버트에게 들었을 거다.
"그러나! 이건 특별한 경우다. 앨버트의 간절한 부탁이 아니었으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그래서 앨버트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예? 그, 그럼."
내 말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건지 찰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에일린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제자 시험은 앨버트와 찰스 너희 둘이 함께 치른다."
"예!?"
경악하는 찰스와 에일린.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둘이 같이 떨어진다. 앨버트는 제자 자격을 박탈당한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에일린이 놀라 소리쳤다.
"에일린, 이건 앨버트도 동의한 일이다."
"애, 앨버트가요?!"
에일린과 찰스가 경악해 앨버트를 바라본다.
"하하! 형님. 함께 제자 시험에 합격해 찰스 형님도 스승님의 제자가 되어 봅시다."
사람 좋아 보이는 호구 웃음을 보이는 앨버트.
그에 반해 에일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앨버트 이건 아니다. 내 욕심에 너를 끌어들일 순 없다!"
"찰스 형님. 우리가 남입니까! 제가 처음 이곳에서 사기를 당하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도와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전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저 때문에 미궁에서 다리도 다치시지 않았습니까."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뻐끔거리는 찰스.
서로 끈끈한 시선을 나누는 두 남자.
'이 미친 것들 도대체 뭐 하는 짓이지?'
속이 울렁거렸다.
빨리 내쫓아야겠다.
녀석들에게 가죽 주머니를 하나 던져줬다.
그것을 받아든 앨버트가 그 주머니 안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스승님이건?"
"앨버트,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겠지."
"끼니를 때우는 알약 아닙니까…."
"너희 둘은 그걸 가지고 미궁 4층으로 가서 한 달 동안 정령석을 구해야 한다. 개수는 최소 10개 이상이다. 도중에 나와서는 안 된다. 정령석을 구한 개수로 너희의 의지를 보겠다."
"미궁 사, 4층 말입니까?!"
1층을 구르던 이들에게는 당연히 힘든 시험이었다. 아니 죽을 수도 있었다.
"강요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포기해도 된다."
"찰스 형님! 합시다. 스승님이 아무런 의미 없이 이런 시험을 내리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연히 의미가 있다.
어느 쪽이든 내게는 이득이 있었다.
정령석을 구해 오던가.
아니면 안타깝게도 시험을 치르다 둘 다 행방불명이 되던가….
그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에일린의 호감도를 위해 표정을 관리했다.
"흐흠. 쉽게 생각하지 마라. 목숨이 달린 일이다. 고민할 수 있게 하루의 시간을 주지. 찰스는 포기하고 싶다면 그냥 떠나라. 시험을 치를 거라면 내일 아침 이곳으로 나와라."
나는 마지막으로 마음에도 없는 너그러운 소리를 하고 자리를 떴다.
*
*
*
화려한 릴리아나의 저택과 동떨어진 곳에 지어진 허름한 오두막.
앨버트가 허접하게 지은 통나무집이다.
그곳에는 3명의 남녀가 모여있었다.
"앨버트, 네가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야. 너는 이대로만 있으면 운호 님의 제자로서 승승장구할 거다."
"찰스 형님.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저희 둘이 함께 스승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찰스는 미안한 기색이었지만, 앨버트는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앨버트의 모습을 보는 에일린은 답답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더는 몸을 빼는 것도 못 할 짓이겠지!"
"그렇습니다. 형님."
"그래! 우리 한번 멋지게 시험을 통과해 보자!"
"하하. 바로 그겁니다 형님!"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에일린은 걱정에 속이 타들어 갔다.
이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1층에서도 그 위기를 겪었는데 4층이라니….
에일린이 그동안 미궁 모험가 생활하며 보아온 찰스는 좋은 사람이다. 그런 찰스 앞에서 차마 강하게 그만두라고 할 수 없었다.
스승님에게 자신도 같이 참여하겠다고 했지만, 이것은 둘의 시험이라고 거절당했다.
에일린은 나쁜 생각인 건 알지만.
속으로 찰스가 시험을 포기하고 떠나 주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을 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 같았다.
*
*
*
-울컥. 울컥.
기분 좋은 사정을 하며 잠에서 깼다.
이건 몽정이 아니다.
내 물건을 연신 핥고 있는 까슬하면서 따뜻하고 물컹한 살덩이의 느낌이 그걸 증명해 준다.
-쮸읍. 쯉.
눈을 떠보니 내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흔드는 분홍색 머리의 메이드가 보였다.
'오늘은 클로에인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줬다.
"일어나셨어요. 주인님."
클로에는 입가에 흘러내린 걸쭉한 하얀 액체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곱게 인사했다.
나는 손을 뻗어 하얀 스타킹으로 감싼 그녀의 허벅지를 쓸었다.
"주인님. 제자분들이 기다리셔요."
다음 스텝을 밟으려는 내 의도를 파악한 클로에가 말했다.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쩝."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리며 내 우람한 몸에 새겨진 예술같이 잘 갈라진 근육이 드러났다. 내 나신을 보는 클로에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한다.
"정말. 멋지셔요. 주인님."
입바른 말일지도 모르지만, 미녀의 칭찬은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창밖에 들어오는 햇살을 보니 아침이라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다.
조금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다.
클로에의 시중을 받으며 느긋하게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
*
*
저택 앞의 정원.
그곳에는 에일린과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너희들이 이곳에 나왔다는 것은…."
"예! 스승님. 저희 둘은 시험을 치를 각오를 굳혔습니다."
앨버트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지낸 둘은 역시 시험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예상은 했다.
앨버트와 찰스의 얼굴은 그사이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뭐....그러려니 했다.
나도 앨버트 녀석의 근거 없는 저 자신감은 이제 적응이 된 거 같다.
그에 반해 에일린의 얼굴은 누군가의 초상이라도 치르는 듯한 굉장히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게 정상인의 모습이다.
'쩝....별수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