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화 (200/259)

"다들 왜 그러는 거지?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녀들의 침울한 분위기에 이그니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럼 이게 놀랄 일이지....요. 저 아저씨가 고백이라고요. 어떤 게 놀랄 일이에요!"

한수지는 이그니스의 포스 때문인지 그녀답지 않게 말을 조심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군.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갖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내 아버지만 해도 부인이 20명이 넘었다. 그에 비해 주인은 너무 적은 편이다. 많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는 부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20명이 넘는다니….

황제라도 되는 건가?

.....조금은 부러웠다.

"미친! 아저씨, 어떻게 할 거야."

여기서 흔들리면 안 된다.

흔들릴 수 없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 여자들을 위해서라도!

"커흠. 사람은 편협한 시선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른 좋은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왕. 왕.

어디선가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채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지아는 여전히 시무룩한 얼굴 이었다.

역시 나중에 열심히 위로를 해줘야 할 거 같았다.

"낭군님,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낭군님께서 고백하셨다는 말에 저도 모르게 동요하고 말았습니다. 낭군님의 반려라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건만......이번일로 저의 수련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설화.

다행히 그녀는 내 말에 감명받은 듯했다.

"저는 주인님의 노예라도 만족해요!"

옆에 있던 수니가 밝게 웃으며 내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부인 20명? 노예? 다들 미쳤어! 아무리 세상이 좆망 했어도 이건 아니지. 여긴 정상이 나밖에 없는 건가!?.......정신 나갈 거 같아."

한수지는 두통이 나는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

"크흠. 그, 그럼 다들 서로 이야기들 나누도록."

나는 그녀들이 서로를 잘 알아갈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아! 아저씨. 무책임하게 어딜 도망가는 거야?!"

-왕. 왕.

날 비난하는 수지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원래는 그녀들을 파티에 집어넣는 것까지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건 나중에 따로 하기로 했다.

*

*

*

평택.

캠프 험프리스.

세상이 엉망이 되기 전부터 미군이 주둔했던 곳이다.

주한 미군 사령관인 다니엘 번즈는 험프리스 안의 혼란을 빠르게 정리하고, 장벽을 쳐 안전지대를 만들어 생존자들을 보호했다.

다니엘은 오늘도 언제나처럼 장벽 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본토에서의 연락은?"

"없습니다."

옆에서 걷던 부관 월터 앤더슨이 대답했다.

본토와의 연락은 초창기에는 곧잘 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겨 이제는 3주가 넘었다.

한창 연락될 때도 기다리라는 말만 했지, 본국에서도 뾰족한 대책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이제는 슬슬 본토에 대한 기대는 포기하는 것이 맞았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식량은?"

"앞으로의 보급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3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다니엘은 장벽 아래를 봤다.

장벽 아래 붙어 구더기처럼 꿈틀거리는 좀비들이 보였다.

이제는 총알도 아까워 방치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문제는 저것들이 아니다.

가끔 튀어나오는 거대한 놈들이 문제였다.

전에 그 커다란 괴물 놈에게 장벽 한쪽이 무너져 간신히 수습하기도 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최근 캠프 쪽으로 몰리는 좀비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아직은 버틸만했다.

그러나 버틸 뿐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 죽지도 못하는 것들이 더 몰릴 것으로 생각하나?"

"그건....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낙관만 할 수도 없습니다. 미리미리 대비해두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후......그래. 낙관만 할 수는 없겠지."

저 멀리 하나둘 끊임없이 몰려드는 좀비가 보였다.

그리고 종종 그 좀비들을 향해 초능력을 쏟아내는 각성자들도 보였다.

좀비 괴물들 뿐만이 아니다.

상당한 생존자를 받아들인 캠프 안에도 문제는 산재해 있었다. 험프리스는 하루하루 시간이 줄어가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험프리스의 지도자인 다니엘의 얼굴에 시름이 깊어졌다.

*

*

*

판테라로 가기 전.

내가 접수한 생존자 캠프와 천부문에 거주 구역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 뒤는 설화에게 맡겨놓고 나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 진척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설화와 이그니스가 나를 따라나섰다.

이그니스는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살펴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왔다.

"결국 또 아파트로군."

강변에 있는 아파트였다.

"천부문에 건축 쪽 일을 잘 아시는 분이 계시는데 상당히 평판이 좋은 시공사에서 만든 고급 아파트라고 했습니다."

"판테라의 저택도 대단하지만, 저 건물은 더 대단하구나."

이그니스는 우뚝 서 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고 감탄하며 그런 소리를 했다.

외관만 보면 그렇게 보일만도 했다.

그렇다고 마법으로 도배된 릴리아나의 저택에 비빌 정도로 대단한 건물이 아니다.

이그니스야 저 한 건물에 수십에서 백이 넘는 세대가 들어가 사는 건 모르니 하는 소리였다.

아파트 단지 안은 그동안 청소해서 그런지 지저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르고 봤으면 그냥 인적없는 고급 아파트로 보일 정도로 잘 정리했다.

솔직히 이 근처 주거 공간으로 아파트만 한 것이 없기도 했다.

"안쪽 청소는 마무리 단계입니다. 그리고 단지 주변으로 괴물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장벽을 칠 생각입니다."

설화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고급 아파트답게 조경도 상당히 괜찮았다.

"여기가 지아와 채원이가 고른 곳이라고?"

다른 곳과 약간은 떨어진 곳에 지어진 아파트 건물이었다.

"네. 저희가 지낼 곳은 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쓸 생각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내가 약탈자 소굴에서 구해온 20명 정도 되는 여자들도 있었다.

한 명에 한 집씩 쓰더라도 여유 있지만, 남는 집은 창고로 쓰던 다른 용도로 쓰면 되지 않을까.

"천부문은 한 동. 생존자 캠프는 아파트 한 동에서 두 동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력 발전기로 전기가 들어온다면 엘리베이터도 작동이 될 테고 큰 불편함을 없을 거다.

"그런데....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

*

*

서로 협심해 거주 구역을 정리하는 생존자 캠프와 천부문의 간부들을 불러 모았다.

설화는 내 오른쪽.

이그니스는 왼쪽에 서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옆의 이그니스를 힐끔거린다.

외국인처럼 보이는 외모뿐만 아니라 180은 되는 쭉 빠진 키도 그렇고 복장도 특이했으니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상수도 복구가 힘들 거 같습니다."

방금까지도 작업을 하다 왔는지 목에 수건을 걸친 간부 아저씨 하나가 내게 말했다.

누가 봐도 이런 일의 전문가 포스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무공을 익히지는 않았지만.

천부문의 사람인 거 같았다.

"흠.....힘들 거 같다고?"

"네, 물을 끌어와야 하는데 원래 있던 취수관이 어딘가 손상된 거 같습니다. 취수관을 복구해야 하는데 찾기도 힘들고 한군데만 손상됐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하고…."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본다.

어려운 말을 하는 거 보니 나름의 지식이 있는 전문가 같았다.

상수도를 사용하려면 취수관을 복구해야 하는데 지금 같이 괴물이 돌아다니는 세상에 그걸 찾아 복구하는 것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지하수라도 파야 하나?'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판테라에 있는 릴리아나의 저택이 떠올랐다.

그곳은 어찌 된 건지 깨끗한 물이 펑펑 나온다.

릴리아나를 만나 물어봐야 할 거 같다.

그래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역시 지하수?'

지하수 파는 장비야 원래 세계에서 구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으니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일단 물 문제는 내가 알아보지."

다들 내 말에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그동안 내가 해온 전적이 있다 보니 다들 조금은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대충 회의를 마치고 다시 작업을 위해 해산시켰다.

"아, 임구성 너는 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남아."

임구성을 불러세웠다.

그는 현재 캠프를 관리하는 일반인 간부였다.

나한테 죽은 원래 생존자 캠프의 주인 장서원의 부관이기도 했다.

내 빽을 믿고, 일반인이면서 설화 다음 생존자 캠프 3인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운전할 줄 아는 여자를 좀 보내줬으면 좋겠군."

"운전할 줄 아는 여자 말입니까....알겠습니다."

내 요구에 임구성은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별 토를 달지 않고 대답했다.

*

*

*

임구성은 다음날 차 운전을 할 여자를 데려왔다.

운전사를 구한 이유는 이그니스를 차에 태워 청주로 보내 사냥시킬 생각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구혜진이라고 해요."

머리를 뒤로 묶은 평범한 얼굴의 여자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주차장에 있는 고급 밴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당연히 원래 세계에서 가져온 거다.

"네가 할 일은 이 차량으로 매일 청주를 왕복하는 거다. 할 수 있겠나?"

"네, 네 맡겨만 주세요."

"이그니스, 그녀가 거미 괴물들이 서식하는 지역에 데려다줄 거다. 너는 그곳의 괴물들을 처리하면 된다."

청주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도로는 이미 죄수들을 이용해 꾸준하게 정리해 청주까지는 차가 다니기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알겠다. 주군의 말은 그곳의 괴물 놈들을 처리하면 된다는 이야기군."

"그렇지.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고."

"알았다. 맡겨만 줘라."

이그니스는 그 풍만한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앞으로 내게 대량의 스킬포인트를 안겨줄 믿음직한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

*

*

좀비 세계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릴리아나를 찾았다.

"저택 물이 어디서 나오냐고?"

"그래."

"물의 정령과 계약했다."

"정령? 릴리아나 너 정령도 다룰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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