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6/259)

그리고 내 생각보다 각성자들의 진도가 빨랐다.

정확하게는 높은 등급 각성자들의 진도다.

내가 현재 풀어놓은 마법은 겨우 3서클까지지만, 고등급 각성자들의 고리는 그와 별개로 빠르게 늘어났다.

A등급 염제 곽상현이 대표적이다.

그는 짧은 시간에 6개의 고리를 쌓아 올렸다.

일단 비전도서관에 공개한 건 겨우 3서클까지의 마법이다. 그런데 그 마법 지식을 얻은 것만으로 6서클까지 도달한 거다.

“단순히 마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은 마법의 지식보다는 마나에 대한 이해나 제어 능력이 결정을 짓는다. 그걸 위한 마법 공부이기도 하지.”

릴리아나에게 물어보면 역시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그러니까 마법을 배우지 않아도 능력만 된다면 서클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건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지. 마법을 배우지 않고 그게 가능할까 싶다만.....가끔 그런 이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결국 한계는 있으니 마법은 배워야 할 거다.”

우리 세계는 차원 균열로 인해 각성하는 특이한 경우였기에 판테라의 상황과 완전히 같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각성 등급 자체가 높으면 마력에 대한 이해나 제어 능력이 뛰어난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낮은 서클의 마법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게 되니, 마나의 고리도 무난하게 늘린 것이 아닐까 하는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이러면 초급 마법서 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은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여자들 때문이었다.

그녀들을 위해서라도 중위 마법서는 언젠가 구해야 했다.

4서클 이상의 중위 마법서부터는 마법 상점에는 팔지 않는다.

마탑에 가서 구해야 하는데.

마탑은 왕국 수도에 있었다.

당연히 그곳까지 갈 생각은 없었고.

가까운 곳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인간이 있었으니 고생해서 움직일 필요가 있을까.

세계인들은 알까.

내가 세계평화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를 흘리며 노력한다는 사실을.

“중위 마법서를 달라고?”

릴리아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에게는 나를 아주 제대로 벗겨 먹어야겠다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이 엿보였다.

누가 봐도 전보다 더 커진 용기를 꺼내는 릴리아나.

“어째 용기가….”

“아니다. 전과 같은 크기다. 운호 네가 착각한 거다.”

이제는 아주 당당하게 구라를 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번들번들한 탐욕이 넘쳐흐른다.

이게 한번 봐줬더니….

나를 진짜 바보로 아는 거 같았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이야기가 딱 맞았다. 그때, 이 나쁜 버릇을 따끔하게 혼내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했다.

“이것이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릴리아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마력 간섭으로 묶었다. 그리고 그녀를 내 무릎 위에 올려, 가차 없이 볼기짝을 때렸다.

-철썩! 철썩! 철썩!

그동안 잊고 있던 손바닥에 쫙쫙 달라붙는 릴리아나의 엉덩이 탄성을 느낄 수 있었다.

“으악!! 숙녀의 엉덩이를 때리다니!! 무례한! 아흑! 왜 마법이.....흐앙!”

내게 혼구녕이 난 릴리아나는.

괘씸죄가 적용돼 할인된 혈액으로 내게 중위 마법서들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릴리아나에게 받은 중위 마법서는 일단 사이트에 올려만 놓고 잠금을 걸어놨다.

비전도서관에 잠금이 된 새로운 마법서가 등장하자 또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언젠가는 공개할 생각이긴 했지만.

지금은 일단 추이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

*

*

오웬은 해커다.

남의 컴퓨터 파일들을 암호화 시켜 돈을 뜯어내는 것이 주된 수입원이었다.

세상에서는 랜섬웨어라고 불리는 악명높은 수법이다.

최근 핫한 뉴스가 있었다.

【운호의 비전도서관】

마법과 오러.

S급 히어로.

드래곤 슬레이어 박운호의 비전.

박운호는 그 비전 열람을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고 그곳에서만 볼 수 있게 해놨다.

그런데 그 사이트에 새로운 비전서가 올라왔다.

다들 고위서클의 마법서로 예상했다.

누가 봐도 잘 차려진.

해커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걸 해킹해서 판다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오웬 자신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해커와 해커 단체들이 노리고 있을 거다.

먼저 먹는 놈이 가장 큰 이득을 가져간다.

당연히 바로 해킹을 시도했다.

“어?”

하지만 해킹을 시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파일이 빠르게 암호화가 되어갔다.

자신이 언제나 해오던 짓이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현상이었다.

어떻게 대처를 하기도 전에 말도 안 되는 빠른 속도로 컴퓨터가 먹통이 됐다.

그리고 모니터 화면에는 문자가 떠올랐다.

<주의! 문서, 사진, 데이터베이스 및 기타 중요한 파일이 암호화되었습니다!>

<화가 나요?>

<파일을 복구하는 방법은 암호 해독키를 구매하는 것입니다.>

<아래의 계좌로 5천 달러를 보내면 암호 해독키를 보내겠습니다.>

오웬은 자신이 자주 보내던 메시지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순간 황당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뻑!!”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밥 먹듯이 하던 짓을 역으로 당했다.

랜섬웨어에 감염되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컴퓨터를 살려야 했다. 먹통이 된 컴퓨터 안에는 포기하기에는 중요한 파일이 너무도 많았다.

먹튀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요구하는 금액이 터무니없지도 않고 교묘했다.

어떻게 한번 넣어볼 만한 돈이었다.

하지만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더 뻐커!”

오웬은 쌍욕을 하며 결국 돈을 입금했다.

다행히 상도덕이 있는 놈이었는지 암호 해독키를 받았다.

컴퓨터가 다행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설마.....그 사이트를 해킹하려고 해서?”

해커의 본능으로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해보자는 말이지?”

해커의 자존심이 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

컴퓨터를 바꿨다.

설사 다시 랜섬웨어가 걸려도 복구가 가능한.

그리고 설사 잘못되더라도 버려도 되는 걸로.

이번에는 철저하게 방비하고 해킹을 시도했다.

“오우 노!!!”

하지만 여지없이 랜섬웨어에 걸렸다.

“젠장 뭐가 잘못된 거지? 이게 말이 돼?”

<아래의 계좌로 10만 달러를 보내면 암호 해독키를 보내겠습니다. :D>

요구하는 돈은 이미 20배로 불어나 있었다.

“지랄.”

컴퓨터를 초기화 시켜 복구해보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버려도 되는 컴퓨터다.

다른 컴퓨터를 부팅했다.

하지만 그 컴퓨터에도 똑같은 돈을 요구하는 문자가 떠올라있었다.

“홀리...쉣!! 이게 말이 돼?”

랜선도 뽑아놨고 전원이 꺼져 있던 컴퓨터다.

그런데 감염됐다.

말이 안 되는 현상이었다.

“빽!!뻑!”

오웬은 화가 나 키보드를 주먹으로 연신 내려쳤다. 광적인 키보드 샷건질에 플라스틱 키캡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히히.

“헉”

들릴 리가 없는 여자의 웃음소리를 들은 오웬은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자, 잘못 들었나?”

하지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모니터 화면들에 눈이 없는 섬뜩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으악!!”

오웬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기절했다.

수니는 해커의 계좌잔고를 단숨에 0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제 실체화까지 가능한 수니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일을 당하는 건 오웬만이 아니었다.

사이트를 해킹하려던 악질적인 해커 단체들은 수니에 의해 풍비박산이 났다.

운호의 비전서를 필사해 인터넷 판매를 시도하려 했던 인간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그쯤 되자 해커들 사이에는 운호의 비전도서관을 관리하는 인간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운호의 비전도서관은 해커들 사이에 도저히 건드려서는 안 될 불가침의 영역이 되었다.

*

*

*

"운호 님의 비전서를 대량으로 복사해 판매하는 거대 유통조직이 발견됐습니다."

김진아가 심각한 얼굴로 보고했다.

"거대 유통조직? 얼마나 큰데?"

"공장을 돌려 책을 찍어내 판매한다고 합니다."

내가 파는 가격의 반의반에만 팔아도 어마어마한 마진이 남는다.

확실히 이득을 볼 수 있는 일이니 하고 싶은 마음이야 들수도 있다.

그런데 그 주인이 누군인지 명확한 물건이다.

세계 정상급의 무력을 가졌다는 S급 각성자가 주인이라는 것은 비전서를 찍어내는 놈들도 알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내 귀에 들려올 정도로 대놓고 한다.

이건 날 무시한다는 말도 됐다.

한마디로 미친놈들이다.

"어디지?"

"중국입니다."

'........너무 먼데….'

역시 가까운 한국은 아니었다.

........솔직히 귀찮았다.

굳이 돈을 벌려고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돈은 원래 하려던 목적에서 덤으로 따라오는 거다.

비전서를 공장을 돌려 찍어내고 있다고는 해도 온라인 쪽을 꽉 막고 있으니.

온라인 판매는 꿈도 못 꿀 거다.

그렇다면 오프라인으로만 판매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시대에 오프라인 판매만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은 무시하고 신경을 꺼도 내 생활에는 큰 지장은 없었다.

내가 이 사이트 운영에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고.

이미 세지도 못할 만큼 돈도 쌓였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기에는 거슬렸다.

귀찮다고 방치한다면 더욱 기승을 부릴 게 뻔하다.

오프라인에서 개미들이 숨어서 알음알음 판매하는 것까지는 일일이 잡지 못하겠지만.

저렇게 대놓고 하는 놈들은 역시 처리해야 한다.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다.

자존심의 문제였다.

"중국 쪽에는 이야기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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