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4화 (193/259)

내 얼굴에 떠오른 떨떠름한 표정을 보며 릴리아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책의 가치를 잘 모른다. 그저 그런 싸구려 오러 단련서로 알고 있지. 그 많은 오러를 다루는 잡서 중에 옥석을 가르는 것은 쉽지 않지. 나는 그걸 주는 거다.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지금 시대에는 아마도 내가 유일할 거다.”

릴리아나가 심혈을 기울여 엄선한 한 권의 책이라는 건가?

귀한 것은 아니지만.

귀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개정서는 〚베이 오러 단련서〛에 내가 본 오러 단련법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괜찮은 것들을 추가하고 알기 쉽게 풀이해 정리해 둔 것이지.”

릴리아나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만 믿고 덜컥 거래할 순 없다.

차원 상점을 열어 릴리아나가 준 책들의 가치를 살펴봤다.

베이 오러 단련서는 차원 상점에도 있었다.

확실히 가격이 꽤 나갔다.

다른 기초 오러 단련법에 비해 압도적으로 가격이 높았다.

내가 마법 상점에서 산 마법서 가격을 전부 합한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차원 상점의 가격이 릴리아나가 하는 말이 거의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준다.

반면에 그녀가 만든 개정서는 상점에 없었다.

차원 상점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알 거 같았다.

차원 상점에 올라와 있는 건 많은 사람이 알고 인식하는 것이 올라오는 거 같았다.

“콜.”

“1리터.”

“어허 어디서 밑장빼기야. 0.2리터.”

한 권당 대충 0.1리터로 계산했다.

“0.2리터?! 그게 무슨 소리냐!! 너무 적지 않나!”

릴리아나가 격분했다.

하지만 내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너야말로 고등 과정도 아니고 겨우 기초 단련서 가지고 너무 뽑아 먹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냥 기초 단련서가 아니다! 이 릴리아나 님이 친히! 집필한 책이다!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다!”

“그건 네 생각이고....0.2 안 할 거면 그냥 가라.”

“이익!!”

상당히 분해하는 릴리아나.

어차피 이 거래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나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고, 내 피는 그녀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었다.

아쉬운 놈이 지는 거다.

“이, 이! 속 좁은 녀석!! 알았다....0.2리터로하지.”

“괜찮은 기초 입문 마법서 없나? 있다면 0.1리터 더 쳐주지.”

생각해보니 내 여자들에게는 양산품이 아닌 좀 더 좋은 마법서를 주고 싶었다.

릴리아나가 내게 마법책을 하나 던져줬다.

〚대마법사 릴리아나의 마법 입문.〛

대마법사의 마법책이니 검증된 물건일 거다.

“아주 골수까지 뽑아먹는구나. 어서 약속을 지켜라.”

“겨우 기초 서적 가지고 골수는 무슨.......음? 저번보다 용기가 좀 커진 거 같은데….”

“아, 아니다. 네, 네가 착각한 거다.”

“그런가?”

0.1리터 정도 차이 날까.

뻔한 수작이었지만,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내 피를 받고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사라지는 릴리아나.

(히히. 바보 같은 녀석. 용기가 더 커진 것도 모르고….)

그녀가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포착됐다.

‘저게….’

순간 발끈해 사라지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으려다가 봐줬다.

마음 약한 내가 참아야지.

*

*

*

수니가 복귀했다.

엄청난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수니의 성능? 을 시험해 본 나는 정령의 씨앗을 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원래 목표를 넘치게 달성했다.

원래 세계로 귀환해야 할 때였다.

먼저 이그니스를 찾았다.

이그니스는 뒤뜰 한적한 곳에서 무공고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이그니스.”

“전투인가?”

이그니스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뜬다.

그녀의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가 드러나며 나를 잔잔하게 바라본다.

“그건 아니다. 함께 갈 곳이 있다.”

“알았다.”

충직한 이그니스는 내 말에 군말 없이 일어섰다. 그녀를 영웅의 안식처로 들여보낸 나는 세이브 포인트가 있는 거대나무로 향했다.

저 멀리 자그마한 오두막집이 보였다.

앨버트 녀석의 집이다.

순간 그 위에 거대망치 묠니르를 떨어뜨리고 싶은 것을 참았다.

녀석은 아직 이그니스에게 맞은 후유증에 골골거리고 있었다.

“에잉. 사내놈이 그거 좀 맞았다고 빌빌거리기는.”

혀를 끌끌 차며 거대 나무둥치의 동굴로 들어갔다.

세이브 포인트는 이미 활성화되어있었다.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

나는 투명한 풍경이 일렁거리는 직사각형의 통로에 몸을 집어넣었다.

*

*

*

처음에 느낀 건 비릿한 바닷냄새였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푸른 하늘.

그리고 푸른 바다.

제주도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염제 곽상현이 제공해준 거처의 테라스였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풍경이었다.

이곳의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았겠지만….

<판테라에서 로그아웃했습니다.>

<판테라에 있는 파티원이 비활성화됩니다.>

시스템 창에 보이는 파티목록의 이름들이 불이 꺼진 듯 회색으로 물들었다.

파티원 중 활성화 되어 있는 것은 영웅의 안식처 안의 이그니스뿐이다.

파티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는데 이런 식이로군.

“수니 부탁해.”

[마법서와 오러 단련서의 번역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알겠어요. 주인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수니가 흐릿하게 나타나더니 내 볼에 뽀뽀하고 사라졌다.

‘애교가 흘러넘치는군.’

전에는 약간 딱딱한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완전히 말랑해졌다고 해야 하나.

애교 넘치는 수니는 귀여웠다.

수니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모든 책을 번역해 파일을 만들어 왔다.

〚운호의 오러 단련서.〛

〚운호의 오러 단련 개정서.〛

〚운호의 마법 입문.〛

릴리아나의 이름 대신 뻔뻔하게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모든 마법서에도 내 이름을 집어넣었다.

릴리아나가 보면 격분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다른 세계다.

그녀가 내가 하는 이 만행을 볼 일은 없다.

내 이름을 넣은 이유는 단순했다.

원래 좋은 일은 모두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맞았다.

아무도 모르게 하면.

아무도 모를 뿐이다.

릴리아나가 만든 오러 개정서와 마법서는 내 여자들에게 주고, 나머지를 풀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을까.

당연히 공짜로 풀 수는 없다.

적당한 가격을 받고 팔 생각이었다.

너무 비싸도 안된다.

일반인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살만하게 비싸야 한다.

그래도 이런 소중한 자료를 거저 푸는 거나 마찬가지겠지만….

책으로 만드는 건 역시 별로 같았다.

[접속사이트를 만들어 파일 열람권을 파는 게 어떨까요.]

괜찮은 생각 같긴 했다.

종이책을 만드는 건 괜히 복잡해질 것 같았다.

수니를 활용하기 쉽게 온라인상에 만드는 것이 확실히 여러모로 편하지 않을까.

파일 열람권.

락을 걸고.

파일 열람권을 구매한 오직 한 계정에 한 사람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만 볼 수 있게 하는 거다.

필사가 문젠데….

온라인상에서 퍼지는 것은 수니가 있으니 문제가 안 되지만, 오프라인에서의 일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제주도에 있는 내 여자들을 불러 모았다.

*

*

*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활짝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앨리스.

무표정한 얼굴 김진아.

자다가 왔는지 다소 나른한 표정의 유재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눈치를 보는 이유나.

제주도에 있는 내 여자들이 다 모였다.

넷은 최근 함께 파티를 이뤄 사냥하러 다니고 있었다.

앨리스와 유나는 헌터 연수에 가까웠지만….

“아저씨. 우리를 다 불러 모으다니 무슨 일이야?”

유재은이 물었다.

“어? 설마? 모두 함께 하자는 건 아니겠지? 나야 괜찮지만, 아이들한테는 너무 자극이 심하지 않을까?”

“거부합니다.”

김진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꿀꺽....후욱! 후욱! 저, 저는 우, 운호 님이 워 원하신다면!!”

앨리스는 오히려 좋아하는 거 같기도….

유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붉히고 있을 뿐이었다.

“음.....그런게 아니다. 잠을 자고 나니 새로운 지식이 떠오르더군.”

갑작스러운 내 뜬금없는 말에 그녀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대충 한 파트 정도 프린트해 정리한 A4용지 뭉치와 USB 메모리를 염력으로 띄워 그녀들에게 건네줬다.

앨리스는 마법.

나머지 아이들은 오러 단련서.

그녀들은 그것을 얼떨떨해하며 받아들었다.

“운호의 마법 입문? 이, 이게 뭐예요? 우, 운호 님. 그리고 방금 염력 아니에요? 다른 능력 각성하셨어요?”

앨리스가 내 염력을 보고 놀라 물었다.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궁금함이 가득했다.

“마법이다.”

“예? 마, 마........법이요?”

모두 어리둥절.....아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에게 건네준 그 파일에 마법이나 오러를 익히는 방법이 들어있다. 프린트한 것은 일부분만이니, 나머지는 USB 메모리에서 살펴봐라.”

“마법? 오러라고요!? 운호 님이 만드신 거예요?”

앨리스가 흥분한 듯 소리쳤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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