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9화 (188/259)

그동안 주문 제작한 메이드 복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적절히 보이는 가슴골.

다소 짧은 듯한 치마.

허벅지를 반쯤 감싸고 있는 검은 스타킹과 흰 스타킹.

그리고 가터벨트는 그 스타킹이 흘러내리지 않게 단단히 잡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마리는 내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훌륭한 메이드장이었다.

아주 보기가 좋았다.

역시 집이 최고다.

저절로 눈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녀들을 흐뭇한 눈으로 찬찬히 감상하던 중 기분이 확 다운됐다.

나만의 꽃밭에 오물이 하나 섞여 있었다.

그동안 잊고 있던….

잊고 싶었던 얼굴이 보였다.

“스승님! 오셨습니까!”

뭐가 그리 반가운지 환한 미소를 보이며 씩씩하게 고개를 숙이는 남자 놈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고개를 숙이는 에일린.

“누구?”

“스, 스승님. 앨버트입니다.”

“........농담이었다.”

보기 싫은 얼굴을 봐버렸다.

“그래.......어쩐 일이냐.”

“예? 스승님을 마중 나오는 건 제자로서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어리둥절해하며 앨버트가 대답했다.

녀석은 쓸데없이 예의가 바르다.

“너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필요 없다. 오로지 수련! 에만 신경 쓰거라. 겨우 이런 일에 일일이 나오면 수련에 방해가 된다. 다음부터는 내가 부르기 전에는 오지 마라. 그리고 헝그리정신을 잊지 말거라.”

“스, 스승님.”

내가 수련을 위해 이런 겉치레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자, 앨버트 녀석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내가 하라는 일은 다 했느냐.”

“예. 스승님 다 끝냈습니다.”

집이 일주일 만에 지을 수 있는 건가?

마력을 다룰 줄 알면 모르겠지만.

녀석은 아직 마력도 다루지 못하는 애송이였다.

“튼튼하게 지었겠지?”

“그, 그건.....잘....모르겠습니다.”

솔직한 녀석이었다.

집도 지어본 적 없는 초심자가 지은 집이다.

제대로 지었을 리가 없다.

꼬투리를 잡을까 하다가 관뒀다.

부실 공사를 했던 어떻게 지었든지 상관없었다. 내가 지낼 것도 아니고 녀석이 지낼 집이었으니.

오히려 부실하게 지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자다가 집이 무너져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이 녀석도 주군의 제자인가? 몸을 쓰는 전사로 보인다만......주군에 비하면 정말 볼품없군.”

내 옆에 있던 이그니스가 앨버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나도 동의했다.

이그니스에게 이따위 제자를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볼품없다니....초면에 무례하시군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앨버트는 진지하고 올곧은 눈으로 이그니스를 응시하며 말했다.

앨버트 저놈....지금 뭐 하는 거지?

........녀석은 겁도 없었다.

저놈은 도대체 뭘 믿고 이그니스에게 개기는 건지.

젊은이의 패기 뭐 그런 건가?

패기도 사람을 봐가면서 부려야 한다.

이그니스가 어떤 여자인지 모르니 저렇게 나불대는 것이었다.

그녀의 강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에일린이 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호오.....그래도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군. 난 주군을 모시는 사람이다.”

“그렇습니까. 전 앨버트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스승님을 모신다고 해도 방금의 발언은 취소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스승님의 제자로서 모욕을 받고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녀석은 미친 거 같았다.

정상이 아니었다.

어처구니없는 똥폼을 잡고 있었다.

“주군. 이 녀석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이그니스가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긴.

분수를 모르는 녀석에게는 훈계가 필요하다.

그래도 에일린 앞에서는 괜찮은 스승을 연기할 필요가 있다.

「운호: 강자를 알아보지 못한 죄는 크다. 이그니스, 녀석에게 쓴맛을 보여줘라.」

에일린이 알아채지 못하게 파티 메시지를 보냈다.

「이그니스: 주군 나의 방식대로 해도 되겠는가?」

「운호: 어떤 방법이지?」

「이그니스: 다소 거친 방법이다. 주군의 제자라고 하니 꺼려지는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거친 훈련 중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법.

「운호: 저 녀석은 내 제자라기에는 너무 허약하다. 게다가 분수도 모르고 강자에게 대들었지. 거칠면 거칠수록 좋다. 허락한다!」

“내게 사과를 들으려면 네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어떠냐 전사는 힘으로 증명하는 법이다. 너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겠느냐?”

이그니스가 앨버트에게 가소롭다는 듯 물었다.

“여자와 싸우는 건 내키진 않지만, 스승님의 제자로서 저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미친놈이었다.

“앨버트.”

“예, 스승님.”

“넌 그 눈깔.......아니, 안목부터 기를 필요가 있겠구나. 네가 꺼낸 말이다. 네가 책임을 지도록 해라.”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승님!”

이놈은 내 말을 이해한 건가?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지 말라는 건지.

뭘 믿고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앨버트 녀석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더니.

앨버트가 딱 그 꼴 이었다.

우리는 앨버트가 맞기 좋은 넓은 뒤뜰로 자리를 옮겼다.

“덤비거라.”

“무기도 들지 않겠단 말입니까? 저도 얕보인 모양이군요. 그럼 저는 선공을 양보하겠습니다.”

역시 미친놈이다.

앨버트의 오만방자한 그 대가는 예상한 대로 나타났다.

앨버트는 중계할 재미가 없을 정도로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이그니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었다.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실눈이 된 앨버트.

신기한 것은.

그는 수없이 쓰러지고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물론, 이그니스가 놀랍도록 적절한 힘배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아, 아직….”

앨버트는 한계에 다다른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버티고 있었다.

“애, 앨버트 그만해! 이그니스 님께 잘못했다고 빌어!”

에일린이 안타까운 얼굴로 소리쳤다.

“에일린.....난.....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참나 둘이서 뭔 신파극을 찍는 거냐.

처음 볼 땐 몰랐는데 보면 볼수록 이상한 놈이었다.

“호오....아직도 설 수 있다니 근성은 대단하구나. 그 정신력은 인정해 주마. 하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건 힘이다.”

그렇다.

힘도 없는 놈이 저래봐야 추하기만 할 뿐이다.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다.

“아, 아직....입니다....후욱! 후욱....저는 스승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얼굴에 먹칠할 수는 없습니다!!”

저놈의 주둥이는 나도 질릴 정도였다.

“네 놈의 존재 자체만으로 내게 먹칠을 하는 거다!!”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무게감 있는 스승의 모습을 보여줄 때였다.

앨버트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비틀거리며 이그니스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

달려들며 괴성을 지르고 악을 쓰는 앨버트.

당연히 기적은 없었다.

-퍽. 퍽. 퍽.

“으억! 컥! 켁!”

앨버트는 역시나 신나게 두들겨 맞고 결국 정신을 잃었다.

이그니스가 이쯤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게 진작에 바짝 엎드려 빌었으면 될 일을.

“주군.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근성만은 좋군. 역시 주군은 안목이 있어.”

“그.....런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저 정도로 두들겨 맞았으면 한동안 앓아누워야 할 거다.

그동안 얼굴을 볼 일도 없지 않을까.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저 녀석의 거처는 어딘가. 내가 옮겨두지.”

생각해보니 기절한 앨버트 놈을 옮길 인간이 없었다.

그냥 여기에 내버려 두고 싶지만….

“아니다. 고생했다. 이그니스. 녀석을 옮기는 건 내가 하지.”

“후후. 주군은 배려심도 깊군.”

배려심....이라기보다.

내 여자들이 외간 남자의 몸에 손을 대게 하기 싫었다.

내가 고생하는 수밖에.

앨버트 놈을 염동력으로 들어 올려 놈이 만든 초라한 나무집에 대충 던져놨다.

*

*

*

긴 하루였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내 방으로 향했다.

“주인님.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봐요.”

클로에가 말했다.

“후후...뭐 그렇지.”

실컷 두들겨 맞은 앨버트.

며칠 동안 녀석 얼굴을 안 볼 생각을 하니.

그 기분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클로에는 내 개인 전용 메이드다.

앨버트가 데려온 10명의 여자 중 하나였다.

개인 메이드는 한 사람에 한 명씩 배정해 줬다.

아일라와 루나는 메이드 배정을 거부했고 당연히 앨버트는 제외다.

클로에는.

특이한 핑크색 머리와 눈동자가 마음에 들어 골랐다. 그녀는 청순하면서도 애교가 있을 법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목욕물을 채워 놨어요. 주인님 바로 들어가시겠어요?”

“그러지.”

진작에 씻고 쉬어야 했는데.

앨버트 녀석 때문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녀가 조심조심 내 옷을 벗겼다.

이것도 메이드가 하는 일이겠지.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좋군.’

혼자 벗는 게 더 빠를 거다.

하지만 메이드가 내 옷을 벗겨준다는데 그깟 속도가 뭐가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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