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게임이라면 신관 같은 것이 쥐약일 텐데....이 세계에도 사제 같은 신관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미궁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놀라운 건 미궁 10층에 들어와서 정상인을 만난 적이 없다는 거다.
막장도 이런 막장인 장소가 없었다.
‘이거 요새 안에 있던 놈들도 다 미친놈들 뿐인가?’
그래도 육체 강화 스킬을 올릴만한 포인트를 채웠으니 성과가 나쁘진 않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메이드들이 기다리고 있는 저택을 향해 복귀의 여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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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 페르쿠나는 예상치 못하게 옛 스승과 재회했다.
헤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헤어졌다기보다 도망친 거지만.
릴리아나는 안타깝게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스승이 그와 붙어있었다니 일이 꼬였다고 할 수 있다. 스승이 그에게 붙어있는 이유는 대략 짐작이 갔다.
초월자로의 길.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서일 거다.
베르나가 8서클에 정체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베르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지를 높이고 싶은 그 욕구가 점점 커졌다. 하물며 자신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스승 릴리아나는 얼마나 탐욕이 그득할 텐가.
제국에 있다고 하는 초월자야 자신이 어떻게 만나볼 수 없지만.
여기에 있는 그와 만남으로써 혹시라도 도약을 위한 실마리를 잡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래서 그의 정보를 보고 받고 급하게 찾아왔다.
초월자를 함부로 만나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스승은 그와 가까운 관계로 보였다. 그러면 더욱 더 포기할 수 없었다.
스승보다 먼저 초월자의 길에 들어서야 한다.
그 성격 괴팍한 여자와 함께하고 있다는 건 초월자의 성격이 의외로 까다롭지 않은 상대라는 말도 됐다.
‘내가 초월자였으면 진작에 실컷 두들겨 줬을 텐데 말이지. 아니면….’
이름이 운호라고 했던가?
보고된 내용을 보면 여자를 꽤 밝힌다고 한다.
‘릴리아나.....어쩌면....몸으로 꾀었나? 그 릴리아나가 몸으로? 그 성격에 그럴 리가 없는데….’
얼굴이야 반반하니 여자를 밝히는 그의 마음에 든 것일 수도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한참~ 이나 더 어린 자신이 경쟁력은 더 있지 않을까?
-똑똑.
노크 소리에 베르나의 상념이 깨졌다.
“페르쿠나 님. 앨런입니다.”
“들어와.”
앨런이 베르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페르쿠나 님. 그가 미궁에서 지금 막 나왔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베르나는 그 옅은 푸른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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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탐색한 시간의 반의반도 안 걸려 미궁 요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새에 도착하자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이는지 일행들의 얼굴이 조금 편해졌다.
온갖 이상한 놈들을 다 만났으니 이해는 했다.
슬러버에 돌아가기 전.
이그니스를 영웅의 안식처로 들여보냈다.
미궁에서 나갈 때야 출입증 검사 같은 건 하지 않지만, 텔레포트 마법진의 사용은 비용이 들었다.
굳이 안 들여도 될 금화를 쓸 이유가 없었다.
텔레포트를 타고 미궁 10층을 벗어나 미궁 관리소로 이동하고.
그 미궁 관리소를 나오자 밝은 태양이 우리를 반겨줬다.
“어두컴컴한 곳에 있다 보니 답답했는데 이제 좀 살 거 같네.”
아일라가 기지개를 켜며 말하자 일행이 밝은 얼굴로 동의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저는 말을 가져오겠습니다.”
마리가 그렇게 말하고는 관리소에 맡겨놓은 말을 가지러 갔다.
인벤토리에서 마차를 꺼내고 조금 기다리니, 마리가 말을 끌고 와 마차에 메었다. 말들은 잘 먹고 쉬어서 그런지 털에 윤기가 좔좔 흐르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마리가 모는 마차에 타고 저택으로 향했다.
그런데 잠깐 달리던 마차가 멈췄다.
저택에 도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기였다.
의아함을 느끼려던 순간.
마부석에서 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스터. 마법사로 보이는 분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마법사?
마부 쪽 천막을 걷고 바깥을 살펴봤다.
웬 여자가 마차를 가로 막고 서있었다.
들고 있는 화려한 지팡이와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푸른 로브를 보면 마법사로 보였다.
그것보다 눈에 띄는 건 길고 하늘거리는 옅은 푸른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미인이라는 거다.
“운호 님을 뵙기 위해 실례했어요.”
그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처음 보는 미인은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내 이름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처음 본다.
“운호 님과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좋겠어요.”
미인 마법사가 나를 뜨겁게 응시하며 말했다.
나는 슬러버에 온 지 얼마 되진 않았다.
그런데 저런 굉장한 미녀에게 관심을 받다니….
이건....설마...데이트 신청?
멀리서 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 건가?
기대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마리 덕분에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남자로서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 차오른 상태였다.
저런 미인이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내로서 그걸 거절하는 것도 할 짓이 아니다.
마차에 타고 있던 일행에게 말했다.
“먼저 저택에 돌아가도록. 난 볼일이 생겼군.”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 됐기 때문에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겠어요? 고위 마법사로 보이는데.”
루나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녀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알 수 없는 마법사가 찾아온 격이었으니, 혹시 모를 함정을 걱정하는 거 같았다.
지금은 32포인트라는 대량의 스킬 포인트 사용에 망설이고 있었지만.
여차하면 육체 강화 스킬의 강화도 가능하다.
그렇게 하고도 못 빠져나오는 함정이 있기는 할까.
설사 이게 함정이라고 해도….
사내라면 물러서지 않아야 할 때도 있는 법.
“별문제 없을 거다.”
일행을 먼저 저택으로 보내고.
미인 마법사와 고급스러운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페르쿠나 마탑의 마탑주 베르나 페르쿠나라고 해요. 베르나라고 불러주세요.”
마탑주?
거물이었다.
그녀의 미모에 정신이 팔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뒤늦게 몇 서클인지 감지해보려 했지만, 안개가 낀 듯 흐릿했다.
서클을 파악할 수 없으면 대충 대마법사라고 보면 된다.
릴리아나가 전에 말해줬다.
대마법사쯤 되면 마나의 고리를 파악하기 힘들 거라고.
마탑주라는 그녀의 말은 진실일 가능성이 컸다.
역시 다른 목적이 있다고 봐야겠지?
‘실망이군. 고백이 아니라니. 그리고 페르쿠나....익숙한데.....어디서 들은 거 같은데….’
아.....그 엘프의 숲에서 본 허접 마법사가 가지고 있던 마법책이 페르쿠나 어쩌고저쩌고였던 거 같다.
마법책은 아직 내 인벤토리에 들어 있을 거다.
“그래....대마법사님이 어쩐 일이지?”
실망을 감추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초월자죠.”
“초월자? 내가?”
“그동안 당신의 행보를 보면 초월자라는 걸 말해주고 있죠.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숨길 생각은......없었다.
초월자라는....처음 들어보는 말이 생소했을 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저는 지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당신에게 만남을 청했고요.”
길게 얘기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는 알 거 같았다.
“그러니까....내게 가르침을 달라는 건가?”
“어려운 부탁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뻔뻔하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도 알아주세요.”
“어....흠.”
말문이 막혔다.
어려운 게 아니라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였다.
레벨업과 스킬 강화로 강해졌는데 뭐라고 한단 말인가.
베르나가 내게 애틋하면서도 요염한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슬쩍 내 손을 잡았다.
“물론, 저도 그냥 해달라는 말이 아니에요.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어요. 그게 설사….”
그녀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끝말을 흐렸다.
뒷말은.....내가 생각하는데 맞겠지?
하지만 나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에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조몰락거렸다.
그녀가 부끄러운 듯 슬며시 손을 뺐다.
안타깝지만 나는 베르나가 원하는 그 방법을 몰랐다.
나름대로 사냥을 하는 노력이라면 하긴 했지만.....그래도 날로 먹은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렇다고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런 미녀와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어둬야 했다.
“이해해요. 고민되실 만하죠. 기다릴게요.”
베르나는 그렇게 재촉하지 않고 나를 배려해 주는 듯한 말을 했다. 그러면서 내게 쪽지를 하나 건네줬다.
“제가 묵고 있는 곳이에요. 언제라도 연락해주세요.”
그녀가 윙크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그 쪽지를 인벤토리 한구석에 소중히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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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와 대화를 마치고 나오니 마리가 마차를 대기 시켜 놓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택에 모셔드리고 왔습니다. 쉬고 계실 겁니다.”
아, 깜빡했다.
저택으로 가기 전에 바로 부르려고 했는데….
영웅의 안식처에 있는 이그니스를 불렀다.
“음? 여기는?”
영웅의 안식처에서 나온 이그니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미궁 바깥이다. 나의 저택으로 갈 거다.”
“그런가. 주군의 저택이라 궁금하군.”
정확히는 릴리아나의 저택이지만.
언젠가 혹시라도 그녀가 내 여자가 된다면 내 저택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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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일렬로 서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나를 환영을 하는 메이드들.
‘마리가 시킨 건가?’
그녀들은 내가 원한 대로 검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예쁜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저택을 일주일 넘게 나가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