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 (186/259)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끝까지 공손한 녀석이었다.

「운호: 마왕 추종자가 뭐지?」

그 틈에 재빨리 우리 엘프 파티원들에게 물었다.

「루나: 마왕 추종자는 흑마법사를 말해요.」

「운호: 놈들을 구분할 방법은 없나?」

「아일라: 힘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찾기 힘들걸.」

「루나: 마왕을 모욕하는걸 굉장히 싫어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마왕 추종자는 왜 물어보는 거예요?」

「운호: 저놈들 흑마법사 같은데…?」

「루나: 저들이 흐, 흑마법사라고요?!」

내 파티 메시지를 읽은 루나와 아일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나는 알고 있다. 네놈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너희를 불러세울 수밖에 없었지.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착각했다면 나중에 사과하지.“

“도대체......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내가 되는대로 지껄이는 헛소리에 남자가 황당해하며 물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나도 모른다.

놈들을 붙잡으려 횡설수설 장황하게 이야기해댔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마왕 개새끼 해봐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놈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지만….

내 눈에 놈의 입매가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저 퀘스트 메시지만 믿고 생각 없이 조지는 개념 없는 놈이 아니다.

혹시 모른다.

무고한 녀석들일지도.

그러나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7명이니 도합 스킬 7포인트.

보상이 괜찮았다.

확인 절차가 필요했다.

흑마법사는 마족과 마왕을 숭배한다.

마계의 존재와 계약하고 그들에게 힘을 받아 마법을 쓴다고 들었다.

릴리아나가 흑마법사를 깔보는 이유도 놈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쌓은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약으로 인해 마족, 마왕과 연결된 그들은 마왕 욕을 할 수 없다고 루나가 이야기해 줬다.

“마왕 개새끼 어때 쉽잖아? 하지 않으면 공격한다. 찔리는 게 없으면 할 수 있지 않나. 세계의 재앙인 마왕이다. 마왕 개새끼. 왜 못해?”

“........후회하실 겁니다.”

슬쩍 올라온 후드 밑으로 놈의 눈이 붉게 빛난다. 놈들 주변으로 음침한 마력이 요동쳤다.

“마, 마기!!”

루나가 놀라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세계가 멈췄다.

아니, 내가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린 거다.

극한으로 느려진 세계.

주변의 시간 정지된 것과 같은 느낌.

내 확장된 인지능력과 가속된 사고로 인한 효과였다.

인원수가 꽤 많았다.

아마도 다 흑마법사 놈들일 거다.

마법사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마법사보다 더 위험한 마계의 존재와 계약했다는 흑마법사라면 말할 것도 없다.

보호해야 할 아이들도 있으니 어설픈 마법질 해가며 여유 부릴 생각은 없었다.

가속된 세계에서 한발을 내디디며 마력으로 대검을 생성했다.

유일하게 내 움직임을 알아챈 이그니스.

그녀가 나와 발맞춰 몸을 움직였다.

이 가속된 세계 속에 움직이는 건 나와 이그니스뿐.

후드를 속 붉은 눈을 빛내는 놈은 내 움직임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놈의 정수리를 향해 대검을 내리쳤다.

두부 베이듯이 파고든 대검은 놈의 정수리를 파고들어 사타구니로 깔끔하게 빠져나왔다.

옆을 보니 이그니스가 한 놈의 머리에 창을 꼽고 있었다.

마치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인식하지 못한 무방비한 놈들의 목을 자르고 몸을 반으로 갈라줬다.

끌어올렸던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오며 멈춘 듯한 세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죽…! 어?”

흑마법사 놈은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얼굴에 세로로 핏줄기가 새어 나오더니 그대로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털썩.

나머지 놈들도 뒤늦게 머리가 잘리고, 동체가 쪼개지며 지면을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몰살.

처참한 토막살인의 현장이었다.

“바, 방금 뭐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아일라가 놀라 입을 뻐끔거린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빨리 처리했다.”

<스킬 포인트 6을 획득했습니다.>

기분 좋은 시스템 알림.

‘어? 그런데 포인트 갯수가 모자란 거 같은데? 하나, 둘….’

흑마법사 녀석들의 시체를 세어봤다.

7명이 맞았다.

그런데 스킬 포인트는 6개 들어왔다.

‘안 죽었다고?’

인간이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니, 좀비라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치명상이었다.

-네 이놈.....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곱게 죽지 못할 줄 알아라!

어이없게도 반으로 쪼개진 예의 바르던 리더 흑마법사 놈이 도로 붙고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죽은 놈들의 시체를 흡수한다.

그리고 붉은 살덩이로 이루어진 5미터 정도의 흉측한 괴물 거인이 하나 탄생했다.

-크엉!!

괴물 거인은 짐승과도 같은 포효를 내지른다.

“고, 고위 계약자!!”

“저 인간은 최소 고위 마족과 계약한 모양이에요!!”

루나와 아일라가 경악해 소리쳤다.

분명 반으로 쪼개져 죽었다.

그런데 다시 살아났다.

저 정도의 불사라면 약한 놈들은 구미가 당길만했다.

하지만 그래도 크게 위협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주군. 내가 처리하지!”

이그니스가 흉측한 괴물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괴물 거인 놈의 주먹이 이그니스를 내려쳤다.

그녀가 그 커다란 주먹을 둥근 방패로 막았다.

체구 차이가 있다 보니 그녀의 그 행동은 미약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으드득!

하지만 오히려 방패를 때린 흉측한 거인의 주먹이 으깨진다.

거인의 주먹을 막은 이그니스가 거인의 가슴을 향해 창을 내지른다.

옅은 붉은빛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창.

-펑!

이그니스가 내지른 창에 괴물 거인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도 괴물은 죽지 않고 이그니스를 끌어안아 붙잡으려 했지만.

이번엔 어느샌가 괴물 거인의 머리가 사라졌다.

이그니스가 창으로 가슴을 뚫고 연이어 괴물의 머리를 터뜨린 거다.

머리를 잃은 괴물 거인의 육체가 그대로 쓰러졌다.

-쿵.

다시 살아난 것이 허무하게 이그니스에게 순식간에 죽었다.

하지만 메시지에는 반응이 없었다.

‘.......안 들어오는데?’

퀘스트에는 몇 명을 처리하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다. 원래는 6명이 있고 한 놈은 마왕 추종자가 아니었다는 건가?

......그래도 혹시 모른다.

“루나, 불 좀 부탁해.”

“아, 알겠어요.”

내 의도를 눈치챈 루나가 괴물 사체에 마법으로 불을 붙였다.

활활 잘 타오르는 시체.

“흠….”

왜 포인트가 안 들어오는 거지?

역시 저놈은 마왕 추종자가 아니었나?

그런데 그것도 말이 안 되지 않나?

괴상하게 변신까지 했는데….

“운호, 어떻게 알았어요? 그들이 흑마법사인지.”

행방불명된 스킬포인트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니 루나가 물었다.

“.....그냥?”

시스템이 알려줬다.

아니, 시스템이 알려준 게 맞는 건가?

어쩌면 시스템이 아닐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들어오지 않는 스킬 포인트의 찜찜함.

그렇다고 여기서 죽치고 있어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괴물 사체를 불태운 우리는 자리를 떠났다.

*

*

*

운호 일행이 떠나간 자리.

불에 태운 시체에서 뭉글뭉글 시커먼 살이 뭉쳐지더니 사람의 형태를 만들었다.

시커멓게 불에 타 너덜너덜한 피부.

겨우 사람 형태를 유지한 흉측한 육체에 붉은 눈동자만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독한놈들….”

어떻게 알아낸 건지 자신들이 흑마법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다 죽인 것도 모자라 철저하게 불에 태우기까지 했다.

터무니없이 강한 건 둘째치고 지독한 놈들이었다.

“어, 어서. 블로아 님에게 가야….”

그때였다.

흑마법사는 어디선가 날아온 심상치 않게 생긴 창에 심장이 꿰뚫렸다.

“크아악!!!”

가슴에 창이 박힌 흑마법사는 고통에 바닥을 굴렀다.

이건 위험했다.

계약으로 얻은 부활의 권능을 다 썼다.

“역시 주군 말대로군. 괴이한 놈이로구나.”

“어, 어떻게….”

“나도 모른다. 주군의 명령대로 했을 뿐.”

이그니스는 무심하게 흑마법사의 가슴에 박힌 창을 뽑아 머리를 창으로 꿰뚫었다.

-퍽!

“끄어어! 안돼!!!”

-푸스스….

흑마법사는 절규하며 마치 모래가 부서지듯 스러져 사라졌다.

「이그니스: 역시 주군 말대로였다. 다시 살아나더군. 놈의 반응을 보면 이번에는 깔끔하게 죽은 거 같다.」

「운호: 이그니스 수고했다. 돌아와.」

「이그니스: 알았다. 주군.」

이그니스는 흑마법사가 흩어진 자리를 슬쩍 보고 주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혹시 몰라 이그니스를 잠복시키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 성과가 나타났다.

<스킬포인트 1을 획득했습니다.>

찜찜한 기분이 사라졌다.

‘역시 이놈 죽지 않았었군.’

이번에 살아났을 때 죽이니 완전히 죽은 듯했지만.

단번에 죽일 방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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