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린, 괜찮다. 제자인 네게는 험한 꼴을 보여주고 싶진 않구나.”
“스, 스승님….”
대사가 먹혔는지 에일린이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 신파극 할 때야? 이그니스님 좀 어떻게 해야 하지 않아?”
사제 간의 애틋한 분위기에 아일라가 찬물을 끼얹는다.
“어떻게 하긴. 이그니스 혼자서도 다 정리할 수 있을 거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그니스의 신위를 본 일행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그 커다란 중급 침식체를 가지고 놀면서 탱킹하던 그녀다. 마음만 먹는다면 순식간에 처리도 가능했겠지만, 일행을 위해 어느 의미 희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그니스의 위협이 될만한 놈은 없었다.
그런 놈이 이런 곳이나 지키고 있을 리도 없고.
놈들의 우리를 향한 목적은 명확했다.
자비를 베풀 이유가 있을까?
그런고로 이그니스를 말릴 필요도 없다.
“막아!!”
“오, 오러 마스터 같은데?”
“마, 마스터도 인간이다. 지칠 거다. 밀어붙여!”
지칠지도 모르지.
그게 놈들에게 해당하는 미래는 아니었다.
이그니스는 쥐새끼들 속에 사자처럼 날뛰고 있었다.
슬금슬금 엉덩이 빼는 놈들이 보였다.
그런 놈들에게는 마력창을 날려 꽂아줬다.
목책 위에서 이그니스에게 화살을 날리는 놈들이 보였다.
그 정도로 그녀에게 위협이 되진 않겠지만.
이건 내 마법을 선보일 때였다.
익스플로전은 광역 데미지가 있는 만큼 파티 전투에는 영 쓸모가 없었지만.
저런 데 사용하기에는 최적화된 마법이다.
드디어 업그레이드된 익스플로전 최대 출력의 힘을 보여줄 때인가?
지팡이가 덜덜 떨릴 정도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짐볼만 한 커다란 마력의 구체.
특대 익스플로전이 생성됐다.
그걸 본 루나와 아일라가 조금 질린 표정을 짓는다.
“여, 여기 떨어뜨리면 안 돼?”
아일라의 눈빛은.
수류탄을 쥔 이등병을 보는 조교의 시선이었다.
왼쪽 목책을 조준했다.
“가라. 최대 출력 익스플로전.”
지팡이 끝에서 발사된 커다란 마력 구체가 빠르게 날았다.
그리고 목책에 부딪혔다.
-꽈아앙!!!
화려한 폭발과 함께 목책이 말 그대로 터져 버렸다.
그 충격에 땅이 진동하고, 후끈한 후폭풍에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흩날린다.
익스플로전 한발에 왼쪽의 목책은 완전히 무너졌다. 당연히 목책 위에서 활을 쏘던 놈들도 사라졌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광경이었다.
다른 한쪽에도 익스플로전을 조준했다.
내 대마법을 보고 얼빠져 있던 놈들이 내가 익스플로전을 날리려는 걸 보고 사색이되 목책 아래로 뛰어내리는 게 보였다.
익스플로전은 오른쪽 목책에도 여지없이 작렬했다.
-콰앙!!!
이제 동굴을 둘러싼 목책은 끝에 조금만 남겨두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새 이그니스도 다 정리했는지 한 놈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왔다.
“주군. 한 놈은 남겼다.”
놈의 이빨은 몇 개가 빠지고, 코와 입가에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처음에 우리 앞에서 똥폼잡던 놈이었다.
“크윽….”
이그니스가 굳이 저놈을 살려 데려온 이유는….
심문하라는 이야긴가?
지금은 별로 궁금한 건 없는데….
이그니스의 시선이 뜨겁다.
그 시선에서 무언가를 바라는 강아지의 눈빛이 느껴졌다.
칭찬해 달라는 건가?
“잘했다. 이그니스.”
“후후. 주군. 별거 아니다.”
“크윽! 네놈들 평범한 모험가가 아니구나. 어디서 보낸 거냐? 슬러버 영주냐?”
이그니스에게 두들겨 맞았음에도 녀석의 눈빛은 아직 살아있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흥, 내가 대답할 거 같으냐?”
훌륭한 기개였다.
“그래?”
나도 관심 없었다.
이그니스에게 눈짓하자 이그니스가 창을 들어 올린다.
조금 있으면 녀석은 머리가 박살 나 죽겠지.
놈의 눈동자가 떨렸다.
“자, 잠깐.”
내가 관심이 없다는 걸 안 건지.
아니면 이그니스의 창이 무서운 건지.
그래도 죽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소속.”
“........다, 다크 블러드 클랜이다….”
“다, 다크 블러드!!”
“크크. 이제야 네놈들이 뭘 건드렸는지 알겠나?”
-퍽!
“크억!”
얼굴을 걷어차인 놈은 강냉이가 몇 개 더 부러져 비어있던 이빨이 더 늘어났다.
“쯧. 놀란 척해줬더니 그새 기고만장해져서는….”
다크 블러드라면 일주일 전인가 우리를 강도질하려 했던 놈들 아닌가….
“여기는 너희의 소유인가?”
“....그건....아니다. 이곳은 우리 클랜과 세 모험가 길드의 공동 소유다. 우리는 관리만 맡아 하고 있지.”
4개의 단체가 한통속이라는 건가?
간단하게 4개의 대기업이 뭉쳐서 11층부터 독점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영주는?”
“4개의 단체가 힘을 합치면 그 힘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영주도 우리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네가 알고 있는 건 그게 다인가?”
내 말에 살기를 느낀 건지 녀석이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십, 십일 층의 비밀을 알고 있다.”
“비밀? 그게 뭔데….”
“그건......내 목숨을 살려준다면 알려주지.”
“.......”
“진짜 엄청난 비밀이다!! 내 목숨을 살려주지 않는다면 절대 말하지 않겠다!”
“흠....너의 목숨을 걸 정도로 중요한 비밀이라는 말이지.”
“그렇다!”
-퍽!
녀석의 얼굴에 마력창이 꼽혔다.
“목숨보다 소중하다는데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이쯤에서 복귀할 생각이었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내려가 보면 알겠지.
살아남은 놈이 없나 감각을 곤두세워 난장판인 안쪽을 살펴봤다.
한 목재 건물 안에서 생존자가 감각에 걸렸다.
하지만 일반인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허접한 일반인이다.
굳이 아득바득 찾아 죽일 이유가 있을까.
*
*
*
미궁 11층 통로 입구를 막고 있던 놈들을 초토화한 우리는 적당히 챙길 건 챙겨 복귀하기로 했다.
놈들 처지에서는 어차피 복귀할 거 왜 그랬냐 싶겠지만.
나도 단순히 이곳이 마음에 안 든다고 초토화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는 대충 확인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놈들이 자초한 일이다.
내 잘못은 없다.
목적도 달성했고 아일라의 안내를 따라 빠르게 복귀를 시작했다.
그런데 하급 침식체는 종종 나왔지만, 중급이 나오지 않았다.
3포인트 남았는데....니미….
역시 사람이 원할 때는 안 나온다.
미궁 요새에 가까워질수록 침식체의 숫자는 줄어든다. 그렇다고 침식체 잡는다고 다시 돌아가기도 애매했다.
못 찾으면 어쩔 수 없다.
시간 지난다고 포인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소 빠른 복귀 행군을 하다가.
휴식을 취할 겸 마차를 꺼내 느긋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였다.
“누가 알람 마법을 건드렸어요.”
루나가 말했다.
또 강도 놈들인가?
귀찮게....질리지도 않는 놈들이군.
그렇게 투덜대며 마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수상한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시커먼 로브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특이하게 7명이 전부 다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했다.
“죄송합니다. 가는 길이 급해서 마법을 건드렸군요. 이런 곳에 쉬고 계실 거라 생각을 못 했습니다.”
선두에 서 있던 사내가 정중하게 말했다.
후드를 눌러써 코와 입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 보자면 젊은 남자였다.
생각한 것과 다르게 의외로 정상인의 반응이었다.
계속 비정상인 놈들만 만나다 보니 이 녀석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저희는 바로 가던 길을 갈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주 매너가 철철 흘러넘쳤다.
혹시 몰라 경계를 늦추진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전혀 적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정상인이 맞는 거 같았다.
가는 방향을 보면 우리가 초토화한 진입동굴 목책 방향으로 추정됐다.
그들이 간다면 우릴 조금이나마 의심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선량한 모험가.
겨우 그런 이유로 살인 멸구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정상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내가 잘못한 것도 없으니 찔릴 것도 없다.
그때였다.
<마왕 추종자를 발견했습니다.>
<긴급 퀘스트: 마왕 추종자들을 처리하세요!!>
<보상: 1인당 1 스킬포인트.>
이건 또 뭐야.
긴급 퀘스트는 각성하고 처음이었다.
그것도 느낌표 두 개!!
시스템 메시지가 급하다는 느낌은 처음 받았다.
설마 저놈들?
누가 봐도 퀘스트가 누굴 말하는지 명확했다.
“잠깐?”
우리를 지나치려던 수상한 녀석들을 불러세웠다. 그들은 내가 불러세우자 흠칫했다.